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흠 선생님 추모특집
추모의 향을 담아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위원장님께서는 부산수필문단의 큰 기둥이자 최고의 어른이셨습니다. 저는 우리 문단의 어른이 연세로 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어른의 호칭은 후배들을 위하여 모범과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당신이 속한 단체나 조직이 발전하도록 물심양면으로 기여할 때 가질 수 있는 명예라 생각합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수필문단이 잘 될 수 있을까, 나아가 어떻게 하면 국가가 잘 될 수 있을까를 염려하셨습니다. 생전에 거금을 쾌척하여 당신의 아호를 딴 해인문학상 제정을 도와주신 것도 모두 후배 수필가를 위한 결단이 아니었습니까.
- 권대근, <부산수필문학학>, 백부흠추모특집, <추도사> 중에서
제가 선생님의 진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부산수필문학상 심사할 때였습니다. 작가상 수상작품으로 올라온 <부인의 침묵>을 읽고, 이렇게 수필을 잘 써시는 분을 가까이 두고도 몰라봤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며, 이후 시상식 자리에서 축하와 함께 저는 선생님의 수필적 재능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는 말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재에 대해 평론가의 호평을 듣고 기분이 좋아져서 일까요. 저는 선생님과 부자지간처럼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거의 일 주일에 한 번은 문안인사를 드렸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만해도 건강한 몸으로 계간 에세이문예사가 주관한 본격수필토론회에 나오셔서 독자의 입장으로 질의도 하시고, 토론회가 끝나고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며 좀 보자고 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까운 시일 내에 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했지요. 선생님을 보내는 영결식장, 눈물바람을 하고 있었던 조객들의 아쉬움과 슬픔은 유독 컸습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수필문단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계셨기에 세상을 떠난 선생님을 원망하고, 선생님을 이리 일찍 부른 하늘을 우러러 통탄해야 했습니다. 세상을 등진 선생님의 이름은 연암박지원문학상 수상자 백부흠 수필가였습니다.
저는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추모사에서 선생님의 삶과 인연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세 페이지 분량으로 압축해서 발표한 바 있습니다. 선생님과의 추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때가 연암박지원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라고 한 고백입니다. 그때가 아마도 당감동의 어느 식당에서 이병수 교장 선생님과 저를 불러 점심을 사주는 자리였습니다. 은행장도 하시고, 도자기와 문학 등 여러 분야에 공적과 업적을 남기면서 기쁜 일이 많았을 텐데, 세상에 제가 드린 연암박지원문학상을 탔을 때가 일생에서 가장 기뻤다고 한 데 대해 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삼천포 박재삼문학관에서 거행된 시상식에는 아들 내외분이 오셨고, 온 가족들이 전국 각지에서 다 모였습니다. 한복에 하얀 문인모를 씨시고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니 더욱 안타깝고 애석한 마음,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백부흠 선생님의 부고가 저와 우리 수필가에게 안겨준 상실감은 너무나 컸습니다. 갑작스런 부고 앞에서 허망함을 달랠 길 없었던 것은 아마도 선생님이 남긴 따뜻한 나눔, 누추한 곳에 살면서도 거금을 수필문단을 위해 헌사하신 그 큰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 우리 수필문단에 남긴 선생님의 공적이 이것뿐이겠습니까? 수시로 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시고, 문단 행사때면 후원금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권 교수, 시간 있나? 내가 점심 살게. 나올 때 송 교수도 데리고 나와도 좋아.” 이렇게 늘 남에게 인정을 흘리시는 일로 일생을 풍요롭게 사셨던 분입니다. 선생님의 넉넉한 인정과 곧은 인품은 우리 부산수필문단의 후배뿐만 아니라 수필을 사랑하는 문인 모두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이란 수필집을 집필하시다가 출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가십니다. 소설을 쓰시고, 신춘문예에 도전하려 하시는 열정에 저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단 하루도 붓을 놓지 않으시고, 틈틈이 글을 쓰시던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문인이셨습니다. 선생님은 하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저와 의논하셨습니다. 수필문단에 기금을 내어놓으시는 일, 아호를 딴 문학상 제정에 관한 건, 책을 내고 건도 저와 의논하셨습니다. 해인문학상 시상식장에 참석하고자 하셨으나, 당신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시상식에 참석하시지 못한 까닭으로 손수 상금도 전달하지 못 하시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후배 사랑과 수필사랑의 마음은 우리 부산수필문단에 큰 희망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을 보내고 쏟아지는 많은 추억담을 통해 선생님의 퍼즐이 맞추어 봅니다. 원로다운 원로, 어른다운 어른, 가장 멋진 분, 인정이 몸에 스며있었던 분, 올곧고 의로운 분, 선생님은 이런 멋진 수사를 그 고명한 이름 앞에 다 놓아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런 분이셨으니, 어찌 선생님의 소천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선생님께서 살아온 헌신의 삶, 나눔의 삶을 존경합니다. 늘 선생님을 만나면서, 저도 ‘나이 들면 선생님처럼 살아야지’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저의 사표이고, 롤모델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소천이 또 한 번 더 슬픕니다. 남은 자의 애도가 너무 커서 너무나 아픕니다. 저는 평소 생전에 전해주신 선생님의 큰 가르침을 받들어, 우리 부산수필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로 나서리라 다짐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당신을 잊지 않고 꼭 기억할 것입니다. 부디 선생님께서 지혜의 등불로 부산수필의 미래를 밝혀주십시오. 다시 한번 선생님의 영전에 마음 깊이 추모의 향을 담은 노래 한 곡 올립니다.
그대 나를 위해 웃음을 보여도/허탈한 표정 감출 순 없어/힘없이 뒤돌아서는 그대의 모습을/흐린 눈으로 바라만보네/나는 알고 있어요 우리의 사랑은/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서로가 원한다 해도 영원할 순 없어요/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잊지 말고 기억해줘요/나는 알고 있어요 우리의 사랑은/이것이 마지막 이라는 것을/서로가 원한다 해도 영원할 순 없어요/저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한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잊지 말고 기억해줘요/잊지 말고 기억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