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1]
김기영 (金基榮) - 나의 삶을 돌아보며
14. 남편의 기업체 근무와 뒷바라지 - 3
19 40여 년 전에 수술했던 다리가 노인성 관절염과 겹쳐서 너무 아파 부축을 해야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잠자리에까지도 지팡이가 없으면 운신하기 힘들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20 인공 고관절 수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병원의 의견에 따라 2002년 4월 삼성병원 정형외과에서 인공 고관절 삽입 수술을 받았으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21 복잡한 부위를 여러 번 수술했던 자리였기 때문에 의사들이 주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중 다리로 연결된 신경을 손상시키고 말았다.
22 그 결과로 한쪽 다리 전체의 통증과 더불어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가늘어지는 등 부작용이 새롭게 생겨나 장애자의 괴로움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23 독일에 있을 때부터는 나도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참고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라 참는 생활의 연속으로 쇠약해졌는데 특별한 병명이 찾아지지 않는 채로 자주 쓰러졌다. 남편도 나도 몸의 괴로움을 많이 겪으며 생활하였다.
24 수술 후에 대외 활동을 위한 연합회장과 대내 목회 활동으로 이원화하여 활동하던 기간이 잠시 있었는데 그때에 보은의 연합회장직을 수행한 남편은 주일마다 서울과 보은을 오가며 활동하기도 하였다.
25 보은 활동 후에는 강남교구 연합회장으로 발령받아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26 그런데 다른 36가정 원로 식구들에 비해 활동 범위가 국내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은 외국 식구들이나 젊은 식구들에게는 조금 낯선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는 서운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27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는 외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심정과 사랑의 문제이기 때문에 참부모님과의 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위로하곤 하였다.
証言 - [41]
金基榮 - 私の人生を振り返りながら
14. 夫の企業勤務と内助 - 3
19 40年以上も前に手術した足が老人性関節炎と重なり、とても痛くて支えられてやっと立っていられる程だった。寝床でさえ杖がないと身動きできない程になった。
20 人工股関節手術で解決できると病院に言われて、2002年4月、三星病院整形外科で人工股関節挿入手術を受けたが、結果は満足できなかった。
21 複雑な部位を何度も手術した所だったので、医師たちが注意したにもかかわらず、手術中に足から連結された神経を損傷させてしまったのだ。
22 その結果片足全体が痛み、その上血液循環がうまくいかず細くなる等の副作用が新たに生じ、障害者の苦しみを味わいながら生活している。
23 ドイツにいる時から、私も救急室に運ばれることが度々あった。辛いことがあっても我慢して表に出さない性格なので、我慢する生活の連続で衰弱したが、特別な病名が見つからないままよく倒れた。夫も私も肉体的な苦しみをよく経験しながら生活した。
24 手術後に対外活動のための連合会長と対内牧会活動に二元化して活動した期間が暫くあった。その時に報恩の連合会長職を遂行した夫は、毎週ソウルと報恩を行き来しながら活動したものだ。
25 報恩での活動後には江南教区連合会長に任令され会長職を歴任した。
26 ところが、他の36家庭の元老食口に比べて活動範囲が国内に限定されるしかなかった夫は、外国の食口や若い食口には少し見慣れない側面が無きにしも非ずで、寂しさを感じているようだった。
27 その度に私は父と息子との関係は外的なもので判断するのではなく、心情と愛の問題なのだから、真の御父母様との関係が変わらない限り、私たちは何の問題もないと慰めたものだ。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