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33호 2002년에 있었던 아프리카 가나 집회. (행1:8)
우리는 지난주일, 2002년에 있었던 아프리카 가나 집회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 집회는 애초 약 40만 명 정도가 모이는 대형집회가 될 것이라고 주최측이 전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가서 첫날밤에 꿈을 꿨는데 집회 장소에 사람이 없는 겁니다. 나무 밑에 사람들이 몇 명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면을 보고 화들짝 깨서는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이 집회를 성공시켜야 했기에 직접 홍보에 뛰어들었습니다. 우선 라디오 방송국 4개사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며 직접 광고를 했고,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시장통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복음을 증거하는 등, 집회광고에 진력했습니다. 그 결과 ‘너도나도 가보자’ 해서 집회 장소에 인산인해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가나뿐이 아닙니다. 2006년, 우크라이나 남부의 오데사 집회를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집회를 준비한 니콜라이 목사는 집회 장소로 88체육관 만한 넓은 장소를 빌려놓았지만, 실상 집회에 찾아온 사람은 300~400명 정도였던 참담한 집회였습니다. 광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필리핀 바기오(Baguio) 집회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패착은 ‘이초석 목사님만 모시면 당연히 차고 넘칠 것’이란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광고도,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광고 없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광고와 성공은 동반자요, 파트너입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어도,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알리지 않으면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기업들이 어마어마한 광고비를 내고 광고에 주력하는 것입니다.
올 크리스마스는 전도 대축제, 총동원으로 결정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행사가 아니라 이 땅에 주님이 오신 목적에 합당한 ‘한 영혼 전도를 위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광고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4~15).
예수님을 광고해야 합니다. 광고료를 지불해서라도 알려야 합니다. 슈퍼볼(미국 프로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의 광고료는 30초당 광고료가 자그마치 30억 이상이랍니다. 초당 1억인 셈입니다. 냉장고 하나 팔겠다고, 차 한 대 팔겠다고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리는데 최소한 택시비, 밥값은 지불해야지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예수를 전하라’는 명령이 우리에게 하달된 것입니다. 이는 명령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고 했습니다.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는 말은,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회피할 수 없는 필연적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며 목숨까지 바쳐 전도의 일에 매진했던 것입니다. 저 역시 주님의 명령을 수행코자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다시 2024년에도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하려 합니다. 사명에 부도내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항명은 절대 불가한 것이고, 불순종했을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어찌 될까요? 에스겔서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겔33:2~4).
여러분이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으면, 광고하지 않으면 그 죄를 물으신답니다. 전하지 않으면 피 값을 받으시겠다는 겁니다. 잠언에도 거듭 경고의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찌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24:11~12).
소경이 벼랑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다면 막아야지요. 자동차가 후진하고 있는데 그 뒤에서 아이가 놀고 있다면 달려가 그 아이를 건져내야지요.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지옥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면 마땅히 복음을 전해 구원해야지요.
예수님의 명령에 거역하면 화가 있지만, 명령을 잘 수행하면 상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제가 지난주에 하늘에서 받을 상과 면류관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천국에는 많은 상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상은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전도의 사명에 최선을 다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여러분,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 단연 으뜸도 영혼을 구원함에 있고(막1:38), 예수님이 12제자를 삼으신 이유도 먼저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요, 다음은 전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막3:14). 교회의 사명 역시 영혼구원에 있습니다. 우리를 먼저 택하심도 아직 믿지 않는 자를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15:16).
아직 구원받을 백성은 세상에 많습니다. 그런데 나가 외치는 자가 없이 어찌 그들이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듣게 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딤후4:2).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마18:12).
주인이라면 당연히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갈 것입니다. 그것을 찾았을 때 너무 기쁘겠지요.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눅15:5~6).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해올 때 주님의 마음이 이러실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생신에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선물을 드립시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전도해 옵시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할렐루야!
광고는 생존전략이요 성공에 이르는 첩경이다
광고와 성공은 정비례한다 성공하길 원하면 광고하라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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