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는 여진족의 점령 지배 시기로 1644년부터 1912년까지 269년의 이민족인 여진족의 지배를 받아왔다. 청나라 여진족의 군대인 팔기군 출신들은 중앙의 왕족 및 귀족과 각 지역의 토호로 자리 잡아 한족은 계층상 여진족의 피지배층으로 거의 대부분 소작농이나 영지 내의 노동 계층의 대우를 받는다. 현재 중국의 전통 의상인 치파오는 여진족이 한족의 민족성과 문화를 말살하려 강제로 시행한 결과다.
1644년, 순치제(당시 섭정이던 예친왕 도르곤의 명)는 치발령을 내려 여진족 의상과 변발을 모든 한족들에게 강요했으며 이는 청 대를 이어가며 중국의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치발령이 떨어질 당시에는 자존심 강한 한족들은 야만족의 풍습을 따를 수 없다면서 전국 각지에서 엄청난 반발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본보기로 성 하나를 전부 도륙한다는 도성(屠城)을 시행해 양주 대학살과 가정삼도가 일어났다. 가정삼도는 가정성에서 봉기가 연거푸 일어나 진압을 실시하고 본보기로 학살과 약탈이 벌어졌지만 이후로도 두번이나 연달아 봉기군 점령과 진압군 점령이 벌어지면서 세번 연속으로 가정성과 근방의 한족 거주민들의 씨가 말라버린 사건을 일컫는다.
거의 모든 의상과 풍속 등 문화가 한족의 것이 아니 여진족의 것. 자기 문화를 잃은 민족은 문화에 대한 정체성도 없고 자부심도 없다. 그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망상으로 자존심을 지키려들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