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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경상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두 형제들도 모두가 용력이 특출했으나... 단연 용력이 뛰어났던 소년은...
역사 기록상의 나이 13세에...호랑이에 잡혀먹는 사고가 다발하는 고을민들의 고충을 해결해 달라... 관아에 찾아 갔습니다.
당시, 관아의 수장인 "정종"이란 자는... 이 철부지 소년의 객기를 꾸짖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소년은 관아의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고...
다음날 큰 호랑이 한마릴 관아까지 잡아 왔습니다.
기겁을 한 고을수령 "정종"은...살려달라 (잘못했다) 사정을 하고 이 소년을 치하했습니다.
호랑이 때려잡는 악동들인 삼형제 중... 단연, 이 소년의 무용은 사방에 전해지고...소년은...17세 전후에 ...무과에 급제하고...
최고 강력한 적들과의 교전지이자 요충지인 함경도(몽골)에 방어 책임자로 부임합니다.
동서고금에 전무 후무한 소년 대장군의 탄생였습니다.
이 소년장수는...
어린 시절부터 죄없는(?) 호랑이를 수 없이 때려 잡았기에...
변경의 요동(신장위구르자치주)의 여진(몽골)인들을 통치하는...과거 무굴(무굴리스탄 황조)가 잠시 선포한 과거의 명나라(카자흐스탄등의 중앙아) 철령위등의 삼위(三衛)지역을 이성계(티무르)가 인수한
조선의 삼위(三衛)지역에 주둔하면서...
서쪽 알타이(불림=원조 불함산=백두산) 주위로 패주한 대원제국 잔여 몽골인(여진)들을 단속다니면서...
호랑이를 ...오늘날의 스포츠 용어를 빌리자면... 암바(팔꺽기),내일은 리바(다리꺽기)...
요런 방법 조런방법 다 바꿔가면 때려잡는 시범도 보이며
격투기 시범보이듯 그 용력을 과시하기 까지 하는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아무리 강흉하기로 유명한...달단,와랄(오일라트),올량합(올량해)등의 여진(몽골)인들일지라도...
활이나 창검으로 무장한 장정들도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며 잡아야 하는 호랑이를...
뭔 놀이하듯 때려 잡는 이 괴력의 소년장수를 어안이 벙벙해 바라보던 여진족들의 입을 통해...
전 몽골지역(여진지역)에 이 영웅의 소문이 뭔 신화같이 나돌고...
이 소년장수가 성인이 되면선...여진병사들은 먼 발치서도 이 장군의 행차를 보면 말에서 내려 업드렸다 할 정도입니다.
조선의 장수로서...조선의 가장 두려운 적인 여진인들의 영웅으로 대접받았던 이 소년장수의 이름은...
"이징옥"입니다.
당시는...
쇼호르(명태종=이방원?)의 황위 찬탈로...
조선의 서쪽 본향국인 티무르제국(무굴=명나라)의 사마르칸트(간도=함흥?)로 돌아간 이성계(티무르=태무진)와 ...
그를 따라간 여타 비빈들의 자식들과 신하들에 의해...명조선(명나라=무굴)은...파미르를 중심으로 동서로 양분된 상태였고...
그 국경지방이자...동아시아와 서역의 거의 유일한 중북부 관문지역이자 완충지역인 요동(신장성)&요서(카자흐스탄 동부)를...
세종대왕은 가장 신임하던 황세자였던...세째아들 안평대군(울르그벡?)을 제후로 삼아 경영하게 합니다.
가장 애지중지 하던 황제감인 안평대군의 호위장수 겸 함길도 절도사로...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용장으로 부상한 이징옥을 붙여 줍니다.
이 함길도(여진.몽골)지역은...백두산 호랑이라 불리운 조선의 명장 김종서장군이 다스리던 지역으로...
김종서가 중앙요직으로 진출하면선...이징옥을 적극 추천했던... 조선 병력의 최고 집결지이자 최고의 험지이자 실크로드 요충지였습니다,
당대의 조선황제 세종은...
이 이징옥 장군 삼형제를 불러 주연을 베풀면서...
세 장군이 이 나라를 지켜주는 세 방향의 큰 울타리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고...
이 세 장수의 활약으로...몽골고원에서 서북 달단지역으로 쫒겨간 북원의 잔여세력(여진)인들을 손쉽게 통제하며...
현 카잨크스탄(고죽국?) 동부 이르티쉬강(요수?) 유역 톰스크,옴스크,투멘카(두만강?)와 그 동부 오브강(압록?=예니세이)에
여러 위(衛)들을 설치한 것이 조선의 4군 6진 개척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조선 최고의 성왕인 세종...
그는 세째 안평을 위시로한 성균관 학사들과 밤을 새며...
한글(글단의 글)을 창제하고...천문관측등의 과학 기구들도 발명하는 등등의 고금에 드문 부지런하고 지성적인 명군였으나...
상대적으로 육체를 움직이는 일에는 체질적으로 게을러...
몸은 비대해 지고...그로 인한 당료(소갈)병과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중년부터 눈이 반 실명상태에...
밤마다 신경통과 알레르기(두두러기)등에 시다렸다 합니다.
보다 못한 무술의 대가인 상황제 태종(쇼호르?)도...
영민하나 병약한 아들황제에게 무술을 연마하며 몸을 움직여야 당료가 낳는다고 강권하였기에... 몇 차례 시도해 봤으나...
체질에 맞지 않는 무술연마는 오히려 세종의 병을... 잠시, 더 악화시켜...
세종은 이를 후회하는 왕조실록까지 남기게 됩니다.
이에 이르자...
세종은 맞아들인 문종에게 대리통치를 맞겼다 하는데...그건 일제와 친일 대한제국인들의 역사외곡일듯 싶은게...
세종 자신도 장자계승이 아닌...
무굴(몽골)인들의 전통대로 능력있는 아들이 황제(대칸)가 되는 전통대로...장자가 아닌 다섯째 아들이면서도 황제가 된 자로서...
국본이 몸이 허약하면 산적한 국가 정무도 어려워지고...국정 혼란도 야기된단 걸...몸소 뼈아프게 체험해 잘 알면서도...
그 많은 후보 왕자들 중...유독 어려서 부터 병약했던 정종에게 양위를 할 생각은 없었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허약한 왕은 형제들의 부단한 도전을 받아 나라가 혼란에 빠진단걸...
할아버지 이성계의 역성혁명과...아버지 태종의 황위찬탈의 예를 보면서 모를리 없었을 세종이기 때문입니다.
세종은 자나 깨나...
세째아들 안평대군을 차기 후임으로 낙점했던 정황이...
가장 강력한 대군이 집결해야할 함경도의 통치자로 안평을 보냈단 겁니다.
청나라 역사란 것들에도...북방의 군대를 관할하는 황자가 곧 차기 대권자로 거의 낙점되는 수순으로 받아들여 진단 예로도 그렇습니다.
이성계(티무르)조선도 함길도의 여진족지역에서 여진족들을 가지고 역성혁명을 완성한 왕조요...
함길도가 왕조의 본향으로 상징되는 지역이니...그 지역 통치 왕자란 상징성은 ..곧 ,차기황제를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세종이 당료 합병증으로 거의 반신불수의 장님상태까지 이르자...
무예에 출중했으나...학식과 도덕에 가산점이 낮아 후계자에서 탈락한 둘째아들 수양대군(세조)이...
첫때인 문종까지 제끼고...사사로이 정사에 관여하여...
황제도 대신들의 합의가 없인 고치기 힘든 국가 중대 제도까지 뜯어 고쳤을 정도였단 역사기록들을 보건데...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모의한 그 유명한 계유정란 이전에...이미, 반 쿠테타를 저질렀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안평이 다시 원상태로 회복했다 함의 기록을 보건데...
수양대군의 1차 쿠테타는...이징옥의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안평대군에게 진압됐다 해석이 되는 대목입니다.
고로, 이런 추리가 가능합니다.
조선 백성들과 조정의 중신들에게
그 학식과 덕망을 이미 인정받았던 함길도의 통치자 안평대군이 차기 황제로 유력한 싯점에서...
용력이 담대한 둘째 형인 수양대군이...가신들을 이끌고...거의 반신불수의 세종이 제대로 통재하지 못하던 대궐을 점령해...
자칭 황제로 등극한다.
이는 명나라 사서에선... 주기진이란 이름의 영종(정통제)의 대궐문을 돌파했단 황위찬탈로 기록된답니다.
선통제(세종?)를 죽이고 황위에 올랐다 하는데...당대 철저한 유교국인 명과 조선에서...
조선통치의 근간인 유교의 제일 규범중 규범인 효를 어기고...
아비를 죽인(?) 불효막심한 황태자의 황제 즉위를 인정할 신하나 군대 백성은 1명도 없었을 것이니...
이도 열도 섬 원숭이들과그 유종인 중원 남방 짱께(중가르)족들의 역사외곡일까 합니다.
어처구니 없게 ...자신의 상전인 황태자 안평이...그의 둘째형에게 대궐주인자릴 빼앗끼자...
이징옥은 휘하의 조선병사들과 이징옥을 받들어 모시던 전체 여진(몽골)기병들을 총 동원해 조선 대궐로 진군하고...
이를 예상했던 수양대군은 조선의 전 병력을 착출해 50만의 대군을 이끌고 친히 서북도 원정을 나갑니다.
정통성이 부실했던 황위찬탈의 태종 이방원(명태종=쇼호르)도...
북경일대와 북원(외몽골)정복후 지지기반이 단단히 굳인 예를 숭내냈을 겁니다.
허나,
김종서장군등 조정 중신들은 골육상잔의 전쟁 자체를 반대하고...
수양의 가신들까지 황제의 친정은 적극 만류합니다.
서북도 여진기병들의 용력은 자타가 공인하던 시절였고...
이를 막았던 함길도의 조선군들도 이들과 다를바 없던 용맹한 폭도들인 격이니...
자칫하다간 종묘사직의 대가 끈어질 위기를 맞을 수 있단게 그 사유였으나...
수양대군 입장에선...
조선이 다 인정한 차기 황제감인 안평의 본거지이자...크나큰 위협거리인 이징옥의 북조선&여진 연합군과의 대전은...
자신의 황제자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한 번은 꼭 치루어야할 대전이였기에...
이참에 남조선 대군을 총 동원해 한번에 적도를 도륙하고...
친히 친정을 지휘해 무용을 사해에 떨치어...역사에 기록하고...
효성 지극한 유교적 성군은... 어짜피 기습적 궐문돌파란 치졸한 왕위찬탈로 못 될 것이니...
공포스런 패왕으로라도 인정받아야 했을 것이였을 겁니다.
평소 이징옥을 애지중지했던 김종서 장군이 수양을 인정치 않고...
헌다하는 조선 장수들도 다 김종서와 이징옥을 내심 두둔하는 분위길 잘 알던 수양은...
선황제들 때부터 대대로 대전 내시로 벼슬하던... 자신의 어린왕자시절 사부격인 엄자치(명나라 환관 왕씨?)가...황제의 친정을 적극 거들어...
역전의 노장들은 다 제치고...
아랫도리가 허전한 내시(환관)가 50만 대군을 이끄는 대 토벌전을 진두지휘하는 전무후무한 희극이 벌어집니다.
엄자치(명나라 왕 환관?)와 수양은...일단, 선봉대 10만을 보내..이징옥의 여진 연합군세의 간을 봅니다.
간을 보자 마자...이징옥의 여진 연합기병들 만명 남짓한 병력에게 에게 모조리 도륙이 납니다.
그도 그럴것이
당대의 야사엔...
길을 가던 여진(몽골)기병 단 둘이...
5000명의 명나라(중앙아 무굴) 군대와 마주쳤답니다.
두명의 여진 기병이...돌아 갈까 말까 하던 도중... 명나라 군사가 먼저 적대적으로 압박해 오니...
그냥 돌파하자 맘먹고 교전이 벌어졌는데...5000의 명군이 힘을 못쓰로 나가 떨어졌고...
이를 성위에서 보던 명나라 군사들은...황망하고도 기가 질려...그냥 가도록 내버려 뒀다는 얘기도 있던 땝니다.
도착한 50만 대군의 실질적 대장군님이신...엄자치(왕 환관?)와...자칭 황제 수양대군(정통제?)은...
들판에 새까맣게 깔린 10만의 시체를 보고서도...결전을 포기치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겁은 먹었기에...우물도 하나 없던 허술한 방어진(토목보)을 중심으로 방어막을 칩니다.
이징옥의 여진 연합군이 느슨하게 멀찍이서 포위를 합니다.
날이 지나자...갈증에 지친 방어진(토목보?)내의 조선(명)군들은...
불타는 전투욕은 커녕... 멀찌기 이징옥 군대 근처에 있는 강물만 바라봅니다.
이징옥은 슬며시 강화를 제의해 오고...
한 쪽 포위망을 풀어 줍니다...철군하는 조선(명)군들은...물을 만나자 대열을 흐트리고 강물로 뛰어 갑니다.
나타난 이징옥의 군대는...무기와 갑주를 벗고 항복하는 자는 살려준다 외치며...저항하는 조선(명)군들을 사냥하듯 쏘아 죽입니다.
들판은 몇 십만 남방(양자강 유역)계 조선(명)군들의 시체로 피바다가 됩니다.
수양은 넉슬 잃고...땅바닦에 주저 앉습니다.
명색이 자칭 황제인 수양은 이징옥의 포로가 됩니다.
중원 역사에 전무후무한...이민족에게 황제가 친정도중 포로가 되는 역사로 기록되니...이게 그 유명한 "토목보의 변"입니다.
명사엔 친정을 지휘했던 명나라 왕환관은 분개한 동료장수에게 맞아 죽었다 하나...
어느 기록엔 나중에 정통제에게 오히려 역모로 몰려 죽었다 하니...이는 엄차치와 세조(수양대군)의 애증의 역사 그대로일까 합니다.
몽골족(여진인)들 역사엔...
여진(몽골)의 영웅 이징옥을...아센칸"이라 명명합니다.
티무르 대제국을 건설한 티무르(이성계?)도...징기스한의 혈통(황금씨족=금족)이 아니기에...
대칸이란 호칭을 못 썼을 정도인데...
칭기스한의 혈통이 아니면서...대칸(에센)에 오른 유일 무이한 인물이라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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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묘호 : 영종(英宗)
시호 : 법천입도인명성경소문헌무지덕광효예황제(法天立道仁明誠敬昭文憲武至德廣孝睿皇帝)
능묘 : 유릉(裕陵)
휘 : 기진(祁鎭)
재세 : 1427~1464
재위 : 1435~1449, 1457~1464
연호 : 정통(正統), 천순(天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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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늘어지니... 2편은 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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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글 참 좋습니다 홍진영님의 사관 이며 아직은 가설 이겠지만 이 사이트는 왜곡된 역사를 규명하는게 목적이고 그 실적들이 사이트에 많습니다 명 이나 청은 하나의 조선역사 인데 골수 왕정 분자들을 한반도로 보내고 그들의 귀국을 차단 하고자 조선을 명이나 청으로 만들었다는 추리를 기본으로 하여 이글을 이해한다면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는 연구결과로 보입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이성계(티무르?)와 이방원(쇼호르)가 동서로 분열하곤...명나라(무굴)과 동국조선은 분명 다른 나라로 존재하는 것이고...조선 입장에선 고향이자 옥새가 있는 서역의 무굴(명)을 존숭할 수 밖엔 없는 이치...이후 서북 여진계의 이징옥이 수양대군의 남방계와 대립하면선...북청과 남청(청구조선)이 분명 다른 나라로 존재했던 것이고...북청의 달단(타타르) 조정은...늘상 현 중원의 청구조선(청나라)의 내정에 간섭했던게 실재의 역사인데...
그 달단청나라(북청)이 중원의 청구(조선)인듯 왜곡하는게...
구한말의 섬 원숭이들과 이들에 동조한 대한뎨국 기득권들...뒤늦게 중원의 주인이 된 서남방계 짱께(중가르)족들의 꾸준한 수작질일지 싶습니다.
근본은 북방의 몽골(여진)족이겠으나...구한말기 들어서기 전부턴...엄연히 청나라(청구조선),남명(무굴 잔존세력),타타리아(북청=달단청나라)의 다른 문화권으로 세 나라가 존재한다 보입니다.
과거의 이징옥장군 관련 학설을 더욱 체계화 시키셨군요. 과거부터 해당 내용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위의 내용 중, '''조선의 삼위(三衛)지역''' 이란 표현을 잘 보면, 해삼위(海蔘葳 블라디보스토크)... 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왠지 블라디보스톡(해삼위)라는 지명이 한반도와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라는 것은 우리나라와 가까이 관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하여왔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삼위'라는 지역을 언급해 주십니다...
이성계는 또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분명히 무슨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더 해가지요... 예전에 말
씀하신 윗골, 위구르족 등의 지명이동과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