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조영남이 부른 화개장터 인근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가는 중간 길목쯤이다.
어릴적 고향은 모든 것이 부족한 산촌이라 정말 싫었다. 산이 병풍처럼 쳐진 화개골은 오전 10시경이나 해가 뜨면 오후 4시경이면 해가지는 그러한 산골중에 산골이였다.
삶이 너무 힘들어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도시로 이사를 가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였던 곳이다.
그러한 나의 고향이 지금은 섬진강을 따라 4월의 가장 아름다운 길과,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녹차, 산수유, 매화, 벚꽃이 만발하는 꽃의 고장이 되었다. 또한 이른 봄이며 지리산의 고로쇠 수액이 봄이 왔음을 알려주기도 하고 여름이며 너무나도 시원한 맑은 계곡물은 우리의 피곤한 심신을 씻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고향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고 추억과 따뜻함이 있는 곳이기에 그리워하게 된다.
그 고향을 저번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간에 걸쳐서 약 20명의 향우회원들이 화개천의 은어회 튜어를 가기로 하였다. 고향을 간다는 마음이 너무나 설레었고 아름다운 고향 풍경이 내 마음에 먼저 그려지기도 하였다. 책 몇 권과 클래식테이프를 넣은 워크맨을 가방에 넣어 메고 난 신복 로터리 고속도로 입구 만남의 장소로 향하였다. 걸어가는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고향까지 가는 동안 보게 될 우리의 여름산야와 조용한 음악 속에 여행하게 될 모습에 나의 마음은 잔잔한 행복으로 물들어있었다.
약속시간이 되자 타고가야 할 관광버스가 도착하고 난 고향의 선후배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차가 움직이고 얼마 가지 않아 모두가 들뜬 기분이여서인지 술과 마련해온 음식이 차안을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절제있게 마시던 술도 도가 넘어니 부어라 마시라 하는 수준으로 변해 버렸다. 언양을 조금지나 술기는 벌써 오르고 관광버스 안은 묻지마 관광 수준으로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였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도로토로 시작하더니만 취한 분위기에 못미치는지 격한 음악으로 바꾸게되고 모두가 통로로 나와 막춤을 추기시작하고 드디어 묻지마 관광으로 발전해 버렸다. 말은 거칠어지고 욕지기도 서슴없이 오고가고 음악은 몹시 시끄럽고 막춤 난장판의 버스안이였다. 버스 밖의 푸르른 실록의 풍경은 안중에도 없다. 난 마음으로는 조용히 갔으면 하였지만 혼자 그럴 수는 없어 나 또한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 차안이 떠나갈 정도의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나이를 생각하지 않는 격렬한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을 마치고 나니 나의 육체가 감당할 수준을 오버하였는지 거칠은 심호흡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붓고 마시고 춤추고 웃고 노래하다보니 하동으로 진입하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나의 고향 하동포구에 들어서니 근래 온 많은 비로 누런 황토 빛의 흙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섬진강 포구는 강이 있는 포구중에서는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였다. 홍수의 위협도 없고,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고 그런면서도 모든 것을 감싸안는 그러한 분위기다. 포구를 지나 강을 따라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국도의 풍경은 섬진강물과 잘 어울어져 참으로 아름다웠다. 늠름한 기상의 소나무 숲이 있는 하동 송림을 지나고, 박경리 토지의 평사리를 지나 모두가 어울어지는 화개 장터에 도착하였다. 물물교환시대에는 조영남의 노래처럼 전라도의 구례와 경상도 하동, 산청사람 누구나 할 것 없이 어울어지는 큰 장이였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고 관광차원에서 만든 장터는 본래의 장과는 모습이 달라 아무런 감흥을 주고 있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곳 식당에서 화개천에서 잡은 은어회와 참계탕을 먹으면서 고향의 정을 느껴보았다. 강이 있는 곳이며 여러곳에서 은어가 잡히지만 가장 맛이 있고 특산인 곳은 섬진강 화개천 은어일 것이다. 민물고기 회는 디스토마 때문에 잘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은어는 일급수에서 이끼를 먹고 자라기에 생회를 먹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민물고기이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소주와 초장을 찍어서 먹으면 고소하고 단백한 회맛이 일품이다. 그렇게 점심을 먹은 후 십리 벗꽃길과 녹차밭을 지나 화개골 마지막 마을인 의신마을로 향하였다.
그 곳에서 우리는 여장을 풀었다. 예나 지금이나 앞뒤 높은 준령이 병풍처럼 쳐져있는 모습은 변한 것이 없었다. 매미는 성하를 노래하듯 몹시도 울어대고 있고 앞산이나 뒷산 모두다 지리산의 줄기가 되어서 그런지 원시림같은 울창한 숲이 보기만해도 시원했다. 일행은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계곡으로 향하였다. 휴가철이라 많은 사람들이 물좋고 공기 좋고 인심좋은 화개골을 찾아 진을 치고 있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산에서 피어나는 뭉게구름하면 높은 산에 가려 작디작은 하늘이 어릴적 추억의 고향이 되살아났다. 맑고 차디찬 계곡물은 우리의 심신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굽이치는 산야는 떠나온지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변화라면 민둥산이였던 산야가 지금은 울창한 숲으로 변화되어있을 뿐이였다. 발을 담그고 책을 보면서 더위도 시킬겸 이런 저런 추억에 한없이 빠져보았다. 마음이 따뜻해오고, 약간은 슬픔도 묻어오기도 하고, 행복이 잔잔히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밤이 되자 난 새벽녘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너무도 아름답게 빛나는 별들이 어릴적 보던 별과 같았다. 별하나를 무심히 쳐다보았다. 내 영혼이 언젠가는 가서 쉬어야 할 별처럼 느껴졌다. 참으로 아려오는 고향의 포근함이였다.
뒷날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우리의 삶의 터전을 찾아 다시금 울산으로 떠나 올 수밖에 없었다. 고향을 떠나오는 마음은 너무나 아쉬웠고 벌써 향수가 묻어나고 있었다. 고향을 생각하면서 울산으로 조용히 돌아오면 좋으련만 누군가 또 마이크를 잡고 묻지마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고향을 떠나는 아쉬움인지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강제로 춤을 추도록 통로로 끌어내고, 분이기를 고조시킨다고 다른 부인의 무릅에 앉기도 한다. 모두가 체면 때문에 화를 자제하지만 무례하거나 오버하는 행동으로 기분이 언짢게 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반응이 신통치 않자 혼자서 요란을 떨더니 어느 순간 자리에 잠들고 만다. 차안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모두가 좋아한다.
드디어 늦은 7시경 울산에 도착하였다. 모두가 피곤해 보인다. 그래도 추억의 고향을 다녀온 마음에 모두가 행복해 한다. 그래서 고향은 좋은가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고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고향을 소재로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서로 존중, 배려가 있는 여행이여야 행복한 여행이 됨을 느끼기도 하였다. 혹시 아직 휴가를 다녀오지 않은 객석문화 회원님들중 휴가를 다녀오실 분들은 하동 화개골에서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를 추천해 봅니다. 울찬한 녹음, 많은 문화 유적지(최참판댁, 쌍계사, 칠불암, 불일폭포, 청학동,화엄사...), 하얀 포말을 일으키면서 힘차게 흘러내리는 차거운 계곡물, 녹차의 향기, 군침 도는 은어회 등 여름의 피서지로는 최고인 것 같습니다. 객석문화 회원님들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담는 좋은 휴가 되시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첫댓글 내고향은 화개장터는 아니지만 조영남씨의 노래가 귓전에 아른거려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저도 아주 오래전 20대초반에 놀러 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당시 대중교통으로 갔는데 엄청 고생했던 생각이.... 자가용생김 다시 한번 가야지 했는데 아직 못갔네요.. 내년봄 산수유 필때쯤엔 꼭 가봐야겠네요. 님 덕분에 섬진강 화개골 다시 느낄수 있어 넘 감사합니다.
꼭 한번 다녀오십시오. 모든 계절 어느때고 추억을 줄것입니다. 근처에 지리산 온천도 있고 조금더 가면 최명희 문학관도 있고 노고단 정상도 갈수있고 화개골 만큼 휴가나 여행지로 좋은데가 없는 것 같아요. 가족과 함께 꼭 한번 다녀오세요
멋진 고향이 부럽습니다. 섬진강은 제게 상상의 강이지만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으네요.
섬진강은 언제봐도, 어느계절에 가도 아름답지요 . 물소리 스며드는 강가, 아침이면 산등성을 타고 오르던 물안개, 제 유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랍니다. 수박향 가득한 은어회!! 음~~~~ 먹고 싶어라.
화계장터에 가고싶어집니다.좋은여행 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