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이 시작되었고 K리그를 대표하는 네 팀이 모두 첫 경기를 치렀다. 4팀이 거둔 성적은 1승 1무 2패로 기대에 다소 못 미친다. 지난 몇 해 동안 아시아 무대를 휩쓸고 다녔던 K리그이기에 당연히 승리를 기대한 까닭이리라. 경기력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K리그가 아직 개막하기 전이고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는 기간이므로 제 궤도에 오르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쉬운 공도 따라가지 못하거나 간단한 패스에서도 실수를 하는 것들은 경기 감각이 올라오면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경기 감각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K리그의 네 팀은 공통적인 약점을 노출했다. 바로 공격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4팀이 겨우 3득점을 뽑아냈다. 득점이 적었다는 사실을 단순히 공격수들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지만, 경기를 주도함에도 마무리를 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공격진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 경기를 줄곧 지배 했으나 득점에 성공하지 못하고 가시와 레이솔과의 조별예선 1차전에서 무승부를 거둔 전북 현대.)
외국인 공격수의 경우 중국이나 중동의 리그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수준급 선수들을 찾기 힘들어졌다. 데얀 이후 리그를 선도하는 용병 선수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2014시즌 득점 순위를 보면 10위 내에 외국인 선수가 4명, 한국인 선수가 6명이다. 토종 공격수들의 활약으로 인한 것인가 보면 그것은 또 아니다. 의존도가 높았던 외국인 공격수들의 수준이 다소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득점 순위에 많은 국내 선수들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경기 당 득점을 보아도 확실히 외국 공격수들의 수준이 떨어졌다.
게다가 국내 선수들의 성적도 썩 좋은 것은 아니다. 복고열풍을 일으켰던 무한도전 ‘토토가’의 90년대 가수들과 같은 세대인 이동국은 여전히 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이다. 이동국의 실력과 투혼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좋은 선수들의 등장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국, 김신욱 정도를 제외하고는 K리그에서 눈에 띄는 한국인 중앙 공격수가 없다. 그리고 결국 이번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서 아시아 공격력 부족 문제가 나타났다.
수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K리그에는 많은 수의 젊은 스트라이커들이 활약하고 있다. 특히 아시안컵 스타 상주 상무의 이정협을 비롯하여 FC서울의 김현성, 박희성, 성남FC의 김동섭, 임대를 떠난 수원 삼성의 하태균 등 각 연령 대표를 지낸 선수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성인무대에 데뷔한 이후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실제로 이번 예선에 출전했던 김현성, 김동섭은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고, 그나마 교체로 출전했던 성남FC의 황의조만이 괜찮은 움직임으로 만회골에 기여했다. 이동국은 부상, 하태균은 임대로 팀을 떠나 있는 상태라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엔 한국인 중앙 공격수는 출전하지 않았다.
K리그 토종 공격수들의 부진은 국가대표 공격수 부재와 맥을 같이 한다. 지난 아시안컵을 앞두고 슈틸리케 감독이 박주영을 평가전에 발탁하면서 크게 논란이 되었다. 박주영은 당시에 전혀 국가대표팀에 뽑힐 상태가 아니었다. 박주영은 당연히 제외되고 다른 선수들이 물망에 오르는 것이 당연했으나,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선발해서 시험해봐야 할 정도로 마땅한 공격수 자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 이정협을 발탁하였는데 모험적인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다.
최근의 토종 스트라이커들은 대체로 당당한 체구를 갖추고 있다. 동시에 체구에 비해 준수한 기술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주력도 괜찮은 수준이다. 흔히 하는 말로 ‘높이도 있지만 발밑도 나쁘지 않은’ 다재다능한 스타일들이 많다. 가능한 플레이가 많다는 장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다재다능함이 경기장에서 마냥 강점으로만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말인즉슨 딱히 부족한 것은 없지만, 어떤 점도 상대를 압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솜방망이로 수십 대 맞는 것보다 송곳으로 한 번 찔리는 것이 훨씬 치명적이고 아픈 것과 같은 이치이다. 상대를 ‘부수기’ 위해서는 수비 선수를 압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동국이나 김신욱 역시 높이와 발밑의 기술을 모두 갖춘 공격수이지만 슈팅과 제공권이라는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다. 다재다능함은 수비를 압도할 수 있는 뛰어난 무기가 있을 때에야 정말 무서운 법이다. 김신욱이 발밑으로 오는 패스를 원터치로 내주면서 연계 플레이를 이어가는 모습이 위협적인 것은 그가 압도적인 높이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공격수들의 경우는 다재다능함보다 특정 방면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발휘할 때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성공한 공격수들이 모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처럼 꼭 올라운드 플레이어여야 할 필요는 없다. 수비와 ‘부비부비’하며 몸싸움으로 압도하던 루카 토니, 순간 스피드를 이용하는 데 능했던 토레스, 드리블 능력과 저돌적인 움직임이 좋은 테베스, 정확한 슛이 강점인 디 나탈레, 위치선정과 라인 깨기에 능했던 인자기까지 각자 특성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다. K리그의 토종 공격수들은 자신이 ‘어떤 플레이를 하는 선수인지’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는 ‘에고’를 가져야 한다. 부족한 것은 없지만 밋밋한 공격수가 될 것인가, 단맛이나 짠맛은 없지만 매운 맛은 보여줄 수 있는 공격수가 될 것인가.
(△ 아시안컵 호주 전에서 득점한 이정협, 아시안컵의 신데렐라를 넘어 진정한 대한민국의 대표 공격수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미에서 아시안컵에서 신데렐라로 떠오른 이정협 역시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 아시안컵에서의 선전으로 이정협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가 있었지만 ‘나는 어떤 플레이를 하는 선수이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주진 못하고 있다. ‘장신임에도 주력이 준수하며 활동량이 많은’ 그러나 ‘득점을 많이 올리진 못하는’ 공격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정협은 아시안컵에서 중요한 두 골을 기록하면서 맹활약했지만, 우즈벡과의 8강전까지는 1:1 상황에서 크게 골대를 벗어나는 슈팅을 날리기도 했다. 국가대표 공격수로서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분명 이정협은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아시안컵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진정한 국가대표가 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단기 토너먼트에서 ‘반짝’하는 선수도 있다. 앞으로는 꾸준함을 보여주어야 할텐데 수비를 부술 수 있는 이정협만의 ‘무기’를 갖추지 못한다면, 2015년 아시안컵에서 잠깐 활약했던 공격수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정협이 제공권 다툼이나 포스트 플레이, 드리블 돌파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이정협이 골을 노리는 가장 좋은 플레이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아시안컵 그리고 대회 직전 평가전에서 이정협이 터뜨렸던 골들을 복기해보면 위치 선정과 골을 노린 순간적인 움직임에서 강점을 보였다. 호주 전에서의 득점은 측면의 크로스에 맞춰 앞으로 잘라 들어오면서 골을 만들어냈고, 이라크 전에서는 프리킥을 그대로 머리에 맞추면서 골을 성공시켰다. 골 냄새를 잘 맡고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찬스를 만들었고 골 결정력을 발휘해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론 동료의 움직임에 맞춰 가장 골을 넣기 좋은 위치로 움직이는 ‘골 사냥꾼(포처)’으로서 발전을 목표로 삼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 AFC 클럽 랭킹, 20위권 내에 5개의 K리그 클럽이 있다.)
K리그의 선수들의 성장은 K리그 자체의 질적 향상과 인기는 물론 국가대표팀의 실력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돈을 투자하는 중동, 중국 구단들과 만날 수 있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는 K리그 그리고 대한민국 축구의 현실을 진단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사실상 ‘머니 게임’에서 이기고 좋은 외국인 선수, 특히 공격수들을 데려오기란 쉽지 않지만, 이에 실망만 할 것이 아니다. 현실이 그러한데 그저 우는 소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국인 공격수들은 특급 외국인 선수가 빠진 공백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실력 향상을 꾀해야 한다. 중동과 중국의 막대한 투자가 부럽기도 하고 또 서럽기도 하지만, 올 한 해도 K리그의 선전, 그리고 공격수들의 성장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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