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편
최광자
1997년 끝자락. IMF란 단어도 생소하여 이해하지 못할 때 위기에 휩싸인 남편. 18년 동안 신발 공장을 운영하며 통근 버스로 출퇴근하고 자전거로 본사에 들고 나면서도 편하다고 말하는 근면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다. 신발은 만드는 과정과 준비 작업이 복잡하고 열 대여섯 공정과정을 거처 하 나 하나 섬세한 바느질을 하듯 자르고 붙이고 박고 두드려 뚫어 꿰매는 생각 보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작업의 가공품이다.
우리 나라 신발의 70%가 부산에서 생산되었으나 경쟁은 심하고 납품(임가 공)비도 저렴하여, 인건비 자재비가 낮은 동남아로 진출한 상태이다. 내수 시 장도 활발한 거래가 없어 주춤거리고 있을 때, 아무리 어려워도 남편과 백 여 명 종업원은 무던히 참아가며 끈질긴 인내로 서서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지금 까지 왔다. 남편은 다른 공장이 하나 둘씩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때도 제때 월급과 어음 을 결재하는 교과서 같은 사람이다. 아버지의 소개로 만난 그이는, 남자(5형제)가 많아 말이 없고 엄격한 교육 자 집안의 아들이었다. 딸 부자(자매)신식집안의 나는 환경과 성격 취미, 먹는 것 하나까지 상반되는 짝이 되어 결혼 초에도 언제나 손님 같고 돌부처 같이 바라만 보는 남자 였다.
답답하고 재미없다고 “아버지가 데리고 사세요" 물리고 싶다고 투정부리면 "진국의 진가는 살면서 더디게 나타나는 법이니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야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사랑 받고 살 거야" 하시며 달래주곤 하셨다.
난 말없이 기다리는 믿음을 키워가며 세월에 파묻혔고, 하늘나라 가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자라고 안온한 생활과 편안한 그늘 밑에 조용 쉬면서 이건 내 복이야! 하늘이 주신 축복에 감사하면서 살았다.
깊은 신앙 생활과 알뜰히 살림 살이 하면서 영아원, 아이들의 집, 복지시설 가입회원으로 봉사하며 보람도 느끼고, 내 딴에는 세상에서 제일 성실하고 현 모양처인양 바쁘게 살았다. 흔하다는"계도 나와는 거리가 멀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사회 친구도 별로 없다. 국제 통화기금의 위기가 발표되면서, 매일 대서 특필되는 대 기업체 도산이 속속 발표되었다. 시시각각 긴급하고 불안한 뉴스, 한치 앞도 가름할 수 없는 기막히고 절박한 위기의 현실, 국가가 온 국민이 혼란스러운 IMF 비상 이야기로 홍수를 이뤘다.
나라가 망하느니, 기업체 부도로 실업자가 몇 십만이고, 노숙자가 몇 만이며 도미노 현상에 수많은 가정들이 비참한 몸부림의 아픔은 원망과 저주의 소리 로 변했다. 온 국민이 을 모으겠다고 금 모으기 외화 모으기에 정성과 애국심을 보였 건만 들리고 보이는 것은 살기 위한 생존의 전쟁터라고나 할까! 정권이 바뀌면서 급변한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고 밀려오는 폭풍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삼키듯이 무서운 기세로 대 공황기에 휘말리고 말았다.
남편이 거래하는 본사는 그룹 계열사 중에서 신발과 의류가 제일 골치 아프 고 힘들다며 order도 절반으로 줄이고 바이어들도 발 빠른 이동으로 모든 기업들이 을 잃었다. 선대부터 고무공장으로 성장하여 열 개 이상의 계열사를 배출하고 국내외 적 으로 유명한 maker 있는 그룹 회사다. 거대한 산이 무너지며 보잘 것 없는 작은 산은 속수무책 흔적조차 없이 덮어 버렸다. 이젠 정리해야 한다며 비통해 하던 남편은, 죽고 싶은 심정으로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다며 절망의 한숨을 토해 냈다.
큰 회사도 당하면 막아내지 못해 무너지는 기이한 현상을 듣고 보면서 슬기 로운 대처는 왜 못했나? 자책하면서 배신당한 것이라며, 실망인지 절망인지 끝장이야! 혼자 말로 말꼬리를 흐리며 죽음과 같은 결정이었다고...... 받아내야 할 것, 갚아야 할 것 포기해야 되는 기막히고 허무한 가슴앓이는 시작되었다. 소심한 그이는 도덕적인 양심과 체면 오랜 친분관계로 이래저래 참다 늦어지 면 진실 마저 돌이키지 못하는 비참하고 추한 모습으로 남기 전에 비질하여 싸악싹 깨끗이 청소하듯 쓸어내어 욕심도 미련도 버리자고 했다. 나는 아무런 의견도 수습도 생각마저 없는 멍청함으로 다가온 위기의 절박함 을 몰랐다.
본사의 약속어음으로 종업원 퇴직금과 월급 100% 해결하고 공장 기계설비 원단과 자재 납품하지 못한 완제품 남겨진 어음 몽탕 털어 내도 받을 분들의 손해가 크단다. 우리 또한 여기서 멈춘다면 피해와 손해가 상당하다는 것을 거래처들도 다 알고 있었다. 오랜 거래로 그이의 인격이나 성품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받을 돈을 다 받지 못하는 마음 오죽 아팠을까! 다 갚지 못하면서 결정해야 하는 안타깝고 면목 없는 선택은 화덕을 끓어 않은 듯 화끈화끈 했단다. 끝내 인정하면서도 몇 몇 거래처와 불쾌한 언사가 있었다. 격정의 마무리는 감격하는 모습이었고 위로와 격려, 재기와 용기를 주고받는 기막힌 주객전도의 평생동안 잊기 어려운 감동들이 마지막 정리였단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매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을 위로하고 고마워하는 아이 러니가 허전하고 괴로운 고통의 상처를 싸매 주며 용기를 주었다.
위로를 받으며 암 흙의 고통에서 벗어나 미지의 시간으로 왔다. 짧은 시간이 왜 그토록 길기만 하였는지! 또다시 시작인지 끝남인지? 답답한 현실의 늪에 빠져 말도 행동도 세상마저 포기한 좌절한 모습의 그이. 이 황당한 놀라움, 위기를 모면하려던 성급한 결정 칭찬을 받을지 원망으로 남겨 질지 표현하기 괴로운 텅 빈 가슴 채울 길이 없어 저러고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아린 가슴에 어떤 약이 되어 줄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방법을 몰라 통곡하고 싶었다. 누구인들 흉볼 것이며 최선의 방법이라 하여 알아 줄 사람 인들 있을까? 하늘이 알면 그만이지, 말은 그리해도 원망으로 메어질 것 같 은 가슴은 끝내 숨기기 힘들었다.
마음은 수없이 흩어지고 말로는 표현할 재간이 없어 눈물과 한숨이 한없이 흐른다. 마지막 당신 돈마저 가지고 나가 미안하고 불쌍하다며 고통스러운 실의에 따 진 남편. 이제부터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까지 호강하고 행복하게 오랜 세월 철부지로 당신 바라만 믿고 보호받고 살았으니 이제 당신을 위하여 작은 이나 기대일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보겠어요. 그늘이 드리워질 때까지 뜨거운 태양으로 가뭄에 빗물로, 때로는 서늘한 바 람과 밑거름이 되어 살겠노라고 울면서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초체한 남편의 모습, 풀죽어 조용한 아이들, 생각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아픔 으로 다가와 힘들고 외로운 날들이 태산같이 막아선다. 그렇게 당당하게 다 털어 내고 살자던 그이는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갈 것도 불안하고 고통스런 아픔으로 다가오는데, 어머니로 아내로 아픈 가족들을 위로해야만 했다. 눈치만 보는 동기간들에게 걱정 말라며 또 다른 가면의 웃음을 보여야만 하는 기막힌 현실 앞에 서럽기만 했다. 나도 따뜻한 위로가 그리워 방황했고 마음껏 울고 싶어 도 의지력을 보이려고 빈 웃음을 지으며 씩씩한 모습으로 근심 걱정도 없는 여유를 보이며 서러움과 고달픈 진실을 가슴속에 꼭꼭 묻어 두었다.
20년만에 귀향한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도 비참하던 아픔도 하나둘씩 희미해 지며 미흡한 살림도 익숙해지고 있을 때, 그리도 야속하기만 하던 본사에서 화의신청이 결정되는 행운을 얻었다. 어려운 경제가 회복될 기세는 안보이고 또 사업할 의욕과 재력도 상실한 그 때 우리는 받아낼 것들도 갚아야 할 것도 돈인지 휴지인지 암담한 가슴으로 하늘만 바라보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죄인이오나 깨끗이 살고 싶습니다.
작으오나 큰 사람으로 살기를 원 하고, 바다같이 파도도 포용하며 파란 하늘처럼 둥글고 포근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제 갚아야 할 것 다 갚지 못하고 아프게 한 죄, 저도 용서받고 용서해 주고자 합니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오래도록 미워 해본 적이 없습니다. 미움이 가시고 사랑만 가득 담는 가슴 그리되올 날을 주옵소서.
2000/ 8집
첫댓글 어려운 경제가 회복될 기세는 안보이고 또 사업할 의욕과 재력도 상실한 그 때 우리는 받아낼 것들도 갚아야 할 것도 돈인지 휴지인지 암담한 가슴으로 하늘만 바라보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죄인이오나 깨끗이 살고 싶습니다.
작으오나 큰 사람으로 살기를 원 하고, 바다같이 파도도 포용하며 파란 하늘처럼 둥글고 포근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제 갚아야 할 것 다 갚지 못하고 아프게 한 죄, 저도 용서받고 용서해 주고자 합니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오래도록 미워 해본 적이 없습니다. 미움이 가시고 사랑만 가득 담는 가슴 그리되올 날을 주옵소서.
작으오나 큰 사람으로 살기를 원 하고, 바다같이 파도도 포용하며 파란 하늘처럼 둥글고 포근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제 갚아야 할 것 다 갚지 못하고 아프게 한 죄, 저도 용서받고 용서해 주고자 합니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오래도록 미워 해본 적이 없습니다. 미움이 가시고 사랑만 가득 담는 가슴 그리되올 날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