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에베소서 6:10~15)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현실을 이겨나가지 못한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범한 인간에게 이 당에서 평생 수고하여야 먹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창세기 3;17~18)
우리의 삶 속에서 땅은 계속하여 가시덤불로 찌르고 엉겅퀴로 할퀸다고 합니다.
어느 시인은 인생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한번 가시에 찔리면 마음에 상처가 남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남아 트라우마가 됩니다
이것을 온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박혀서 그 사람을 괴롭힙니다.
우리 민족은 계속되는 외침의 영향으로 집단적 대결과 투쟁성이 강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집단적 트라우마가 깔려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외도와 신체적인 학대로 정신분열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엘리트였지만 야누스적인 성향이 있었습니다.
저의 이름을 기울 선 평온할 타, 선타로 지어주었습니다.
어떤 기울어진 것을 평온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38:17절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평안을 주려고 큰 고통을 더하여주셨냐고 하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이사야 38:17)
그러나 목사가 되어서 성도들을 만나보니 나의 상처는 사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이 많은 상처를 겪으며 살아가며 인생이라는 커튼에 가려서 잘 모르지만 수많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발에 가시가 박혀 있는데 걸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나는 성도들에게 어떤 위로와 희망을 전할 수 있을까?
내가 목사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당신을 등에 업고 다니십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발자국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네 개의 발자국이 있는 사막을 쭉 걸어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두 개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려웠을 때 주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가 너를 들에 업고 가신 것이다.’ 라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평안하게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갔기 때문이라고 예수님이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와 화목하시고 사랑을 베푸셨으며 이는 예수님만이 줄 수 있습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15절)
우리가 잘났거나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등에 업고 평안히 가도록 인도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우리는 이사야 43:1~3절 말씀 중에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므로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는 하나님만을 의지할려고 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이사야 43:1~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잊는다면 걸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뜻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내 생각과 감정과 영혼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이사야 45:22)
두 번째 신발을 항상 벗지 마십시오.
신발을 벗어버린다는 말은 복음을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어느 순간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평안의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이사야 33;1~3절 말씀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1~3)
그러나 6절부터 9절까지에서는 하나님은 평안과 신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예레미야 33:6~9)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평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일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놀라운 평안으로 두려움을 떨쳐냅니다.
이것이 현실의 어두운 상황을 이겨나가는 비결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의 신발을 준비하고 살면 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과연 평안의 신발을 신고 있는가? 아니면 벋고 있는가?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