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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자명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聖君 仁宗大王 추천 0 조회 431 10.09.11 22:41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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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9.12 08:50

    첫댓글 고구려가 낙랑국을 없애지 못한 핑계가 자명고지요. 그런 지리적 정치적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 10.09.12 14:00

    아 제가 어디서 들은얘기 인데요 그거 군악대라고 하네요
    뭐 사극해서는 "후퇴하라~~,전진하라~~"뭐 이딴말 하면 다 알아서 듣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그렇게 알아 듣지 못하고 군악대가 그기능을 한다고 하더군요.
    즉 낙랑국이 자명고 덕분에 고구려 침공을 막았다는건 군악대가 잘되어있거나 통신시설이 아주 끝내줬다는 것으로 볼수 있는것 같습니다.

  • 10.09.13 03:33

    단군조선 때에 자명종(自鳴鐘), 양우계(量雨計), 측풍계(測風計) 등이 발명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낙랑국에서 자명고라는 오버테크놀로지의 소산을 만들어 냈다는 게 이상할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라는 건 농담이고,
    일단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는 하나의 설화로 발전한 이야기 같습니다. 핵심적 내용은 호동왕자를 통해 계략을 써야 할 정도로 낙랑국이 고구려 입장에서 쉽게 점령할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이고, 그 핵심적인 이유에 자명고가 있었던 것이니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고구려 입장에서 낙랑을 정벌하는 장애물을 한꺼번에 묶어 상징하는 게 자명고라 보아야겠지요. 자명고가 상징하는 게 어떤 물건(건물, 무기 등)일

  • 10.09.13 03:36

    수도 있고, 어떤 정보(무기정보 등) 일 수도 있고, 또는 지리적-외교적 문제였을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자명고가 꼭 어떤 것을 지칭한다기보다는 '공주의 배신으로 인해 낙랑국이 내부로부터 허물어졌다' 는 것이 그 설화의 핵심일 지도 모릅니다.

  • 10.09.13 14:38

    미주가효님께서 말씀하신 자명종,양우계,측풍계에 대하여 좀더 알고싶습니다. 어느사료에서 어떠한 식으로 서술되었다는건지 궁금하군요. 설마 환단고기는 아닐테지요?

  • 10.09.13 18:01

    단기고사의 나름 유명한 구절입니다. 나름대로 좀 온건(?)한 것들로 골라 적은 것이지요. (잠수함, 열기구(?) 등도 나오니...) 그 단어들로 검색하시면 이 카페든 혹은 다른 사이트에서든 과거 많이 쓰여진 글들을 관람(?)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
    그런데 말 그대로 농담으로 써 놓은 것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자명고에서 저 책에 단군조선 때 만들었다고 적은 자명종이 잠시 떠올랐을 뿐... ^^

  • 10.09.13 18:57

    제가 예전에 썼는데, 자명고를 한나라라고 해석해 봤습니다. 한나라와의 대립을 피하려 했던 고구려가 한나라의 지원을 받던 낙랑국을 건드리기 싫어 나름 자위한 구절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자기 살기 바빠지자 낙랑국을 쳐 없애지요. 그 후 다시 빼았기고

  • 10.09.14 16:47

    한나라가 낙랑을 빼앗겼다가 살수이남을 회복했다는 얘기가 그말인것 같네요

  • 10.09.14 18:20

    남당유고 고구려사초 대무신제기
    二十七年 甲寅 四月 好童太子将兵東巡獵 微行至崔理新都〈鴨口〉 與理女交好 女為之 破鼓角 而迎 王師大軍 自沃沮〈尼古里〉浮海而入 拔其都 虜崔理夫妻而歸 以其地為竹岺郡 樂浪自柴吉四世八十餘年 而國除

  • 10.09.14 18:17

    27년 갑인(AD54) 4월 호동(好童)태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을 순수하며 사냥하다가, 미행하여 최리(崔理)의 새 도읍〈압구〉에 이르러 최리의 딸과 사이좋게 사귀었다. 그녀는 호동을 위해 고각(鼓角, 군중에서 호령할 때 쓰는 북과 나팔)을 망가뜨려 맞이하였다. 왕이 거느린 대군은 옥저〈이고리〉로부터 바다를 건너 그 도읍을 빼앗고 최리의 내외를 사로잡아 돌아왔으며, 그 땅은 죽령군(竹岺郡)으로 삼았다. 낙랑(樂浪)은 시길(柴吉)로부터 4세 80여년 만에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 10.09.14 21:45

    너무 '자명고'라는 것에 얽매이는것 같습니다. 어쩌면 실제로는 단순히 공주가 몰래 성문을 열어준 행위만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 10.09.19 02:28

    이런 가정은 어떨까요? 최리는 뛰어난 호동을 사위로 삼고싶어, 진실되게 혼사를 추진했는데... 사랑에 눈이 먼 낙랑
    공주가 자명고라고 불리는 낙랑의 뛰어난 점술가를 죽임으로 해서, 나라가 적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해 멸망하게 되었다. PS 자명고를 앞서 말씀하신것처럼, 낙랑국이 봉화대 운영에 남달랐기 때문에 그 앞선 봉화통신 수단을
    일컫는 것일수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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