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직 정신 못 차렸나"... 부동산업자 앱에 '깡통전세 매물 여전'
본보 확인 결과, 인천 미추홀·서울 금천 등
깡통전세 전락한 2년 전 계약 매물 줄줄이
"빌라 시세·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 확인해야"
3일 서울 강서구의 한 빌라 밀집지역. 뉴스1
온 나라가 전세사기 원성으로 들끓지만 일부 부동산업자(분양업체, 중개업소 등)는 여전히 깡통전세 같은 편법 매물을 중개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입자만 들이면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고 계약이 유지되는 2년간 정부 단속도 피할 수 있다는 악질 계산이 깔려 있다.
7일 한국일보가 부동산업자만 이용하는 전용 모바일 앱에서 최근 한 달여간 올라온 중개매물을 모니터링한 결과, 깡통전세(매맷값≤전셋값) 중개를 요청하는 글이 적잖게 올라왔다. 부동산업자가 매매 또는 전세 매물정보를 전용 앱에 올리면, 이를 확인한 다수의 중개업자가 각종 수단(인터넷 홍보 등)을 동원해 세입자를 모집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이다. 최근 수년간 이런 류의 전용 앱에서 전세사기 매물이 집중적으로 중개되자, 정부는 올 2월 전용 앱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예고한 바 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달 이 앱에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A빌라(방 3개)의 매매·전세 매물을 올렸다. 특이한 건 매맷값은 1억6,000만 원, 전셋값은 1억6,500만 원으로 전셋값이 매맷값보다 더 비싸다는 점이다. 빌라 매입자를 구해 주면 '500만 원+α'의 수수료를 주고, 세입자를 구해 주면 기존 수수료의 두 배를 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A빌라의 올해 1월 1일 기준 공시가격은 1억900만 원. 이달 1일부터 정부 전세보증 가입 기준이 '공시가X126%'로 강화돼 A빌라는 보증보험 가입도 안 된다. 정부가 출시한 안심전세앱에서 검색했더니, A빌라에서 터진 전세보증 사고만 87건에 달했다.
더구나 이 빌라엔 기존 세입자가 거주 중이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내주려고 중개업자에게 이 같은 깡통전세 중개를 요청한 걸로 보이는데, 사실상 '폭탄 돌리기'다. 빌라 매입자는 기존 전세계약을 떠안는 만큼 처음엔 초기자본 없이 '500만+α'의 수수료를 받아도 추후 전세금 1억6,500만 원을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새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기존 세입자는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 애를 먹게 된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취·등록세를 전부 지원하는 조건으로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빌라 명의를 무상으로 넘긴다는 글도 올라왔다. 전세금(3억1,400만 원) 100%로 집을 산 무자본 갭투자자가 전세금을 내줄 형편이 못 돼 명의를 공짜로 넘긴다는 뜻으로, 이것 역시 폭탄 돌리기 유형이다. 이곳도 기존 세입자는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 차질이 불가피하다. 신축 빌라 중에선 매매와 전세를 동시에 하는 동시진행 매물도 여럿 있었다. 전세금으로 집값을 치르는 방식으로 정부가 강력 경고한 상황이다.
2년 전 전세 시세가 정점이었을 때 전세계약한 빌라들은 시세 급락으로 이처럼 대부분 깡통전세로 전락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빌라 전세를 염두에 둔 이들은 안심전세앱 등을 통해 빌라 시세를 살펴 비싼 가격에 전세계약을 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박덕배 금융의창 대표는 "하반기까지 깡통 빌라가 쏟아질 걸로 예상되는 만큼 일부 불량 중개업자 말에 넘어가 비싼 시세로 전세계약하는 일이 없도록 전세보증 가입 가능 여부 등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