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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중심으로 세우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삶의 중심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야! 저시키 죽을 때까지 똥침 실시!
한 남자가 식인종 무리에게 잡혔습니다.
식인종이 물었습니다.
“똥침 한 대 맞을래? 아니면 그냥 죽을래?”
그래서 똥침을 선택했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한 달을 못 걸어 다녔습니다.
며칠 후에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혔습니다.
식인종이 또 물었습니다.
“똥침 세 대 맞을래? 아니면 죽을래?”
너무 고통스러웠던 똥침의 추억을 가진 이 남자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식인종이 하는 말,
“야! 저 시키 죽을 때까지 똥침 실시!”
식인종들은 그 남자를 똥침으로 죽이나 그냥 죽이나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냥 죽이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볼 수 없기에 똥침을 놓아서 죽을 고생 하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쾌재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 보면 종종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한 번에 속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도, 조금씩 조금씩 하면서 약 올리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라 박수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어떨까요?
우리들도 다른 사람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라 박수치는 사람들은 아닐까요?
우리들도 예수님의 사랑이 식어 지면 얼마든지 식인종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떨어지면 안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아멘.
P4.
인생이란 존재는 영혼의 본향인 천상 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지상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어느 누구나 의식주의 문제를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로 인식한다.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다른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문제가 다가오지 않는다.
의식주의 문제만 제대로 해결할 수 있으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인식한다.
세계 최빈국이라는 나라의 국민들은 의식주 문제만 해결되면 가장 행복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행복지수 상위권에 해당한다.
그러나 선진국, 문화대국, 강대국이라는 나라의 국민들은 의식주 문제뿐만 아니라 여타의 문제들까지 해결되었는데도, 자신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인식하면서 생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많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자살율이 OECD 회원국가들 중에 상위권에 해당된다.
OECD 자살률이 인구 10만명 당 우리나라는 28.7%, 헝가리가 19.4%, 슬로바키아가 18.1%, 일본이 17.6%으로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고 한다.
이에 출산율, 이혼율, 우울증, 노인빈곤율, 총소년 행복지수 최하위, 가계부채율, 소득불균형, 부의 편증율, 고용불만과 같은 민생문제가 최고 높은 순위로 나타났다고 한다.
메슬로우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욕구의 5단계에서 1단계인 생리적 욕구가 채워져야 더 높은 욕구의 단계로 올라간다고 말한다.
생리적인 욕구인 의식주의 문제, 성욕의 문제, 수면욕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2단계인 안전의 욕구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의 욕구를 채워지면 소속감의 욕구로 진입하고, 소속감의 욕구가 채워지면 존중하게 되고, 자아실현의 욕구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면 12지파 백성들에게 제비를 뽑아서 기업을 분배하도록 말씀하신다.
12지파 백성들에게 제비를 뽑아서 기업을 분배하면 각 지파에서 다시 제비를 뽑아서 각 가문에게 분배해 준다.
제비를 뽑으면서 각 가정까지 기업이 분배하게 된다.
각 가정까지 기업이 분배되면 모든 기업 분배가 끝나게 된다.
하나님은 12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면서 가문의 숫자가 많으면 많이 분배받고, 가문의 숫자가 적으면 적게 분배받는 조건을 제시해 준다.
그런데 12지파에 포함되지 않은 한 지파가 있다.
바로 레위 지파이다.
의식주의 문제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예외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직접 기업이 되어주신다고 하는 레위지파라고 해서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가 없을 수 있겠는가?
레위지파 사람들도 먹고 자고 입고 살아야 하는 의식주의 문제는 피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레위지파는 기업을 분배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레위 지파는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면 어디에서 무엇을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레위 지파는 12지파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는 기업을 어떻게 분배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기업을 분배받을 수 있도록 해 주고 계시는가?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기업을 분배해 주는 방식은 오늘날 신앙인에게는 어떤 삶의 지침을 보여주고 있을까?
D4.
하나님은 민수기 3:12에서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신다.
민수기 3:41에서도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태어난 것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민수기 3:45에서도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신다.
레위 지파 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포함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기업을 분배받을 자격이 있다.
더더구나 오직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과 찬양하는 일에 매진하도록 특별한 사명을 주신 지파이기 때문에 기업을 분배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다.
레위 지파 사람들도 기업을 분배받아야만 그 기업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제물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십일조를 가지고 생활하더라도 삶의 터전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정해주고 계신다.
① 이스라엘 각 지파가 받은 기업에서 레위 지파를 위하여 기업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2-3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주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들을 두르고 있는 초장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성읍은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초장은 그들의 재산인 가축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에 이스라엘 각 지파가 제비를 뽑아서 기업을 분배해 준다.
다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배받은 땅에서 한 지파에 4성읍과 그에 따르는 초장들을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배당해 주라고 말씀하신다.
각 지파에서 배당해 준 성읍은 레위 지파 사람들의 거처가 되고, 성읍에 붙은 초장들은 레위 지파 사람들이 거느리고 있는 가축과 짐승들의 목초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레위 사람들에게는 가나안 땅에서 특별하게 어느 한 지역을 기업으로 분배해 주지는 않지만, 레위 지파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7-8절에서 “너희가 레위인에게 모두 사십팔 성읍을 주고 그 초장도 함께 주되, 너희가 이스라엘 자손의 소유에서 레위인에게 너희가 성읍을 줄 때에 많이 받은 자에게서는 많이 떼어서 주고 적게 받은 자에게서는 적게 떼어 줄 것이라. 각기 받은 기업을 따라서 그 성읍들을 레위인에게 줄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해주심으로 인하여 레위 지파 사람들이 거처할 처소가 없어서 유리 방랑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설치해 주고 계신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다른 지파 백성들처럼 어느 한 지역에 모여서 씨족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안전한 안전장치를 설치해 주심으로 인하여 더 이상 거주지 때문에 염려하지 않도록 해 주신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특별하게 하나님으로부터 구별 받으면서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신다.
특별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신앙인들에게 가장 좋은 안식처를 베풀어주시기를 소망한다.
월세보다는 전세로, 전세보다는 작은 집이라도 내 집에서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소망한다.
그래야 집세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월세로 살게 되면 월세 걱정이 말이 아니다.
왜 그리도 한 달이 빨리 돌아오기만 하는지, 겨우겨우 월세를 마련해서 월세를 지불하고 나면 그다음 날부터 월세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험한 집주인이라도 만나면 정말 힘들게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걱정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데, 집세 때문에 더 더 더 힘들고 고달프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월세보다는 전세로, 전세보다는 작은 집이라도 내 집이 있어야 안전장치가 해결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신앙인들의 가정에 “이젠 내 집에서 두 다리 쭉 뻣고 살아요.”라는 감사의 고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
②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4-5절에서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들은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방 천 규빗이라. 성을 중앙에 두고 성 밖 동쪽으로 이천 규빗, 남쪽으로 이천 규빗, 서쪽으로 이천 규빗, 북쪽으로 이천 규빗을 측량할지니 이는 그들의 성읍의 들이며,”라고 말씀하신다.
각 지파는 레위 지파 사람들의 거주지가 될 성읍들을 4성읍씩 배당하면 48성읍이 된다.
8절에서 “너희가 이스라엘 자손의 소유에서 레위인에게 너희가 성읍을 줄 때에 많이 받은 자에게서는 많이 떼어서 주고 적게 받은 자에게서는 적게 떼어 줄 것이라.”라고 말씀하신다.
각 지파에서 4성읍씩 배당하여 48성읍을 맞추되, 좀 더 많고 큰 기업을 분배받은 지파에서는 좀 더 큰 성읍을, 기업을 작게 분배받은 지파에서는 좀 작은 성읍을 배당하여 레위인들이 골고루 분산하여 거주지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성읍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각각 2,000규빗씩 측량하여 레위 지파 사람들이 거주하는 성읍의 들로 삼으라고 말씀하신다.
동서남북으로 각각 2,000규빗 씩이면 각각 대략 910m가 된다.
동서남북으로 910m를 레위 지파 사람들이 거주하고, 그 주변으로 이스라엘의 각 지파 사람들이 땅을 분배받아서 거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늘 아버지께서 이렇게 정해 주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해 주시는 기본 요인은 무엇일까?
하늘 아버지는 하나님께 온전히 제사를 올려드리는 일에 매진하게 될 레위 지파 사람들을 중심으로 살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믿고 의뢰하고 신뢰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레위 지파 사람들을 각 지파의 기업에서 중앙에 배치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하면서도 행진할 때에도 레위의 세 아들인 게르손, 고핫, 므라리 자손들이 법궤를 비롯한 성막과 성물들을 책임지고 이동하면서 중심에서 이동하게 하신다.
광야 생활하면서 진을 칠 때에도 성막을 세우고 성막 주변으로 레위의 3가족들을 주둔하고, 그 뒤에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진을 치도록 하신다.
그런 것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각 지파들은 레위의 가문들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세워가도록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중심지로 세워가고 싶어 하시는 것이다.
특별하게 레위 지파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고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지파이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서도 신앙생활의 중심지로 세워가고 싶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을 특별히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중심지로 삼아주시는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산 주님의 사람들, 신앙인의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공동체 삶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크고 작은 고민거리, 걱정거리,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행복한 일이든, 불행한 일이든 사소한 인간관계의 고민들까지도 함께 나누면서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고 이겨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신앙인들의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악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 되겠는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원하지 않지만 좋지 않은 일들도 분명히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에도 같이 마음 아파하면서 좋지 않은 일들, 불행한 일들도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B4 & L4.
레위 지파 사람들은 직접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보지 않고 나누는 삶을 살지 않으면 레위 지파 사람들은 살아갈 수 없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의 기업이 되어주시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레위 지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지파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으면 레위 지파 사람들은 살아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 신앙인들이 사는 곳,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서 불행한 일을 당하는 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사는 곳, 주변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해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은 이들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사회 이슈가 되곤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변을 돌아보면서 우리들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이들을 찾아서 그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 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주변을 돌아보면서 사회적으로 약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돌아보고 케어하면서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책임과 의무를 주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그런가하면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신앙의 중심지로 삼아주시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신앙인들이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배당된 성읍을 중심으로 2,000규빗, 대략 910m 정도의 거리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지로 삼아주신 것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 주님의 거룩한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교회, 생명의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섬김과 베풂이 존재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피로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께서 친히 세워주신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요, 도피성이 되어주시는 처소가 된다.
어느 누구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면서 삼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넘치게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들이 하늘 아버지와 우리 구주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을 향하여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은 우리 교회이다.
우리 교회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교회들 중에서 가장 작고 미력한 교회일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13년에 튀르키예(Turkiye, 터키)를 방문하여 1, 2, 3세기 초대 신앙인들이 신앙생활 했던 신앙의 터전들을 돌아보면서 절절하게 느낀 것은 우리 교회는 결코 작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지금 한국교회의 거대한 상황에서 본다면 아주 작고 협소하고 보잘것없는 교회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작은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교회의 형태가 크고 작고의 외형적인 모양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가 얼마나 크냐 작으냐 하는 외형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신앙고백이 순결하고 고결하고 정결하고 거룩하고 성결하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은 만족해하시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커서 주님의 구령 사역과 복음 사역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에 많은 업적을 쌓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교회가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기죽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주인 되시는 주님만을 의식하면서 신앙 생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교회는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믿음의 식구들이 함께 사랑해야 하는 교회이다.
진심으로 교회를 사랑하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해야 하는 교회이다.
우리가 우리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고, 위로나 격려를 해 줄 수는 있어도 진심을 다하여 우리 교회를 사랑해 주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는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들이 우리 교회를 사랑하는 것에는 한계점이 없다.
무한정으로 우리 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②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섬기던 주님의 몸된 교회를 버리고 떠나서 다른 교회로 옮겨서 신앙생활한다고 떠벌리더라도, 우리들 자신만큼은 우리 교회의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를 떠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주인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종이나 일꾼은 일터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
나그네나 손님들은 교회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주인은 일터를 버리고 떠날 수 없다.
주인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버리고 떠날 수 없는 사람이다.
좋아도 교회에서 살고, 싫어도 교회에서 사는 사람이 주인이다.
죽으나 사나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함께 죽고 사는 사람이 주인이다.
주인은 좋은 일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주인은 좋은 일도, 싫은 일도, 행복한 일도, 불행한 일도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앉아도 교회 생각, 누워도 교회 생각, 어디를 가더라도 교회 생각, 무엇을 하면서도 교회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다.
하루온종일, 한 주 내내, 365일 일년내내 교회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다.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온전하게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이다.
항상 온전하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주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삶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믿음이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삶의 중심, 삶의 터전이라는 인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들, Everything, All-in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오직 삼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