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찻집은 길가 쪽에 있고
찻집 입구 앞으로 좁은 길이 나 있다
길로 향한 작은 창가에 앉아 책을 읽노라면
찻집을 지나치는 행인의 발소리에
저절로 눈길이 밖으로 향하게 되어
독서에 몰두할 수 없는 점도 있지만
늘 그 자리에 앉는다
비어 있을 때가 많은 자리다
작은 몸집의 손님이 앉기에 맞춤한 자리여서다
좁고 높은 나무 탁자
파란 페인트로 창 테두리를 칠한
보잘 것 없는 작은 창
찻집 내부는
80년대 학교 교무실을 연상케 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일렬로 세워진 검은 책장
책장 속 온갖 책들
검은빛으로 윤나는 긴 탁자
책장 사이 빈 곳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화구와 이젤들
그날
연인으로 온 손님이 “사장님 그림 그리시나 봐요?
”예‘
그는 언제 그림을 그리는 거람
낮에 들러도 저녁 늦게 들러도 이젤 앞에 앉은
그를 본 적 없는데
짧게 깎은 머리 적당한 키에 맑은 피부의 그와
나는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 없다
주문하고 앉았으면 테이블까지 가져다 주고
돌아서는
처음 찻집에 들렀을 때가 3년 전
그날 첫눈에 굉장히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3년 동안이나
첫눈에 반한 죄로
봄이면
봄꽃에 지친 마음 쉬려 들르고
여름
진득한 장마 빗줄기가 지겨워 들르고
가을이면
달콤쌉쌀한 외로움 안고 들렀다
겨울..
겨울이면 그리고 오늘같이 눈 펑펑 쏟아지면
길 얼기 전에 행장을 차려 나섰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드나들었지
언제나 그 자리
나의 자리
노란 양철통 속에 천사의 빛처럼 쏟아지는
앙징한 손잡이 달린 남폿불이 옛사랑을 기억하게 하는 자리
등받이가 있는 나무 의자
네모난 나무 탁자
흐릿한 유리 테두리에 파란 페인트 입힌
길로 향한 작은 창이 너무도 좋아서
아니, 아니다 사실은 너무도 곁을 안 주는
매정한 주인장이 미우면서 좋아서라 해야 겠다
가끔 그가 친구들과 긴 탁자 사이에 두고
이야기꽃을 피울 때 들어섰던 적이 있다.
나의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굵지도 낮지도 않은 평범한 목소리에
길게 이어가지 않은 대화법을 가지고 있었다
묻는 말에 짧게 대답하고
차분히 그 들의 대화를 경청하는 자세
내츄럴하고 샤프하고 보이시하고 등등
온갖 미사여구 다 붙여 보자
이런 그에게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그냥
손님으로 비춰졌겠지 아마 그럴 테지
시력이 나빠 책을 코앞에 바짝 대고 읽는 게
우습고 안쓰럽게 여겨졌으면 어쩌나
그는 어쩜 누구에게나 으레,
당연히 하는 그 흔한 장사 멘트 조차
나에겐 베풀어줄 아량이 없는 매정하며
담담한 태도는 오만함에서 온 것일까.
어제 나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빗속을 걸어 그를 만나러
찻집을 찾았다.
찻집 앞 좁은 길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는데
내 자리 그곳 파란 창문으로 그가 보인다.
그가 내 자리에 앉아 있다
빗줄기 속이라 더 반짝이는 남폿불빛에 드러난
보기 좋은 옆모습을 무방비로 드러낸 그가
가슴이 살랑댄다
눈 속에 봄이 온 듯
아지랑이 처음 본듯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와 나는
서로 묻고 답하는 인사조차 생략되어져 있기에
조용히 내 자리로 가 주문하면 그가 오는 걸로
간단 명료 짧은 마주침 슬픈 해후 그리고 결별
수도자들이 입는 복장 색깔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카푸치노 한 잔에
책 한 권 더운물 한 잔
빗물 튄 겉옷을 벗어 등받이에 말리고
책을 펴든 채 눈 따로 마음 따로
신경은 온통 그의 동향을 쫓아간다.
아무도 없는 실내에 그와 내가 있다
FM 음악이 흐른다.
차분한 DJ의 목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지금 이 곡은 사랑에 빠진 남자를 위한 곡입니다.
작곡가는 몬테베르도의 성모마리아의 저녁기도 (미사곡)
입니다
스피커에서 고전음악의 선율이 젖은 바짓가랑이에서
떨어지는 물기처럼 흐른다
형언할 수 없는 습기가 가슴에
번진다. 사랑에 빠진 남자라니
이 무슨 우연인가.
사랑에 빠진 것은 누구인데
아~ 사랑에 빠질 수만 있어도
이렇게 살아 있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잖은가,
이것만으로 얼마나 축복인가 그래! 축복이고 말고
...사랑은 그렇다 치고
설 명절이면 이렇게 떡 눈이 내렸다 (습설이라고)
눈이 무거워 초가집이 주저앉고 정짓간이 무너졌던
정월달엔 떡 눈이 푸지게도 내렸다
설 명절, 눈길
그가 있는 찻집
카프치노 위에 뿌려진 계피가루 향 같은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첫댓글 그때 들렸던 그찻집의 포근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몬가 어떤 인연의 고리가 연결될듯한 분위기 쌍팔년도의 모습들
함박눈 내리는 날이면 훨씬 운치있게 느껴질 찻집 옛사랑이 떠오르는걸요
글 잘 읽었습니다 눈 앞에 분위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날씨에 맞는 글 입니다.
사랑에 빠진 그네를 멀거니 바라보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싶네요.
뭐 필요한거 없어요?
여긴 진눈깨비 추적거리는데
거긴 습눈이 내리는 모양이군요.
그이는...
172-174센티 정도일 것이고~
하얀 피부와~
약간 마른 체형 이지만 보기에 딱 좋을 정도 일것이고~
머리는 단정하며~
근육질 몸매는 아닌 걸로 하고~
말수는 적지만 지적인....
것 보다도 운선님의 마음 속에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다는 것에~
놀랍니다..
만지려 하지 마시고~
애써 다가 서지도 마시길..
오랫동안 그 포근한 기분..
오랬동안 느끼시길 바래요.
제가 유년기를 마냥 행복하게 보냈었던 제 고향 공주 산골에서는 이맘 때 쯤 눈이 엄청 많이 내렸었습니다.
뒤란 장독대 위에도 울타리 몫을 단단히 하고 있던 무궁화 나무 위에도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였었지요.
눈 위에 두 번 발자욱 찍기 놀이를 즐겨하던 생각도 떠오릅니다.
울운선님 글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다. ^^~
너무나 아름다운 한장면을 보고갑니다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시어
언제나 작은 소확행 하고싶은날 그자리로 가세요
어쩌면 그분도 같은 마음으로 운선님을 기다리실지..
장면 장면이 연상되어
빙그레 미소지어가며 즐감했습니다.
그럼요.
사랑에 빠질 수만 있어도 축복이지요.
암만요.^^
스치듯
보일락 말락한
담장 넘어 검은 머리 소년을
꼿발 딛어 훔쳐보다
출렁거리는 파도에
흠짓 놀라
물러 선 이후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야릇한 감정을
운선님의 필력으로 일깨워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ㆍ
운선님!
건강하십시요ㆍ
글의 내용이 난해하여
이해하고 속단하기 힘들지만
계묘 신년에
시집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냥 혼자
해본 덕담이에요
불만 있으면
혼자 살면 되고...
어쩜, 나를 보는듯한 글
재밋게 잘 읽고
행복해 하고 갑니다.^^
가원도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피해는 없으신지요~~ ^^
잔잔한 울림이 있는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운선 언니에게
어울리는 남친이 꽃피는 4 월의 선물이기를
바라옵니다...
그동안 등에 지고 살았던
내 아이들에 대한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
아이들은 예쁘고 건강하게 성장하여
우리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제~
언니의 꽃밭을 가꾸며 살아갑시다.
네 예 사랑 그립니다.
글을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 안에 제가 있는듯
찻집의 동선을 따라가며 ~
묘한 느낌인데요 !
사랑에 빠진 느낌~
아름다운
소녀의 풋사랑이
떠 오릅니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것이 다
아름답게 보이지요..
무심한척 하기도 쉬운일 아닌데~
그걸 즐기시네요~^^
나도 하고 싶어요...ㅎ
마치 보리가 주인공이 된양 설레이는 글입니다.
애써 곁 눈 줘도 곁을 주지 않는 그 남자..
곁을 바라면서도 곁 눈만 주는 딱한 여인..
곁 눈만 뜨는 그와 곁 눈만 주는 그녀라니..
애틋한 사랑 맛에 취한 것도 축복이라지만,
그야말로 '짝사랑'과 '외사랑' 사이일세 그려~~
오직 '운선'마님 만의 눈으로 그려낼 수 있는
한 폭의 '러브 스토리'~~명작 탄생입니다~~^^
아름다워요
함민복 시인님의 "서울역 그식당"
시구절 떠오릅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라는.....
그찻집에 차마시러 가고 싶어졌어요~~
작년에 못 지킨약속 올해는 지킬수 있어야 할텐데요~~
아무튼 새해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꿈 이루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