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버호벤감독의 영화 ‘베네데타’
독실한 수녀 베네데타가 어느 날 성흔(聖痕)을 보여주며 예수의 아내가 됐다 주장한다.
거룩한 체험을 확인한 교구의 힘을 얻어 수녀원장이 되지만, 어린 바톨로메아와 동성애를 벌이다 적발돼 화형을 당할 상황에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베네데타는 당시 창궐하던 페스트를 빌미로 군중을 선동해 화형을 피하고, 70세까지 수녀원에 갇혀 살았다.
과연 그녀의 성흔은 진짜일까? 폴 버호벤은 두 번째 종교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베네데타의 성흔이 기적이 아니라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다.
‘베네데타’는 동성애적 묘사와 노출, 당시 구교의 타락과 부패 등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뜯어보니 영화는 많은 상징으로 또 다른 서브 시나리오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것을 화가
17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작은 도시 페샤. 총명한 어린 소녀 베네데타가 수녀원에 들어온다.
밤에 혼자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베네데타에게 갑자기 커다란 성모상이 떨어지지만 베네데타는 손끝 하나 다치지 않자, 한 수녀는 부러진 데가 없는 건 기적이라 말한다.
18년 후, 베네데타는 수녀원을 찾아온 부모에게 주의 환영을 봤으며 주의 신부가 되었다고 말한다.
마침 가난하고 폭력적인 집에서 도망쳐 나온 소녀 바르톨로메아가 베네데타 가족의 도움으로 수녀원에 들어오고, 반복되는 환영과 고통을 호소하는 베네데타를 돌보게 된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던 베네데타는 손과 발, 옆구리에 상처를 입고 성흔이라 주장하고 바르톨로메아도 동조한다.
원장 수녀 펠리시타와 그의 딸 크리스티나는 의심을 거두지 않지만, 신부를 비롯한 교계는 베네데타의 주장을 주님의 말씀이자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베네데타는 성녀로 추앙받으며 젊은 나이에 수녀원장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함께 방을 쓰던 바르톨로메아와의 성적인 관계가 적발되면서 불경한 창녀로 매도된다.
당시 교회는 베네데타가 환영과 성흔을 주장하며 성인을 사칭한 것보다는 동성애 행각에 더 큰 혐의를 뒀다고 브라운은 주장한다.
여성 동성애에 대한 관념조차 없었던 공고한 가부장 질서에서 수녀가 다른 여성과의 관계에서 남성적 역할을 수행 했다는 사실이 당시의 성 관념과 도덕 질서에서 더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영화는 중세 카톨릭의 타락과 부패를 통해서 여자의 성적 수치심과 개방성을 세속적인 것이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