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빨간 날
축일 등 붉은 글씨로 표기, ‘빨간 날’은 기쁜 축제의 날
누구나 달력의 ‘빨간 날(Red-letter day)’을 손꼽아 기다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달력에 빨간 날이 모여 있는 주간에는 여행이나 휴식을 즐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한 해의 ‘빨간 날’, 즉 공휴일의 수를 세어보기도 한다. 적어도 달력에서 만큼은, 빨간 글씨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빨간 날’이라는 표현은 생각보다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레드레터데이(Red-letter day)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영어권 나라를 비롯해,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의 유럽국가와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도 ‘빨간 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달력에 휴일을 빨간 글씨로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항간에는 인쇄기기의 잉크의 특성상 빨간색을 선택했다하기도 하고, 눈에 잘 띄기 때문에 골랐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달력의 역사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인쇄매체가 발달하기 전부터 달력에 붉은 잉크를 사용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중세 이전부터 교회의 달력에는 ‘빨간 날’이 있었다.
유럽 중세시대의 많은 서적을 보면 첫 대문자나 중요한 단어에 붉은 글씨를 자주 사용했음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시 교회의 달력, 즉 전례력에는 교회의 중요한 날, 바로 성인의 축일이나 예수부활대축일과 같은 거룩한 날 등을 빨간 글씨로 기록했다.
사람들은 이 ‘빨간 날’에 축제를 지내거나, 성삼위나 성인을 기억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렇게 이 날들은 기쁜 날이자 기념할 날로 자리 잡아 오늘날의 ‘휴일’에 가까워져갔다. 사실 해마다 정해진 날 휴일을 지내는 일은 교회의 축일 이전부터 있던 관습이지만 유럽을 비롯한 가톨릭계 국가나 미국 등의 공휴일에서는 지금도 전례주년의 많은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우리들의 마음이 하느님 안에 있지 않으면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도 교회에서 유래한 이 ‘빨간 날’들을 보내며 하느님을 기억하는 습관을 들이면 더 진한 ‘빨간 날’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탤런트
예수 시대 화폐였던 ‘탈렌트’, 복음서 재능 ‘탤런트’로 비유
- 기원전 212~209년 경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에서 사용하던 탈렌트.
우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기자들을 흔히 ‘탤런트(Talent)’라고 부른다. 탤런트라는 단어의 소리는 예수 시대의 화폐 단위 ‘탈렌트’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그 뜻은 예수의 비유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에서 탤런트는 텔레비전 연기자만을 국한해 말하지만, 사실 탤런트는 더 넓은 의미를 지닌다. 탤런트는 하늘이 준 재능, 재주가 있는 사람 등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탤런트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KBS가 개국하면서 텔레비전 배우를 공모, 선발했는데 이 때 처음 탤런트라는 말을 사용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탤런트의 어원이 되는 탈렌트는 ‘저울, 계량(計量)된 것’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탈란톤(talanton)’의 번역으로, 고대 서아시아 와 그리스에서는 질량과 화폐의 단위로 쓰였다. 예수 시대에는 1탈렌트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 돈이었다. 데나리온이 일꾼의 하루 품삯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큰 단위의 돈이었다.
이 탈렌트에 지금의 의미가 부여된 것은 마태오 복음 25장의 비유에서다. 예수는 하늘나라를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며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는 것에 빗대어 설명한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탈렌트를 준다. 주인이 돌아온 날, 5탈렌트를 맡은 종과, 2탈렌트를 맡은 종은 주어진 탈렌트를 활용해 각각 두 배씩 탈렌트를 늘려 상을 받았지만, 1탈렌트를 맡은 종은 맡은 1탈렌트마저 빼앗기고 쫓겨나고 만다. 이 비유에서 탈렌트, 즉 탤런트가 ‘(하늘이 내린) 재주, 재능’이란 뜻을 얻게 됐다.
연기 등의 재주를 지니고 외모도 타고 났을 뿐 아니라 인기도 누리는 탤런트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부러워하고 바라야 하는 것은 연기력도, 외모도, 인기도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탈렌트를 하느님 뜻에 맞갖게 쓰는 모습일 것이다.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 ‘탤런트’란 말에 어울리지 않을까.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카푸치노
카푸치노 부드러운 거품 모양 카푸친회 수도복 모자와 닮아.
2000년대부터 커피전문점이 대폭 증가하면서, 다양한 커피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커피 중에도 교회에서 유래한 커피가 있다. 바로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는 ‘카푸치노’가 그렇다.
진갈색 커피 위에 우유 거품을 얹어 계피가루를 살짝 뿌린 카푸치노는 그 이름을 ‘카푸친작은형제회’에서 따왔다. 카푸치노는 그 거품의 모습이 카푸친작은형제회 수도복의 모자, 즉 카푸치오(Cappucio)와 닮았다 해서 카푸치노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내려오고, 혹은 카푸치노의 갈색빛이 카푸친작은형제회 수도복의 색과 비슷해서 카푸치노로 불리게 됐다는 전설도 있다.
다른 여러 수도회 중에서 굳이 왜 ‘카푸친’에서 이름을 따왔을까? 사람들은 그 이유를 카푸친작은형제회의 사제, 복자 마르코 아비아노(Marco d‘Aviano, 1631~1699)에서 찾는다. 마르코 아비아노는 아비아노, 즉 이탈리아 북부 출신이지만, 이 복자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지역은 바로 카푸치노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의 빈이다.
하느님 말씀이 흠뻑 담긴 카푸친 특유의 강론으로 많은 이들을 감명시키던 복자는 1693년 빈이 오스만터키군에 포위돼 전투를 치를 당시에 큰 역할을 한다.
터키군에 대항하기 위해 교황의 명으로 모인 신성 연맹은 그의 설교에 힘입어 일치와 단결을 이뤘을 뿐 아니라, 사기가 높아져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 승리는 유럽의 이슬람화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복자는 빈 시민과 황제에게 큰 감사와 사랑을 받았는데, 복자가 선종했을 때는 황제가 몸소 그 장례를 치르고 오스트리아의 황릉과 복자의 묘를 나란히 안치할 정도였다.
- 부드러운 우유거품을 올려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커피맛을 즐길 수 있는 카푸치노.
일부 전설에는 마르코 아비아노가 직접 카푸치노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료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찾기 어렵다. 실제로 카푸치노의 전설이 퍼진 것은 1980년대의 일로 여겨진다. 복자가 직접 카푸치노를 만든 것이 아닐지라도 카푸치노란 이름에는 복자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커피의 창안자가 아니라 강론과 고해성사 속에서 사람들을 영적으로 치유하고 하느님 앞에서 통회하도록 이끈 한 사람의 사제를 사랑한 것이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허브
상처 치료 ‘성스러운 풀’로 인식
봄의 기운이 완연해지면서 세상에 푸른 풀이 가득하다. 푸른 풀이 가득한 5월은 푸른 풀이란 뜻의 라틴어 헤르바(Herba)에서 유래한 ‘허브’(Herb)의 계절이라 할만하다.
허브는 다양한 용도로 생활에서 이용되는 여러 풀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최근 건강한 먹거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실용성 높은 화초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더욱 허브의 쓰임이 늘어나고 있다. 허브 중에는 교회에 관련된 이야기를 가진 허브도 많이 있다. 차, 향식료, 방향, 관상 등 우리 곁의 여러 허브를 통해 신앙도 만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허브는 구약성경의 시대에도 많이 이용됐는데 특히 성경에서 ‘우슬초’로 번역된 ‘히솝’은 중요한 허브 중 하나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열 번째 재앙을 피하기 위해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서 사용한 것이 바로 ‘히솝(우슬초) 한 묶음’이었다. 히솝은 이후 집이나 사람을 정화하는 예식에 이용돼왔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게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입에 대기 위해 사용한 것도 히솝 가지였다.
‘버베인’은 영어로 홀리허브(Holy herb)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달릴 때 그 십자가 밑에서 발견된 풀로 창에 찔린 상처를 지혈했는데, 이 풀이 바로 버베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계 국가에서는 재난을 물리치고 상처를 치료하는 성스러운 허브로 인식되기도 했다.
우리말로 ‘시계꽃’이라고도 불리는 ‘패션플라워’는 그 생김새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 즉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을 떠올리게 한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허브도 있다. 마리아가 예수를 이집트로 도망갈 때 ‘로즈마리’ 위에 옷을 걸치고 휴식을 취했는데, 그때 원래 백색이던 로즈마리의 꽃이 파란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파란색은 천상의 모후인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이다. 또 갓난 예수의 옷을 로즈마리에 펴서 말렸는데 이 때문에 로즈마리가 수많은 효능을 지닌 향을 얻게 됐다고도 한다.
‘라벤더’의 전설도 로즈마리와 비슷하다. 마리아가 갓난 예수의 옷을 라벤더 위에 널어 말리자 라벤더에 향기가 머물게 됐고, 파란 라벤더 꽃에 닿은 옷이 파란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곱셈 기호
X자 ‘성 안드레아 십자가’서 유래
사칙연산 기호 중에서 교회에서 유래된 기호가 있다. 흔히 덧셈 기호(+)가 십자가 모양으로 교회와 연관 있어 보이지만, 교회에서 유래한 기호는 바로 곱셈 기호(×)다.
곱셈 기호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수학자 윌리엄 오트레드(William Oughtred)다. 오트레드는 15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수학기호를 만들어 오늘날까지 그의 기호가 몇몇 사용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기호가 바로 곱셈 기호다. 오트레드는 1963년 「수학의 열쇠(Clavis Mathematicae)」에서 곱셈 기호를 처음 사용했다.
오트레드는 곱셈 기호의 모양을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에서 따왔다. 덧셈기호가 라틴어에서 ‘~와/과’를 뜻하는 ‘et’에서 나오고 뺄셈기호가 ‘minus’의 ‘m’을 빨리 쓰는 과정에서 나온 점을 생각하면 수학기호에 종교적인 의미를 담았다는 점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산술, 대수 등을 논하며 영국 수학계에 큰 공헌을 한 수학자로 유명한 오트레드의 직업이 성공회 신부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법도 하다.
베드로의 형제이자 열두 제자의 한 사람인 성 안드레아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그리스에서 설교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 확실하게 언급한 문헌은 없지만 전승에 따르면 성 안드레아는 그리스의 파트라이에서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십자가에 못 박힌 성 안드레아는 이틀 동안이나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에게 설교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서 X자 형태의 십자가를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로 부르고 있다. 그래서 성 안드레아 성인을 묘사한 성화나 성상을 보면 이 십자가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나라에서는 ‘성 안드레아 십자가’가 익숙한 편이다. 다리가 X가 형태로 퍼진 호랑거미는 영어로 ‘성 안드레아 십자가 거미(St Andrew’s Cross spider)’라고도 불리고 철길 건널목의 X자형 신호등도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성 안드레아를 주보성인으로 여기는 스코틀랜드는 국기에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