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증명서는 ‘신속통관증’
W사는 제조업체의 수출업무 대행자 자격으로 바이어와 가격, 선적시기, 수량 등 수출과 관련된 모든 계약조건 협의를 진행했다. 바이어는, 베트남에는 이미 저가 중국산 화장솜이 많이 판매되고 있는데, 현지 소비자들이 품질 좋은 화장솜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고, 특히 한류 열풍이 배경이 되어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한국산 화장솜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반드시 ‘한국산(Made in Korea)’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따라서 거래조건에 한국산임을 입증할 수 있는 한-아세안 F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자유무역협정(FTA)의 효과는 관세절감을 통한 수익성 개선에만 있지 않다. F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기업의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으며 수입 통관절차도 빨리 진행할 수 있어 시간과 각종 부대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창업 5년 만에 전문무역상사로 성장
2015년 2월 전문무역상사인 W사는 베트남 바이어로부터 인콰이어리를 받았다. 한국의 화장솜을 수입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화장솜은 면제의 워딩제품(일정한 크기의 직사각형 시트가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고, 제품의 가장자리를 압착해 열봉합된 제품)으로 화장품 클렌징에 사용된다. 화장솜을 생산하는 국내기업을 물색해 보았지만 바이어가 직접 찾기에는 한계가 있어 W사에 요청한 것이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소재한 W사는 2011년 8월 C사로 출발해 2012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직원 수 단 2명의 소회사인 W사는 제조업체는 아니다. 대신 경쟁력 있는 국내 중소기업의 제품을 발굴해 이들을 대신해서 해외 수출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2014년 ‘전문무역상사’로 지정됐다. 전문무역상사는 대외무역법 개정으로 종합무역상사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정부가 중소기업의 해외마케팅 지원을 위해 신설한 제도다.
전문무역상사로 지정 받을 수 있는 자의 요건은 △전년도 수출실적 또는 최근 3년간 평균 수출실적이 100만 달러 이상인 자 △전체 수출실적 대비 다른 중소(중견)기업 생산 제품의 전년도 수출비중 또는 최근 3년간 평균 수출 비중이 10분의 3 이상인 자다. 요약하면, 수출실적 100만 달러 이상인 수출업체 가운데 다른 회사 제품 취급 실적이 30% 이상 있으면 전문무역상사로 지정 받을 수 있다.
전문무역상사로 지정 받으면 선적전후 신용보증 한도가 연간 2배까지 늘어나며, 해외전시회 참여시 가점이 부여되고, 코트라(KOTRA) 등 무역유관기관이 입수한 해외 바이어의 수입 오퍼가 우선적으로 제공된다. 내수기업, 초보 수출업체와 지정 전문무역상사간의 1:1 매칭 상담회도 수시로 개최되며, 해외시장 개척에 필요한 다양한 현지 정보도 우선적으로 제공된다.
“통관 지연 막기 위해 원산지증명서 꼭 필요”
W사는 화장솜을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 물색에 들어갔다. 이들에게 바이어의 의뢰 내용을 알렸고, 수출을 희망하는 기업들 가운데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선별해 바이어에게 전달했다. 바이어는 이들 중 한 업체의 품질에 만족한다며 해당 제조업체에게 수출 가능성을 문의했다. 하지만 제조업체는 그동안 직접 수출 업무를 진행한 경험이 없어 다시 W사에 수출 업무를 대행해 달라고 의뢰했다.
이에 W사는 제조업체의 수출업무 대행자 자격으로 바이어와 가격, 선적시기, 수량 등 수출과 관련된 모든 계약조건 협의를 진행했다. 바이어는, 베트남에는 이미 저가 중국산 화장솜이 많이 판매되고 있는데, 현지 소비자들이 품질 좋은 화장솜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고, 특히 한류 열풍이 배경이 되어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한국산 화장솜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반드시 ‘한국산(Made in Korea)’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따라서 거래조건에 한국산임을 입증할 수 있는 한-아세안 F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베트남에서 통관되는 화장솜(HS코드 제5601.21호)의 실행세율은 5%이며, 한-아세안 FTA 협정세율도 5%로서 세율 차이가 없기 때문에 관세측면에서 보면 바이어는 실익을 볼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FTA 원산지증명서를 요구한 것은 우선 ‘Made in Korea’임을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목적 말고도 중요한 목적이 또 있었다. 베트남은 세관공무원의 재량에 따라 통관심사 요청자료가 상이하고 이에 통관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수입통관 때 각종 관련 자료가 명확히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 통관이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FTA를 체결한 한국산 화장솜을 통관 신고하면서 한-아세안 FTA 원산지증명서의 통일 양식인 ‘AK FORM’을 구비하지 않으면 이를 꼬투리 잡아 통관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트남 세관이 이런 식으로 통관을 지연시킨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베트남 바이어는 사전에 이러한 사항을 인지하고 있었고, FTA 협정 적용을 받더라도 관세율의 실익은 없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세관공무원의 FTA 원산지증명서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이를 요청한 것이다.
원산지증명서 발급 조건으로 한화 결제 관철
사연을 들은 W사는 수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바이어의 요구를 전부 수용했다. 대신 가격 네고를 좀 더 유리한 입장에서 진행할 수 있었으며, 결제 화폐도 미 달러화가 아닌 한화로 결제하기로 합의해 화장솜 제조업체가 입을 수 있는 환차손 위험을 해소할 수 있었다. W사로서도 아세안 지역으로의 수출대행을 지속해야 하는 만큼 이번 기회를 토대로 FTA 원산지증명서 발급 업무를 배워보기로 했다.
W사는 무역상사라 직접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수출자다. 따라서 원산지증명서 발급을 위한 원산지 판정 근거서류들은 제조자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조자가 이를 근거로 원산지 판정을 한 뒤 원산지확인서를 W사에 발급해줘야 한다.
문제는 화장솜 제조업체가 수출 경험이 없으니 당연히 원산지 관리 업무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W사는 한국무역협회 ‘FTA종합지원센터’에 컨설팅을 의뢰해 제조업체 담당자와 함께 컨설팅을 받았다. 이어 화장솜의 원산지 판정 작업도 같이 진행했다.
화장솜(HS코드 제5601.21호)의 원산지결정기준은 ‘CC or RVC 40%’이다. 2단위(류 단위) 세번변경기준(수입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한 경우 수입원료의 세번과 제품의 세번이 일정 단위, 즉 첫 2단위 또는 그 이상이 변경되어야 원산지를 인정)이나 수입 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할 경우 가공과정에서 일정 수준(40%) 이상의 부가가치가 역내(국내)에서 발생해야만 원산지 제품으로 인정한다. 두 가지 기준 중 하나만 충족시키면 ‘역내산’으로 인정받아 원산지 결정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다.
W사는 두 가지 기준 가운데 2단위 세번변경기준(CC)에 맞춰 진행했다. 화장솜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 품목들을 정리한 자재명세서(BOM, Bill of Material)를 검토한 결과, 각 원재료의 HS코드(세번)는 원단(5203), 포장박스(4810), 핫멜트(3506)으로 완제품의 세번으로 변경되어 기준을 충족했다.
원산지 결정 기준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제 FTA 원산지증명서 발급 신청을 위한 관련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한-아세안 FTA는 원산지증명서 발급 방식이 ‘기관발급제’다. 증명서를 세관이나 상공회의소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것이다. FTA 원산지증명서 발급에 필요한 서류들 대다수도 역시 제조업체에서 준비를 해줘야 했다. BOM, 제조공정도, 원산지소명서, 원산지(포괄)확인서 등 원산지판정 근거서류들인데, 서류 준비 작업은 FTA종합지원센터의 상담 관세사가 제조업체 현장을 방문해 직접 컨설팅을 진행했다. 상담 관세사는 서류 준비를 완료하고 FTA 원산지증명서 발급신청을 하기 전에도 최종적으로 서류 기재방법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직접 검토해 주었다.
처음 의뢰를 받아 협상을 시작한 지 4개월여가 지난 2015년 6월 W사와 제조업체는 한-아세안 FTA 원산지증명서 발급에 성공해 바이어에게 전달했다. 이후 바이어는 이 서류를 활용해 현지에서 수입통관 시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수출자·수입자 모두에게 윈-윈 거래
이번 수출 건 진행을 통해 제조업체는 FTA 활용 방법을 학습하게 되었고 향후 자사가 직접 수출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더욱이 발급한 FTA 원산지증명서는 실행세율과 협정세율이 동일하기 때문에 베트남 세관이 제기할 수 있는 사후검증에서도 관세 추징의 위험이 없는 상태다.
W사도 얻은 게 있었다. FTA 원산지증명서 발급에 따른 바이어의 실익이 단순히 관세적인 측면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관의 통관심사 지연 방지 등 통관 부분에서도 있음을 확인한 것. 이번 경험을 살려 향후 수출영업을 진행할 때에는 해당 사항을 바이어에 적극 설명해 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한편, 2015년 12월 20일 한-베트남 FTA가 발효됐는데, W사가 수출한 화장솜이 FTA 협정대상 품목에 포함돼 5%의 수입관세가 철폐(0%)됐다. 이는 품질 좋은 한국산 화장솜의 현지 판매가격이 중국산 제품과 직접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한-베트남 FTA 발효로 화장솜을 포함한 뷰티상품의 베트남 수출은 더욱 활발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W사는 “5인, 설립 5년 미만의 신생기업이라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FTA종합지원센터와 같은 지원기관의 협조를 받아 FTA를 활용할 수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FTA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기타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