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를 노래한 곡조 ‘감황은령(感皇恩令)’, 세월의 무상함을 읊다 /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감황은령(感皇恩令)은 12세기 전후에 고려조정에 소개된 송나라의 사악(詞樂)의 하나이자, 당악(唐樂)의 산사(散詞)에 속하는 곡의 하나다. 악보는 전하지 않고 그 가사만이 『고려사』 악지에 전한다. 사패명(詞牌名) 감황은(感皇恩)은 ‘황제의 은혜에 감응하다’라는 뜻으로, 감황은(感皇恩)에다 악곡 빠르기를 뜻하는 ‘영(令)’이 붙은 것이다. 때때로 사(詞)의 제목 뒤에, ‘만(慢)ㆍ영(令)’ 같은 곡조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이 붙기도 하고, 연창법(演唱法, 공연하는 방법)을 나타내는 ‘최자(嗺子)’, 서곡(序曲)을 의미하는 말인 ‘인자(引子)’ 같은 말이 따라붙기도 한다.
내용을 보면, 천 리 먼 임지에 나갔다가 늙어 다시 장안(長安)에 돌아와 젊은 시절 옛 친구와의 추억과 지난날의 감회를 읊은 것으로, 세월의 무상함에 탄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자는 고려시대 법조인 조기(趙企 1063~1120)로 밝혀졌다. 그는 문집 「향악(鄕樂)」을 남기기도 했다. 감황은령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감황은령은 고려시대의 문화, 예술,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문학 작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악보가 전해지지 않아 지금은 그 가사만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감황은령은 송나라와 당나라의 문학적, 음악적 영향을 받은 고려시대의 문화적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유물로 남아있다.
◉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전하는 당악(唐樂)의 곡명은 헌선도(獻仙桃) 등 모두 48곡인데, 이 48곡은 거의 모두가 송(宋)의 사문학(詞文學)인 송사(宋詞)에 든다. 문학적 구조상 송사는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으니, 첫째는 대곡(大曲)이고, 둘째는 산사(散詞)이다. 문학적으로는 대곡과 산사를 총괄해서 송사라고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송의 사악(詞樂)이라고 한다.
송사의 대곡은 대체로 산서(散序)·중서(中序)·파(破), 이상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정서적 내용의 산서는 일정한 박자를 지니지 않은 악곡으로서 춤을 수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명 배편(排遍)이라고 하는 중서는 일정한 박자를 지닌 악곡으로서 춤을 수반하며, 대체로 5편의 시를 노래 부르도록 되어 있다. 일명 입파(入破)라고도 하는 파는 관객을 흥분시킬 수 있는 빠른 악곡으로서, 빠른 동작의 춤을 수반하는데, 빠른 부분의 악곡을 곡파(曲破)라고 한다. 또 곡파(曲破)는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들어온 춤 이름이기도 하다. ≪고려사≫ 악지의 당악(唐樂) 48곡 중에서 대곡에 드는 송사(宋詞)는 헌선도·수연장·오양선·포구락·연화대·석노교곡파·만년환만 이상 일곱이다.
산사(散詞)는 가무희(歌舞戱)에 편입되어 노래로 불린 송사가 아니라 독립된 가사인데, ≪고려사≫ 악지에 수록된 억취소만(憶吹簫慢) 이하 총 41곡의 당악곡명이 모두 산사에 든다. 산사들은 모두 노래로 불린 짧은 악곡이었으나, 현재는 가사만이 전하고 오직 낙양춘의 곡조가≪속악원보(俗樂源譜)≫에 전할 뿐이다.
● 다음 ‘號’‘篠’‘皓’‘遇’‘御’ 자(字)를 통운한 사(詞) <감황은령(感皇恩令)>은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 수록된 작품으로, 내용은 천 리 먼 임지에 나갔다가 다시 장안(長安)에 돌아와서, 옛 친구와 지난날의 감회를 읊으며, 세월의 무상함에 탄식한다는 내용이다. 작자는 고려시대 법조인 조기(趙企 1063~1120)로 밝혀졌다. 구조는 쌍조(雙調) 각 14구(句) 전단(前段) 54746534474653 / 후단(後段) 54746534474653, 총134자로 되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머나먼 임지를 떠돌다가 마침내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는데 사람들도 낯설고 별시른 즐거움도 없다. 옛날의 벗은 어디로 갔는가? 이미 청춘은 떠나버렸다. 그저 장안 궁궐 앞엔 인적 드물고 바람만 거리를 떠돈다. 매력적인 여인에 눈길 돌리지만 이미 늙어버린 몸에 체면의 굴레에 갇혀 멈출 수밖에 없다. 아, 세월의 무상함이여~
<감황은(感皇恩) 【령(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당악(唐樂)
騎馬踏紅塵 말을 타고 붉은 먼지를 밟으며
長安重到 장안(長安)에 다시 왔네.
人面依前似花好 사람들 얼굴이 예전처럼 꽃같이 좋구나.
舊懽才展 예전의 즐거움이 이제 겨우 펼쳐보려는데
又被新愁分了 또 새로운 시름에 생겨 〈즐거움이〉 줄어들겠네.
未成雲雨夢 천년을 기약한다는 운우(雲雨)의 꿈을 이루지도 못하였는데
巫山曉 무산(巫山)에는 날이 밝았네.
千里斷膓 천리나 떨어진 곳에서 애가 끊어지는데
關山古道 관산(關山)으로 가는 옛길이라,
回首高城似天杳 고개를 돌리니 높은 성은 하늘같이 아득하기만 하구나.
滿懷離恨 가슴에 품은 이별의 한은
付與落花啼鳥 떨어지는 꽃과 우는 새에게나 줘버리리.
故人何處也 옛날의 벗은 어디에 있는지
靑春老 청춘은 늙어만 가네.
/和袖把金鞭 소매 속에 숨긴 채 금 채찍을 잡았고
腰如束素 하얀 생견(生絹) 한 묶음같이 가는(束素) 허리로
騎介驢兒過門去 나귀를 타고 문 앞을 지나가네.
禁街人靜 궁궐 앞거리에는 인적이 드물건만
一陣香風滿路 한 줄기 향기로운 바람만 거리에 가득하구나.
鳳鞋弓樣小 봉황새 수 놓인 신발은 활모양으로 작고
彎彎露 굽은 듯 보이네.
驀地被他 줄곧 그녀에게 눈길을 보내니
回眸一顧 고개를 돌려 한 번 쳐다보네.
便是令人斷膓處 이야말로 남의 창자를 끊어지게 만드는구나.
願隨鞭鐙 〈그녀의〉 채찍과 등자를 따라가고 싶지만
又被名韁勒住 동시에 체면의 굴레에 갇혀 억지로 멈출 수밖에.
恨身不做个 몸을 거리낌 없이 하는
閑男女 남녀가 되지 못함이 한스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