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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기 세조가 나의 제갈량이라고 치켜세웠던 양성지(梁誠之)라는 문신이 우리나라를 성곽의 나라라고 하였다. 그만큼 우리나라 전국에 성곽이 많은데 산에는 산성(山城)이 있고, 평지에는 읍성(邑城)이 있다.
산성은 성곽의 목적에 맞게 완전히 전투용으로 축성되었는데, 읍성은 전투의 목적뿐만 아니라 관아의 성격도 있어서 행정관청의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신도시가 아닌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동네에는 어김없이 읍성이 있다. 울산 주변만 해도 경주의 경주읍성, 포항의 장기읍성, 양산의 양산읍성, 청도의 청도읍성, 김해의 김해읍성, 부산의 동래읍성 등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도시에는 모두 읍성이 있었다. 그런데 울산에는 그 읍성이 두 개나 존재했었다. 바로 언양읍성과 울산 읍성이다.
울산 읍성은 최근까지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다.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임진왜란ㆍ정유재란 때인 1597년 왜인 아사노 요시나가가 축성하고 가토 기요마사가 주둔하였던 울산왜성을 축조하면서 울산읍성의 돌을 허물어 빼 갔다. 중구 성남동, 북정동, 옥교동에 둥글게 성벽을 돌렸을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었다. 성벽은 없지만 내부에 울산 동헌과 내아가 있어 이곳에 읍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동헌은 울산 읍성 안의 중심 건물인데 울산 도후부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는 곳이고, 내아는 수령이 살았던 집이다.
흔적을 확인할 수 없었던 울산 읍성의 실제 성벽이 2019년 성남동 166-4번지 일원에서 발견되었다. 현 지표에서 2m 아래에서 성벽이 확인된 것이다. 존재했었던 것은 알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줄로만 알았는데 현재 사람들이 살았던 땅 밑에서 성벽을 확인했으니 실로 감개무량한 조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조사를 통해 성남동을 비롯하여 이 일대 지하에 울산읍성의 성벽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비하면 언양읍성은 그나마 네 벽이 모두 확인되어 평면 형태나 규모를 알 수 있는 정도는 된다. 평지에 드물게 정확한 정사각형 모양으로 축조되었는데 전체 둘레가 약 1천500m다. 네 벽의 중앙에는 각각 문을 만들었고, 성 밖에는 성벽을 따라 해자를 설치해 적의 침입을 1차로 저지하였다. 각 벽면에 두 개, 모서리에 각 한 개 돌출된 치(성벽 가까이 달라붙은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 바깥쪽으로 돌출되게 쌓은 시설)를 설치하였다. 하지만 남아있는 성벽도 대부분 사람 키 높이 이하일 정도로 훼손이 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1966년 사적 153호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현재 남문에는 성문 누락인 영화루가 복원되어 있다. 최근 남문 안쪽 구 언양초등학교 부지를 발굴조사 하였는데, 조선 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다양한 건물터, 담장시설, 보도시설, 우물, 아궁이 등이 확인되어 이곳이 이 일대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최근 동벽 남쪽 부분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동문이 있었던 곳에 옹성이 확인되었고, 동벽쪽에서는 최초로 해자시설이 확인되었다. 정밀 발굴조사가 실시된다면 언양읍성의 전모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동벽 북쪽 부분은 성벽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읍성 중에 전라남도 순천 낙안읍성을 좋아해 종종 다녀온다. 성벽 내부의 마을을 복원해서 숙박업소로 이용하고 있고 곳곳에 식당 등 각종 편의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전체 성벽을 걸어서 다닐 수 있는데 중간의 성문 누각에서는 앉아서 잠시 쉴 수도 있다. 지인들과 낙안읍성 내에서 숙박을 하며 막걸리 한잔 마시면 마치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왔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숙박업소는 초가집 형태인데 현대식 호텔에 비해 다소 불편한 면이 있지만, 새벽녘 성벽에 올라 고즈넉한 마을을 둘러보는 기분은 도심의 고급 호텔에서 절대 느끼지 못하는 감성이 있다.
▲ 공중에서 본 언양읍성(북쪽에서). (사진=이수홍 울산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 제공) © 울산광역매일 |
필자는 언양읍성 주변에 살아서 저녁에 자주 읍성 쪽으로 산책을 간다. 지금은 대부분 논밭으로 경작되고 있고 사람들이 사는 민가도 아직 남아있다. 이곳이 낙안읍성과 같이 개발될 수는 없을까 늘 생각한다. 사실 현실적으로 요원하다. 우선 읍성 내부의 토지를 매입해야 하는데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고, 예전에 있었던 성문의 문루, 성벽, 해자, 관아시설을 복원하는 것도 경제적, 절차적 문제가 산적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잔존상태가 양호한 언양읍성을 이렇게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다.
이곳은 KTX 울산역과 서울산 IC가 인근에 있어 천혜의 교통 요지이다. 관광객을 끌 1차적인 조건을 갖춘 셈이다. 울산에도 현대 속에서 옛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숙박 관광단지 한 곳쯤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언양읍성 내 초가집에서 지인들과 막걸리 한잔하면서 예전 언양읍성을 발굴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