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죄 선고
오북환 장로님 1992.12.23
참 의인은 예수 한분뿐이라. 그러니까 전 인류는 예수의 공로를 입어서 구원이 되는 것이고 예수 안에서 의인이 된 것이지. 예수 없이 의로울 수 없다는 거예요. 믿음으로 의신득의라. 어렵다. 어렵다. 믿음은 예수로 하나 되니까 긍게 예수로 봐서 올바르다고 인정해주신다.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아무리 큰 죄인일수록 자기가 죄를 더 발견한 만큼 예수님과 떨어질 수 없죠. 그러니까 제일 죄 많은 막달라 마리아가 여인 중에는 대 성녀가 되었잖아요? 대 죄녀가 대 성녀가 되어버렸다고. 예수님과 아주 더 가까워져 버렸어. 한 몸이 되어버리니까 그게 복음이에요.
예수님은 죄인 구하러 오셨기 때문에 가장 죄 많은 사람을 더 측은히 여기시고 당신 몸으로 먼저 환영이 되었다. 그 여자만이 부활한다는 말씀을 잊지 안했다. 마지막 심방할 때 네가 그 말만 늘 잊지 말아라. 내가 부활한 뒤에 너한테 먼저 나타날 것이니까 꼭 그 말 믿어라. 그 부탁하러 가셨다는 겁니다. 그 한사람 고 기억했으니까 제자들은 다 잊어버렸어요. 몇 번 들었어. 더 들었어도 잊어버렸어. 깜박 잊어버렸어.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나느냐? 믿지를 안 해버려. 이 그 여자는 그걸 기억 했어요. 믿었어요. 그러니까 먼저 만나주셨어요.
이 율법적인 행동과 복음 력(力) 과는 그렇게 하늘과 땅 차이에요. 아무리 큰 죄가 들어있어도 예수 안에 가면 의인이 돼버리는 것이고. 율법적 행동으로써 아무리 얌전하고 뭐 ~~ 단정한다 하더라도 그게 씨가 달라. 씨가, 그리스도 마음이 아니에요. 하느님 앞에는 그것 역시 사탄이에요 자기에요. 자기, 죄에 그대로입니다. 의로울 수는 없어요. 근본적인 성격이 변화 받질 안했어. 믿는 것은 예수의 성품으로 바까지야 하는 건데 내 타락성은 예수의 십자가에 같이 장사지내버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인데 그냥 바로 예수의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말이야. 그런데 항상 내 마음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에 죄에서 해방을 못 받는다 말이야. 일단 그건 십자가를 통해야 된다.
자 인제 요 만큼 타락성에 대해 성경전체에 그런 뜻으로 돼 있지만은 무죄선고, 무죄선언, 무죄석방, 죄에서 해방, 그 로마서 그런 것 관련 많이 있는데.
로마서3장만 다시 한 번 찾아보는 거요. 3장22절 율법에서 믿음으로. 20절서부터.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 하늘나라로 가는 다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 인자 19절, 20절까지는 1절서부터 완전히 그 타락성이 드러났죠? 의인은 한사람도 없다. 말이야. 다 죄인이에요. 다 심판받아야 마땅한 만 번 지옥가야 마땅한 죄인인 것이에요. 근데 그 죄가 다 들어날 대로 드러난 후에는 믿음을 허락해요. 율법서 믿음하고 연계진다 말이야. 율법에서 죄를 깨달았으면 이제 그리스도를 갈망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언자 기한이 되면 때가 되면 인자 믿음자체이신 그리스도 오신다. 말이야.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하늘나라로 가는 다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길은 선한 사람이 된다든가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런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입니다. 전연 지금까지 없던 길이에요.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오래전에 성경을 통해서 일러주신 것이니 사실 새로운 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길은 만일 우리가 죄를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여 무죄선고를 해주시겠다고 하시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무죄선고, 죄 없다. 이제,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과거가 어떻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만 하면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고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이상과는 먼 거리에 있을지라도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죄 없다고 무죄, 무죄선고, 죄 없다고 선고해주십니다.
그러면 22절,2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으로 값없이 우리 죄를 없애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해서 벌 받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내릴 진노를 멈추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우리 가진 믿음, 요겁니다. 우리 가진 믿음, 그리스도 피와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 우리에게 허락된 믿음, 이 믿음도 축복의 은사요. 주신 거예요. 또 믿게 되는 것은 하느님이 믿게 하심으로 믿어졌으니까 큰 축복이라 말이야. 기적이야. 기적,
사람은 스스로 아무리 믿고 싶어도 믿어진 건 아니에요. 믿고 싶은 마음은 있더라도 믿어지기 까지는 하느님이 하신 일이지. 믿게 하신 분 하느님이니까. 베드로 장담과 같아요. 장담 해봐도 그대로 이뤄지지 안했거든. 세 번이나 부인해버렸다. 말이야.
그리스도 피와 우리 가진 믿음으로 진노를 거두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이전 시대에 죄지은 자들을 벌하지 않았던 것도 실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들의 죄를 없애 주실 때를 기다리신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히 공정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를 제거해주셨어. 없애주셨어. 제거해 주셨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죄인을 받아들여 주십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죄 지은 자를 용서하시고 무죄를 선고하신 것이 무죄, 죄 없다, 선고 하신 것이니 불공평한 일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이 죄를 제거하여 주신 예수를 믿는 그 사실에 근거해서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으니까 안 믿으면 안 돼.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했다고 내세울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의 공로가 아니니까 사람의 노력이나 그 보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왜냐 구요? 우리의 죄 없음을 선고하신, 죄 없다고 선고하신 선고받은 죄 없음을 선고받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선한 일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슨 마음씨가 선해서 된 게 아니라 뭣을 잘해서 된 게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자 29절
하느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유대인만을 구원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방인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하느님께 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나 똑같이 대하십니다.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누구든지 믿음만 가지면 하느님과 다시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하느님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을까요? 여기 참 오해하기 쉽다 말이야. 이 말은 잘못 이해하면 또 율법적인 행동을 해야 하냐? 그 아니란 말이야. 그와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믿었으면 언자 자기는 없어요. 옛사람은 없어진 거예요. 없어졌는데 무슨 또 율법적인 행동을 하겠습니까? 예수님 모르시니까 머리 지휘대로만 사는 거지. 언자 사랑만 할 것 뿐이지 무슨 법의 제약을 받겠냐 말이야. 그것에 끌려 살겠냐? 그걸 초월해버렸는데 율법은 완성됐는데 사랑은 율법완성 아니냐 말이야. 언자 사랑하고만 사는 거지 무신 법이 그러니까 마지못해서 한 거 그런 게 아니라 말이야. 누가 미친놈이라고 하거니 죽일라고 하니 지옥 갈 놈이라고 하건 뭐 상관있냐? 하느님의 인증을 받았으면 전 세계 인류가 너는 지옥 갈 놈이다. 그래도 그러면 상은 더 크죠? 그런 거뿐이지. 무슨, 사람의 말에 흔들리겠냐 말이야.
핍박을 받으면 더 기쁠 것이고 더 영광이고 상은 무한정 커지고 애매한 소리를 들었소. 하느님의 인증을 받았으니까 하느님의 인증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다 부정해도 좋다.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만큼 더 참된 마음으로 하느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참된 마음으로 순종이야. 순종, 믿음이야. 믿음, 믿음만이 순종이 되는 거지. 율법적인 순종은 자기 목숨 위태하면 포기해버린다 말이야. 예수도 쓸어버린다. 믿음은 자기가 아니고 그리스도니까 그리스도가 제가 아멘 해놓고 부정하겠냐 말이에요.
자 그러면 4장, 먼저 4장 이때까지 안 봤어요. 쪼금 보다가 시간되면 말고.
아브라함의 믿음, 3장에 가서 몇 번 있냐면 무죄선고, 22절, 24절, 25절, 25절은 그 말은 없지만은 예수님의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26절, 27절, 30절 다됐죠?
인자 4장에 가서도 몇 번 있어요. 4장 인제 봐갑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우리 유대민족의 까딱하면 낙제될 뻔했으나 하느님이 그 아비멜릭인가 그 왕의 축복을 주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시험에 걸렸지만은 실상은 그 사라의 수치를 씻어줄라는 섭리였어요. 창세기 20장16절을 보면요.
그러니 아브라함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것은 그가 선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율법적인 무슨 선한 행동을 한 거 아니라 말이야. 값없이 주는 선물입니다. 선물, 만일 선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구원을 값없이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은총은 왜려(오히려) 죄인에게 주는 건데요. 죄가 폭로되는 영혼에게 주시는 건데 무슨 선행으로 준 것 아니거든요. 구원은 값없이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일한대로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구원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복음이에요 율법적인 거 아니라 말이야. 행동 봐가지고 무슨 천국 보내고 지옥 보내고 그런 게 아니라고. 회개를 해야지. 죄의 은총을 힘입으면 누구나 구원이 되는 거라고. 회개해서, 아까 다시 한 번 봐요.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하느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법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신 때보다 훨씬 뒤의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부터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받아들이셔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올바로 선한 사람이라고 선언해주셨습니다. 할례의식은 그 확인하는 표입니다. 표,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사람들의 조상인 셈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기회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믿음으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아브라함은 할례 받은 유대인, 유대인의 믿음, 이 공동번역, 아 여기는 믿음이 하나 더 들어갔죠? 유대인은 믿음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할례 받았더라도 믿음이 있으면 말이야.
그들은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 오직 할례만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아브람이 할례받기 전에 가졌던 것과 같은 믿음을 도맡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일 아침 보고요. 찬송합시다. 끝 쪽까지 읽읍시다.
로마서 4장15절에서 조금 생각해 보는 거요.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서 하느님의 복과 구원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그의 진노를 사는 결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상하잖아요?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의 율법을 지켜서 바로 지켜서 하느님의 복과 구원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해도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한다 하더라도 조금도 남겨놓지 않고 자기 있는 힘을 다 쏟아서 복을 받으려고 한다고 해도 우리는 언제나 그의 진노를 사는 결과를 가져 올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에다가 말이요.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는 것은 전연 불가능이에요. 한 가지도 제대로 지킨다는 것도 불가능이에요. 한 가지는 꼭 한 가지만 지킬 수 있으면 돼요. 뭐냐?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할 수 있으면 다 지킨 거 에요. 그걸 못하거든요.
다른 것은 큰 모양은 흉내는 낼 수 있다하더라도 이웃사람을 내 몸 같이 하는 걸 어떻게 흉내를 낼 수 있겠어요? 겉으로는 내지만 진정이야 되겠느냐는 거야. 어디 아프면 똑같이 아플 수 없고 말이야. 그 사람 당하는 고통을 내가 어떻게 아냐는 거야. 나도 똑같이 당해보면 아 이런 것이구나. 그러죠? 그냥 또 나는 또 안 당하면 또 달라져 버려. 당한 사람하고 안 당한 사람하고 지킨다는 거는 불가능이라 말이에요. 불가능입니다. 불가능이니 말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어기지 않는 한, 자기 방법은 어길 수밖에 없는 율법을 갖지 않은 방범, 법을 안 어기려면 법이 없어야지. 있고는 안어길 수 없다는 거야.
이 법이 있는 것은 어긴 줄 알게 갈쳐주기 위해서 있는 거라고 인간은 지킬 수 없다. 거 기서 손들어라 그거에요. 그래서 예수를 믿어라 말입니다. 그래도 복음 앞에 율법을 보냈어요. 손들고 예수님 환영하라고. 내 힘으로 안 되니까 안 된걸 철저히 느끼고 안 됐으면 언자 예수로, 머리된 예수로 환영해야지. 뭐이든지 예수님이 하실 일이지 네가 하냐? 그러니까 사랑만은 인간이 불가능해요. 사랑 잊어버렸는데요. 악마의 자식이 되어 버맀는데 무슨 그거 뭔 사랑이 있어요? 사탄의 종살이가 무른 하느님의 아들노릇을 하겠냐 말이야. 하느님의 아들이 성령을 받아야 하느님의 아들이지. 이거 사탄의 영 아니에요? 시기, 분쟁, 미움, 이 사탄이지 무슨 아들이라고 하겠는가? 무슨 사랑, 사랑이 있어야 아들이지. 하느님은 사랑이시니까. 사랑의 아들은 사랑이 있어야지.
아들이라 해놓고는 마귀의 행동을 하지 않냐 말이여. 그러니 마귀 자식인 줄은 알아야 한다 말이야. 그러면 인자 하느님의 자녀가 참으로 되려는 과정이 뭐이냐? 회개에요. 회개, 그 길은, 회개 없이는 안 된다 말이야. 완전 자기부정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야. 바울사도 같이 완전히 깨져버리기 전에 그건 안돼요. 타락했다는 말이 바울사도 타락했다. 말 타고 가다가 땅에 탁 떨어져 버렸어. 죽었다는 말이야. 옛사람은 죽었다. 완전히 죽었다. 사울은 깨지고 언자 바울이 됐어요. 바울, 사울이란 말뜻은 내가 제일 크다, 크다 언자 바울은 내가 인자 내가 제일 죄인 중에 죄인이고 내가 제일 작다. 그게 달라져 버렸다. 제일 크다고 교만하던 사람이 아이고 나는 만물의 때도 못된다. 말이야. 완전히 새사람이야. 언자 그리스도가 머리에요. 그전에 자기가 머린데, 요 이 글 하나, 언자 죄수 있냐? 없냐? 혹 자서전 갖다 놓은 거야. 자서전. ~~~~ 자서전,
18절 보라고
‘너희는 한겨레 핏줄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말아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며 살아라. 나는 여호와이다.’ 그렇게 살 수 있어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며 살아라. 그렇게 되겠냐 말이야. 법이 있어요. 그렇게, 법을 냈어요. 그 때도 못하지만 지금 하겠냐는 거야. 지금 우리 다 할 수 있는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할 수 있는가? 그 법이 있다 하는 거뿐이지. 그거 아는 거뿐이지. 실지로 못하잖아? 그대로?
지구 안에서만 해도 어디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몇 만 명씩 굶어 죽는다는데 또 배가 터진데는 터지고 말이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데 근디 공평하지 않잖아요? 하느님이 살아계신데 왜 그럴까 말이야. 그 영혼으로는 볼 때는 누가 행복한지 어떻게 알아요?
영혼과는 판단할 수 없다 말이야. 영혼으로 보면 반대 아니냐? 제일 천대받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 것이라. 거꾸로 되어버린다. 이 그때도 이건 신약에서 예수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사람이, 이웃을 자기 몸 같이 할 것을 예언이지. 그 때 당시도 불가능이고 지금도 불가능이에요. 언자 성인이라면 그것 가능한 거요. 성인은, 그것이 실천 되는걸 성녀라 하지 않겠느냐 말이야.
이세중 선생님 말마따나 왜 그래 성인이라 하겠냐? 이 실천했으니 마음으로 했으니까 자기 소유 다 남에게 나놔줘 버리고 없어. 거지야, 없고, 예수를 알기 전에도 실천했거든, 농사지면은 십일조 떼고 구제할 거 떼고 또 그 다 떼놓고도 또 각 개인이 갖고 있어서 마을 안에 밥 굶는 사람 그 다 알아서 주거든요. 내 먹을 것도 없이 다 줘버렸어요.
암것도 없이. 이 마음으로 성령으로 사랑해요. 마음으로 사랑해요. 겉으로는 인사법도 없고 마음으로 존경하지. 겉으로 인사하면 진정인가 따져보면 그렇게 안되거든요. 거짓말해야 되니까 새털만치도 그분은 거짓말 안하는 분이야. 말해놓으면 거짓말이야. 그대로 아니면 되니까 아 사랑합니다. 무슨 사랑을 해요? 거짓말이지. 존경합니다. 무슨 존경이 진짜 존경이 있냐? 내가 그 자리 있어가지고 존경이 되냐? 그 사람보다 내려가야지. 이 말이 필요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어린애에게도 얼마나 존경했냐? 경어를 썼거든. 너 이놈 그 런 거 없어. 어린애들이 욕을 해도 예 그 말은 맞습니다만 그렇게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경어를 썻지. 어린애일수록 더 존경을 했어요. 그것이 참 실천 아니에요?
또 19장19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그 다 불가능이거든요.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어떻게 되느냐 말이야. 또 22장39절,40절.
‘그러나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모든 다른 계명과 예언자들의 요구를 이 두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
두 계명 안에 다 있다 말이야. 그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속에 다 들어있어요. 둘로 나눌 수도 있지만 그거 하나야. 이웃에 하느님 계시니까, 이웃의 영혼 안에 하느님 계시니까. 언자 사람을, 겉 사람을 존경한 게 아니라 그 사람 속에 계신 하느님을 존경하는 거야. 그 그 사람도 존경이 되어버려요. 따라가 버리지. 그 모든 율법이 여기 한마디 속에 다 요약이 된다 말이야. 요약, 요약될 수 있다. 마태복음만 해도 세 군데 봤고.
마가복음12장31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또 둘째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누가복음10장27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인자 로마서 13장8절-10절.
‘여러분이 남에게 진 빚을 다 갚으십시오. 그러나 언제까지라도 사랑의 빚은 다 갚을 수 없습니다. 남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하느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그분의 요구를 다 채워드리는 일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듯 한다면 남에게 손상을 입히거나 속여 빼앗거나 죽이거나 도둑질 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남의 아내를 범하거나 남의 것을 탐내거나 그 밖에 십계명에서 금지된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십계명을 이웃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그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 속에 다 들었다 말이야. 요약이라 말이야. 줄이고, 줄이고 줄이면 그 한마디 속에 들어있다. 줄이면 인자 뭐 어떻게 되죠? 더 줄이면. 성경을 아주 더 줄이고 줄이면 어떻게 돼요? 간단하게 하면 표현으로 말로 표현해서 줄이면 어떻게 되느냐? 말 삼,
이 구역은 말 삼이야 말 삼, ‘말면 산다.’ 그 말이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또 말 숨, 천리교 성경에는 숨, 씀, 씀 그러면 쓰다 말도 되고, 입에서는 단데 뱃속에 가면 쓰다. 귀로 듣기는 달콤한 좋은데 실행하려면 아이고 쓰다. 십자가인데 어째요? 또 마음속에 써졌다. 또 그 언자 사용하라. 써라, 말씀에 사로잡히라. 말씀에 쓰임 받아라. 그 말씀, 바로 섯다. 말삼, 말씀 말쌈, 말씀 다 다 맞아요. 말만 한다 말이야. 순종하면 살아요. 말하라 했으면 예 순종하면 살아. 그리고는 죽어요. 순명이에요. 순하면 목숨이 살고 순 거역하면 죽는다 말이야. 목숨이 죽어요. 그렁게 진리에 순종이냐? 진리대로 사냐? 참되게 사냐? 예수를 머리로 왕으로 모시고 사냐? 내가 왕이냐? 그게 생사가 갈라져요.
‘나는 말고 예수로 살아라.’는 거야. 사랑 자체와 은총 안에 살아라. 말이라. 은총 벗어나면 죽는다. 예수 삼위 떠나면 죽는다.
그러면 여기 현대어성경으로가 제일 잘 된 거요.
언제나 사랑에 빚진 사람이 되어 생활하십시오. 다른 빚은 안질수록 좋지만은 매이니까. 사랑의 빚만은 져야 된단 거요. 또 지고 있으면 모르는 거뿐이지. 모르는 거뿐이죠? 내 어디를 가나 사랑의 빚 천지지. 뭣이 갚을 길은 없거든요.
그러나 진리대로 살아지면 갚아지는 거예요. 예수님이 다 갚아주시니까. 예수님 몸이 되어버리면 예수님이 갚지 내가 갚느냐? 아니에요. 서로 빚이 전혀 관계가 되지. 안질라고하면 자꾸 갈라져분다고. 짐짓 져야된다 말이야. 가령 한 예를 듭니다.
이세종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털끝만치도 남의 빚 안지는 분입니다. 빚질 필요가 없거든요. 아무리 쓰고 다니던 모자를 뺏어다가 갖고 가 버려서 그 대접을 하려고 드리려고 여기 오십시오. 해도 안가요. 안가, 왜 안갈까? 대접했다. 그러면 그 쪽 영혼을 도와준 것이 아니란 거요. 나는 뭐 대접했다. 그 마음이 내가 했다. 그게 되거든요. 이게 교만한 마음 안 길러줄란 거야. 겸손할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좋아. 빚 아니라 그 살아버려도 좋고 아무리 좋지만은 그 영혼을 생각해서 그런 거여. 교만해져요. 그만큼, 난 내 것 주었다. 나는 누구 대접했다 고 마음 줘요. 그 사랑해서 한 것이지. 미워서 더러운 게 안간 거 아니라 말이요. 영혼을 그렇게 존경해요. 이 감정적인 그런 것이 끌리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공치사, 자기 공 기려놓은걸 그 칭찬 받고 싶어 하는 거야. 양반이라는 것도 양반, 아 주 점잖하고 뭐 예의를 아주 바르게 했다고, 교만이여. 따지고 보면. 나는 양반이다 하는 티를 낸 것이지. 진짜 존경해서 하는 게 아니거든요. 대통령에게 막 굽실굽실한 거 진짜 존경인가? 속으로는 지금 아첨이지. 아첨,
요새 서로 막 지워줘다가 인자 존경합니다. 그 당최 그 말이 어떻게 나을까? 그래 인사지, 예사지, 사람의 일이지. 진정 존경했으면 애초에 그 양보해버리지. 뭐하려고 할라고 대냐? 뭐하려고 다투느냐? 미리 양보해 버렸어야죠? 그래도 그만큼이라도 양보하고 나니까 경상도 사람들이 모도 존경심이 인자 드러난다. 울었대요. 울어. 경상도 사람들이, 신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보시고.
그러기 전에는 서로 견제할 때는 다 몰라봤더니 언자 알겠다고 자 위대한 분이라고 아 경상도 사람들이 다 그걸 신문에다 내고 눈물을 흘렸다니 말이요. 전라도 사람은 막 오기만. 더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는가? 기대했던 것이 탁 무너져버리니까 그 육적이지 육적이, 영혼을 생각하고 한 거 아니잖아? 이 겉으로도 얼마나 인격이 올라간다. 그만큼, 탁 포기한다. 서로 막 높아지려고 해봐요. 더 그냥 미운사람이 더 많고 나중에 목숨도 까닥하면 죽죠? 대개 그러잖아요? 간디나 모두 위대한 사람, 소크라테스나 죽임을 당하잖아요? 세상에서는 그런 건데 말이야.
그러니까 언제나 사랑에 빚진 사람이 되어 생활하십시오. 그러니까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은 주는 것 보담 더 큰 사랑은 받는 것이라요. 받는 거, 백장로께서는 아직 사랑을 모르시니까 다 될수면 빚 안질라고 이불하나도 내가 먼저 내리면 잠깐 안아. 막 이러고, 내가 할 것인데 밥상도 내가 먹는 밥상도 꼭 내가. 그 인자 그런 사람 인자 미안하거든 미안 해버려. 그것이 인자 그럴수록 내가 겸손해지면 좋겠는데 그렇게 안 된다고. 그런데 받는다는 것 그 사랑, 받는다는 거. 큰사랑이라는 거. 그 이해 못하죠? 그래서 아까 얘기하다 참, 이공께서는 그렇게 털끝만치도 빚을 안진 분이고 그 부인께서도 그렇게 그걸 본받았는데 어느 때 누그려졌냐? 임종 직전에까지도 다 자기도 모르게 똥을 옷에 쌌다 말이야. 그때 누구러 지더래요? 그 때, 또 간호원들이 이 얘기를 들은 거야. 아이구 나도 할 수 없구나. 인자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그런 거여. 그 때, 복희씨 어머니는 어째요? 아주 철저했죠? 법이, 임종시에 인자 아이고 내가 죄인인 것을, 내가 남 비판만 하면 내 밥이 어디가 들어설 때가 없잖아요? 모두 나를 보고 있는데 말이야. 너는 어쩌냐? 그런데 어디가 있어요? 남 예리하게 비판하는 사람 어디가 못 있어요. 못 있어, 내 허물만 들어내려면 어디든지 있어요. 있지만은, 내 허물을 딱 감춰놓고 안 드러내고 다른 사람 허물만 본다 말이야
그러면 아아 모두 나를 주목하는데 어디가 있냐고, 자기 인자 무능이 드러날 때 겸손해진 거라고. 내가 잘한 거 굿굿할 동안은 아아 항상 마음은 불안한 거야. 율법으로 잘 지킬란 거 항상 불안한 거라고, 항상 저주의 위험을 안고 댕긴 거요. 어찌해야, 어찌해야 바로 살까? 어찌해야 좀 잘해가지고 천국도 가고 상도 받고 사람한테 존경도 받을까? 그런 생각은 항상 저주의 위험이 있다고. 그 마음이 그 마음을 품고 댕겨 내가 받는 것은 받아주는 것은 낮아진 것이고 또 책임이 있죠? 물론, 저 사람의 짐을 내가 져주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욕심으로 받는 거 아니고 그렇게 받는 거 얼매나, 그래 쪼금 내게 쪼금 가깝게 드러나게 빚졌다면 그에 대해서는 쪼금 느껴도 말이요. 크게 빚진 것은 생각을 못해요.
하느님의 하느님께서 내게 베풀은 빚은 말할 것도 없지만은 사람들에게도 그래요.
언제나 사랑에 빚진 사람이 되어 생활하십시오.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 그것도 그 말이지만은 사랑에는 빚진 사람으로 살아라. 다 빚졌다. 내가 빚졌다. 누구의 희생을 다 희생시켜서 다 보존된다. 나 하나가 이만큼 살아진 것은 수 만 명의 그 희생이 들어가 있다.
입에 쌀밥이 먹어진 것은 그 맨 농민들의 피땀이 들어있지 않냐? 그러면 그것이 인자 몇 사람을 거쳐서 그거 다 빚이라 말이요. 근데 그 내가 갚을 길은 없잖아요? 어떻게 갚느냐? 인자 그 영혼들을 위해서 제사장 역을 해야죠. 희생이 되어 주어야죠. 예수의 몸이 되면 예수님이 다 알아서 하실 일이라 말이야. 내가 갚을 수는 없으니까 첫째 예수의 몸만 돼드리면 된다는 거야. 하느님의 아들만 되면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하시니까 말이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지킨 것입니다. 10절까지 안 봤더라도 이웃을 사랑하면 사랑은 율법완성입니다. 10절까지 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하면 다른 법이 다 지켜져 버린 거에요. 이것저것 다 안 묻고요. 어떻게 몇 백가지 그 법을 다 어떻게 지킵니까? 사랑이면 다 지켜져 버린 것이 된다니까요. 또 백 가지를 다 지켰다고 생각하더라도 사랑 없으면 다 안 지킨 것이고. 쓸데없는 것이고. 전 인류를 다 공평하게 병 안 들고 건강하고 부자 되고 다 해봐요. 그 영혼을 사랑한 거 아니잖아요? 영혼은, 그러고 모두 다 지옥 가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야. 그러니까 영혼을 사랑한 것이 참사랑이죠? 서로 그 인격을 높여주는 것이지. 존경하는 거지. 무슨 금권, 관권으로 되느냐? 그거여. 그 얼마나 사람을 멸시한 것이 되냐 또 그 돈 받고 표 찍어주는데 얼마나 저열하냐? 말이야. 돈을 받았은 게 찍어준다. 아이고,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똑같은 거라고.
263
또 갈라디아 5장13,14절 봐요.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는 이미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 자유는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유입니다. 즉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한 말씀에 요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된다 한 말씀에 요약된다. 그럴 수만 있으면 다 된 거다. 이웃을 자기 몸 같이만 할 수 있으면 율법완성이다. 사랑이, 그런데 그게 불가능이다. 아주 간단한데 말면 산 것인데 말 수도 없고.
또 야고보2장8절,13절 8절에만 있는데.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잘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택해서 믿음이 부유한 자가 되게 하시고 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선물이 하늘나라를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듯이 네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라고 하신 주님의 명을 여러분이 지키고 있다면 참으로 훌륭한 일이겠지요.’
‘무자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자비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남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하느님께서도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심판을 면해주실 것입니다.’
네 그러면 사람에게 자비심이 없죠? 믿음은 있죠? 믿음은 언자 하느님의 자비심을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이죠? 인간에게 자비심이 없어요. 그 반대뿐이지. 미웁고 그런 것뿐인데, 믿음은 인자 하느님의 자비심을 가진 것이죠. 그리스도의 자비심을 자기 것으로 한 것이죠. 그게 믿음 안에서만 가능해요.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 아까 여기 또 나오지만은 약속을 믿잖아? 약속, 아브라함이 무엇이 행동으로 불 것 없지만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었어요. 그러니 독자로 바치라. 그냥 믿어. 바쳐버려. 믿었다 말이야. 그 약속, 하느님은 틀림없다. 사람은 거짓말 덩어리지 만은 하느님은 절대 거짓말 안하신다. 또 나를 사랑하신다. 믿은 것이고.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거예요.
출애굽기 34장6절,7절 안에 가서 아홉 가지나 있잖아요? 하느님은 어떤 실수하는 죄나 어떤 잘못의 죄라도 다 용서하신다. 그 자비, 야훼란 뜻이, 설명이 한 아홉 가지나 돼요. 야훼란, 하느님은 자비하느님이요. 약속한 것은 절대 어기지 않는 분이라고 믿는다 말이야. 그럼 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만은 아까 참 그 실지 예를 들다가 못 들었어요. 다,
이공께서는 그 부인께서 그렇게 그 빚을 털끝만치도 안질라고 했는데 이공 살아계실 때 이현필 선생 그 집에 자진해서 오셔가지고 자진해서 나 밥 좀 달라고 요구를 하셨대요. 그래서 처음엔 뭔 영문인지도 모르고 인자 그 형수님한테 부탁해서 밥을 새로 지었든지 하여간 시간이 때가 넘었든지 몰라도 지어다 드렸어요. 깨끗이 자시더란 거요. 거기에 인자 이선생 그 때 녹았어요. 과연 이 사랑이다. 다른 데는 털끝만치도 빚을 안질라고 하는 분인데 어쩌면 이렇게 자청 오셔가지고 또 밥을 청구하셔가지고 그렇게 달게 자시냐? 그게 이 선생 마음이 인자 그 때 녹은 거라고 그래요. 그 말씀 하실 때 나 들었어요. 이선생한테, 빚은 빚이 되기나 하겠습니까만 빚 자진해서 짐 지어준거 아니요? 그게 그 때 그 마음이 열렸으니 말이요. 얼마나 큰 역사냐? 그거야. 밥 한 그릇이, 하찮은 밥 한 그릇이지만은 그 이선생님 마음을 녹였어. 이선생도 그 고집도 있은 거 아니겠어요? 자기주장도 있고 근데 그 때 녹은 거라고. 감격이요.
쪼금 제 자랑 같아 죄송합니다. 만은 실상은 그 때 그랬으니까 이 선생 살아계실 때 소재에서 목공일 했잖아요? 김 선생님 얘기 잘하셔요. 그 때 내력은 어떻게 했는가는 잘 모르지만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 선생님 항상 그 일하는데 계시다가 우리가 밥 남으면 걷어가지고 도구박굴로 가셨거든요. 별로 자시지도 않고 당신 몫으로 나와요. 그 주인하고 잘 알고 존경하고 피차 존경하는 사이니까 서이(셋) 있응게 서이, 세 그릇이 나온다 말이야. 당신 안자시고 우리 남긴 거 받아가지고 가시거든요. 그러거든요 근데 하로는 어딜 떠나신다고 그래요. 소재 그 각수바위를 넘어서 장흥으로 가신다고 언자 그 심방하신다고요. 그러신데 혹 몰라. 짐작에 가시다가 돌아오실 런지? 항상 그런 거를 하시니까 더러, 긍게 그 일 시킨 주인의 집에서는 세 식구 밥이 나오거든요. 나오는데 이 선생 밥은 놓아두었답니다. 안 내보내고 놔뒀어요. 저녁에 어둑해 가니까 다시 돌아오잖아요? 저는 예측하는 거여. 하고 어쩔 런지, 오실 런지, 이 놔둬봤다 말이야. 아 그래서 그 걸 드렸잖아요? 깨끗이 자셔버려요. 어째, 엉겁 길에 나온 소리가 나온 말이, ‘아 감사합니다.’ 그랬다 말이야. 이선생이 ‘아멘,’ 그 뭐냐? 쪼금 통했다. 그런 뜻 아니에요?
긍게 자진해서 빚지는 사람이 아까 이공께서 빚지는 사람이 가서 다른데서는 쪼금도 그런 폐를 안 끼치려는 분인데 왜 거기선 자청해서 달라 해가지고 자신 거냐? 이 관계있다.
저 또 하나 얘기는 그 때 이 현필 선생님 처음으로 이 세종 선생님의 그 얘기를 들으시고는 그의 발자취를 답사해 본다. 그의 생활의 그 향기를 맡아 봐야겠다. 그런 뜻으로 나오시다가 능주 그 교회에서 나왔죠. 저는 산에서 나오고 양림회관에 제가 인자 목공공장이 있으니까 저는 있으니까 산위에서 나오다가 그분을 처음 뵈었을 거야. 아마, 말만 들었지만은, 낮에 광고를 하고 낮에 인자 유 선생님 말씀을 하시고 공부하는데 그분 하루 한 끼 밖에 안자시잖아요? 근데 낮에 어떤 분이 그 달떡, 반달 떡 지금까지 보던 작은 게 아니라 송편 쪼까는 거 아니라 큰 거야. 고놈 접시에 깨끗한 접시에다 해가지고 그분 대접하려고 사왔어요. 사왔는가 해왔는가 모르지만 사왔겠죠. 이선생님이 그걸 갖고 댕김서 앞에서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낮인데 인자 저녁 받아야지. 저녁밥 밖에 안자신데 이거 하나 들어보시오. 이 ‘사랑으로 해왔으니’ ‘하나 들어보시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시험하십니까? 모르겠어. 내가 보기는, 절대 거절이죠. 시험한 거 같이 꼭 보이더란 말이요. 어째 안자신거 뻔히 아시면서 어째 사랑으로 해놓은 것 잉게 하나 들어보십시오. 자실 리가 없다 말이요. 당신이 법 아니요? 법, 법을 어길 수, 파괴할 수 없잖아요? 하루 한 끼여. 저녁때도 저녁이고 한 끼인데 파괴안하죠? 그리 이 선생님 그 아시면서 왜 그랬냐는 거여. 참 이 선생님도 이상하다. 왜 저분을 시험할까? 제가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말이야. 그런데 그 뒤로 언자 어떤 토론 들어주고 안 맞은 거 있었어요. 이공께서 어린사람에게 경어를 썼다. 유 선생 안 받아요. 유 선생, 긍게 인자 이 선생의 답은 제가 들은 대로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겠냐? 사람으로는 못하죠. 할 수 없죠? 그러지만은 참으로 겸손했다면 예수 안에는 다 하느님의 아들 아니냐? 누가 형이냐? 다 형제라 말이야.
형도 되고 동생도 되고 먼저 나온 사람이 나이 한 살 많으면 형이라고 할 수 있지만은 영적으로 누가 형이냐? 똑같거든. 영으로는 똑같아요. 몸만 이 세상에 쪼금 앞에 왔다 뿐이지. 뒤에 왔다는 거뿐이지. 영혼은 다 똑같은 형제야. 하느님의 자녀라 말이야. 그렁게 어린 사람일수록 더 존경을 받아야 되지 않냐 말이야. 자범죄가 적으니까 어긴 거 뭐 없죠? 자범죄가 거의, 아직 나타난 거 없어. 유전 죄는 있더라도. 또 그것도 영으로 보면 누가 더 이겼냐? 그거에요. 누가 어른이냐? 누가 앞섰냐? 모르죠. 저번에 그 얘기 합디다. 씨라고 한 사람이 하던가? 그 사람이 이 주워다 키웠는데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하고 둘이 이렇게 컸다 했는데 어린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라고 문을 탁 열었다. 그런데 씨라는 사람이 탁 다쳤어요. 문을 콱 열어버린 게 다쳤어요. 다치기 뿐 아니라 꺼꾸러졌어. 꺼꾸러지고도 그 문 연 사람 위로해줘. 자기가 못 열어줘서 꺼꾸러진 게 아니라 내가 문 뒤에 서서 그랬으니까 잘못한 거 아니라고 내가 잘못했다고, 왜 그 문 열 때 그가 섰냐? 그게 자기 잘못이지
문 여는 사람은 누가 했는지 알 턱이 있어요? 자다 깨어났응게 인자 얼른 열고 나올라고 한 것이니까 자기 잘못한 거 없다. 그런 만큼 어리지만은 그 영혼이 얼매나 어른스럽잖아요? 누가 그러겠는가? 어른이, 어른이라도 그렇지 않죠? 나라도 그렇잖아요. 조심해 열지. 왜 그리 함부로 여냐? 뭐라 할 텐데 말이야. 자기 다쳐서 꺼꾸러질 정도가 됐어도 그 사람 위로했다. 그럼 얼마나 어른이냐 말이야. 성인이여. 성인, 벌써 다 된 거라고, 저 김원장님도 그 못 깨우고 탄복했더래요. 아아 저럴 수가, 그 사람이 나중에 인자 자기 부모가 나타났어. 그 데려다가 그 카나다에 가서 공부시킨대요. 그래 그 편지가 왔더라는 거야. 그 사람이, 김선생이 그 편지를 보고 아아 이 영혼세계로 봐야지. 왜 나이로 나 같은 나이로 봐도 되느냐? 그 그런 말 안하더라니까. 인자 카나다에도 우리 분원이 생겼다 말이야. 정신적으로, 몸이야. 가든 안 가든 상관없고, 이미 세계적이지. 무슨 여 한국에 안에 한 집단 안에만 있는 영혼들인가? 그 갇혀 살 영혼들인가? 우주적이어야지. 한계가 없어야 돼요. 우리 귀일원, 우리 동광원, 여여 먹여 살아요? 하느님의 자녀 같으면 어디 한계가 있냐는 거야. 국경이 어디가 있냐?
아까 야고보13절 봤죠?
‘무자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자비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남에게 자비를 베푼다면 하느님께서도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심판을 면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비 하느님이거든요. 뭐 경우 따지고 뭐 그런 거 아니고 무조건 자비,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뉘우치면 그냥 그게 더 자비심이 막 쏟아진다. 아이고, 아이고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했냐? 그렇게 빠졌냐? 아아, 하느님의 그 역할은 하느님이 하실 일은 뭐냐? 가장 가련한 영혼에게 하느님노릇을 하지. 교만하고 그런 사람에게 하느님노릇을 할 수가 없죠? 하느님은 자비 하느님인데 자비심을 엇다 나타 내냐? 가장 가련한 사람이 있어야 거기에다 인자 쓸 것 아니에요. 그런 사람에게 최고의 영광을 받으셔, 하느님께 영광 돌린다. 부자들이 하느님께 영광 돌려요? 배부른 사람들이, 말도 아닌 소리, 건강해 가지고 일 잘해가지고 영광 돌려요? 욕만 돌리지. 건강하면 죄는 더 짓지. 아주 가련하고 만물의 때같이 된 사람, 그런 사람에게 하느님은 하나가 된다는 거야. 거기다. 하느님노릇을 해요. 가장 가련한 사람에게 거기다 자비를 베풀면 그냥 기가 막히게 하느님을 높여버릴 것 아니에요? 대통령에다 자비를 베풀 수 있냐? 얼마나 더 교만해져버린다.
가장 천대 멸시 받은 사람, 그런 사람이 하느님노릇을 한다는 거야. 그런 사람일수록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 말이야. 가장 천한 자가 하느님의 사랑이 미쳤으니 말이야. 얼마나 감격할 것인가? 사람에게 멸시나 천대나 받고 뺨 맞고 내쫓기고 누명을 씌우고 씌임 당하고, 그런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털끝만큼만 미쳐도 그냥 감격하다는 거야. 그게 더 큰 상을 내려 버릴 때 어쩌겠습니까? 기가 막히게 감사하죠? 하느님은 자비하느님이다.
자비 없는 사람은 자비 없는 심판을 받는다. 자비는 심판을 면하고 남는다. 자비, 하느님은 자비 하느님이시니까,
자 그럼 언자 그 자서전에는 언자 어떻게 됐냐면 아 여기서 하나 더 보고.
이렇게 이 복음서에도 여러 곳에 나타난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근데 그대로 못한다 말이야. 못해, 암만 그 외도 외고 또 그렇게 누구한테 말해도 자신은 그 실행 못한다고. 실행 못하는 것이 율법이에요. 알아도 실행 못하는 것이 율법이에요. 법은 알아.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누구든지 자기 몸은 사랑하려고 하니까 그대로 사랑하라. 방법도 아주 쉬워요.
그 이상 더 쉬울 수가 없잖아요? 쉬워도 못해요. 왜 못하냐? 쉬운데 왜 못하냐? 또 산상설교, 마태복음 5장서 7장까지 설교가 아무리 좋지만은 못해요. 그대로 할 수 없어요. 그 못할 것을 뭐하려고 냈냐는 거야. 예언입니다. 예언, 그 때 군중을 향해서 산에가 올라 앉으셨지만 제자들이 나오더라 그 말은, 제자들이 누구냐? 세상에서 살아보고 허무를 느낀 사람이에요. 부자 되어 봐도 헛되고, 무슨 명예를 누려 봐도 헛되고, 헛되다는 걸 의식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여.
그렁게 ‘가난한 자 복 있다’. 그 말이 들려질 사람, 그걸 체험했어요. 부자 돼 봐도 만족이 없더라. 그런 사람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만은 부자가 복이라는 사람은 그 말 첫말 그 말 들어보고 내빼버릴 거 아니요? 말도 아닌 소리 하지 말라고 말이야. 어찌 가난한 것이 무슨 복이냐? 천대만 받는데, 업수히여김을 받는데. 멸시만 당하는데 무슨 복이냐? 자기가 세상을 살아보니까 과연 허무하더라. 부자로 살아봐도 허무하더라. 그걸 체험한 사람들은 그 말은 실행은 안 되어도 받아들여요. 실행은 안 되죠? 그 실행은 어떻게 되느냐? 예언이니까 너희들이 자기를 완전히 버리고 나를 머리로 받아들이면 내가 너희 안에서 실행한다. 그 말이거든, 사랑은 사랑 자체가 사랑이죠? 죄 덩어리가 어떻게 사랑이 있냐 말이야. 독사의 족속이 무신 사람의 행동을 하겠냐? 독사가 아무리 선해도 그 세계선이지. 인간세계에서는 선이 아니거든. 독사 짓이지. 요 마찬가지로 하느님 보시기에 선은 하느님뿐이지 선이, 인간에게 선이 없어요. 이 하느님 인간이 인자 하느님 안에 들어온 영혼이 인자 선이죠. 또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시고 선 자체이신 삼위 안에 들어가야 선이지 떨어져 선은 없어요. 죄 뿐이지.
창세3장8절이 첫째 죽음이로구나. 하느님을 떠난 그 자체가 벌써 영적으로 죽었어요. 자유가 없어요. 죽음이나 다름없어요.
요한복음13장34,35절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떠나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떠나가면 유대인 지배자들에게 말해둔 것과 같이 너희가 나를 찾더라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곳으로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아아 저거 예수의 제자구나. 그 알게 된다 말이야. 입으로 나 예수 제자다. 제자다. 무슨 간판을 달고 댕길 필요가 없다 말이야. 서로 사랑하면 아 저거 예수의 제자구나. 사람들이 알게 된다 말이야. 전도는 서로 사랑하는 것만 보이면 전도지. 예수 믿으시오. 사랑도 없으면서, 뭐 예수 믿소? 받은 사람이 죽게 되면 내가 같이 죽을란가? 사랑 없잖아요? 사랑은 어디야? 생사를 그 사람 죽을 때 내가 대신 죽을 것이니 살으라고 그게 사랑이죠? 당신 사시오. 내가 나는 언자 할 일 다 했은 게 나는 갈라요. 저 피란 때 부산서 어떤 신부님이 인자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근디 어떤 한 가족이 모아가지고 쓸쓸해 앉았더란 거야. 거기에 가서 좀 얘기를 걸면서 담배를 하나 내면서 피시라고 그래. 저는 담배 안 핍니다. 어째 안 피시오? 저도 명색이 목사입니다. 신부는 담배 피니까 그 얘기 그 인자대화 걸었다 말이야.
그러면서 6·25때 그 당하는 피란 때 당하는 얘기를 목사가 하더라는 거야. 방공호에 그 때 들어가야만 되는데 그 밖에 있으면 다 비행기 폭격에 맞아죽는다 말이야. 죽는데 그 때 어떤 신부가 당신은 아직 가족이 있고 자녀가 있으니까. 막 꽉 여기 김치담듯이 막 굴속으로 들어가 찼어요. 뚫고 들어가지를 못하겠어. 근데 신부가 자기는 나오면서 그 목사를 밀어 넣어주더란 거야. 당신은 자녀가 있응게 더 살아야 하고 나는 인자 가도 좋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는 거여. 그래 그 듣고 보니까 그 신부 잘 아는 친구거든요. 그러면 목사가 신부하고 얼마나 그 차이가 커, 물론 다 그렇고만은 차이는 당신 가족이 없으니까 자기 하나만 가면 되는 것이니까 나는 죽어도 당신은 더 살아야해. 자녀가 있으니까 그리 하시오. 그 목사가 인자 그 신부의 은덕을 못 잊겠죠? 그런 얘기 하더란 거야. 그 참 죽을 자리를 양보하고 나가 죽고, 그거 사랑 아니요? 사랑이에요.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 새 계명을 준다는 거야. 새 계명, 새 계명을 받지 않고는 실행할 수 없어요. 새 계명을 받아야 돼요. 서로 사랑하라는 그 말만이 아니고 그 늘 받아야 돼요. 네 귀에 그 말은 그 때 이웃을 자기만치 사랑할 수 없다는 거여. 지금이나 그러지. 지금도 어떻게 사랑하느냐? 못해요. 새 계명을 받아야 해요. 새로운 능력을 받아야 돼요. 사랑할 수 있는 그 힘을 받아야 된다. 그 은총이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15장 10절 12절을 보면.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사는 것이다. 지키면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사는 것과 같다. 예수님 하신 말씀이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와 같은 기쁨이 너희에게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기쁨이 이거 희생 당하는 것이 더 기쁘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희생 시켜서 내가 사는 것은 짐이고 무거운 짐이고 짐이지만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희생당하는 것은 거기서는 인자 양보하고 세상에 좀 더 살라고 양보하고 나는 일찍 가는 거 아니요? 앞에 가니까 저 사람은 또 그러면 더 오래 살라고 저주가 아니고 너는 미래 있으니까 또 더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니까 요구대로 주는 거예요. 또 더 살아서 살아보고 깨달으라는 거야.
나는 인자 다 깨달았으니 간다. 졸업이야. 마침 졸(卒) 자가 죽을 졸(卒) 자여. 졸(卒), 나는 죽을 것 다 빚 갚아 버렸으니까 죽는 것은 빚 갚는 것이거든. 갚았으니까 나는 간다. 너는 아직 덜 갚았으니까 더 살아라. 그 말이야. 저주를 위해서 저주하는 뜻이 아니라 말이야. 더 살라는 건, 더 회개 할거 있다 그 말이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와 같이 기쁨이 너희에게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 너희 기쁨의 잔이 넘칠 것이다.
12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내가 너희를 위해서 희생제물이 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서로 제물이 되라. 사랑하라.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목숨을 버린 그게 사랑이야. 저 사람을 위해서 내가 목숨을 대신 버려준다. 저 사람 살리기 위해서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너희는 내 친구다. 나는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겠다. 주인은 종들에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너희는 내 친구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모든 말씀을 너희에게 다 말하였다. 친구니까, 통사정 다할 수 있다. 비밀이 없어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 그렁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세상에 나가 항상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게 하려는 것이다. 서로 사랑, 긍게 이럴 때는 언자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거여.
그리고 십장에 가서는 다 흩어졌어요. 32절 보면 십장에 가서. 참 여기 봐요. 12,13절 보고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을 다 이해할 수도 없다. 이해할 수도 없고 실행도 못한다. 실행도 못할 말을 뭘로(왜) 하느냐는 거야. 그러나 돕는 자 곧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자신의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것만 너희에게 전해주실 것이며 미래에 있을 일도 예언이라 말이야. 미래에 있을 일도 알려주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