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석상이다. 장식이 많은 두건을 쓴 둥그스름한 얼굴과 슬며시 다문 입이 편안해 보인다. 발등을 덮는 옷을 입고 오른손은 가슴에 올렸으며 편하게 내린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비단옷에 목걸이와 장식들이 무릎 아래가지 치렁치렁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촌부처럼 소박하다.
경주박물관의 실리 미술관에서 만난 석상이다. 무슨 보살일까 하고, 좌대를 살피다 깜짝 놀랐다. 난산 중생사 터에서 발굴된 십일 면 관세음보살이라 한다. 부처님 얼굴이 열하나라니·····.머리의 정면 얼굴은 자상으로 착한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왼쪽은 분노한 모습으로 악한 중생을 꾸짖고 타이른다. 오른쪽은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더 정진토록 선하게 웃는 얼굴이고 뒷면은 선과 악을 아우르는 큰 웃음으로 모든 중생을 거두어들인다. 천년이 넘는 세월에 깎이어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지만 여러 번 돌며 짐작으로 살펴본다.
중생사 삼일 면 관세음보살은 작은 얼굴 표정으로 죄를 소멸하고 복을 주는 영험한 일이 있었다. 모든 중생을 담당하고 있는 사정이나 형편을 헤아리자니 수용의 폭이 깊고도 넓었다.
신라의 어떤 이가 중생사 관세음보살께 기도해 아들을 낳았는데 얼마 후 전쟁이 나서 아기를 십일 면 관세음보살께 부탁하고 피난 갔다 보름 후 돌아오니 전쟁을 피해 젖먹이를 데리고 사찰에 온 부인이 젖을 먹여서 이기가 건강했다. 중생사에 불이 났을 때는 사람들이 모여서 불을 끈 후 법당에 가자 관음상이 보이지 않았다. 놀라서 찾아보니 뜰 가운데로 나가 있었다. 관세음보살 스스로 재난을 피한 것이다. 고려 성종 11년에는 사찰 주지가 시주를 받지 못해 정 운영이 어려워질 것을 걱정하자 십일 면 관세음보살이 직접 나가서 수주를 받아 주었다.
두 달 전이다. 서울 아들네에 갔더니 초등학생 손자들이 방과 후 학습에서 만든 벚꽃 가랜드와 팔찌를 들고 안겨 왔다. 가방을 벗자마자 선물 감상할 틈도 주지 않고 배드민턴 하러 가자고 끌었다. 아이들이 어찌나 잘하는지 할머니는 서브를 한 번도 넣지 못하고 허둥대다 몸살까지 났지만 마음은 풍선처럼 하늘을 날았다.
주말에 아들네와 국립박물관으로 나서자 막냇손자가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사유의 방에 나란히 앉은 ‘금동반가사유상’ 앞에서 좀 얌전해지더니 기증관의 ‘손기정 선수 투구’와 추사의 ‘세한도’를 보면서 신이 살아났다. 해가 진 후 관람한 덕수궁, 슬픈 역사를 설명하며 눈여겨, 보라고 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는다. 전통과 동서양식이 혼합된 건물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더니 정원을 지나자 힘이 다 빠졌는지 월대에 털썩 걸터앉는다. 놀라고 화가 나서 고함쳐 손자를 제지한 후 며느리까지 나무랐다.
부산으로 내려오며 찬찬히 생각하니 어제 내가 한 행동이 돌덩이 되어 가슴을 누른다. 도시에 살며 학교와 학원만 오고 가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여섯 식구가 함께 나들이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촐랑거렸는데 왜 그걸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나도 손자를 만날 일이 생기면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친다. “할머니~!” 하고 안겨 올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다. 좋은 인성으로 자라기를 바라서 손자의 바르지 못한 행동에 화를 크게 냈는데 과연 그게 옳았을까.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교육이 무엇인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및 바람직한 인성과 체력을 갖도록 여러 기관에서 가르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활동들이다. 아울러 가정의 일상생활 속에서 어린 자녀에게 주는 자연스러운, 가르침이다.
바람직한 교육을 하려고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콩 심은 데 팥나고 귤 심은 데 배 나랴, 하지만 간혹 유전자변형 콩이 생산될 수 있고 탱자가 열릴 수는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자를 훌고 틔워내는 토양의 지질과 환경, 그리고 가꾸는 이의 신선한 손길이다.
공자는 유고의 시조이며 사상가이고 교육자이다. 그에게 3000여 명에 이르는 제자가 있었는데 성품과 개성이 제각각이었다. 공자는 이들을 각자에 맞는 교육법으로 다루었다. “나보다 낫다”고 극찬한 덕행의 대명사 안희와 효성으로 이름 높은 민자건에 대해서는 그 본성을 존중하고 칭찬하며 이끌었다. 언변은 좋았으나 게으른 재아는 “썩은 나무를 어디에 쓰랴”며 호되게 다잡았고, 어눌하고 성실한 준둥은 “속이 깊다”며 북돋우었다. 협객 출신의 자로에게 도를 들으면 “부모에게 여쭤보고 행하라” 했고 신중한 영유에게는 “즉시 행하라”고 가르쳤다. ‘
십일 면 관세음보살은 자신의 뜻과 다른 중생을 밀쳐내지 않고 그 사람에게 맞춰 생각이나 태도를 바꾼다. 옳지 못한 행동을 하는 중생도 밀어내지 않고 표정을 달리 해가며 모두를 제도하여 바른길로 인도했다.
살면서 일어나는 일이 나이와 성향, 그 당시 기분에 따라 느끼는 점이 모두 다르다.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서 생각이나 의견을 상황에 맞추어 달리해야 한다. 견해가 다르더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해아리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경정할 일이다.
십일면관세음보살 앞에 다시 섰다. 보살의 여러 얼굴을 보며 가슴 속 돌덩이를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