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유와 발사멧식초.
이 둘이 나란히 놓인 식탁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느긋해진다.
그 투명한 유리병 속에 담긴 금빛과 밤빛의 조화는, 마치 지중해의 노을처럼 따뜻하고 우아하다.
그 향을 맡는 순간
나는 늘 이탈리아 남부의 어느 마을로 돌아간다.
올리브 나무가 줄지어 선 언덕길,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잎사귀들
그리고 오후의 바람이 가져오는 포도밭의 향기까지.
처음 그 맛을 알게 된 건 피렌체 근교의 작은 트라토리아였다.
주인아저씨가 구운 빵 한 덩어리를 손으로 찢어
올리브유를 담은 하얀 접시에 담아주고는
그 위에 검붉은 발사멧식초를 조심스레 떨어뜨렸다.
이건 그냥 소스가 아니라, 인생이야.
그가 웃으며 건넨 말은 그날의 향처럼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입안에 들어온 순간
올리브유는 부드럽게 혀를 감싸며 따뜻한 햇살을 퍼뜨렸고
발사멧식초는 그 위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달콤함과 신맛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그 묘한 긴장감.
인생이 늘 그렇듯, 순한 것만으론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약간의 쓴맛과 신맛이 있어야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올리브유는 사람의 온기 같았다.
서로를 감싸 안는 너그러움
천천히 스며드는 부드러움.
발사멧식초는 사랑의 진심 같았다.
달콤하지만 깊고, 한 번 닿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농도.
그 둘이 만나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조화가 탄생한다.
나는 그날 이후로 어떤 식탁에서도
빵을 그냥 먹지 않는다
항상 올리브유와 발사멧식초를 함께 두고,
한쪽을 찍고, 다른 쪽을 떨어뜨리며
그 맛 속에서 여행을 다시 시작한다.
그건 단순한 맛이 아니라
햇살과 바람과 사람의 손끝이 만든 시간의 향기다.
그리고 인생의 맛도 그렇다.
부드러움만으론 부족하고
조금의 짙은 신맛이 있어야 비로소 깊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식탁 위에서
올리브유와 발사멧식초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여행이 끝나도
그 맛은 여전히 내 안에서 여행 중이다.
첫댓글 발사믹식초 & 벌진 올리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