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답안지 허 열 웅 독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쾌락이며 특히 고전은 미래의 답안지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을 사면 구입 일자, 구입서점, 다 읽은 날, 등을 책에 기록해 놓고 감동을 받은 부분에는 밑줄을 그어 놓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자료가 될 부분은 발췌해서 노트에 기록해 놓는다.
그렇게 해 놓으면 시나 수필을 쓸 때 텍스트나 자료가 되기도 한다. 또 내가 감동 깊게 읽은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본다. 김동리, 이문열, 김수영, 김훈, 카프카. 알베르까뮤, 유발 하라리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언제부턴가 모든 게 책으로 보여, 세상도 사람도 모두모두,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 외국의 어떤 작가는 책상머리 맡에 이런 글을 써 붙였다지.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읽는다. 희망에 들뜨지 않고, 절망에 굴하지 않고,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들은 대개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을 견뎌낸 어떤 것이기 마련이니까” (위험한 독서-김경욱) 나는 아들 만 둘 이이서 딸이 있는 사람들이 몹시 부러웠고 만약 내게 딸이 있었으면 다정한 이야기도 나누며 정말 사랑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많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들이 그 동안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사귀던 여자를 소개하겠다며 집에 데리고 왔다. 만나고 보니 인물도 예쁘고 활달한 성격 같아 마음에 쏙 들었다. 며느리 감이라기보다는 딸 같은 친근한 감정이 들었다. 식사 후 호기심이 많아서 인지 장래 시댁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싶어서 인지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내 서재 에서는 오래 머물며 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나는 처음 맞이하는 며느리 감인지라 좋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우리 집안에 있는 것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아무것이든 가져가거라. 단 책은 한 권도 절대 안 된다. 이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아들이 깜짝 놀라며 참 말이에요, 그럼 저 도자기나 운보 선생님의 그림도, 황금열쇠도 괜찮단 말이죠. 하며 입이 귀밑으로 치켜 올라가고 있었다. 사실이었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내가 보관하고 있는 3,000여권의 책 하나하나가 보물보다도 더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누군들 책을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마는 나 또 한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특별히 깊다. 지금은 분가하여 따로 살고 있지만 두 아들과 함께 살 때 책을 잘 읽지 않는 아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너희들이 읽고 싶은 책을 사 오면 책값의 세 배를 주겠다’ 이렇게 약속을 하자 처음에는 돈 욕심이 나는지 가끔 사오더니 나중에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사실 책을 읽는 것도 본인이 취미와 흥미를 느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힘이 드는 것 같다. 아내도 성경책은 밤늦도록 자주 읽으며 메모도 하지만 내가 권하는 책은 시큰 둥 하며 잘 읽지 않는다. 창 앞에서 고서古書를 읽고/ 등불 밑에서 글의 뜻을 찾아보라 가난한 자 책으로 인하여 부유해지고/ 부유한 자 책으로 인해 귀해지니 책 읽는 영화를 보았지/ 책 읽어 실패하는 건보지 못했네. (왕안석의 권학문勸學文) ‘책은 꿈꾸는 것을 가르쳐 주는 진짜 선생님 이고’(G 바슐라르), 책 속에 길이 있다 책이 없는 집은 문이 없는 가옥과 같고, 책이 없는 방은 혼이 빠진 육체와도 같다. 키케로는 ‘책은 청년에게는 음식이, 노인에게는 오락이, 부자일 때는 지식이, 고통스러울 때면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또 한 ‘토마스 바트린은 ’책이 없다면 신은 침묵을 지키고, 정의는 잠자며, 자연과학은 정지되고 철학도 문학도 말이 없을 것이다.‘ 라고 단언 했다. 시인 손택수는“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위로고 작은 내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들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라고 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책을 많이 읽어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는 놀림을 받은 이덕무는 ‘굶주릴 때 책을 읽으면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되고, 추울 때 책을 읽으면 추위를 잊으며,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지고,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고 까지 했으니 실로 감탄스럽다. 사실 독서는 위험한지도 모른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속상 하게하고 때로는 왜소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가령 소설가 조정래는 열권이 넘는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비롯한 많은 대하소설을 쓸 때 엉덩이에 땀띠가 나고 진물여서 약을 바르고 주사를 맞으며 완성했다고 한다. 이문열은 작품이 탈고 될 때 까지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아내가 창문을 통하여 식사를 넣어 주는 등, 의지와 인내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왜 몇 시간도 못 버티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또 좋은 시나 소설, 수필을 읽고 나면 중심에 들어서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내 실력이 미워질 때도 있다. 그러다가 ‘신은 나에게 갈망만 주시고 왜 재능은 주지 않으셨을까? 하는 원망도 해보았다. 독서가 나를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책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니 거울 속에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또 한 책 속에는 읽는 사람이 채워야 할 빈 칸이 많아 퍼즐을 풀어 나가는 흥미도 새롭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지식이란 이름의 꽃이라 했다. 책 속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들을 실컷 볼 수 있어 행복할 뿐만 아니라, 책 읽는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모습이라 했으니 아름답고 경건한 모습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이성을 잃고 감정으로 갈라진 우리의 미래 답안지는 책 속에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