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고라는 북이 존재했을 수도 있고..
세상에 이런 일이 이런 프로에서도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나오는데..
스스로 치는 북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없었다고 본다면..
제가 보았던 여러 역사책에서는 자명고의 존재를 고구려가 그만큼 낙랑을 어렵게 정복했다고 해석하지만..
이건 좀 단순한 듯 싶고..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예전 자명고라는 드라마에서는 자명고를 자명공주로 했던데..
뭐 상상하는 거야 자유지만..
첫댓글 고구려가 낙랑국을 없애지 못한 핑계가 자명고지요. 그런 지리적 정치적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아 제가 어디서 들은얘기 인데요 그거 군악대라고 하네요
뭐 사극해서는 "후퇴하라~~,전진하라~~"뭐 이딴말 하면 다 알아서 듣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그렇게 알아 듣지 못하고 군악대가 그기능을 한다고 하더군요.
즉 낙랑국이 자명고 덕분에 고구려 침공을 막았다는건 군악대가 잘되어있거나 통신시설이 아주 끝내줬다는 것으로 볼수 있는것 같습니다.
단군조선 때에 자명종(自鳴鐘), 양우계(量雨計), 측풍계(測風計) 등이 발명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낙랑국에서 자명고라는 오버테크놀로지의 소산을 만들어 냈다는 게 이상할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라는 건 농담이고,
일단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는 하나의 설화로 발전한 이야기 같습니다. 핵심적 내용은 호동왕자를 통해 계략을 써야 할 정도로 낙랑국이 고구려 입장에서 쉽게 점령할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이고, 그 핵심적인 이유에 자명고가 있었던 것이니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고구려 입장에서 낙랑을 정벌하는 장애물을 한꺼번에 묶어 상징하는 게 자명고라 보아야겠지요. 자명고가 상징하는 게 어떤 물건(건물, 무기 등)일
수도 있고, 어떤 정보(무기정보 등) 일 수도 있고, 또는 지리적-외교적 문제였을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자명고가 꼭 어떤 것을 지칭한다기보다는 '공주의 배신으로 인해 낙랑국이 내부로부터 허물어졌다' 는 것이 그 설화의 핵심일 지도 모릅니다.
미주가효님께서 말씀하신 자명종,양우계,측풍계에 대하여 좀더 알고싶습니다. 어느사료에서 어떠한 식으로 서술되었다는건지 궁금하군요. 설마 환단고기는 아닐테지요?
단기고사의 나름 유명한 구절입니다. 나름대로 좀 온건(?)한 것들로 골라 적은 것이지요. (잠수함, 열기구(?) 등도 나오니...) 그 단어들로 검색하시면 이 카페든 혹은 다른 사이트에서든 과거 많이 쓰여진 글들을 관람(?)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
그런데 말 그대로 농담으로 써 놓은 것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자명고에서 저 책에 단군조선 때 만들었다고 적은 자명종이 잠시 떠올랐을 뿐... ^^
제가 예전에 썼는데, 자명고를 한나라라고 해석해 봤습니다. 한나라와의 대립을 피하려 했던 고구려가 한나라의 지원을 받던 낙랑국을 건드리기 싫어 나름 자위한 구절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자기 살기 바빠지자 낙랑국을 쳐 없애지요. 그 후 다시 빼았기고
한나라가 낙랑을 빼앗겼다가 살수이남을 회복했다는 얘기가 그말인것 같네요
남당유고 고구려사초 대무신제기
二十七年 甲寅 四月 好童太子将兵東巡獵 微行至崔理新都〈鴨口〉 與理女交好 女為之 破鼓角 而迎 王師大軍 自沃沮〈尼古里〉浮海而入 拔其都 虜崔理夫妻而歸 以其地為竹岺郡 樂浪自柴吉四世八十餘年 而國除
27년 갑인(AD54) 4월 호동(好童)태자가 군사를 이끌고 동쪽을 순수하며 사냥하다가, 미행하여 최리(崔理)의 새 도읍〈압구〉에 이르러 최리의 딸과 사이좋게 사귀었다. 그녀는 호동을 위해 고각(鼓角, 군중에서 호령할 때 쓰는 북과 나팔)을 망가뜨려 맞이하였다. 왕이 거느린 대군은 옥저〈이고리〉로부터 바다를 건너 그 도읍을 빼앗고 최리의 내외를 사로잡아 돌아왔으며, 그 땅은 죽령군(竹岺郡)으로 삼았다. 낙랑(樂浪)은 시길(柴吉)로부터 4세 80여년 만에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너무 '자명고'라는 것에 얽매이는것 같습니다. 어쩌면 실제로는 단순히 공주가 몰래 성문을 열어준 행위만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가정은 어떨까요? 최리는 뛰어난 호동을 사위로 삼고싶어, 진실되게 혼사를 추진했는데... 사랑에 눈이 먼 낙랑
공주가 자명고라고 불리는 낙랑의 뛰어난 점술가를 죽임으로 해서, 나라가 적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해 멸망하게 되었다. PS 자명고를 앞서 말씀하신것처럼, 낙랑국이 봉화대 운영에 남달랐기 때문에 그 앞선 봉화통신 수단을
일컫는 것일수도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