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차 멀미를 심하게 하던 어머니.
아흔여섯 살을 넘긴 올해 2월인 지금에는, 아무런 멀미를 모르는 양 어제 저녁 경에 서울로 올라왔다. 기척이 너무나도 없어서 혹시나 자동차 안에서 돌아가시는 거 아녀? 하는 불안감도 자주 일어났다. 다행스럽게도 뒷자리에 탄 아내와 큰딸의 조근거리는 목소리로는 어머니가 편안히 눈 감고 계시다는 증거. 참 별일이다. 얼마 전까지도 차로 이동하려면 수시로 멀미하고, 토하고, 대변과 소변으로 기진맥진하던 노모였다. 어제에는 이런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뇌에 심각한 이상이 왔다는 증거. 멀미를 느끼는 그간의 뇌 기능이 완전히 망실되었다는 증거다.
재작년(2012년 9월) 작은딸 결혼으로 서울로 모셨던 어머니는 날마다 졸랐다. 애걸복걸하듯이 간청했다.
'시골로 보내 달라. 철로로 부쳐 달라. 철로로 부쳐 주면 혼자서도 너끈히 시골에 내려갈 수 있으며, 혼자서도 살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간청이 줄어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머니의 쇠잔함이 더욱 심해질수록 내게는 더 큰 슬픈 시간들이 스며든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서울에 올라온 김에 어머니의 용태를 살피면서 간병해야겠다. 어쩌면 어머니의 마지막 노후를 서울에서 보냈으면 싶기도 하다. 어머니가 시골로 도로 내려가자고 떼를 쓰지 않는다면...
어제 서울로 급히 올라왔지만 금방 시골로 내려갈 요량으로 전기, 유류보일러, 관정 모터 등의 전원 스위치를 켜 두었다. 내가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추위가 혹시나 지속되더라도 유류보일러의 배관 등이 동파되지 않도록 예열해야 했다. 그런데 장기간 서울에서 머문다면 공연히 비싼 유류를 태워서 방을 따뜻하게 하는 낭비도 될 것 같다. 유류를 가득 채운 뒤에 서울 올라왔지만 하루도 채 안 되는데도 내 마음은 시골로 내려가 있다.
나. 올 한해에는 어떻게 해야 되냐?
"여보, 농사 그만 지어요. 서울에서 어머니 모시고 삽시다. 까짓것 농사 안 지어도 되잖아요."
또 내게 제안하는 아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빈 집으로 오랫동안 방치하면? 그나마 구옥은 더욱 낡아갈 게다.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사는(죽어가는) 어머니의 용태처럼 누옥도 폐가로 전락할 게다. 시골보다 서울의 아파트 생활이 어머니한테는 더 편안할 것 같다.
퇴직한 뒤 향촌으로 내려간 나는 5년 8개월째 살다 보니 이제는 고향 생활이 심각하게 불편하다는 인식이 서서히 자리매김을 한다. 친구도 없고, 문화시설도 없고, 야생동물(뱀, 쥐, 고양이, 고라니, 각종 해충들)이 점령하는 산촌생활에 익숙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멀어지기도 한다.
내 손길을 기다리는 매실나무의 잔가지에는 꽃눈이 잔뜩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해빙되어 질퍽거리는 밭에는 겨울을 이겨낸 잡초가 서서히 왕성하게 번지기 시작하는데... 추위가 아직은 잔뜩이나 남아 있는데도 나는 봄을 기다리고 있나 보다.
저 먼 세상으로 떠나는 연습을 하려는지 잠만 자꾸만 자려고 하신다. 자신의 몸뚱이를 처단하지 못하고. 보행이 전혀 불가능한 극도로 쇠잔한 어머니는 지금 내 방에서 주무신다. 내 손을 꼬옥 쥐었다가 잠이 들었다.
2014. 2. 10.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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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4년 2월 10일이면?
나는 전날인 2월 9일 밤 10시가 넘어서 보령아산병원 응급실로 갔다.
대상포진.
약은 비축물량 부족으로 1일분 밖에 조제할 수 없단다.
별 수 없이 다음날인 2월 10일 오전에 급히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그때까지 단 둘이서 살던 어머니를 방치할 수가 없어서 함께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막내아들이 급하게 모는 차 안에서 엄니를 껴앉고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질주해야 했던 날에 쓴 일기이구나...
'삶의 이야기' 방에 올려야 하는 내용이다.
아쉽게도 하루에 1건만 올려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간밤 자정에 이미 잡글 하나를 올렸기에...
부득히 여기에 올린다.
그 엄니, 지금은 서해바다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산에 묻혀서, 새소리나 들을 게다.
스물여섯 살에 다른 여자한테 빼앗긴 남편, 아흔일곱 살이 막 되던 해 2월 말에서야 남편의 곁에 누웠다.
수십 년 전에 죽은 아비의 석관 곁에 엄니의 석관을 나란히 붙여서 흙 덮었다.
첫댓글 곰내님 사모곡이 가슴을 아프게 해유.
돌아가신 모친의 추억이 크세요.
저도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하십시요.
곰내님의 슬픈시간,
잘 읽었습니다.
어쩌면, 누구나 어머님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맘 아픕니다.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글이었는데,
구태어 삶의 방에 하루 한편에 제한되어 있어서
수필방에 올린다는 말은 안해도 될 말이 아닐까요.
걱정마십시요. 좋은 글이라면...
환영합니다.
저도 노쇠한 어머님이 계신지라 마음이 쓰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