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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새벽예배 | 김승진 목사] 감사하지 않음 다니엘 6장 10절 | 2024. 3. 21
https://www.youtube.com/live/US3wFFioN3U?si=fm13cD-Wp8n_emIT
시편 58:1 - 58:11 불의한 통치자 위에 계신 공의의 심판자
(다윗의 믹담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귀머거리 독사 같은 통치자들 58:1~5
1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2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 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하나님께 심판을 간구함 58:6~11
6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7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8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9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나무든지 불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 가게 하소서
10 의인이 악인의 보복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11 그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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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시편 기자는 정의를 말하지 않는 통치자들과 올바르게 판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들의 능력을 꺾으시고 그들을 멸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때에 의인이 악인의 보복당함을 보고 기뻐할 것이며, 사람들이 보고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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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머거리 독사 같은 통치자들 58:1~5
통치자들은 공의를 따라 바르게 판결해야 합니다. 그들이 침묵하면 불의한 자들이 약자들을 억압하게 됩니다. 58편은 악행을 일삼는 통치자들을 책망하는 시입니다. 시편 기자는 통치자들이 힘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유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잔인하다고 책망합니다. 그들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같이 거짓을 말합니다. 악한 통치자들은 독을 품은 귀머거리 독사 같습니다. 독사는 술사가 피리를 불면 반응을 하는데, 독사 같은 악한 통치자들은 술사의 소리도 듣지 않습니다. 계속 거짓된 길로 가면서 악행을 저지릅니다. 통치자는 하나님을 대신해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이기에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공의로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가 ‘귀머거리 독사’라고 한 이들은 누구인가요?
자신이 공의의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임을 인식하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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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심판을 간구함 58:6~11
시편 기자는 악한 통치자들의 이를 꺾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가 뽑혀 연약한 동물을 잡아먹을 수 없는 사자처럼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같이 오래 머물지 못하기를, 꺾인 화살처럼 아무 위협이 되지 못하기를, 수분이 말라 가는 달팽이처럼 껍데기만 남기를 간구합니다. 악인이 도모하는 것은 불붙은 가지처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든, 생가지처럼 시작되기 전이든 하나님의 강풍으로 날려 버리시길 기도합니다. 악인이 멸망하면 의인이 기뻐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모두가 알게 됩니다. 정의를 말해야 할 때 침묵하면 안 됩니다. 성도는 통치자들이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는 악한 통치자가 어떻게 되길 기도했나요?
내가 불의와 타협하는 지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주의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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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더욱 찾으라
큰 고난의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게 된다. 성경의 다윗도 힘든 상황 속에서 과거 자신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 예배하고 은혜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 큰 상처의 말을 했다며 슬퍼했다.
우리가 모두 연약한 사람임을 알지 못하고 사람을 의지한다면 필연적으로 실망과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결코 피난처가 될 수 없다. 다시 다윗을 보라. 잘나갈 때 모두 그의 친구인 듯했지만, 그가 쫓기는 입장이 되자 그를 정죄하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고난이 참된 친구와 믿지 못할 사람을 갈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의리와 아량에 전적인 기대를 거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일 수밖에 없다.
자신과 타인의 연약함을 깨달았다면 이를 하나님을 더욱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오로지 하나님밖에 없다고 고백하며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인자하심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절박한 인생에게 도움이 되어 주신다. 막연히 ‘누가 좀 도와줬으면….’ 하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고 그분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사람을 만나 주신다.
사람은 우리가 의지할 대상도 피난처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인가? 아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부르짖는 우리 곁에서 그분은 언제나 변함없이 함께해 주신다.
고난을 넘다 / 이기용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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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시편 58편 11절
하나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선악 간에 판단하셔서 공의로 갚으십니다. '갚음이 있다'라는 말은 '열매를 맺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는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악인에게는 준엄한 심판을 행하십니다. 불의와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악인이 떵떵거리고 득세하는 현실이 우리 눈에는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진실로 살아 계시는구나!"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경고를 무시한다면 다른 무엇도 그를 파멸로부터 건져줄 수 없다. - 맥스 루카도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의로운 자보다 불의한 자가 득세하는 이 땅을 불쌍히 여기소서. 스스럼없이 악을 행하며 사악한 말로 사람을 홀리고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을 용서하소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있음을 생각하며 악한 세상의 조류에 역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소서
오늘의 찬송(새 325 예수가 함께 계시니)
* 본문의 정리: 시인은 정의를 외면하고, 불의하게 재판을 행하는 자들이 불의를 꾸미고 폭력을 일삼는 악인이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여 주셔서 그들을 심판하여 주시고, 의인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본문의 명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통치자들과 다른 통치자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정의와 공정한 판단을 세워 가시며, 의인들을 기쁘게 해 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불의를 행하고, 불의한 재판을 일삼는 이 세상의 통치자들과는 달리 정의와 공평으로 이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굳건하게 의지하고, 그분께서 친히 개입하여 주시고, 심판하실 것을 기대하자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모든 문제들을 친히 해결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고, 그분께서 행하시고, 그분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들을 목도하는 증인이 되자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여 주시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는 것들을 목격하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풍성히 경험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3/20일 전도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6-9절 악인을 심판하셔서 잠시 반짝이지만 쉬이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로 만드십니다. 주님은 강한 자의 강한 부분을 사정없이 부수셔서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하시고, 맥없이 떨어지는 화살처럼 무용지물로 만드십니다. 악인들의 도모가 이루어지기 전에 심판의 바람으로 날려버리십니다. 우리 현실에 악인들의 삶이 형통해 보여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혹시 이 허울뿐인 삶을 부러워하거나 동경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0,11절 악인을 공평한 판단으로 심판하셔서 의인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권리를 회복해주십니다. 우리는 심판의 목격자이자 증인이 되어 ‘진실로’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정의를 기뻐할 것입니다.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많은 ‘정의’가 있지만, 결국 모든 일은 바르게 흘러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바로잡으실 것을 믿으며 신앙의 절개를 지켜나갑시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2절 정의는 말과 개념으로만 떠도는 것이 아니라, 판결로 나타나야 합니다. 정의와 공의로 판결하며 평화를 실체화해야 할 권력자들이 오히려 악과 폭력을 일삼고 있습니다. 공평한 세상을 위해 주어진 저울의 추를 폭력의 추로 사용합니다. 시인은 두 번이나 의문을 던지면서 권력자의 바른 사명이 무엇인지를 일깨웁니다. 정의를 왜곡하는 것은 악과 폭력을 환영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불공평에 대한 감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은 고귀한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할 우리 사회의 부조리는 무엇입니까?
3-5절 시인은 악행을 일삼는 통치자들을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 멀어진 악인’으로 규정합니다. 거짓이라는 불의의 속임수, 살인이라는 불의의 결과, 치료제가 없는 불의의 절망적인 모습을 폭로한 것입니다. 사회 구조에 뿌리박혀 있는 악,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죄로 인해, 의인은 계속 이용당하고 손해 보며 대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께서 앞서가셨던, 우리가 뒤따라야 할 옳은 길입니다.
기도
공동체-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의 가운데 주의 공의가 임하게 하소서.
이 시 어디에도 통치자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따라서
"통치자들아"라는 번역은 바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가 통치자들에게만 국한 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절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의 자녀들아, 참으로 너희 말이 공의이고, 너희 판단이 공정하냐?"
다윗을 괴롭힌 악인들은 자기들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의인을 죽이고도 스스로 옳게 여기는 자들입니다"옳게 여기는도다"(눅11:48)
하나님께서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씀해도 들으려하지 않고, 자기들만 아니라 동조자들도 옳다고 합니다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1:32)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마음은 악이요, 그들의 손은 폭력입니다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시58:2)
그들은 귀머거리 독사 같아서 마구 독설을 내뿜으면서도, 다른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타인의 입장은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시58:4~5)
그러므로 그런 악인들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 보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시109:4~6)
그리하면 주께서 그들로 수치를 당하고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시58:7~8)
그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이실 것입니다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시58:10~11)
오늘 본문은 시인이 불의한 재판관들들 비난하면서, 하나님께 그들을 징벌하시고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할것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의 세력은 오래 가지 못하고 곧 소멸될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악한 자를 멸하시고 의로운 자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악한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 귀머거리 독사와 같은 재판관들, 하나님께 탄원, 의인을 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등입니다.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 ‘그들은 마치 귀를 틀어막은 귀머거리 살무사처럼, 훌륭한 마법사가 아무리 마술을 걸어도 그 요술을 따르지 않는구나.‘라는 말입니다. 이는 악한 자들의 특징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는 불순종에 대한 묘사입니다. 따라서 ’귀를 막은 독사‘는 그야말로 ’귀머거리 독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르침과 진리에 대한 조언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악한 생각만 고집하는 자를 빗댄 말로, 그래서 귀머거리 독사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악함이 너무 강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의 은유입니다.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 그들을 급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주시고, 겨누는 화살이 꺾인 화살이 되게 해주십시오.‘라는 말입니다. 이는 악인들이 악행을 무력화시켜 달라는 간구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흐르는 시내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간헐천‘ 곧 ’와디‘가 있습니다. 그 까닭은 간혹 폭우가 오는 경우 그런 물길이 없다면 농작물이나 마을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악인들을 급류처럼 쓸어가 달라는 호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꺾인 화살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도 한 가지입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녹아지는 달팽이나 지렁이처럼 그렇게 악인들을 무력화 시켜달라는 청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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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 ‘의로운 사람이 악인의 피로 발을 씻고 그 보복당함을 보고 기뻐하게 하소서.‘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악인은 사울 왕과 그를 따르는 무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을 평생 죽이려고 하는 사울이고, 그의 명령을 따라 죽기 살기로 다윗을 추격하는 왕의 신하와 부하들을 말합니다. 다윗으로 보아서 이 글 그대로 되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악착같이 그를 죽이려는 원수들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사울 왕이 죽자 그의 태도는 돌변합니다. 자신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는 그런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를 위해 슬피 웁니다. 애가를 지어 온 유다 온 백성에게 조상하게 하니 이른바 ‘활노래’입니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 원한이 슬픔으로, 미움이 사랑으로 변한 다윗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주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게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사람은 복수로부터 진정 자유할 수 있습니다.
삶은 마냥 코스모스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가시밭길도 있고, 광야와 사막 같은 길도 있습니다. 마찬가지 마냥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주는 것도 없이 싫어하는 사람도 만납니다. 그렇게 원툰 원치 않던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같이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복수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다윗이 사을과 대적을 했다면 다윗은 제 2의 사울이 될 뿐이지, 다윗다운 다윗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참고 견딥니다. 마냥 무능력자처럼 피하기만 하고, 도망 다니는 것이 그의 사명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위대한 다윗이 탄생합니다. 전쟁 중 사울 왕이 죽습니다. 블레셋의 화살하나가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입니다. 하늘의 심판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사울의 왕국은 무너지고 다윗의 왕국이 세워집니다. 만약 다윗과 사울의 복수전이 벌어졌다면 다윗의 왕국은 오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피는 피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그래서 다윗의 후손에서 예수님이 나오신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복수를 했다면 결코 우리 주님은 그곳에서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있는 하나님나라일진대, 주권을 행사하는 인간에게서 주의 왕국이 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으면 결코 하나님나라를 산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는 ‘주권이 어디 있느냐’의 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주권의 기로에 서 있으니, 주권의 행사여부에 따라 그 나라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 사랑하는 좋은 모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전사한 사울 왕 앞에서 애가를 지으며 우는 모습을 보고 백성들은 다윗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다윗왕국의 토대가 세워지니, 그것은 기어이 예수님의 왕국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 기초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다시 한 번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 58:1~11절)
❝공의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
❚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고, 불의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말씀앞에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1~5절).
58편은 다윗을 강력하게 공격하는 원수들로 인하여 고난을 당할 때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은 정의의 실현과 공정한 판결을 외면한 통치자들을 무섭게 책망합니다. ‘통치자들아...어찌 잠잠하냐...인자들아...어찌 잠잠하냐...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그들은 인간에 불과하지만,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또한 그들 스스로가 이 땅의 모든 힘을 가졌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들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의로웠던 적이 없는 자들(3절)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통제가 불가능한 독사만큼이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자들이었습니다. 술사와 술객의 소리를 듣지도, 따르지도 않는 귀머거리 독사(4~5절)처럼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말씀을 듣지도, 따르지도 않습니다.
통치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아래 순복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잊고, 거부할 때, 교만에 빠지게 되고 타락의 길로 빠져들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면, 불의한 것들에 내 마음과 시선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모두 악에 물들게 되고, 결국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 어떠한 위치에 있던지 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이 권능으로 일하심을 신뢰 하여야 합니다(6~9절).
다윗은 불의한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 통치자들의 악행들을 멈추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들의 이를 꺾으소서...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6절)내어 주시기를 호소하고, 그들의 힘이 신속히 사라지게 하시고, 그들의 화살은 꺾어 달라고(7절)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힘은 뜨거운 햇볕 아래서 말라 죽어가는 달팽이와 같이, 유산된 태아처럼 될 것이고, 생나무든 마른나무든 상관없이 가시나무를 태우는 불로 주의 가마가 뜨겁게 되기도 전에 악인은 바람으로 휩쓸려가게(9절,우리말)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통치자들이나 지도자들이 부패하거나 타락하게 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 부류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이에 다윗은 악인들이 잔혹하리만큼 철저하게 멸망당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힘과 권세는 영원하지 못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리도 당당하게 보이던 것들도 하나님이 한 번 일하시면 결국 가장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9절) 갑자기 임하게 되며, 모든 것을 불태울 정도로 두려운 진노이기 때문입니다. 불의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나에게는 없다고 포기하거나,
그러한 세상에 내 자신이 물들지 말고 그들의 모든 모의를 무효로 돌려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늘 깨어 기도하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풍조를 기준으로 삼아 세상과 함께 망하는 지름길로 들어서지 말고, 하나님이 권능으로 일하고 계심을 온전히 믿고 신뢰함으로 어지러운 세상에 평화의 메신저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이 공의롭게 판단함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10~11절).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10절)... 잔인하다는 느낌이 드는 표현까지 사용해 가면서 부패한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할 것입니다.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11절)라고 말입니다. 사악한 통치자들은 이 땅의 모든 것들을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위를 가졌다고 착각 속에 빠져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만이 모든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공의롭게 심판하십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큰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완전히 소멸시키심으로써 모든 불공평함을 바로 잡으시며 정의를 바로 세워 가실 것입니다. 세상의 악하고, 불의한 자들은 잠시 악을 행하겠지만, 그들이 받는 심판은 영원하다는 것에 위로를 받아야 하겠고, 불의한 방법으로 형통함을 누리고 살아가는 그들에 대하여 불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은 공의롭게, 그리고 공평하게 심판하시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자들을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공의롭게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감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무질서하고 부조리해 보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공의롭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세상을 여전히 통치하고 계시고, 장차 심파하실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고, 올바르고, 정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시 58:1~11절)...
시편 58편은 109편, 137편과 더불어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보이지 않고 온갖 악한 권세자들이 판을 치던 시대를 향해 외치는 저주의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불신자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태신앙’이라는 고백을 흔히 합니다. 하지만, 세상 태어나서 신앙은 모태로부터 시작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모태 죄인, 모태 악인, 혹은 모태 불신앙인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모태에서부터 죄 중에 태어났다고 고백했던 다윗처럼(시 51:5)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만 신앙의 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오늘 다윗은 악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이들을 향해 송곳니가 뜯긴 사자처럼(6절), 잠시 흘러가다가 말라버린 사막의 물자국이나 제대로 날아가지도 과녁에 꽂힐 수도 없는 부러진 화살처럼(7절) 되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자신의 진액을 다 내어주고 말라버린 달팽이나 태중에 죽어 버린 태아와 같이(8절) 되게 해달라는 저주를 쏟아내며 그 악인이 복수 당하는 것을 의인들이 기뻐하고 악인들의 피에 발을 씻기까지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이렇게 의인을 기뻐하고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고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그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그 생명을 그 죗값으로 지불하도록 그 진노를 자신에게 돌리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로부터 거룩하고 죄가 없으신 그분께서 저주받아 마땅하고 폭력과 독을 품은 자와 같은 우리를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 놀라운 구원과 은혜의 손길을 의지하여 겸손과 순종으로 하루를 승리하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편 58: 1~11 심판의 기준, 공의와 정직
너희 통치자들아!
너희가 바른 말을 하고 있느냐?(1)
너희가 사람들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있느냐?(1)라고 물음으로 시작한다.
오늘의 뉴스가 그렇다.
위정자들이 그렇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진실은 분명히 하나인데 판단을 흐리게 한다.
진리는 하나인데 공의와 정직이 실종되고
거짓과 악행이 일삼아 진지 오래가 되었다.
정치지도자들 특히 대통령을 하겠다고 국민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소리 높이 외치는 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그렇다.
나의 삶에도 내가 언제나 바른 말을 하고 있는가?
정직하게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가?
진실을 말하는 척 하면서도 진실이 아닌 것이 썩여질 때
내가 말해 놓고도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헷갈릴 때가 있지 않는가?
손해가 되더라도 정직을 이야기 하자.
진리를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하게 비굴하게 거짓말 하지말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말하자.
공정하게 판단하자.
공평하게 평가하자.
사실을 굴절없이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주의 말이 축복이 되게 하시고
선악을 지적하는 판단이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하는 분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향하여 죄인이라, 악한 자라 저주하지 않으시고,
그 모든 진노를 그 육신 가운데 채 우사
온전한 구원과 부활의 능력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복된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기름 부어주시고,
그 아름다운 발걸음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부터 눈물 흘리고
고통받고 있는 이들 가운데 거하셔서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한 땅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드러나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지금까지 허락하신 그 놀라운 은혜에 합당하게
겸손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