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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5
여호수아가 받은 교훈 / 조용기 목사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의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었으나 하나님의 군대 대장이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얼굴에 땅에 대고 그에게 엎드려 절하며 물었습니다.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하자 여호수아가 말씀에 순종해 그대로 행했습니다.
1. 하나님이 무너뜨리신 여리고 성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로고스’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으로 주실 때 그것은 ‘레마’라고 합니다. 성경말씀이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우리 마음에 임할 때 로고스가 레마가 되고 레마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들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으면 믿음이 안생깁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시면 성경말씀이 마음속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기의 모든 주권을 내놓고 바라볼 때 하나님은 그에게 레마를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6장 2절로 5절에 보면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행동 방법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스스로 작전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레마인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는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과 엘리사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나아만은 위대한 장군이었으나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엘리사 집에 문둥병을 고침 받기 위해 갔을 때 엘리사가 나와서 정중하게 대해주고 고쳐줄 줄 알았지만 나와 만나주지도 아니하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합니다. 장군은 마음에 섭섭하게 느꼈습니다. 적어도 나와서 인사라도 해줘야 될 것인데 나오지도 아니하고 종을 통해서 이야기하니 섭섭할 만도 합니다. 그때 수하의 병사들이 병낫기 위해서 그보다 더 한 일도 해야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랫사람들의 올바른 보좌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에 나아만이 깨닫고 요단강으로 가서 물에 들어가 일곱 번 목욕합니다. 일곱 번째 순종해서 들어갔다가 일어나니까 문둥병이 싹 나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도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아 가셨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니 큰일이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명하신대로 순종하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레마의 말씀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감화감동을 해 주시는 것이나 꿈 환상 믿음 말씀으로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시인하며 행할 때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영국의 평론가 토마스 카알라일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민족을 하나님께서 큰 민족으로 세우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큰 민족으로 만들고 큰 개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높이는 사람을 어떻게 낮출 수 있으며 하나님이 낮추는 사람은 높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레마를 주시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으십시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50여 년 목회를 하면서 많은 하나님의 사업을 했는데 실패하지 않고 다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레마를 들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했으면 실패한 일이 많았겠지요. 그러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때 마음속에 분명한 말씀을 받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비록 환경은 어렵고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마음에 믿음이 생기니까 믿음을 따라서 행했습니다. 그러자 언제나 기적이 따라왔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강단에 설 때마다 과거가 기억이 나 감개무량합니다. 우리가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오기 전에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뿐 아니라 교인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도저히 우리 힘으로 교회를 옮겨갈 수가 없었습니다. 교인은 만명이 넘었는데 어디로 갑니까? 그때 여의도는 모래 벌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의도에 와서 기도만 하면 성령께서 나오라고 감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레마에 순종했기에 망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레마를 받고 믿으면 그 다음에는 담대하게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 돌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여리고를 점령하는데 필요한건 공격이지 성을 도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돌라고 하시니 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신발을 벗고 하나님께 내어맡기고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순종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 14절로 16절에 보면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야훼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서 일곱바퀴를 돌고 고함을 치니까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앉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믿고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서 믿고 순종하고 마지막에는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공중에 권세잡은 자가 우리를 훼방하나 찬양을 하면 쫓겨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을 하기 싫을때라도 찬양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찬양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음성인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 20절에 보면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여리고 성에서 큰 승리를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기뻐 춤추고 즐거워했습니다.
2. 아이 성의 대패
여호수아 7장 2절로 3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한번 일에 성공하면 자만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지혜와 지식의 근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기도해서 하나님이 마음에 준 레마를 받아서 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역사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실수한 것은 자만심이 생겨서 레마를 구하지 아니하고 여리고 성 승리의 신발을 도로 신은 것입니다. 자만심의 신발을 신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발을 신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예비하시고 새로운 방법, 새로운 지혜와 총명을 예비한 것을 기다리고 하나님이 주신 신발을 신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C. S. 루이스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우리가 고난 당하는 이유에 대해 “왜 고난이 있는가,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일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자만심으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발을 신지 않고 나갈 때, 이들은 아이 성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만 것입니다.
탐심 및 우상숭배는 우리를 완전히 하나님께로부터 격리시켜 놓습니다. 유다 족속의 아간이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과 200세겔과 무게 50세겔되는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서 숨겼습니다. 여호수아 6장 18절로 19절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야훼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야훼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아간이란 사람이 욕심이 생겨서 물건을 훔쳤습니다.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를 보고 눈이 확 뒤집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아간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도록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아간 한사람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온 가정이 큰 화를 당했습니다. 그 아내와 자식들과 집에 있는 짐승들까지 다 아골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돌로 쳐 죽게 된 것입니다.
요즘 프로야구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헛방망이질을 하는 타자들을 놓고 해설자들은 ‘자기 타격을 해야한다’라고 말을 합니다. 자기타격이란 평상시 훈련하던대로 하는 타격을 말합니다. 욕심과 자만이 들어가 있지않은 평상시의 타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탐심이 들어오면 하나님 말씀 대신 우리의 욕심을 쫓아갑니다. 말씀이 아무리 가르쳐도 말씀을 제쳐 놓고 욕심을 쫓아 갑니다. 그리고 결국 욕심은 우상숭배가 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이 와서 교만과 탐욕으로 물건을 훔친 것을 모르고 백성 중 3000명을 아이 성으로 올려보냈는데 패배했습니다. 너무 얕잡아 보다가 크게 당했습니다. 우리가 큰 낭패와 실망을 당하면 교만과 탐욕을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만과 탐욕의 짐을 짊어지고 있으면 절대로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와 전투를 앞두고 행군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군사들이 발걸음이 느려서 잘 못걷는 것을 보고 왜 군사들이 잘 못 걷는지 알아보니까 지난 전투에서 이겨 많은 재물을 빼앗아 나눠 가졌기 때문에 이것을 잔뜩 걸머지고 가다보니 도저히 몸을 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알렉산더는 재물들을 다 태워버리게 했습니다. 처음엔 병사들이 불평을 했지만 그 덕분에 전쟁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세상 짐을 잔뜩 짊어지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마귀들의 군사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앞에 나가서 승리하려면 교만과 세상 욕심을 반드시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3. 회복
여호수아 7장 6절로 9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야훼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야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그 장로들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탐욕을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24절로 26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야훼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야훼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고 말씀합니다. 아간 한 사람이 잘못하므로 아들들과 딸들, 그리고 가축들도 다 돌무더기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잘못하면 그 가족과 그 주위와 그 나라와 그 민족이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함께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정치인들이 공짜 이야기만 합니다. 학자금도 공짜, 병원비도 공짜, 음식 먹는 것도, 애들 밥 먹이는 것도 다 공짜로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짜는 실질적으로 고아와 과부와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공짜를 바라다가는 탐욕을 키우게 됩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요즘 도시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체험하지 못한 일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시골 집에 불이 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당시 재산 목록 제1호는 소입니다. 불이 났을 때 외양간에서 소를 끌어내려고 아무리 잡아 당겨도 소가 안나옵니다. 장사의 힘으로도 소를 끌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때 쓰는 방법이 소밥통을 뒤엎는 것입니다. 밥통을 들어 엎어 버리면 소가 순순히 따라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육시키시는데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고 내뜻대로 하겠다고 자꾸 뒷걸음질치면 우리의 밥통을 뒤엎어 버리고 우리 마음의 교만과 욕심을 버리고 회개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신발을 신고 주님 앞에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거짓말하는 사람, 중상 모략하는 사람, 이간질하는 사람, 불순종하는 사람,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축복도 누리지 못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미국의 R. A. 토레이 목사님은 “항복은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서 신학자인 윌리엄 바클레이는 “종이란 주인에게 세가지를 지켜야 한다. 절대 복종할 것과 절대 겸손할 것과 절대 충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려면 절대 복종하고 절대 겸손하고 절대 충성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말씀, 믿음, 순종의 삶이요, 교만과 오만과 탐욕과 욕심을 버리고 나가면 여리고 성에서도 이기고 아이 성에서도 이기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려도 믿고 순종하면서 나가십시다.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송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 성도 무너지고 아이 성도 무너지게 만들어 주시고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