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부산 일러스트 페스티벌'에 갔을때였다.
50개가 넘는 일러스트 부스들을 구경하고 굿즈를 살까 고민하던 찰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캐리커쳐 그려드립니다' 였다.
쌍수를 해서 눈이 커지기도 했고, 오늘 입은 옷이 마음에 들었던 것도 있지만
처음 만난 사람이 그린 나는 어떨까? 라는 궁금증이 내 관심을 이끌었다.
아쉽게 타이밍을 놓쳐 줄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캐리커쳐를 하진 못했지만 가끔 생각해본다.
‘처음만난 사람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라며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면서도 그저 날 예쁘게 보고 예쁘게 그려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다. 긴장해서 굳은 내 표정 조차도 사랑스럽게 그려줄 만큼 말이다.
캐리커쳐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보지 못했던 ‘처음만난 사람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난 좀 색다르게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바로 캐리커쳐를 그리는 화가의 시점에서 본 것 이다.
그리고 이 화가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며 배우이기도 한 정은혜씨이다.
다운증후군인 정은혜씨는 대학 졸업 후 그저 방에서 뜨개질만 하는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화실에서 그림에 대한 재미를 알게 되고
2016년 8월부터 문호리 리버마켓에 나가 ‘니얼굴'이라는 간판을 달고 캐리커쳐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며 그림으로 그들과 대화했고, 그 과정을 영화로 만들면서 영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영화예고편과 은혜씨의 그림집에서 난 익숙한 문장을 발견했는데,
바로 “예쁘게 그려주세요"
캐리커쳐를 부탁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똑같이 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에 은혜씨는
“이미 예쁜데요 뭘! 세상에 안 예쁜 얼굴은 없어요!” 라고 말한다.
솔직히 지금 바로 거울 앞에만 서도 세상에 안 예쁜 얼굴이 있다는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은혜씨는 왜 세상엔 안 예쁜 얼굴은 없다는 말을 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그림집과 영상에서 짐작해 볼수 있었다.
“얼굴을 그려요.
그냥 보이는 대로 그려요.
사람들은 다 다르니까
다 예쁘고 멋있고 자랑스러워요"
그림과 함께 수록되어있던 시였다. ‘사람들은 다 다르니까'
라는 말이 가장 눈에 띄는데 왜 다른게 자랑스러운 걸까?
나는 왜..사람들보다 다를까?
나는 왜 사람들보다 행동에 다른 점이 있을까?
나는 왜 성격과 생각을 어떤 점도 다르지
말하는 대화도 역시
남들과 다를까?
나는 남보다 외모가 다를까?
나도 외모가 있었더라면 좋겠다
남들이 다른것들은 아름답지만
자신이 다른것에는 불만인 듯 하다.
마지막 문장은 역시 특이하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한 장면이 떠올랐다.
리버마켓에서 캐리커쳐를 그리고 있던 은혜씨에게 다른 지역에서 본 적 있는 익숙한 얼굴이라며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다운증후군은 특징적인 얼굴모양이 있고 비슷하다보니 다른사람과 오해한 것이였다.
이처럼 다운증후군의 특징적인 얼굴모양은 비장애인인 사람들의 얼굴과는 다르지만 같은 다운증후군 사람들과는 비슷한 외모를 가진다. 이러한 이유에서 (비장애인들과) 다른게 싫지만 (같은 다운증후근 사람들과는) 다른 외모를 가지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며 사람들의 다름을 이뻐해주다보니
어느새 자신의 다름 또한 이뻐해줄 수 있게 된 것이였다.
그림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느꼈던 것에는 다름에 대한 사랑도 있었지만 또 하나 바로 ‘여유로움' 이였다.
모든 그림 속 사람들은 다 여유로워 보였다.
그 사람의 현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 그림 속에서 만큼은 커피 한잔 할 것 같이 여유롭고 안정되어 보였다.
요즘 부쩍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바빴던 나였기에 이 그림집을 읽는 시간만큼은 여유로웠던 것 같다.
그림 속에서 ‘여유'를 느껴졌던 이유에는
사회를 살아가며 남들보단 삶의 속도가 조금은 느렸을 은혜씨에게만 사람들이 놓치고 살아가는 ‘여유'가 보였기 때문인것 같다.
그렇게 이 그림 속 안에서 만큼은 여유롭게 쉬어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여유를 담았던 것이다.
‘처음만난 사람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그리고 우리가 그 ‘여유'를 놓치고 바쁘게 살아왔던 것에는 저 질문의 탓도 있다.
"예쁘게 그려주세요~" 처럼
우리는 모두 남들에게 멋져보이고 싶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싶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글을 보고 있을 당신도 이와 같은 상황일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맞다면 은혜씨의 그림과 글을 빌려 잠시나마 여유로움을 선물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해도 이미 예쁜 당신과 나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