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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둥글이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둥글이
대한민국 제 2의 대도시인 부산의 유랑일지답게 양이 엄청나다. 사진이 200여장에 텍스트가 A-4 50장 분량이다. 이것을 다 읽었다가 뇌졸중 생길 것 같은 분은 ‘잡글란’에 토막글을 옮겨 놓은 것만 봐도 된다. 다만 당신이 애정과 지구력을 가지고 한 인간의 뼈저린 도심 유랑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공유하실 수 있다면 둥글이를 성장시킨 ‘부산의 힘’? 을 간접체험 할 수 있을 것이다.
6월 15일
게이트볼장 한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운동하러 온 사람 하나 안 보이는 양산종합운동장을 빠져나간다.
양산 시내를 횡으로 가로질러 1077번 지방도에 오른다.
1077번 지방도를 따라 우선 부산광역시의 첫 캠페인 활동지인 기장군으로 향해야 했다.
유랑캠페인의 의미
양산 활동 끝내기 전부터 둥글이는 부산 일정을 어떻게 소화해야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부산광역시 17개 구군(16개 구, 1개 군)을 돌면서 초등학교 하나씩 들러서 캠페인을 해야 함의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둥글이 두뇌의 용량을 초과하는 작업이었다.
‘유랑캠페인’을 한다 함은 단순히 이 지역들을 가장 최단거리로 모두 거쳐야 한다는 의미보다 몇 배가 복잡한 작업이다.
우선 지리적으로 최적의 우체국에 전단지를 공수 받아야 한다.(전단지 몇 천 장을 짊어지고 다닐 수 없음으로 천장 단위로 고향의 성철이 형으로부터 공수 받는다.) 전단지를 받아서 인근 초등학교에서 캠페인을 하고 나머지 전단지를 가지고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전단지가 떨어질 즈음한 지역의 우체국에 또다시 전단지를 공수 받아야 하는데, 이에 대한 거리 계산 시간 계산을 통해서 시간, 거리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이 상당히 머리에 쥐나는 일이다.
[부산에서의 유랑캠페인 이동로 개괄표시 / 날짜 표시는 캠페인을 해야 할 일시]
이를 위해서는 지리적으로 우체국의 배치, 초등학교 분포, 이동로, 우체국에 전단지 보내는 날짜 받는 날짜도 맞춰야 하고, 이러한 유랑의 기록을 위한 도서관위치까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캠페인 활동은 배낭 짊어지고 도보로 이동하면서 물 받을 곳, 씻을 곳, 쌀 곳, 야영할 곳을 찾아 하염없이 떠도는 유랑의 형식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이것까지 총체적으로 합일 되어야만이 ‘유랑캠페인’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배낭 짊어지고 떠도는 유랑(혹은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 자유와 만족을 찾기 위해 행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를 통해서 ‘자기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 현실을 보는 시야와 사회적 작용능력은 거의 길러지지 않는다. 여행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냥 넉넉한 마음가짐과 튼튼한 발만 있으면 된다.
반면 캠페인 활동은 사회적 현실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개선을 위해 행하는 활동으로 이를 위해서는 사회현실을 보는 시야와 비판정신, 그리고 이를 타인에게 알리기 위한 수고를 무릅쓰려는 사회적 책임의식이 병행되어야 한다.
둥글이의 유랑캠페인은 이 양자(자기성찰과 사회운동)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이 양자의 활동을 접목해야 함의 이유는 [자기성찰]과 [사회운동] 한부분에만 몰입한 이들의 한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유추된다.
[자기 성찰]만을 고민하고 사회의 문제에는 고민하지 않는 종교인들은 편향성을 우선 보자. 이들은 주로 기독교, 불교를 비롯한 도, 깨달음을 추구하는 유사종교인 등을 뜻하는데, 이들은 ‘주여 주여’만 외치거나, ‘내 마음의 평화’만 갈구하거나 ‘모든 것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스스로 안위하는 ‘무한한 포용력’을 통해서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믿음으로 개인적 영혼의 안식은 얻을지언정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잘 못 돌아가는 사회’를 바꿔낼 수 있는 기회는 포기한다.
반대로 [사회운동]만 하면서 자기 성찰이 없는 시민운동가들 역시 큰 문제이다. 이들이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하지만, 그 비판이 늘 외부를 향해 있다 보니,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고, 자기 조직 내에서도 끊임없이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기실 그들의 상당수는 자기스스로 분열하는 이이다.
결국 [자기성찰]만을 꾀하려는 이들과 [사회운동]에만 집중하는 이들의 한계는 이렇게 ‘명확’하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우리는 ‘내 자신과 사회의 문제를 하나의 어우러진 덩어리로 이해하는 시야를 갖아야 하고, 이 양자를 하나의 사건으로 통찰적으로 바라보고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함’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앎을 삶 속에서 실현할 때라야 만이 이러한 분열로 그간 빚어졌던 무수한 부조리와 한계는 치유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둥글이의 유랑캠페인은 이 양자의 접목을 통해서 그간 분열되었던 둥글이의 의식을 봉합함과 동시에 분열된 세계상을 조화롭게 엮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둥글이의 활동은 시민운동가들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생소히 보일 것이고, 영성 운동하는 이들의 시야로도 얼른 수용하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을 텐데, 이는 둥글이의 활동 자체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보기를 거부해 왔던 인생의 또 다른 측면을 둥글이 활동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는 둥글이의 ‘유랑캠페인’이 영성과 사회성을 접목하는 활동의 ‘정답’이라는 이야기라고 떠벌리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태껏 철저히 구분되어지고 나눠지며 그 반대쪽이 배척되었던 이 존재의 간극을 봉합하는 방법 중의 하나를 둥글이가 시도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이 글을 보는 이들도 나름의 ‘영성’과 ‘사회성’을 접목하는 그 방법을 고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
하여간 부산으로 향하는 마음이 찹찹하다. 한 뺌의 땅도 치밀한 구획을 나눠서 내 것 네 것을 구분하는 대도시의 인심이 가진 것 없는 나그네에게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에 둥글이는 부산으로 향하는 길이 악마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더군다나 부산이라 할 것 같으면 서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배타적 기득권의 총화 아닌가!
누가 부산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랄까봐 국도도 아닌 지방도가 넓기도 하려니와 차량들도 수도 없이 꼬리를 문다.
[수많은 지역에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임을 표방하는데, 둥글이 유랑 끝나기 전까지 ‘노동하기 좋은 도시’라는 홍보를 하는 지자체를 접해본다면 소원이 없겠다.]
[저 앞 장군봉 중턱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또 얼마나 헉헉거려야 할지 고심하고 있는 와중에 고가도로 아래쪽을 보니 아저씨 한분이 정차한 차량 앞을 지나며 보리건빵을 권하고 있다. 그가 오늘 팔아야할 보리건빵의 무게는 둥글이가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내려야 하는 배낭의 무게와는 분명 다르겠지만, 그와 언뜻 마주친 눈빛을 통해 인생이라는 험한 파도 속에 우리는 같은 배를 탄 동료임을 어렴풋이 느낀다.]
그야 말로 깡촌 시골길을 굽이굽이 돌아 야트막한 고개를 내려 오다보니 급작스레 아래편으로 번화가가 눈에 보여진다.
저 아랫길은 고속도로와 국도와 지방도와 골목길이 맞닿는 길인데, 교통의 요충지답게 부산종합터미널이 세워져 있었고, 수도 없는 버스와 택시가 오가고 있었다.
이곳 부산종합터미널 쪽으로 내려오는 중에 나무에 열린 '거시기' 열매를 하나 따서 먹었었다.
이 거시기 열매는 단물이 잘 들면 먹을 만한데, 단물이 안 들었을 때에는 쓴 한약 열 첩을 들이켰을 때의 미식거림을 만들어 낸다. 적당히 익은 듯해서 하나 따 먹었더니 고개를 내려오는 내내 속이 쓰리고 미식 거린다. 마침 좀 더 걷다보니 길 한편에 ‘보리’가 탱글탱글 열려져 있어 환장하고 달려간다.
이미 신장 169cm 인 사람의 손까지가 지나쳐간 이유로 170cm인 둥글이의 손이 미치는 보리는 불과 서너 개에 불과했다. 배낭을 벗고 나무에 올라가서 몇 개 더 따 먹을까 생각해 봤지만, 배낭 벗었다가 짊어지는 것도 그렇거니와 인근의 창문에서 주인의 대가리가 불쑥 솟아오를 것이 우려가 되어서 군침만 흘리고 지나친다. 하지만 그 몇 개 뱃속에 털어 넣은 보리가 쓰린 속을 싹 발라낸다.
[부산종합터미널을 거쳐서 체육공원 쪽으로 향하는 중에 꽃가게가 즐비한 거리가 눈에 펼쳐진다. 그런데 앞에 사람이 옆으로 지나며 밟던 말든 바닥에 배 깔고 냉돌욕을 즐기는 멍멍이를 하나 발견한다. 주변 사람에게 밟힐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 좁은 길에 배 깔고 엎드려 꼼짝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 멍멍이의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얘기한다. 저리 흙먼지 뒤집어 쓴 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이 충천한데, 인간은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고민해볼 일이다. 해외에까지 원정 나가서 동포들 사기 쳐 먹는 국민성에 ‘어른이 길을 물어보면 대답하지 말고 도망가라.’는 교육을 시킬 정도의 우리네 사회가 저 멍멍이가 배 납작 깔고 보는 세상보다 더 행복할 것인가.]
[시민체육공원 한쪽 나무 그늘에 퍼질러 누워서 쉬다가 20분 넘게 잠이 들었다. 점심 전에는 이렇게 오래 잠이 드는 법이 없는데, 뭔가 미묘한 감기가 몸에 들어온 듯싶었다. 노근하다. 그래서 내려놓은 짐을 다시 짊어지는 어깨가 유난히 늘어진다.]
[울산광역시 - 기장군 - 철마면 방면으로의 한 시간 가량의 끝없는 고갯길]
[고갯길을 넘어 내리막길을 쓸려 내려 오다보니 기장군 경계면이 눈에 들어온다.]
[길 한쪽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기에 땀에 젖은 몸을 씻으려고 내려갔더니, 개울물에 이끼가 끼어 있고 영 께름칙하다. 누가 부산광역시에 소속된 지역의 개울이 아니랄까봐...]
[터널 천장에 전등을 비추고 있는 듯 한 산속 내리막길]
[이날은 길에서 ‘보리’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길 한편 농가 울타리 너머에 키가 160만 되어도 다 따먹을 수 있는 높이에 보리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이다. 마침 노부부가 울타리를 열고 들어가기에 ‘보리 몇 개만 따먹을 수 있나요?’하고 물으니, 두 분은 마치 오랫동안 연습을 통해서 한 몸이 된 것 같이 입을 맞춰서 ‘절대로 안 될 일’임을 확인시켜주신다.]
[길 한쪽에 사과를 파는 가판대가 설치되어 있다.]
[그 옆에 앉아서 쉬려니 가판대를 설치한 아저씨의 멍멍이가 와서 ‘킁킁’거린다. 쓰다듬어주다 멈추니 자기 팔로 둥글이 팔을 잡아 당겨서 계속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기를 대여섯 번을 반복하는 탓에 둥글이는 앉아서도 쉬지를 못하고 멍멍이 쓰다듬어 주는 일에 복무해야 했다.]
[가판대 아저씨에게 다가가 “제가 보시다 시피 사과 한 박스를 사서 짊어지고 갈 형편이 못되서 그런데 사과 하나만 파실 수 있나요?”라고 여쭙는다. 둥글이가 여태껏 길바닥에서 만났던 사과 파는 아저씨들 중에는 종종 이 말의 숨은 뜻인 ‘사과 하나만 달라.’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하여 통상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인 천원의 라벨을 붙여서 넘기곤 했다. 하지만 이날 만난 ‘텍스트의 숨은 의미’를 읽어 낼 여력이 있으신 속 깊은 아저씨는 ‘그냥 먹으라.’며 둥글이에게 주저 없이 사과를 건네신다.]
불필요한 사업 공화국 대한민국 작은 천 위로 다리가 하나 있는데 그 바로 옆에 다리를 하나 더 만들고 있다.
길이 두 개 생긴 것도 아니고, 차량 통행이 잦은 것도 아니고, 아마 이전 다리의 디자인이 별로 맘에 안들었던 듯싶었다. 그래서 이곳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은 곳에서 당당히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보시다 시피 ‘장전1교’라는 다리가 이미 있는 곳에 새로운 다리(빨간색)를 만들고 있다. 아마 이 공사의 필요성을 부르짖은 공무원내지는 시의원은 ‘25m이상의 길이를 가진 차량이 커브를 틀기가 힘든 모퉁이 길이기 때문에 새로운 다리를 놔서 이러한 불편을 개선해야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변했을 것이고, 어차피 눈먼 예산 막 쏟아 부었을 것이다.
물론 이곳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이러한 쓸데없는 사업을 통해서 이러한 사업을 발주시킨 장본인들(공무원, 시의원 등)은 시공자들과 꿍짝꿍짝해서 나눠먹기를 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 반대로 건설업자가 공무원과 시의원들에게 접근해서 ‘공사비 10% 떼어줄 테니까 저 사 좀 진행시켜라.’고 로비를 한다.
언론에도 무수히 밝혀졌지만, 국책사업 비용의 20%가 통상 로비 비용이라고 한다. 이 나라 전역에 쓸데없는 사업이 진행되는 이유는 그렇게 정치인, 공무원과 건설업자들이 밀접한 공생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라도 정신이 깨어 있으면 쓸데없는 사업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언론에서 ‘지역발전’ ‘국가발전’ 운운을 하니 그에 깜빡 넘어가 오히려 시민들이 혈세를 낭비하는 사업의 적극적 지지자로 나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가 불필요한 사업이 난무하는 공화국이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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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그늘에 누워 쉬는데... 또 ‘보리’다. 처음 접한 보리는 170의 키로는 한계가 있어 못 따먹었고, 두 번째는 주인의 제지로 못 먹었었던 이 모든 난관을 뚫고, 주인집도 멀고 키도 작은 보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과욕은 어떤 화를 불러올지 모르는 법. 너덧 개만 따서 입에 털어 쪽쪽 빨아 씨를 발라내고 자리를 뜬다. 2,3년 전 같았으면 그냥 허겁지겁 따먹었을 텐데... 유랑이 계속되면서 그래도 관록이 붙는 듯 하다.]
[철마면 면소재지이자, 캠페인을 해야 할 철마초등학교가 있는 아담한 마을에 도착한다.]
모심기와 사람 키우기 (본 글의 내용은 도토리 교실 임종길 선생님의 말씀을 참고로 했다.) 농촌을 걷다보면 흔히 모심은 논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일곱 여덟 포기의 모가 한모둠으로 촘촘히 심어져 있다. 풍년을 기대하는 농부의 바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아래는 ‘도토리 논’이라는 수원의 생태논의 모심은 풍경이다.
논바닥에서 잡은 개구리의 배경이 되는 저 논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모를 심었나 안 심었나 구분이 안 되게끔 모를 성기게 심었다. 아마 혹자는 ‘저들은 쌀 수확하기를 포기했나?’고 의아함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농림연구소에서 실험을 해본 바에 의하면 모를 심을 때 욕심에 못 이겨 열 포기씩 잔뜩 심는 것과 같은 면적에 딱 한포기만 심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거의 같은 양의 수확을 얻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모가 한꺼번에 많이 심어지면 서로들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서 위로만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뿌리를 내리기가 힘들고 서로 경쟁하는 와중의 스트레스 때문에 알곡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단다. 하지만 한 뿌리만 심은 모는 뿌리를 깊게 드리워 양분을 충분히 흡수하고 옆으로 넓게 퍼져서 그야말로 쌀을 주렁주렁 달게 되는데 열 포기를 한모둠으로 심은 것과 비슷할 정도의 수확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벼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닌,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경쟁에 시달리게 하고 외형적인 성장(학업성적, 좋은 직장 등)에만 집착하게 하는 이유로 (쭉쭉 뻗은 벼처럼)허우대는 멀쩡하다. 하지만 내실이 없고, 그 영혼은 알곡이 들어차지 않은 벼처럼 초췌하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자 원하는가? 제대로 뿌리 뻗어 대지를 튼실히 움켜잡고, 품이 넓게 성장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허우대만 멀쩡하고 내실이 없는 삶을 원하는가?
어떻게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인지는 ‘지금’ 이 순간에 결정된다. 지극히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자신의 감각적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를 열 개쯤 쥐어 논에 박는 것과 같은 욕심을 부리면 그 말로는 쭉정이 벼 투성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를 시험하는 욕망과 야망을 견뎌내고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려는 욕망보다 비우고 낮추려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그 종국은 풍성할 것이다.
이는 우리 자신의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만,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지금과 같이 무한경쟁의 스트레스를 주고 일등에서 꼴등까지 줄 세우기식의 신자유주의적 교육에 내동댕이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이 살찌워지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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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을 찾으러 철마우체국 샛길을 오르는데, 그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대나무순이 올라오고 있다. 길가도 아니고, 아스팔트 길 한가운데를 뚫고 나오는 너희들 배포도 크군아.]
[식당 몇 개 있는 곳이 맨 고기만 파는 집이다. 채식 둥글이 종잇장 같이 얇아진 배를 움켜잡고 짜장면 집으로 가서 배를 때운다.]
[학교 옆에 주차해둔 배낭. 왼쪽에는 빤스, 오른쪽에는 양말이 널어 말려지고 있다. 양말은 4,5일에 한 번씩 빨아 말리곤 했지만, 요새는 빤스 빨아 너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요즘 들어서 1주일에 한 번씩은 빤스를 (너무 자주)빨아 널어 말린다. 사실 아침마다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는 녀석? 을 부여잡고 진정시키기가 여간 곤욕이 아닌데, 일주일에 한번 꼴로 빤스까지 빨아대려니 둥글이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장군 - 철마초등학교 캠페인 이곳 철마초등학교는 부산광역시 칠곡군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부산광역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신호탄이 되는 학교였다.
두시부터 아이들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아이들이 하교를 하지 않는 것이다.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운동장에는 돔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는 천체망원경 몇 개와 아이들 안내 도우미 아주머니들 대여섯이 서 있었다.
돔 구조물은 별자리 상영관이라고 했는데, 저학년부터 고학년에 이르기까지 운동장과 돔을 오가면서 설명을 듣고 실습을 하고 있었다.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실행하는 사업이란다. 각 학교별로 돌아다니면서 돔을 세워서 별자리를 보여주고 천체망원경 이용법 실습을 하고 있었다.
여성도우미 여섯에 돔 설치- 철거하는 남자 두셋에 천체망원경 등의 각종의 고가의 장비를 굴리려면 엄청난 예산이 들어갈 듯하다. 적어도 저 수업 한번 하는데 학교당 최소 수 백만 원의 비용이 들 듯하다.
아마 이명박 정부는 아이들에게 ‘과학자’로서의 꿈을 심어주려고 저리 한 것 같은데, 무상급식비 깎아서 저런 사업 투자하면 배 굶주린 아이들이 별을 보고 행복해 할까?
이명박 정부에서 실행하는 이러한 실습교육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둥글이의 입장을 이해하시라. 이 교육 덕분에 아이들은 평상시 등교시간을 훨씬 넘겨 5시에 하교 했던 것이고, 세 시간을 기다린 둥글이는 다른 방향으로 빠져나간 아이들을 빼고 꼴랑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자리를 털고 나서야 했음에 여간 속이 쓰린 것이 아니었다.
개중에 “지구를 구하자.”라며 전단지를 나눠주는데, 여자 아이 하나가 “생각해 볼게요!”라는 답변을 하고 지나가서 웃음이 터졌다. 그래. 잘 좀 생각한 후에 웬만하면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힘써다오.
경험이 만들어내는 포용력 캠페인을 끝내고 ‘해운대구’로 향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캠페인을 위해서 미리 가서 자리를 봐둬야 했다. 그런데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터 전단지까지 가지고 10여 km 이상 걷는 것은 무리였다.
하여 해운대구로 향하는 지방도변에서 차 잡아타기를 시도한다. 4년 쯤 전에 한번 잡아탄 경험이 있었다.
[그 때 차를 잡아타기 위해서 사용했던 피켓내용 / 이 허접한 피켓의 내용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당시 족히 100여대의 차가 둥글이를 외면했었다.]
그 이후로 오랜만에 차를 잡아타려다보니 상당히 쑥스러워서 지나는 차량을 몇 개 보냈다. 용기를 내서 태워달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지만, 예상했던 바대로 많은 차량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지나친다. 엄지손가락 들어 올리는 짓을 이십 여번 반복하자 차량이 한 대 섰다.
차를 세워주신 분은 아마추어 마라톤 동호회 분이셨다. 42km 풀코스 완주를 20번 넘게 했고, 100km 울트라 마라톤도 다섯 번 넘게 완주했다고 하신다. 아마 길바닥 위의 운동을 하시는 분답게 나그네의 심정을 헤아려주신 듯하다.
늘 느끼지만 경험이 이해를 만들고 관계를 맺게 하며 나눔을 실천하게 하는 듯하다. 사실 둥글이를 여태껏 챙겨주신 분들은 여행 비슷한 것을 해본 경험을 통해서 둥글이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으신 분들이 상당하다. 꼭 직접적인 여행이 아니더라도 삶에 대한 고뇌와 존재에 대한 회의, 현대물질문명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 역시 둥글이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들 나름의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반면 그러한 여행의 경험이나, 존재에 대한 회의(자기 자신을 버리는 마음의 여행)를 하지 않으신 분들은 둥글이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보이더라도 몹시 탐탁지 않게 여겨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등의 고사성어를 들먹이면서 훈계를 해주거나 경찰에게 신고를 하고, 집 근처 공터에 텐트를 치는 것을 불편이 여겨 쫓아내며, 빈주차장 공간이 아까워서 박대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적응한 현대 물질문명의 편리에만 반응하게끔 그 심신이 적응되어 있다. 하여 멋진 옷, 폼 나는 차, 좋은 집, 돈 많이 주는 직장을 접할 때는 아드레날린이 급분출하면서 극도로 친화적으로 반응하지만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철저한 무지와 무관심, 무의지로 일관한다. ‘먹고 사는 일’ 외의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에 아무런 인지적인 발달과 사고의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유추해 보건데 ‘새로운 상황에 대한 수용력’이 어느 정도 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경험과 정신의 폭과 깊이를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하고 폭넓은 상황을 수용할 수 있을까?는 일부러 찾아 나서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나’가 적응해 있는 물리적 공간의 영역을 확장하고, ‘나’가 집착하는 아집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심리적 통찰의 노력에 비례할 것이다.
이러한 자기 극복의 노력이 경험적 체현 적으로 확장되는 딱 그만큼 그는 세상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아 확장의 다른 이름이고 세상을 이해하는 현명함을 갖춘다는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이다.
5km쯤 차를 얻어 타고 오다가 금정구와 해운대구 갈라지는 지점. 부산 도심이 보이는 곳에 내려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다시 여정을 잇는다.
부산광역시
부산시는 대한민국 남동부에 있는 인구 340만의 대한민국 제2의 거대도시이다.
[부산 광역시의 위치 - 사전 펌]
현재 부산은 ‘1996년부터 계속 되는 인구 감소로 약 389만 명이던 인구가 350만 명 선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유는 ‘부산광역시 내의 일자리 부족으로 수도권 지역으로 집중되는 인구와 경남으로 유출 되는 인구가 많고(역도시화),출산율이 전국 최하위인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한다.
1. 생명은 위기의 상황에서는 죽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성이 있다. 2. 부산은 과거의 번영을 현재로 되돌려 놓고 싶은 정치적 열망을 갖고 있다.
결국 1과 2를 합치면 부산이 ‘도시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대단히 비정상적이고 부조리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기 위한)보수적인 방법으로 현실에 대처하고 있을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부산의 각종의 역사 - 문화적인 이야기는 접어두도록 하자. 그 이야기까지 쓰려면 일지가 열장은 늘어나야 할 듯하다. 부산의 문화와 관광,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아래를 참조하시기를... -> 부산광역시 문화관광 http://tour.busan.go.kr/kor/
대도시와 나그네
부산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산중턱까지 아파트가 파고들어있는 거대도시 부산이 아가리를 벌리고 둥글이를 집어 삼키려는 태세이다. 괴성을 지르는 차량들과 한데 섞여 그 괴수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그네의 심정은 그야말로 찹찹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볼 때, 도시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안에 텐트를 치고 머물 한 뼘의 땅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더욱 많은 고초를 겪어야 함을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보다 강력한 관료조직의 영향으로 지역민들의 의식이 획일화 되고, ‘내 것’을 지키고자 하는 아집이 대단히 직접적으로 표출되며, 보다 큰 경쟁의 압력이 그 구성원들에게 주어지고, 대중적 성취를 이루고 낙오하지 않기 위한 우열의 작용이 각기의 의식에 교묘히 스며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의 여유는 없고, 공동체적 정서는 증발하고, 이타심은 성공을 위한 욕망에 밀려 사그라지며, 개인의 의식은 오직 자신의 발끝만 향하게끔 좁아진다.
이는 극도의 계산적인 사고와 이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자기 터전의 한 치도 타인에게 양보하려 하지 않고, 자기 소유물건을 지키기 위해서 단단한 벽을 두르고, 타인을 암묵적인 투쟁의 대상으로 여겨 경계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는 나그네의 여정을 버겁게 만드는 요소이다.
이렇게 대도시에 적응해 살아가는 삶은, ‘도시성’ 그 자체에 개인의 영혼이 잠식된다는 말의 다름이 아닌데, 다른 표현으로 말해보자면 대도시의 하부욕망구조로 전락된다는 말이다.
대도시 부산에서도 이러한 세태를 특별히 많이 발견하게 되었는데, 거시적인 규모에서 빚어지는 정치, 사회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둥글이가 직접 체험한 것만 이야기 하면 다음과 같다.
▪ 모 도서관에 인터넷을 좀 쓰려고 열려진 전산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담당자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서 ‘9시가 되면 들어오라.’는 것이다. 9시 10분 전이었다. 이러한 관료적 경직성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 저녁에 야영을 위해서 모 초등학교 수돗가에 가서 물을 받으려고 수도꼭지를 돌렸더니, 물이 안 나온다. 물이 안 나오는 것하고 대도시성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생각 하겠지만, 군소도시의 초등학교 급수대에서 물이 안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뛰어놀던 아이들이 흘린 땀을 씻고, 식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른들의 배려이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관리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단수조치 했던 것이다.
▪ 오후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 모 초등학교 앞으로 향했다. 학교 앞은 도로이고 가로수도 없어서 살을 태우는 땡볕을 피해서 학교 안쪽 나무그늘 아래로 찾아 들어갔다. 하지만 수위아저씨로 부터 쫓겨났다. 그곳 초등학교 안에는 외부인이 들어오면 안 된단다. 땡볕을 피해 학교 안 나무그늘 아래 쉬는 것도 허용되지 않은 현실이라니.
▪ 골목길 한편의 살벌한 주차금지 경고문구 역시 소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과격함이 배어난다.
▪ 여느 시골의 학교는 학교 진입로가 사방으로 개방되어 있는데, 둥글이가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 들렀던 초등학교 몇 곳은 진입로가 오직 하나뿐이고, 문이 있는 곳도 부러 걸어 잠군 곳이 있었다. 이는 외부인을 차단하고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이기는 하겠으나, ‘아이들 보호를 위해서 통행로를 하나만 열어 놔야 하는 현실’ 그 자체가 이곳 부산의 지역성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우측통행’을 안내하는 도우미 할머니들이 있었다. 우측통행이 불법행위도 아니고 시민들의 자발성에 맡길 사안임에도, 굳이 이렇게 우측통행을 강제하려고 감시자들을 세워놓고 이리가라 저리가라 지시하는 분위기가 다소 불편하다. 특히나 둥글이 같이 좌도 우도 아닌 중도파는 한가운데를 걷는데, 저리 중간에서서 길을 통제하면 둥글이는 어디로 가란 말인가?
▪ 동구에 있는 주민센터에가서 비를 피해서 민원실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주민센터 장이 오더니 ‘신경 쓰인다고 나가달라.’고 한다. 설마 유랑 다니면서 이러한 경험까지 할 것인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 학교 뒤편에서 캠페인 하고 있는데, 학부형이 수상한 사람이 캠페인 한다고 신고가 들어왔다고 선생님이 한분 오셔서 확인을 하시고 가신다. 물론 이런 일도 처음이었다.
▪ 남포동 지하상가 폭이 20m는 되는 넓은 통로에서 혹시나 통행객들 방해가 될까 해서 기둥 옆에 붙어 쪼그려 앉은 채 일지 작업을 하고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오더니 '점포에서 신고 들어오니 거기 그렇게 하고 있지 말라.'고 한다. 쪼그려 앉아 있을 수도 없는 현실이라니....
이러한 문제는 ‘도시성’의 부작용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사례일 뿐인데, 이러한 자잘한 일상의 경험 속에서 대도시의 뻑뻑함은 체현되었었다.
이러한 사건을 피할 수 없음은 그 도시적 삶의 하부구조로서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둥글이의 운명이기도 했다. 도시성을 거부하는 만큼 도시 역시 둥글이를 거부해온다. 그 도시성에 유기적으로 작용을 하지 않고, 이질적인 바이러스가 되어 떠돌이 삶을 살려고 하는 만큼 둥글이는 도시가 가진 면역체계들로부터 끊임없는 시달림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기실 도시가 주는 압력은 그 도시의 규모에 비례하기에, 거대도시 부산에서 받은 압력은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감당하기에 수월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도시가 만들어내는 일상에서의 반발과 거부들은 부산에 머무르는 내내 상당한 불편함을 만들어 냈다. 이 느낌은 마치 몸에 자잘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라고 할까? 긁적긁적~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그러한 난생 처음 해보는 독특한 경험들의 충격들도 무디어갔다. 아마 이곳 사람들도 거듭되는 그러한 ‘사람 살 곳에서 빚어질 것 같지 않은 경험’ 속에 그럭저럭 적응해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한 무관심과 배타성은 습관이 되어갔을 것이고 어느 때부터 그들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러한 삶은 각자의 의식 속에 깊이 스며들어 보편적인 생활양식이 되었음으로 서로에게 아무런 죄책감과 상처 없이 그러한 ‘무심과 거부와 증오’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다만 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나그네만 이를 민감히 감지할 뿐...
그렇다고 부산에서 무조건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 시민들을 무조건 ‘도시화’에 의식이 잠식된 수동적인 이들로 이야기 할 일도 아니다. 도시성에 의식이 완전히 잠식당한 이들은 뻑뻑하고 건조한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그러한 도시성에 나름대로 저항해 온 이들은 나름의 총명함과 비판의식과 사려 깊음으로 둥글이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대도시는 나그네에게 번잡한 상념과 경험을 만들어내는 곳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빨리 일정을 끝내고 탈출할 수 있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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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인의 노고를 장비들도 눈치 채고 있는지 동변상련의 제스취어를 보여주기 위해서 깔판 주머니는 기꺼이 삯아 떨어지는 길을 택한 듯하다.]
[얼마 전에는 텐트도 삭아서 구멍이 나서 폴대가 삐져나왔을 정도이고...]
[심지어 빤스도 삭아서 찢어진 이유로 바느질을 해야 했다.]
하여간 삭지 않은 것은 둥글이의 탱탱한 피부밖에 없구만... ^^'
분기점에서 내려서 해운대구로 반송동 쪽으로 한 시간 넘게 걸어 올라가는 중에 도저히 더 이상 걸을 힘이 나지 않아서 도로 한쪽에 만들다만 도로 한편의 주차된 트럭 앞에 텐트를 세운다.
하루 동안의 노고에 치하하는 뜻으로 아침저녁으로 먹는 생쌀에 더불어 뽀글이를 추가한다.
고된 행군 뒤의 이정도 수준의 음식물 섭취가 적절한 영양보충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배는 땡땡이 불러왔다.
6월 16일 새벽 네 시 경에 트럭 운전수가 와서 텐트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차를 끌고 사라졌는데 여섯시 경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보니 트럭이 사라지고 난 자리가 ‘횡~’하다.
텐트 안팎으로 자잘한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다.
텐트 틈을 좀 열어 뒀더니 귀신 같이 알고 그 사이로 기어 들어왔던 것이다. 이 녀석들이 바로 둥글이가 하루 종일 몸을 긁적이게 만드는 녀석들이다. 긁적긁적~
텐트 칠 곳을 찾을 수 없을 때는 녀석들이 바닥에서 우글거리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텐트를 쳐야할 때가 있는데, 그 ‘효과’는 최소 이삼일 이어진다. 긁적긁적~
하여간 둥글이는 자잘한 벌레들의 간지러움부터 대도시의 압력에 이르기까지 맞장 떠야할 상대가 너무 많다.
텐트를 걷어낸 후에 몸에 붙어 있을 벌레들을 털털 털어낸다. 그래도 여전히 둥글이를 단단히 부여잡고 있는 녀석들이 지속적인 간지러움을 만들어 낸다. 연신 이곳저곳을 긁적대면서 인근 초등학교를 향하다가 주유소 화장실을 찾아들어갔는데...
볼일 보고 나오니 아저씨가 ‘드시라’며 입구에 시원한 생수를 주유소 입구에 올려놓으신 것이다. 찌들은 땀에 기어들어온 벌레에 꿉꿉한 기분이 이를 데 없는데, 생수 한통이 속을 시원히 풀어준다.
해운대구 - 반송초등학교 캠페인(6월 16일 오전)
반송초등학교로 향하는 언덕길은 그야 말로 등산길이었다. 정문 앞 길이 비좁을 뿐만 아니라, 경사가 졌고, 중고등학교 등교생들이 한데 어우러지다 보니 어째 캠페인 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했다.
전단지의 양이 많지 않아서 200여 장만 배포하고 내려가는데, 전단지를 못 건네고 지나치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 밀려온다.
인근 도서관에 들어가서 컴퓨터 좀 쓰려고 갔다가 마침 문이 열려진 전산실에 들어갔더니, 담당하시는 분이 ‘아직 시간 안 되었다.’고 9시가 되면 들어오란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되기 10분 전이었다. 이 딱딱하고 정없는 관료주의. 이 도서관의 신문거치대에 오직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보수신문만 걸려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오후 캠페인은 금정구로 향해야할 상황이었는데, 시간상 - 체력상 대구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노선에 따라서 자그마한 지하철이 운행되는 곳도 있었는데, 참 아담한 모습이 동네 버스를 탄 기분이었다.
이 뻑뻑한 대도시에서 점심 먹고 나서 잠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그늘이 드리워진 빈 공간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주차장 한쪽의 자재 쌓아둔 앞자리를 발견한다. 폭이 좀 좁아서 몸을 구겨야 했지만, 정신없이 곯아 떨어졌다.
금정구 - 동상초등학교 캠페인(6월 16일 오후) 20여분 쯤 자고 일어나서 인근초등학교 앞으로 가보니, 두어 시도 안 된 시간이었는데, 이미 수업이 끝난 상태였다. 하교 지도하는 어르신께 여쭤보니 ‘전날 소풍 갔다 와서 일찍 시마이(끝냈다) 했다.’는 것이다.
아직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기십명에게 전단지를 건네고 활동을 파장한다.
지역에서 물대포 쏘기 경연대회가 있는지 선생님과 아이 하나가 한조를 이뤄서 운동장을 대각선방향으로 물대포를 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 어릴 적에 물대포 열심히 쏘며 과학적인 재능을 연마하기를 바란다마는 혹여나 나중에 경찰로 특채된 후에 철거민들과 노동자들에게는 쏘지 마렴. ㅠㅡ
캠페인을 끝나고 도심 한가운데서 몸을 뉘일 한 평의 땅을 찾아 나섰는데 이만저만 어려움이 아니었다. 평지가 없어서 조금만 걸어도 오르락내리락 거려야하지, 물을 받으러 갔던 초등학교 수도꼭지에서는 물 한 방울 떨어져 내리지 않지...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그러는 중 어느 아파트 아래쪽에 놀이터를 발견한다. 풀이 무성해서 마치 숲을 방불케 했다. 인근 3km 이내에서 야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도심 속의 아파트 놀이터가 이렇게 잡초로 우거진 이유는 그 바로 옆에 소공원이 생겨서 그리로 어른 아이가 모두 쏠려 가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넘게 돌아 다녀봐도 뾰족이 야영을 할 만한 공간을 찾을 수 없었기에 어둑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구석에 텐트를 세운다.
그 바로 위쪽 옹벽 위가 아파트 단지였고 오가는 이들이 상당히 되었지만, 별수 없이 모험을 해야 했다.
그 이후 텐트를 발견하고 궁시랑 거리는 어른들. 무섭다고 온 동네 떠나가라 비명지르기 시합을 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옹벽 위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불안한 전조들이 한 시간 가량 이어진 말미에 급기야 한 무리의 어른들이 텐트 주위로 몰려온다. 아파트 관리소장님부터 주민대표 등의 대여섯 분이셨다. 그분들은 ‘이곳은 아파트 소유지이기 때문에 텐트를 치면 안 된다.’는 비보를 덤덤히 전해주신다. 마을 주민들이 불안해서 신고까지 들어왔단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체념은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선량하게 보이면서 호감을 드리려고 애를 썼다. 적을 만난 군인은 눈에 불을 키고 용맹이 맞서야 하고, 호랑이에게 물려가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만, 땅소유주를 접한 둥글이는 최대한 선량하게 보임으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방법 이외에는 없었다.
둥글이의 ‘눈깔 내리 깔기 작전’의 효과가 주요했다. 주민대표분이 둥글이 얘기를 들으시더니 상당히 사려 깊게 둥글이를 수용해 주셨다. 어차피 본인들이랑 상관이 없기에 ‘나가라!’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그네 둥글이를 수용해 주신 것이었다. 이로 인해서 그들은 문제를 삼는 주민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수고를 감수하실 각오를 하신 것이었다.
갑자기 뻑뻑한 도시인 부산이 사랑스러운 모양으로 다가온다. 종종 이런 분들을 접할 수 없었다면 둥글이는 진즉에 유랑캠페인을 때려 치고 여태껏 통장에 쌓인 막대한 후원금으로 세계여행이나 다니며 증권투자에 소일거리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의 배려와는 별도로 오가는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분잡함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손가락질을 부르는 둥글이 활동 불행 중 다행으로 공간을 허락 받아 텐트 안에서 마음 놓고 발 뻗고 있는데, 누군가 위쪽에서 전화 통화를 하다가 둥글이 텐트를 발견한 듯싶었다. 이에 둥글이 텐트의 문구를 읽어 가는데...
시종일관 ‘킥킥~’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도 아니고 40대쯤으로 들리는 어른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이리 인류사적인 위기상황을 적시한 글귀를 보고 ‘킥킥’ 거리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먹고살기에 바쁜 그들에게 이러한 외침이 들릴 리 없을 듯싶었다. 그들에게는 ‘생태계’와 ‘인류’등의 용어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듯 했다.
그 며칠 후에도 지하상가를 걷고 있는데, 비슷한 일이 있었다. 뒤따르던 50대 중반의 어른 하나가 배낭의 문구를 책 읽듯이 읽어대며 웃는 것이다.
[조끼와 배낭 문구]
둥글이 자의식인 줄은 모르겠으나 둥글이는 그들에게 ‘다소 정신이 나간 환경 광신도’ 쯤으로 보일 듯하다. 이를 둥글이도 잘 알고 있기에 구호를 써 붙여 도심의 한가운데를 가르는 일은 어깨에 배낭을 하나 더 얹은 듯 한 심적인 피로감을 만들어 낸다.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남의 일로 여기는 그 시야 좁은 사고들. 어떻게 해야 ‘그 일’이 자신들의 일이고, 자신들이 고민해야할 일임을 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문구를 보고 ‘킥킥’ 거리지 않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고뇌를 시작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일반 대중들의 피부에 와 닿는 활동이 되려면 거창한 지구적인 문제의식을 텐트와 배낭에 써 붙일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원 고갈로 인해 소득수준 감소”쯤의 구호를 써내야 할까?
이미 스스로 알고 대비했어야할 일임에도 이에 전혀 문제의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보여줘도 그 사실에 조소를 내뱉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둥글이는 또 한 번 무참한 침묵에 빠져든다.
제 정신으로 살고자 이리 길을 나섰지만, 그들 속에서 ‘환경 광신자’ ‘현실부적응아’ ‘괜히 예민한 사람’ ‘정신 나간이’ 쯤이 되어서 조소를 받아야 함의 사실. 이것이 심히 둥글이를 외롭게 한다.
6월 17일 밤이 깊어질 무렵 “우리도 나중에 텐트 사서 저렇게 하자.”고 들려오는 말은 그럭저럭 자장가로 받아들여질 만 했다. 하지만 새벽 두세 시 경에 텐트 위쪽에서 핸드폰 문자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서 깨고, 새벽 네 시 경에는 부터 그 위쪽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물론이거니와 재미삼아 ‘거기 누구 있는가’라고 몇 번이고 부르며 ‘키득’ 거리는 할머니들의 호기심이 단잠을 방해했다. 하지만 별로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그 정도의 공간이라도 얻어 잠자는 흉내라도 낼 기회를 얻었음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텐트 바로 위쪽을 지나는 주민들이 둥글이를 진열된 원숭이쯤으로 여기는 통에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동래구 - 충렬초등학교(6월 17일 오전) 리어카를 끓고 오가는 할머니 한분이 둥글이 조끼를 보며 ‘지구를 지키자~’며 힘을 북돋워주는 충렬초등학교 앞에서의 캠페인...
그런데, 이곳 아이들은 전단지도 버리지 않는 상당한 수준급의 환경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교장선생님 쯤으로 보이는 인자하신 선생님이 전단지 내용을 보고 나서 수고하라고 독려하시며 가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이 학교만의 어떤 교육철학이 느껴졌던 터였다. 학교를 찾아들어가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지만,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아이들이 양동이를 들고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느 학교는 대체로 한반씩 돌아가는 청소를 시킨다. 이때 아이들 한둘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그 무리의 중심에 서면, 나머지 아이들은 난잡히 분산되어서 어떤 아이들은 휴지를 좀 줍는가 하면 어떤 아이들을 장난질하느라 바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아마 이렇다 보니 원래 휴지를 잘 줍는 아이들은 열심히 잘 줍지만, 안 줍는 아이들은 계속 그렇게 무책임함을 몸에 체득하며 초등학교 6학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번거롭더라도 저렇게 바께스 하나씩을 아이들에게 각각 할당해 주고 나면 휴지를 안주울 수가 없는 것이고, 이러한 수고로움의 경험을 통해서 ‘휴지를 버리면 안 됨'의 사실을 몸에 베이게 할 수 있는 듯하다.
아마 그것이 바로 이곳 학교에서 떨어진 휴지를 거의 보지 못한 이유인 듯하다.
[가게에 고양이 한 마리가 느긋하게 폼을 잡고 있기에 귀여워서 쓰다듬어 줬더니, 그 가게주인 아저씨로 보이는 분이 “그렇게 하지 말라.”며 상당히 위압적이고도 무뚝뚝하게 말씀하신다. ... 이래서 참 도시가 싫다. 바닥에 드러누운 고양이도 쓰다듬지 못하는 현실이라니...]
오후에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 모 초등학교 앞으로 향했다. 학교 앞은 도로였고 땡볕을 피할 가로수도 없어서 학교 안쪽에 있는 나무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그러니 경비아저씨가 오더니, ‘왜왔냐?’고 물으신다. ‘이런 이런 캠페인 하러 왔다.’고 말씀 드리니, 학교 안에서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면서 나가라고 하신다.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권한이 있는 이가 나가라고 하기에 군말 없이 짐을 꾸려 땡볕으로 나가는데, 경비아저씨가 덧붙인다. ‘야속하게여기겠지만, 학교 안에는 CCTV도 설치되고, 외부인이 못 오게 되어있다.’고.
물론 교장선생님의 닦달이 그리 만든 면이 없지 않겠지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그리 결벽 적으로 대응 하는 경비 아저씨의 모습은 여느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 자신은 둥글이를 쫓아 보낸 것을 ‘학교의 시스템’으로 책임을 돌리지만, 그 자신 역시 그 시스템의 일부로 작용한 것이다. 이 땡볕에 초등학교안쪽 나무그늘 아래에서도 잠시 쉬어가지 못하는 인심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 이럴 때에는 학교 경비아저씨로 취직하고 싶어진다.ㅠㅜ]
짐을 꾸려 나와 그늘 없는 초등학교 정문 앞에 땡볕에 마주해 서 있으려니 숨이 턱턱 막힌다. 아니나 다를까 짐을 내려놓다가 전단지 박스를 바닥에 붙어 있던 껌 위에 올려놓기 까지 했다. 땡볕에 말랑말랑 거리던 껌은 이때다 하면서 전단지와 전단지를 묶은 끈에 달라붙어 피자 조각 베어 물때 늘어지는 섬유질을 길게 뽑아낸다.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했던 터에 괜히 전단지 나눠주다가 또 경비아저씨와 실랑이를 할까 해서 부득이 인근의 덕성초등학교로 옮겨 위치했다.
북구 - 덕성초등학교 캠페인 (6월 17일 오후) 땡볕이 살을 따갑게 했지만, 이곳 캠페인은 즐거움이 함께 했다.
우선 하교 지도하는 여성분 두 분이 사려 깊고 친절해서 둥글이 전단지를 읽어본 후에 아이들에게 ‘잘 읽어봐’라고 당부까지 해주셨다. 이로써 하교지도하시는 분들과 감정상할 일 없음을 확인해 우선 안도하게 되었다.
... 그러고 보니 둥글이 처지가 참 스스로 봐도 안쓰럽다. 불량식품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사기 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돈을 털고 자기 시간을 들여서 아이들이 좋은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늘 학교 앞에서 시비 걸리고 쫓겨날 생각으로 학교 앞에만 서면 신경이 곤두서야 하다니...
하여간 하교지도하시는 여사님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확인하며 아이들에게 “지구를 구하자!”면서 전단지를 나눠주는데,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에 재미가 쏠쏠하다.
한 아이는 받아든 전단지를 열심히 읽은 후에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질문한다. “... 근데요. 원래는 지구를 군대가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 ㅡㅠ”
어떤 아이는 “지구를 구하자!”는 말에 “푸하!”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가고, 어떤 아이는 “지구~ 당연히 구해야죠.”라고 응수하고 지나간다.
어떤 아이는 전단지를 받아든 후에 “내일 포스터 만드는데에 써야지.”라고 하고 간다. 하여 그 후로 지나는 아이들에게 “내일 포스터 그림 밑그림용 전단지야~”라며 잘 간수할 것을 당부한다.
캠페인을 마무리하는 기분도 여간 좋은 것이 아니었다. 캠페인을 끝나고 아이들이 몇몇이 길바닥과 가게 앞에 쪽짝쪽짝 찢어서 던져버린 전단지리 조각을 줍고 있는데, 젊은 가게 아주머니 한분이 “제가 좀 있다가 쓸게요. 그냥 가세요.”라며 몇 번을 이야기 하신다.
사실 그러한 얘기 한마디 해주는 게 쉬울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하교 길에 전단지를 나눠 주다보면 인근 가게 아주머니들이 ‘아이들이 전단지를 바닥에 버리는 통에 청소할 일이 늘었음’을 푸념하면서 인상을 구기시는 모습을 한두 번 접한 게 아니었다. ‘끝나고 주어가겠다.’고 몇 번을 얘기를 해도 불편한 심기는 인상에 그대로 남곤 했다.
그런데 이분은 ‘자기가 줍겠다.’고 둥글이를 만류하는 것이다. 그렇게 배려하는 마음을 건넬 수 있음은 그분이 (인간성을 뻑뻑하게 만들어내는) ‘도심성’에 얼마나 저항을 해왔는지 그의 삶의 한 단편을 드러낸다.
활동을 끝내고 배낭을 꾸려 가면서 인사를 드리려 그 가게 앞으로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나그네가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을 살피시던 아주머니는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해 오시는 것이다. 젊기도 한 이유겠지만, 그 사려 깊은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근래 만난 여성 중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여성이었다.
캠페인 끝나고 야영 자리를 알아보려고 낙동강변으로 향한다. 낙동강변 둑 펜스에 현수막이 하나 붙어 있다.
[저들의 사고로는 촛불을 든 이들은 죄다 친북좌파인데, 자기들만이 국가를 대표하는 건전한 이들이다. 자기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은 죄다 빨갱이로 몰아붙여 ‘척결’을 외치는 그 대담무쌍함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이다. 과연 그들이 해내는 역할에 대해서 그들이 독점계약이라도 한 듯이 늘 들먹이는 ‘호국영령’이 기뻐할까? 그들은 ‘북’을 비난하지만, 바로 그러한 수준의 사고와 발상이 김정일과 한 치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낙동강 둑 아래로 내려가 보니 둔치에는 수많은 포크레인들이 습지를 헤집고 있다.
그리고 그 한쪽으로는 이 모든 습지파괴의 총지휘 역할을 하고 있을 사무실이 하나 서 있다.
[제길... 그냥 솔직히 ‘건설업자 먹여 살리기 위한 사업’이라고 간판을 세워 놓을 것이지, 저리 포크레인으로 강변을 헤집는 사업을 ‘생태하천 조성사업’ 으로 이름 붙여 놨다니. 하여간 이명박 정부에서 건설업자들 먹여 살리려고 추진해온 일련의 사업적 테제를 ‘녹색성장’이라고 이름 붙일 때부터 이러한 뻔뻔한 이름붙이기 행태는 계속 되어 온 듯 했다.]
한창 공사 중인 둔치 쪽으로 내려가서 현란한 ‘환경보호’ 구호가 적힌 텐트를 쳤다가는 아마 낙동강파괴자들로부터 직방으로 퇴장 명령을 받을 듯 했다. 하여 지하철과 고가도로가 십자로 만나는 강변 둑 위에 텐트를 쳤다.
그 왼쪽 아래는 산책객들이 오갔고, 그 오른쪽 아래로는 차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웬만한 소음은 참을 수 있었지만, 전후좌우 사방에서 소음의 공격이 이루어지는 탓에 이날은 귀마개를 하고 잠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낙동강 너머 동네의 야경 /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지하철이 움직이고 있다.]
강서구 - 대상초등학교 (6월 18일 오전) 학교 뒷문에서 전단지를 배포했다.
자그마한 학교이고 아이들도 많지 않아서 상당히 한가로웠다. 전단지를 몇 장 나눠주지도 않은 터~ 버리고 가는 아이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선생님 한분이 오셔서 ‘운동장 천지가 휴지다.’며 과장된 제스취어를 보이며 활동을 중지할 것을 요청하신다.
그의 눈에는 전단지를 꼼꼼히 읽는 아이들의 정신이 만들어낼 긍정적 작용은 보이지 않고 오직 바닥에 떨어진 휴지만 보이는 것이다. 도대체 청소부나 하셔야할 분이 왜 학교에 있는가?
휴지 몇 장 떨어질 수 있음의 부작용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아이들의 정신적 성장을 가로 막는 편견과 구습과 세태의 벽을 넘게 해주기 위해서 어른들은 그들에게 사고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온 둥글이... 그 둥글이가 그 ‘벽’을 넘기 위한 방법론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리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벽을 만드는 분이 오셔서 ‘그만 하라.’고 말씀을 하시니 참 몸 둘 바 모르겠다.
하여간 고개를 몇 번이고 조아려 끝나고 다 주어갈 것을 약속드리며 진정시켜 선생님을 들여보낸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냉철한 자기 성찰과 사회 현실에 대한 이해와 이러한 사회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고도의 실천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기존의 적응된 삶을 다른 각도로 살필 수 있는 ‘자극’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작’이 있어야 그에 대해서 ‘고뇌’하고 ‘사고를 재조합’하며, ‘목적’을 갖고 ‘열정’을 투입해 ‘실천’을 해냄으로 사회를 조금씩이라도 개선시킬 수 있는 힘이 뿜어져 나온다.]
캠페인을 끝냈지만, 전단지가 많이 남았다. 하여 다음 캠페인 행선지인 사상구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승객들을 대상으로 전단지를 배포했다.
한국인들의 특색 중의 하나로 지하철을 타면 특히나 과묵해지는 현상을 예전부터 느꼈었다. 그러한 이유로 전단지를 건네도 쳐다만 보고 반응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대할 수 있었다. 손앞에 가져다 줘도 손가락 딸각거리기를 거부하는 이들도 많았다. 전단지를 건넨 손이 무안해서 다시 회수하려고 하는 찰라, 그때까지 무뚝뚝하게 있던 손가락이 움찔거리면서 받으려고 작동을 한다. 하여 다시 건네면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번에는 안 받는다.
배낭까지 메고 열차 칸을 누비며 전단지를 나눠주려니 애로가 많았는데, 200여장을 나눠주고 나니 몸에는 땀이 범벅이 되어 있었고 심신의 피로가 상당했다.
게다가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철재 상가를 통해 사상도서관으로 향하는데... 도서관이 산위에 세워져 있다. 그곳까지 기어오를 걱정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터, 철공소 옆에 멍멍이가 하나 묶여 있다.
혹시나 덥석 달려들어 물 수도 있기에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갑자기 덥석 달려든다.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고 있는 터 철공소 문이 열리고 개 주인으로 보이는 분과 눈이 마주친다. 순간 뜨끔한 기분이다. 전날 고양이 쓰다듬어주다가 잔소리를 들었지 않은가... 하지만 개 주인 아저씨는 ‘씨익~’ 미소를 짓고 마신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철로 밑 통로를 지나는데, 참 품위 있는 낙서가 맘에 든다.]
사상구 - 모덕초등학교 (6월 18일 오후)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챙긴 전리품
이곳 모덕초등학교 앞의 캠페인을 준비하는 기분은 그야 말로 적군의 대대적인 공습을 대비해야하는 소수정예 부대의 심정이었다.
우선 토요일 오후 아이들을 맞으러온 주부들이 교문 밖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또한 토요일 하교시간은 전 학년이 같다. 이에 해방감에 환호하며 저 내리막길로 가속도가 붙어서 한꺼번에 쏟아져올 아이들을 대할 생각을 하니 아찔함이 밀려왔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전도활동까지 나와서 쌍립을 서야 했는데, 하교 지도하시는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가세해서 하교 직전의 교문 앞 번잡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12시 10여분이 되자 ‘수업종료를 알리는 비명소리’가 적진을 향한 결사대의 외침처럼 천지에 울려 퍼지며 아이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둥글이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쏟아져 내려오는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막대한 자본력?과 인력으로 무장한 교회의 흡입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활동 초반부터 둥글이는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에는 사탕이 붙어있거나,
쪽쪽 빨아먹는 작은 쭈쭈바가 매달려 있었다.
이에 반해 둥글이가 건네는 전단지는 지극히 초라했고 아이들의 관심을 끌 동인이 부족했다. 아이들 중에는 둥글이가 건네는 전단지에 혹시나 사탕이 붙어 있는지 앞뒤로 돌려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예닐곱명이 되는 교회 전도자들 주변에는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고, 아이들은 전도자들이 강변하는 ‘우리 교회에 오면 얻는 이점’을 유심히 들어댔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눈빛은 흡사 ‘길거리에서도 이렇게 먹을 것을 주는데, 교회에 가면 얼마나 풍성한 먹을 꺼리가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기대감이었다.
고작 ‘지구를 지켜주세요.’라는 말로 때우며 전단지를 건네는 둥글이는 적들의 십자포화에 검은 연기를 뿜으며 침몰하는 함선의 처지였다. 다만 조금 일찍 교문 가장 앞자리를 선점한 혜택으로 200여장 남짓한 전단지를 어렵지 않게 모두 배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와서 ‘지구를 지켜주세요’라는 조끼를 입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나그네의 모습에 전도자들은 호감을 갖었는 듯싶었다. 전도하시는 여성분들이 전단지를 달라고 해서 하나씩 받아가던 것에 이어 목사님쯤으로 보이는 분이 다가와서 말을 거는 것이다.
그는 둥글이의 한 문장으로 압축한 간략한 활동사(‘배낭 메고 전국을 유랑 다니면서 캠페인을 하는데요.’)를 듣고는 ‘고생하신다.’며 독려해 주시더니 '줄 것이 있다'며 철수하는 둥글이의 발길을 돌리게 하여 내리막길에 세워둔 봉고차량까지 끌고 간다.
주께서는 둥글이가 교문 앞에서 아이들에게 캠페인 하는 것을 그의 종들을 통해서 시험케 하셨지만, 이를 극복한 둥글이에게 시련을 통과한 혜택을 주시려는 것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성경구절)’는 드디어 주님으로부터 그 수고의 보답을 받게 된 터였다.
유난히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둥글이를 이끌었기에 과연 '주님의 종'이 어떤 선물을 줄까 잔뜩 고대하던 터, 그는 한 꾸러미의 물품을 차에서 둥글이 품에 건넨다.
전기를 꼽아서 모기를 퇴치할 수 있는 에어메트였다. 이왕이면 길바닥 생활을 하는 둥글이가 이 장비를 쓸 수 있게 전기발전기도 하나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쨋튼 고개 숙여 감사한 마음을 표한 후에 에어메트 무게까지를 얹어서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의 수고는 조금 더 늘었다.
이에 둥글이는 주님께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여~ 주는 것은 좋지만 좀 쓸모 있는 것을 주옵소서! (절규) 왜 그들은 헌금은 받기 편한 돈으로 받으면서 줄때는 협찬 들어온 물품으로 대신하나이까~”
길 위의 안식의 어려움... 이날 오전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었다. 모자를 쓰지 않고 잠을 이룬 댓가?였다.
[둥글이가 잘 때 뒤집어 써야하는 빵모자. 턱 끈을 만들어 놓은 것은 혹시나 흘러내릴 경우를 대비했음이다.]
유랑을 시작한 이후로 둥글이는 체질의 변화가 생겨난 듯 했다. 아마 찬 바닥에서 많이 자다보니 몸에 한기가 들었던 듯한데, 그런 이유때문인지 저녁에 잘 때 빵모자를 쓰지 않으면 다음날 머리에 찬기가 들어와 다음날 하루 종일 두통으로 시달린다.
물론 한 겨울 텐트 생활에서야 당연히 모자를 씀으로 온기를 보존해야 했지만, 여름으로 치달으면서 ‘폭염주의보’까지 내리고 있는 지금 모자를 써야 함은 한편의 ‘저주’가 아닐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 꼴이 말이 아니고, 쓰고 자려면 답답하기에 전날에 시범적으로 모자를 벗고 잤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미묘한 자극이 머리에 시작된다.
여기에 아침 캠페인에, 지하철 캠페인에, 오후 캠페인까지 연달아 하고 나니, 통증이 점점 심해지려는 터였다. 이런 때는 두뇌를 식혀줌으로 통증이 증폭되는 신호를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캠페인이 끝난 직후 선물 받은 에어매트로 인한 충격? 까지 더해졌기에 신속히 대뇌 혈압을 다운 시켜야할 필요가 있었다. 하여 점심을 먹자마자 인근 정자에 가서 드러누웠다.
좋았다. 그늘 아래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딱 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만 이었다. 할아버지 한분이 정자를 공유하면서 이 평온은 깨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쉬로 오신 분이거니 했기에 상관 않고 둥글이는 수면으로의 깊은 여행을 카운트다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로 그 분이 쉬로 오신 분임은 확실했다. 그런데 가만히 쉬지를 않고 앉았다, 일어섰다, 몸을 돌려 비틀고 발꿈치를 마루로 찍고하면서 30초를 가만히 안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마룻바닥이 ‘통통’ 거리는 진동이 전해져오는 통에 두뇌회로가 끊어져 수면에 빠져들기 직전에 둥글이의 의식은 현실로 소환되기를 반복했다. 10여 차례 이러한 경험을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나무마루 아래 돌바닥으로 내려왔다.
다시 심신을 정제하고 눈을 지그시 감아 수면의 나라에 인접할 찰나... 그 할아버지의 친구로 보이는 분이 하나 와서 옆에 앉는다. 그리고 시작되는 대화는 마치 철천지원수가 만대에 걸친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 내기라도 하는 듯이 둥글이의 고막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나이 드신 분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가는귀를 먹어서 자신이 안 들리는 만큼 타인이 잘 들리도록 하기위한 나름의 배려? 인데, 이들은 심각히 가는귀를 드신 듯 했다.
현실과의 인연을 끊고 꿈나라를 향하려 하는 둥글이의 의도는 그들에 의해서 방해가 되었다. 이에 MP3를 꺼내서 귀에 꼽아봤지만, 부드러운 음악의 리듬을 삐집고 그들의 대화는 둥글이의 귀를 간질였다. 하여 시끄러운 음악으로 돌려 볼륨을 올렸더니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럼에도 그 노인양반들의 소리가 귀에 닿는 것이다.
벌떡 일어나서 짐을 꾸려 그들이 지배한 영역을 빠져나가는데, 건물을 돌아 50여 m 넘게 벗어났음에도, 그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여전히 동네를 울리고 있었다. 하여간 늙어서 가는 귀 먹지 않도록 젊은 시절부터 백방으로 노력하기를 다짐하며, 10여분을 걸어 당도한 도서관 아래 소공원 한쪽에 드러눕는다.
그리고 여기서도 ‘수면의 임무’에 실패 했다. 개미가 몸에 기어오르고 모기가 물어댔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둥글이는 더 이상의 낮잠노력을 포기하고 짐을 꾸려 도서관으로 향해 아픈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일지작업을 진행한다.
낮 동안의 잠시의 안식도 실패한 터여서, 저녁에 이 도심의 한가운데에서 또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 하고 안식할 곳을 찾을지 고심해야 했다. 두통이 심해진데다가 도서관 화장실에서 야영할 물까지 한통 받아 챙겨 넣어 짐이 무거워졌기에 심신의 피로는 더해갔다.
다행히 사상도서관 아래쪽에 ‘점자도서관’이 있었고, 이 도서관은 문이 닫혀져 있었다. 시설 관리하는 분들이 눈에 띄지 않았기에 그 옆 구석으로 들어가서 텐트를 쳐 올렸다.
텐트 안에 들어와서 여전한 두통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트북에 저장해 놓은 아름다운 여성들의 화보를 펼쳐 본다. 안타깝고 한편으로 고맙게도 그녀들은 빈민가 출신인지 하나 같이 헐벗고 있는데, 그녀들의 모습을 볼 때는 그래도 두통이 잠깐씩 개였다. ‘여성 화보가 두통을 방지한다.’는 지론은 둥글이 나름대로의 과학적 분석의 결과이다.
가령 점심을 먹으면 졸린 이유는 들어온 밥을 소화시키려고 ‘위’가 일을 하려다보니 피가 ‘위’로 쏠려서 상대적으로 머리에서 피가 빠져나간 이유에 의한다. 마찬가지로 머리가 아픈 이유는 뇌압이 가중되면서 혈관이 팽창되어 뇌신경을 건드린 때문이다. 하여 뇌로 쏠리는 피를 배꼽 아래의 하부로 내리면 통증이 덜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성 화보가 두통을 방지한다.’는 과학적인 원리인 것이다.(조만간 썬데이 서울 등의 학술잡지에 보고할 예정임.)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늘 간격이 있는 법. 30분을 넘게 화보를 보고 나니 오히려 머리가 더 아파져서 어쩔 수 없이 두통약 두 알을 털어 넣고 눈을 감았다.
지끈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제발 좀 머리 아픈 다음날’이 될 수 있도록, 마음속에 새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자, 뇌의 회로가 서서히 끊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힘겨운 하루가 마무리 되며 안식을 맞을 수 있었다.
내일은 좀 더 수월하게 안식하게 하소서~
6월 19일 (일요일) 일요일이어 캠페인이 없어 한가하게 도서관을 오가며 일지작업을 했다.
[점심에 밥을 사 먹고 돌아오는데, 남녀 한 쌍이 상가 앞쪽에서 날카로운 신경전 2부를 진행하고 있었다. 1부는 점심 먹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내려올 때 그 아래에서 하고 있었다. 하여간 남녀 간의 관계는 서로를 끌어들일 때는 요철(凹凸)과 같이 급격히 달라붙지만, 일단 반발력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아무리 맞붙이려고 해도 튀어나가는 희한한 특성을 한다.]
점심 먹고 쉴 곳을 찾다가 시멘트 공사가 한창중인 공사판 뒤쪽으로 찾아들어간다.
시멘트 가루와 낙엽이 범벅이 되어서 뒹굴고 있었는데, 한참 잠이 들었나 했더니 불어오는 바람이 시멘트 푸대를 싣고와 둥글이 몸을 타고 넘게 만들고 모기까지 물어대는 바람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했다.
전국 최대의 진입 경사로를 자랑하는 **도서관에 올라와서 등나무 아래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배낭에 붙어 딸려온 거시기 잎 하나를 발견한다.
하여간 자연은 만들기도 잘 만들어, 어찌 이리 부드러운 선과 은은한 색감을 가진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매년 만들고 버리고를 반복할까...
- 도서관의 결투 - 도서관 들어갔다가 특이한 상황을 접한다. 신문 읽는 코너에는 ‘신문 읽으실 분만 이용 하세요’라는 글귀가 붙은 탁자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중간에서 소설책을 올려놓고 읽고 있는 아저씨가 한분 계셨다.
사태는 6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분은 책 읽고 있는 분 앞에 서서는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으로 째려보는 것이다. 소설책을 읽고 있으신 분은 이를 감지하지 못했는데, 할아버지는 째려봐도 소설책 읽고 있으신 분의 반응이 없자, 신문꾸러미를 가지고 오시더니 탁자위에 ‘탁’하고 큰 소리나게 올려놓으신 후에 탁자를 자기 쪽으로 1m 가량 ‘지익~’ 끄셔서 신문을 펼치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이에 깜짝 놀란 소설책 읽고 있던 아저씨는 ‘왜 그러시냐?’고 물으셨고, 할아버지는 탁자위의 글귀(신문 읽으실 분만 이용하세요)를 두드리면서 ‘왜 여기서 책을 읽냐?’고 호통을 치시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그렇다고 그렇게 잡아당기면 되시냐?’와 ‘똑바로 해라’는 등의 힘겨루기가 10여합 오갔고, (주로 10대와 20대인)도서관 이용객들은 이 소란스러운 풍경에 집중했다.
‘신문 올려놓고 보는 곳에서 (감히)책을 올려놓고 보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의 예민함 역시 대도시가 성장시킨 신경증의 한 사례 일 텐데... 하여간 부산에 와서는 다른 곳에서 못 보던 사건들을 많이 본다.
- 저녁 야영 - 도서관 전산실이 오후 5시에 닫아서 일찌감치 전날 묵었던 ‘명당자리’인 점자도서관 옆 터로 이동해서 텐트를 치고 드러눕는다.
텐트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이 좀 따갑기는 했지만,
도서관에서 찬물 받아온 통을 껴안으니 열기가 좀 식혀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저 아래 펼쳐진 번잡한 인간세상의 소음을 들으며 텐트 안에서 팔다리 쭉 뻗고 있는 한가로움이 그간의 피로를 싹 가셔주는 듯하다.
그런데...
텐트 친 곳으로부터 10여 m 떨어진 도서관 지붕에서 까치 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 이 녀석들은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생물들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자기들 영역에 둥글이가 둥지를 틀어 놓으니 여간 심기가 불편하지 않은 듯싶었다.
둥글이가 이곳에 둥지를 틀어서 심기가 불편한 것은 까치만이 아니었다. 둥글이가 텐트를 친 곳에 다다르려면 난간을 하나 넘어야 했는데, 그 난간을 넘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둥글이 텐트를 보고 ‘에이씨~’하는 낭패의 소리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아마 담배를 태우러 왔던 고등학생들 같았는데, 5분 쯤 후에 같은 녀석들로 보이는 놈들이 아래층 난간에 쪼그려 앉아서 담배를 테우고 있었다.
하여간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둥글이 때문에 그 공간에 적응되어 있던 생물 생태의 교란이 상당한 듯하다.
[텐트 안에 빈둥빈둥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가 찢어진 텐트를 꿰맸다. 둥글이와 비바람을 뚫고 추위와 더위를 함께 하며 5년간 산전수전을 겼었던 3만 원짜리 텐트. 삭아서 방수가 안 됨은 물론이거니와 작은 압력에도 터지기 시작하는데 하여간 둥글이와 갈 때까지 가보자!]
[노트북 가방 안에서 5년간 시달렸던 지갑이 너털너털 하다. 헤지고, 찢어지고 난리가 아니다. 지갑을 펼치다가 명함, 주민증 등이 수도 없이 그 옆구리로 새서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냥 불편을 감수하고 썼었다. 족히 3년은 참아왔는데, 더는 안 되겠다!!!]
[역시 바늘의 힘은 위대하다! ... 참고로 남루한 둥글이의 지갑을 보고 지갑을 선물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분들은 둥글이 세상을 잘 못 읽고 있는 것이다. 둥글이가 원하는 것은 ‘새지갑’이 아니라, 여러분도 헤진 지갑을 쉽게 버리지 말고 반지 고리를 구입해서 수선하십사 하는 것이다. 유행에 맞게 최신디쟈인, 새제품을 몸에 걸치고 소유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지구의 죽음이 아니던가...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이제는 바느질을 유행시킬 때다!]
[저녁은 단백질 보충을 위해서 오징어 추가~]
6월 20일(월) 어째 전날 저녁 편히 잘 쉬었다 했다. 새벽부터 비가 떨어져 내린다.
때 이른 장마가 한편으로는 무더위를 막아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둥글이 발을 묶어 놓을까봐 염려스럽다. 다행히 이날 비는 새벽녘에 잠깐 오다 멈췄다.
[우체국에서 전단지 찾으러 갔는데, 직원이 잘 못 알고 얘기해 주는 바람에 우체국 두 곳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했고, 배낭 짊어지고 이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내려야 했다. 이는 다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계단 오르내림의 활동에는 항시 무릎 통증과 흘러나와 옷을 적시는 땀이 추가된다.]
오전부터 우체국 오가는 생고생에 난리가 아녀서 몸이 나른했는데, 도심 한가운데서 낮잠을 잘만한 곳도 없어서 머리 무거운 상태로 캠페인을 해야 했다.
부산진구 - 전포초등학교 캠페인 (6월 20일 오후) 학교에서 아이들이 빠져 나온다.
개중에는 둥글이가 건네는 전단지를 관심어린 시선으로 꼼꼼히 살피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종이를 받아 챙기더니, “종이를 나눠주는 것도 환경오염예요.”라고 비판하며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에 둥글이는 ‘그래 맞아 아저씨가 종이를 나눠주는 것도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분명하단다. 하지만, 이 내용을 잘 보고 너희들이 환경과 생태, 지구에 대한 관심과 실천을 이뤄낸다면 결과적으로 종이 한 장을 소비함으로 인해서 환경이 파괴되는 것보다 환경에는 득이 된단다.'라고 응수하고 싶었지만, 녀석이 그냥 ‘툭’ 뱉고 지나가는 바람에 설명을 해줄 수도 없었다. 이마에 핏발이 솟는다. ‘괘씸한 놈!’ㅠㅡ
[도심 한가운데에 아저씨들이 바둑 대국을 벌인 모습이 이채롭다.]
작품 명 : 쥐를 밟고 지나간 아이. 길 한편에 쥐새끼가 한 마리 깔아 뭉개진 것을 찍고 있는데, 그 앞을 아이 하나가 지난다. 무슨 사진을 찍고 있나 둥글이를 살피며 걷던 아이는 쥐의 사체를 밟은 후에 ‘물컹’하는 느낌에 뒤돌아보고 찝찝해 한다. 둥글이는 녀석에게 ‘야! 쥐 있다!’라고 주의를 줄 수 있었음에도 특종 사진을 얻기 위해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살다보면 죽은 쥐를 밟을 때도 있느니라.
많은 이들은 차바퀴에 쥐가 깔아뭉개진 모습을 끔찍하게 여길 것이다. 그나마 이 쥐는 (크기를 보아하건데) 명이 거의 다해가던 터에 비명횡사 한 듯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끔찍한 것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있다. 이 광대한 도심의 공간에 고작 쥐새끼 한 마리밖에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인간의 삶의 터전이 그들 수많은 동물의 생존 가능성 자체를 막고 있음을 얘기한다.
차 바퀴에 떡이 된 저 쥐 사채의 끔찍함 보다는, 인간 말고는 다른 생물들의 살수 없는 우리네 삶의 터전의 끔찍함이 더욱 가공할만한 것이다.
이날 저녁 연산역 주변에서 야영지를 찾기 위한 노력은 그야 말로 최악이었다. 부산의 중심가이자 주택가가 밀집한 지역에서 텐트 칠 곳을 찾는 심정은 발가락으로 젓가락질을 해서 콩자반을 집어 먹는 심정이었다.
[위성지도 캡쳐]
한 치의 공간도 조각을 내고 구획을 나눠 ‘내 것 네 것’에 대한 경계를 분명해서 풀 한 포기 자라날 여유도 없게 만들어낸 도심의 공간. 이미 인구 포화 상태를 넘어서 사람들이 이중 삼중으로 과포화 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곳.
여유로운 생존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이미 심리적인 공간지각이 짓눌려진 상태에 있기에 자그마한 공간이라도 찾아내어 제 것을 만들려는 열망은 병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이들 공간 결핍증을 가진 이들 앞에 작은 공간이 보일라 치면 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숨 막히는 쟁탈전을 벌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누군가 자신들의 공간에 한발이라도 들여 놓았을 때 민감성을 보이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여 이곳은 나그네 둥글이에게 텐트 칠 공간은커녕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한숨 돌릴 공간도 찾기 힘든 곳으로 다가왔다.
더군다나 전단지 꾸러미까지 들어서 팔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 된 상태로 한 시간 반 가량을 텐트 칠 곳을 찾아서 둘러봤지만,
도저히 공간을 찾을 수 없어서 땀에 흠뻑 젖은 지친 몸을 잠시 쉬이려 지하철역을 찾아 들어간다.
그렇게 두어 시간 쉬다가 오후 아홉시 경이 되어 다시 밖으로 나온다. 세상이 어둑해지니 오히려 텐트 칠 공간을 찾을 것 같은 자신감? 이 밀려온다.
사실 이곳 도심의 공간은 ‘절대공간부족’의 이유 때문에 야영을 하기 힘든 이유가 있지만, 이방인을 배척하는 시선이 탄환이 되어서 둥글이의 뇌리에 꽂히는 사실도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이다. 야영할 곳을 찾아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 둥글이를 수상하게 여겨 쫓는 눈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눈빛은 단순히 둥글이를 감시하는 눈이 아니라, ‘이곳을 떠나라’는 암묵적인 경고가 섞인 배척의 눈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하나같이 ‘공간에 대한 결핍증’을 가진 이들이라, 둥글이가 여유 공간에 텐트를 쳐올렸다가는 그대로 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다. 하여 둥글이는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공간을 탐내는 이’로서 십자포화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이러한 시야가 거둬들여지는 이유로 야영지를 찾아 나서기가 조금 수월하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이거다!’하는 쾌재가 터졌다. 다음날 캠페인을 해야 할 ‘연제초등학교’였다. 학교 안쪽에는 기십 여명의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야영의 최적 공간을 물색하기 위해서 노숙으로 다져진 예리한 시야로 학교를 스캔 했다. 그러다가 급기야 학교식당 뒤편에서 야영 최적지를 발견했다.
옆에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었고, 바닥은 음식물 찌꺼기를 쓸어내린 물이 아직 마르지 않아서 흥건했지만, 이정도의 공간도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텐트를 치고 있는 터에 오토바이 하나가 짬통 쪽으로 직진해 온다. 처음에는 수위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인근의 주민이었다. 짬을 버리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지옥에 떨어졌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는 친절하게도 “아이고. 이렇게 냄새나는 곳에 텐트를 치세요. 조금 위쪽으로 치시죠.”하며 배려의 말씀까지 건네는 것이다. 감사함에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드렸는데, 어찌 그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왔던 후문으로 가지 않고 수위실이 있는 쪽으로 가신다.
그는 정말로 친절이 몸에 배인 이인 듯 했다. 그 특유의 친절함과 사려 깊음이 이 사실을 수위아저씨에게 알려 야간경비에 도움을 줘야한다고 여기신 듯 했다. 그 직후 수위아저씨가 손전등을 흔들며 다가오신다. 사형집행관을 접하는 사형수가 이런 심정일까?
물론 둥글이 일지를 읽어온 이들은 이후의 사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둥글이는 두 말없이 풀었던 짐을 다시 꾸려서 쫓겨나야 했다.
그런데 특이한 일은 쫓겨나면서 이렇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수위아저씨는 ‘이곳은 9시면 앞뒤로 문이 잠기고 신분이 확인되는 이들도 들어올 수 없기에 여기 계시면 안 된다’고 나가줄 것을 당부하시는데, 자신은 ‘이곳 녹을 먹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시고 몇 번이고 ‘죄송한 마음’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둥글이는 유랑 중에 텐트를 치고 자다가 수위 아저씨 등에게 걸려서 쫓겨났던 일이 많고 그 대부분에 기분이 몹시 상했었다. 기분이 상한 것은 단순히 ‘잘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잠자리가 없어서 땅바닥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이들을 대하는 그들이 보인 차갑고 건조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방인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잠을 자든 설치든. 오직 자기 소유의 공간에 이방인이 들어온 것 자체가 못마땅한 것이었다. 그들 존재의 유일한 이유는 ‘이물질 배척’ 이었던 것이다. 그 외의 그 어떤 한 치의 이해와 배려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잠자리를 찾아서 또 다시 정처 없이 나서는 젊은이에게 ‘어디 다른 곳에서라도 잘 곳을 잘 찾아야 할 텐데...’라는 걱정의 말 한마디 해주지 않으셨던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나가라!’는 말 밖에 없었다.
잠자리를 제공해주는지 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이방인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세상살이를 더더욱 슬프게 하는지라 박대 받는 둥글이의 심정은 찹찹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 수위아저씨는 수고롭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해 주심으로 둥글이가 돌아가야 할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고, 참으로 사려 깊은 ‘사과의 말씀’까지 해주셨던 것이다. 그렇기에 둥글이는 짐을 꾸려 학교를 나서면서도 흐뭇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흐뭇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후 네 시부터 찾아 돌아다니며 어렵사리 찾았던 유일한 야영지에서 야영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처하자 앞길이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최후의 카드를 꺼내야만 했다.
[궁극의 야영지.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서...]
지하철 역 안에 들어와서 ‘노숙자’의 시야로 지하철 공간을 보니 다양한 ‘기회’가 둥글이에게 손짓을 한다.
장애인용 화장실인데, 셔터 문을 닫을 수 있었다. 하여 산길에서 개울을 만난 기쁨으로 2주일간 몸에 쩔은 땀을 씻어낼 수 있었다. 혹자는 둥글이가 장애인용 화장실을 쓴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겠지만, 둥글이 스스로가 제정신이 아님(정신장애?)은 과거에도 밝힌 적이 있다.
▶(참고 글) 내가 제정신이라니!
하여간 그곳에서 몸을 개운히 씻고 나서, 여전히 땀에 쩔은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지하철 통로 한쪽에 텐트를 세웠다.
이날은 특히나 ‘잠자리를 바꾸면 안 된다.’는 선인들의 말씀이 퍼뜩 떠오르는 날이었다. 그간 정화조 위가 되었건, 짬통 뒤가 되었건, 도로 옆이 되었건, 풀숲이 되었건 하여간 ‘지상’에서 텐트를 치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지하에 텐트를 치고 누우니 지상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지상으로 지나는 차량의 소리가 지하 통로에 울려 증폭되는 통에 머리가 붕~ 떠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간간히 지나는 사람들이 텐트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지는 것을 느꼈고, 밤새도록 밝은 조명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쉴 자리를 얻을 수 있었음이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하루였다.
[잠자기는 불편하지만 모기 들어오면 바로 포획할 수 있는 지하도 조명] · 예전부터 왜 노숙하시는 분들이 지하철역을 찾아들어가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오늘은 그 이유를 체현한 날이었다. 지하철역은 거대광역도시에 만들어져 있는 시설인데, 이러한 도시민들의 ‘공간에 대한 집착’과 ‘이방인을 홀대하는 시선’은 가진 것 없고 마음의 상처로 신음하는 이들을 빨아들이는 흡입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하철역에는 그들이 찾아드는 것이다. 둥글이가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노숙자로 보이시는 할아버지 한분이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비에 흠뻑 젖은 비옷을 흥건한 물걸레로 닦아 내신다. 세상살이의 아픔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 이 할아버지는 자기 눈에만 보이는 그 어떤 상흔을 털어내시려는 듯,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무의미한 일을 끊임없이 하고 계셨다.]
* 도심 속 여행자 둥글이 사람이 없는 외지를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은 그러한 경험 속에서 주로 ‘나’의 깊은 속내를 밝힐 어떤 근거를 얻어 ‘자기 성찰’의 방법을 자랑스레 내 놓곤 한다. 하지만 둥글이는 이러한 방법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회현실로부터 ‘단절된 나’는 사회현실과 역동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어떤 작용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늘 겉돌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조리와 불의가 만연한 세상을 보면서 아무런 사회적 실천도 하지 않고,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언사만 되풀이해도(가령 ‘모든 게 사랑이다.’ ‘변화시키려 말고 현실에 감사하라.’등의 말)해도 아무런 모순도 못 느낄 정도로 ‘황당’하기 때문이다.
하여 둥글이는 사람들이 밀집한 도심의 한가운데를 여행하는 길을 택했다.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체험하면서 ‘그들 속에 존재하는 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성장한 ‘나’는 세상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킬 작용점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을 충분히 무르익게 만들 수만 있다면, 나의 성장 자체가 세상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삶이 된다.
6월 21일 새벽 한 시경에 지하철역 안쪽에 셔터가 내려갔다가 새벽 다섯 시 경에 다시 셔터가 올라갔다. 다양한 번잡함 속에 서너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짐을 꾸린다.
지하철역에서 하루를 묵은 ‘부작용’이 조금 있었다. 우선 이곳은 여느 길바닥과 같지 않기에 ‘볼일’을 보기가 어려웠다. 풀숲에서 야영을 할 때는 텐트 열고 그냥 싸면 되지만, 이곳은 그게 불가능했다. 텐트랑 짐을 그대로 놔두고 저 멀리 화장실까지 왔다 갔다 하기도 그렇고 해서 배낭을 꾸려 자리를 털기 전까지 참아야 했다. 뭐 하기야 둥글이 조카의 경우에는 2박 3일 간 오줌을 참았던 전력이 있을 정도로 둥글이 가문의 ‘피’속에는 방광을 조절하는 특유의 힘이 잠재해 있기는 하다만...
또 한 가지의 부작용은 아침을 먹고 난 후에 배가 부글부글 끓었다는 것이다. 아마 탈이 난 듯싶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을 불려 먹는데, 전날에 불려놨던 쌀이 고온으로 살짝 쉬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철 역 돌바닥에 이 쌀 쉰 물을 버리고 새 물로 갈아서 먹을 수는 없어서 쉰대로 그냥 먹었더니 캠페인 하는 내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가끔 쌀 쉰물을 먹는 것은 위건강에 좋다.]
하여간 그렇게 지하철역의 노숙을 끝내고 계단 위로 올라가는데, 태양이 떠오른 모습에 전의가 상실된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둥글이의 살을 태울 것인가!
연제구 - 연산초등학교 캠페인(6월 21일 오전) 교문 안쪽 그늘에 들어가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싶은 마음의 간절했다. 태양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히 선생님들에게 혼날 우려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교문 앞에 나와 땡볕에 맞서며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전단지를 건넨다.
그렇게 햇살에 살이 구워지는 냄새를 맡으며 캠페인을 하는데 재미난 일이 생겨났다. 꼬마 하나가 다가오더니 ‘전단지를 몇 장 더 달라.’더니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잠깐 하고 말겠거니 했는데, 아이들 등교가 끝날 때까지 계속 옆에서 도와준다. 물론 이러한 활동을 처음 해볼 터이기에 녀석은 전단지를 건네는 아이들에게 따스한 시선도 별다른 말도 건네지 않고, ‘안사면 죽어!’라는 표정으로 전단지만을 불쑥 건넬 뿐이었다. 이를 대하는 아이들은 상당수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곤 했지만, 옆에서 활동을 도와주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학교에서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 도와주기’ 활동 같은 것을 장려한단다. 하여 둥글이가 땡볕에 고생하고 있는 듯이 보이니 와서 도움을 준 것이란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을 담는 그릇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그렇게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 도와주기’ 활동을 장려할 정도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학교여서 그런지 선생님들도 교문 앞에서 전단지 나눠주는 사람을 보고, 하나같이 따스한 모습으로 지나가셨고, 수위 아저씨도 전단지 나눠주는 것에 대해서 하등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러한 학교의 분위기에 의해서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아이들이 받아든 전단지를 바닥에 버리는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날은 더웠지만, 기분 좋게 활동을 마치고 철수한다.
[도서관 찾아다니기가 쉽지 않아서 지하철 물만골역 한쪽 편 콘센트에 코드를 꼽고 앉아서 일지 작업을 해댄다.]
오후 캠페인을 위해서 수영구 광남초등학교로 향하는 길. 내리막길 상가 한편으로 전기를 꼽아야만 물이 흐르는 이명박식 개천이 눈에 들어온다.
이날은 코드를 뽑아 놨는 듯싶다.
그 내리막길 너머로 동해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바다에 거대한 교각에 다리가 걸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다리는 인구 300만의 욕망이 집적된 도시의 힘을 보여주는 (전날 두 명이 그 위에서 자살을 했다는) 수영구에서 해운대구를 잇는 총연장 7km의 ‘광안대교’였다.
[광안대교를 보며 평화를 기원하는 낮잠을 자고...]
수영구 - 광남초등학교 캠페인(6월 21일 오후) 광남 초등학교를 찾아가는 길에서는 ‘절대 친절’능력을 가진 아저씨를 또 한분 만났다. 이 아저씨는 얼마나 친절했던지 적당하게 방향을 알려주지 않으셨다. 둥글이가 혹시나 귀찮아 할까봐 ‘그 아래쪽에서 다시 한 번 길을 물어가야 하는’는 번거로움을 피하게 만드셨다. 지름길을 찾아 가다가 만에 하나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는 수고도 덜게 만들어 주셨다. 대신 자신의 집 방향으로 둥글이를 끌고 고갯길을 넘게 만든 후에 학교를 삥돌아서 교문 앞에 당도하는 ‘멀지만 확실한 길’을 알려 주셨다. 하여간 부산에 친절한 분들 많다.
[편견이 없기에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을 신나게 뛰어노는 에너지가 솟는 아이들로 운동장은 분주하고...]
[하교하는 아이들은 둥글이를 향해 전진해 오는데...]
“지구가 죽어가고 있어. 지구를 구하자!”라는 말과 함께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는데, 1, 2학년쯤으로 보이는 사내 아이 하나가 전단지를 보고 나더니 둥글이를 향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지구가 죽어 가면 어떻게 해요?” 어른들은 ‘지구가 죽어가는 현실’을 조소꺼리로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데, 아이가 하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오니 갑작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음... 여길 봐봐. 새가 삶은 계란을 낳으면 그 새가 살겠니 못살겠니?” “못살아요.” “그리고... 해물탕이 뭔지 알아?” “네” “바다가 뜨거워져서 해물탕이 되면 고기들은 어떻게 되지?” “죽어요.”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이야기에 아이는 집중해서 듣는다. 하여간 어른에게 백날 천날 설명해 주며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낫다니깐... 다만 지금 당장 그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아서 그렇지...
캠페인을 끝내고 돌아가는데, 저 멀리 비키니도 입지 않고 모래사장을 거니는 예의 없는 여인들이 상당하다는 해운대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날 캠페인을 위해서 동구로 이동했다. 고가도로를 넘어 아래쪽으로 펼쳐진 자잘한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는데, 고단함과 살가움이 묘하게 어우러진 우리네 인생의 향기가 풍겨난다.
지도를 살펴보니 저녁에 야영을 할 만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자성대공원’ 밖에 눈에 띄지 않았다.
자성대 공원 '자성대'란 이름은 부산진성을 모성이라 부르고 이 성을 자성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산 정상에 자성을 만들고 장대로 사용하였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는데, 하여간 조선시대 때부터 유명한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자성대 공원 안쪽의 적당한 은폐 엄폐가 되는 공간에 텐트를 치기 위해 장소를 알아보려 이리 저리 기웃거리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저 녀석 뭔가 피해를 줄 녀석이 아닌가?’하는 표정으로 뒤를 살살 따르다가 둥글이가 쳐다보면 못 본체 시선을 피하며 방향을 바꾸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폭이 2m도 안 되는 자성대 공원 등산로를 따라 걸으며 텐트 칠 곳을 찾는데, 기 싸움 하려고 그 좁은 길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는 4가지 고등학생 한 녀석 또한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쓰러운 것은 그 할아버지에게 한마디 쏟아 낼 뻔 하고, 그 고등학생에 맞서 기싸움을 할 뻔 했던 둥글이 자신이었다.
몸을 짓누르는 배낭과 묵을 공간 없이 떠돌아야함의 황망함, 유랑자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정착민들과의 경험은 둥글이도 모르는 ‘야성’을 이리 솟구치게 하곤 한다. 이 내면의 미친개를 잘 다스리지는 일이 둥글이 유랑의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이리라.
천신만고 끝에 최적의 야영장소로 최영장군의 사당 뒤편을 찾아 들어갔다.
바로 20여 미터 인근에 암자가 있었고, 산책객들이 오가다가 발견해서 공원관리인에게 신고했다가는 직방으로 퇴출될만한 ‘신성한’ 장소이기에 조신한 마음으로 텐트를 치고 들어가서 운동화 발에 밟혀도 움찔하지 않는 죽은 쥐의 모습으로 있어야 했다.
텐트를 치고 들어가서 안에 들어온 모기 몇 마리를 때려잡기 위해서 희미한 후뢰쉬 불빛 아래 10분 이상을 헛수고를 하고 있으려니, 고려의 충신 최영장군도 800여 년 전 이즈음의 계절에 모기와 고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든다.
오직 고려에 대한 충성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성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야 했던 지조 굳고 청렴결백한 최영장군. 그도 윙윙거리는 모기가 뺨에 달라붙으면 볼퉁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을 것이고, 불규칙바운드로 4차원 공간을 누비는 모기를 잡기 위해서 양손을 허공에 허우적 거려댔을 것이다.
6월 22일 지나는 등산객에게 들켜서 관리자에게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대단히 주의를 했던 자성대 공원에서의 밤. 그 밤을 보내고 새벽이 밝아오면서 둥글이를 찾아온 불청객은 다름 아닌 비였다.
[비 내리는 와중에 짐을 꾸려, 비 떨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비를 맞으면 캠페인 행선지로 향하는 마음. 하루 이틀 야영의 추억이라면 유쾌히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5년간 그리 살아왔고 앞으로 5년을 그리 살아야 함의 현실에서는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골목 상가에도 비는 떨어져 내리는데,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인근의 남문 도매시장 문 열 때를 기다리는 것은 곤욕이었다.]
[길가에서 좌판 하시려고 나오신 듯 한 할머니로 보인다. 아마 ‘비오는 오늘은 어째 거리에 물건을 펼까?’하는 걱정의 마음으로 남의 가게 처마 아래서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비 떨어지는 풍경을 대하고 있다.]
동구 - 성남초등학교 캠페인(6월 22일 오전)
[다행히 캠페인을 하기 직전부터 비가 멈춘다. 성남초등학교 옆문에 배낭을 주차 시켜 놓고 아이들을 기다란다.]
[‘저 사람은 뭐지?’ 정도의 표정으로 쳐다보며 다가오는 아이들...]
[이날은 둥글이 활동의 든든한 지원자가 둘 나타났다. 하나는 여자아이고 하나는 남자아이였다. 교실로 들어가면서 전단지를 버리고 가는 아이들이 꾀나 있었는데, 이 두 아이들은 바닥에 버려진 전단지를 수거 해다가 ‘아저씨~ 이거요~’하고 건네는 것이다. 예닐곱 번을 그리 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운동장이 깔끔해져서 선생님들에게 잔소리 들을 걱정에 핏발 설 일이 없다보니 저절로 흥이 겨워졌다. 고마운 녀석들. 잠깐 스쳐가는 아이들이지만 둥글이 유랑의 동반자들~]
오후에는 어느 주민센터에 들였다가 참으로 부산에서나 겪을 수 있는 특이한 일을 경험했다. 이 사건의 전후는 부산동구청에 올린 글로 대신한다.
정신 번쩍 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배낭을 하나 메고 전국을 도보로 이동하면서 환경캠페인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 약간의 환경의식이라도 더 깨이게 할 수 있으면 하는 생각으로 2006년부터 전국 팔도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 1주 전에 이곳 부산에 왔고, 각 구를 돌면서 환경캠페인을 하는 도중 오늘 아침부터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어 여간 곤욕이 아니었습니다.
하여 비를 피할 곳을 찾는 중에 동구 [범일 2동 주민센터]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들어가서 민원인들 쉬는 의자에 앉아서 나름대로 여행 중에 쓰고 있는 일지 작업을 하면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둥글이가 앉아서 쉬었던 민원인들의 공간]
두어 시 경이 되어도 비가 그치지 않더군요. 앉아서 기다리려니 지치기도 하거니와 피곤해서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저를 깨우시는 것입니다.
아마 덕천 2동 동장님인 듯이 여겨졌습니다. 저는 사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저를 공무원이 깨웠다는 사실을 감지하고는 혹시나 쉴 수 있는 방을 권해주려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전국 각지를 돌다 보면 공무원들이 차대접, 음식대접은 물론이거니와 직접적인 후원까지 해주시고, 잠자리를 제공해주시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졸고 있는 저를 깨우시기에 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잠자리를 제공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잔뜩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시더군요.
“신경 쓰이거든요. 나갔으면 좋겠는데 예.’
시민 한명이 주민센터에 와서 비를 피해 쉬고 있는데, 이것이 신경이 쓰인다면 주민이 나가야 합니까, 아니면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공무원이 옷을 벗고 나가야 합니까?
제가 여행경비를 아끼려고 아침저녁으로 생쌀을 씹어 먹고 있는데, 그 생쌀에 부가된 간접세로 그러한 공무원 월급이 나간다는 것이 참 아까울 따름입니다.
업무시간 넘어서까지 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고, 통행을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시민 하나가 비를 피하기 위해서 한쪽에 앉아서 쉬는 것이 그리도 봐주기가 어려운 것인지요?
그 공무원은 마치 ‘주민센터’가 자신의 ‘성’이고 저를 ‘외부의 침입자’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 부산 동구의 공무원들의 사고로는 공무원은 왕이고, 시민들은 부하정도가 되는 것입니까?
저는 사실 이렇게 전근대적인 의식을 가진 공무원이 공무원답지 못한 행태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해 왔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늘 그곳 동장님으로 보이시는 분의 말을 듣고는 아무 말 않고 짐을 꾸려서 나갔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어서 그 당사자와는 이야기 나눌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5년 동안 전국을 배낭하나 메고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경험을 했지만, 주민센터에서 쫓겨나기는 생전 처음입니다. 하물며 일반 사기업 사무실(은행 등)에 들어가서 쉬어도 와서 커피를 건네고 수고의 말을 전하는 것이 사람 사는 사회의 인심인데, 비피하기 위해서 들어와 앉아서 졸고 있는 사람을 그렇게 박대를 하는 모습을 보니 참 세상살이가 뻑뻑함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저야 이삼일 더 있다가 부산 일정 끝나면 그냥 가면 그걸로 끝이지만, 부산 동구민들이 받아야할 행정서비스의 질이 이렇게 형편없음을 느끼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왜 시민들이 비싼 세금 내고 이렇게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아야 합니까!
이런 식의 행정서비스를 부산 동구에서는 계속 제공할 것인지요. 저는 좋게 좋게 끝내기를 바랍니다. 범일 2동 동사무소의 상급청으로서 ‘명품도시 재창소’를 표방하는 동구청에서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할만한 해명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군말 없이 이 사안을 끝내겠습니다.
[범일 2동 동사무소 전경]
좌우지간 피곤해서 꾸벅꾸벅 조는 사람을 장맛비 쏟아지는 곳으로 쫒아 내보내서 비 쫄딱 맞게 해줌으로 정신 번쩍 들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범일 2동 동사무소 장님께 전하며 글을 맺습니다.
[범일 2동 사무소에서 쫓겨나면서 접해야 했던 '비쏟아지는' 전경]
남구 - 성천초등학교 캠페인(6월 22일 오후) 원래는 성천초등학교 캠페인은 이곳 주민센터에 한쪽에 짐을 놓고, 전단지만 가지고 우산 쓰고 가서 캠페인을 한 후에 다시 돌아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급작스레 쫓겨나는 바람에 배낭을 멘 채 비를 쫄딱 맞으며 20여분 가량을 걸어 성천초등학교 앞에 서야 했다.
[이곳 부산은 유난히 산위에 세워 놓은 학교가 많았는데, 비까지 맞고 고갯길을 오르려니 이만저만 곤욕스럽지가 않았다. 원래는 이 학교 건물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가서 인증샷까지 한 장 찍고 캠페인 해야 했지만,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아서 그 경사로 입구 한쪽에 배낭을 세워 놓고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 아이들을 기다렸다.]
[전단지를 1차로 비닐로 싼 후에 2차로 모자를 덮고 아이들 내려올 때마다 조금씩 빼서 전단지를 나눠줘야 했는데, 쏟아지는 폭우에 위아래서 빗물이 스며드는 이유로 전단지가 젖어 들어갔다.]
[그나마 아이들이 이것을 받아가면서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니 빗속에 서서라도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기회에 감사할 따름이다.]
[비오는 날에 바닥에 버려진 전단지를 줍는 것은 곤욕이다. 비에 젖은 전단지를 손으로 주우려 하면 잡는 만큼만 똑똑 떨어져 나가기에 비오는 날에는 둘둘 말아서 뭉쳐야 한다.]
캠페인 끝나고는 역시나 30여분을 비를 맞으며 인근 지하철 역으로 찾아 들어간다. 저녁에 야영할 곳을 고민해야 했는데, 부산에서 안식을 취할 만한 곳으로 이틀 전 머물었던 물만골 역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비록 지나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소란스러움과 지하도가 연결되어 있는 계단 아래의 특유의 소음 탓에 서너 시간 밖에 잠을 청할 수 없는 야영지였지만, 유랑자가 부산에서 비를 피하면서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이곳 외의 곳을 봐둔 곳이 없었다.
다섯 시경에 이곳에 도착해서 한쪽에 젖은 짐을 펴서 말리며 일지 작업 등을 했다.
물론 공공의 공간에 이렇게 짐을 펴 말리는 난잡함을 둥글이가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변명하자면 이곳에는 사람들의 이동의 많지 않다는 점과 이곳 이외에는 텐트를 펴서 말릴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젖은 텐트 속에 들어가서 잠을 이뤄야 한다. 이 때문에 전투력이 감소하면 둥글이가 다음날 캠페인을 하는 효율이 떨어지게 되고 이것은 결국 지구의 손해가 된다. 따라서 둥글이는 대의??를 우선하는 마음으로 부득이 이곳에 텐트를 펴서 말린 것이기에 시비 거는 분들 없기를~
그렇게 짐을 펴 말리며 일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오후 일곱 시 반경에 이곳 역 관리를 하시는 분이 오신다. 지하철 역 공간에서 텐트 널어놓고 전기 꼽아서 노트북 쓰는 있는 것을 관리자분이 예쁘게 보아줄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다.
그는 전기 코드 꼽아서 쓰면 안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에 수긍하고 짐을 꾸리는 둥글이의 모습을 보며 호기심이 생기신 듯 했다. ‘무슨 활동을 하시냐?’, ‘어떻게 생활하시냐?’는 질문에 이어서 상당히 심도 깊은 ‘왜 이 활동을 하시냐?’는 등의 질문을 사려 깊게 하시는 것이다.
둥글이는 타인의 공간에서 쫓겨나거나 박대 받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적으로 너무 차갑고 건조하게 대하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세상에 대한 희망이 안보이기에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분께서는 ‘원칙’을 이야기하기는 하시되 사려 깊게 살펴주시는 모습을 보이셨던 것이고, 둥글이는 그것이 참 고맙게 마음에 다가왔다.
밤에는 계획대로 이곳 지하철의 셔터 문이 내려지는 바로 윗편 계단에 텐트를 쳤다.
텐트 밖으로 보이는 지하철 역 풍경이 한가롭다.
6월 23일 하여간 인간은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다. 하루 전날 이 자리에서 잤을 때는 지하세계가 만들어내는 생소한 잡음과 현광등 빛으로 잠을 이루기 힘들었는데, 이날은 그야 말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짐을 꾸려서 캠페인을 나선다.
캠페인 할 초등학교를 찾아서 복잡한 길을 따라 헤매는 중에 자갈치시장과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부산에 와서 고작 지나친 명소라는 곳이 이곳 두 곳 ‘입구 간판’이 세워진 곳이다.
중구 - 광일초등학교(6월 23일 오전) 길을 잘 못 들어서 한참을 헤매다가 아이들 등교시간이 넘어갈 것에 대한 조바심으로 택시를 타고 광일초등학교에 당도한다.
혹자는 이에 대해서 둥글이 ‘도보’유랑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 있겠지만, 한명의 아이들에게라도 생각의 기회를 더 줄 수 있다면 까짓것 순수성이 좀 훼손되는 것이 뭐 어떠랴~
이곳 등교지도하시는 분은 경비복장에 지휘봉까지 쥐고 계셔서 한편으로는 상당히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여 ‘환경캠페인 좀 하려고 하는데요.’라는 말을 건네기가 상당히 겸연쩍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둥글이에게 참 살갑게 말을 걸어주셨다. 뿐만 아니라 이분은 등교하는 아이들을 일일이 따스하게 맞으면서 농담도 건네고 하시는 것이다. 행정적인 수치로 계산을 할 수는 없을 뿐이지 이런 분들이 학교에 하나씩 있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다. 아이들의 심성은 그에 맞춰서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나 둘씩 밀려오는 아이들]
유쾌한 표정 + 휴지 안 버리는 아이들에 대한 캠페인을 끝내고, 경비아저씨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자리를 뜨려니 기분이 개운하다.
[중구 번화가의 상가에 인조 잔디가 깔려 있는데, 비둘기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인가 해서 콕콕 쪼아대다가 다시 뱉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참 측은하다.]
[이날은 아침부터 태양 빛이 따가웠는데, 반팔 입고 앉아 있어도 더운 날에 긴팔에 후드까지 두른 초인이 부산시 중심가를 활보한다.]
[그 며칠 후 비오는 날엔 지하도에서 우산을 쓰고가는 또 다른 초인을 접한다.]
쪼그려 앉아 쉴 수도 없는 곳 인근에 도서관이 없어서 남포동 지하상가로 들어갔다. 지하에 펼쳐진 통로 넓이만 20m가 넘는 이 광대한 공간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혹시나 통행객들에게 불편을 끼칠까 해서 쓰레기통 옆의 가장 하찮은 공간 기둥에 배낭을 풀어 놓은 후에 쪼그리고 앉아서 일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상가 경비아저씨가 오시더니 피곤이 가득한 모습으로 ‘상가에서 신고 들어온다.’며 그렇게 앉아 있지 말고 저리로 가라고 하신다. 쪼그려 앉아 있을 수도 없는 현실이라니... 하지만 한편으로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 이 작용을 가능케 하는 경제력을 갖고 있지 않은 이방인이 박대 받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리라.
많은 이들이 대도시 상가를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라고들 얘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구매할 의사나, 구매력을 가진 이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이다. 상가가 밀집된 곳에는 이를 서로 팔기 위한 무언의 경쟁과 이에 의한 압력이 상당하고 그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배척’하고자 하는 히스테리가 상당하다.
가령 여느 한적한 소도시 길 한편에 할머니들이 좌판을 깔아 놓고 장사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대도시 상가 한편에 좌판이 깔렸다간 그 할머니는 무수한 고초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실로~ 지금 우리가 흔히 접하는 생동감 넘치는 ‘깔끔’한 상가는 그러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추방행위가 고도화된 결과 빚어진 풍경인 것이다.
이러한 언 듯 보기에는 생동감 넘치는 도심의 상가 공간이 얼마나 야박한 공간인지는 혹여나 여러분이 상추 한 박스를 가져다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팔아보려는 실험을 함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대도시의 지하상가 한쪽에서 쪼그려 앉아서 쉴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러한 야박함의 한 단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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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영도구 캠페인을 위해 영도교를 넘는데, 그 왼쪽으로는 부산항이 펼쳐져 있었고, 그 오른쪽으로는 남포항이 있었다.
[그 오른편으로 보이던 남포항]
[항구 한쪽에 텐트를 말리며]
영도구 - 대평초등학교(6월 23일 오후)
이미 수업이 끝나서 학교 인근 문구점에서 해찰을 하고 있는 1, 2학년 아이들에게 전단지를 건네며, 대평초등학교 앞에 선다.
그런데 이곳의 이용자 수칙이 자못 씁쓸하다.
운동장에 골대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도 축구를 못하게 조치한 것으로 보였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축구도 못하게 만들어 놓은 이용자 수칙이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이뤄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다만 운동장이 작아 교무실 유리 깨질 것을 우려한 안전조치이기를 바란다.
여자아이 하나가 전단지를 받아들더니 그야 말로 뚫어지게 바라본다. 5분 넘게 그 자리에서서 전단지를 살피더니 다가와서 ‘저도 예전에 배운 적이 있어요.’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4,5학년 쯤 되는 줄 알았더니 1학년 이란다. 이 아이는 조숙하게도 ‘동생 주게 하나만 더 주세요.’라며 하나를 더 받아가기까지 한다. 이렇게 조숙하고 집중력 있는 1학년 아이는 또 처음이다.
그래 좀 너 같이 머리 좋고 집중력 있는 아이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구지킴이로 나서렴. 머리 좋고 능력 있는 놈들은 죄다 판검사, 정치인만 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이 나라에는 법과 제도와 정책은 난잡하게 많은데 사람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잖니...
본격적으로 5,6학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지구를 구하자.’며 전단지를 건네자, ‘킥킥’거리며 웃고 가는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다.
캠페인 끝내고는 ‘부산환경운동연합’으로 향했다.
부산 남부 쪽에 있는 6개 구에 나눠줄 전단지를 군산에서 이곳으로 보냈던 터였다. 둥글이는 부산환경운동연합을 전략병참기지로 사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안에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했음직한 신참 활동가로 보이는 여성분 세 명이 문 입구의 가장 하찮은 자리? 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 안쪽에 땡땡이 쳐도 들키지 않는 좀 더 깊은 곳에는 좀 더 관록이 있어 보이는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짐을 꾸려서 나가려고 하는데, 실무자들 두 분이 물이나 한잔 하고 가시라며 잡아 세워서 한 시간 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경상도 돌아다니며 접한 몇몇 환경단체들이 지극히 보수적인 시야로 환경문제에 일관하거나 사고가 발생한 상황여서 참 안타까웠었다. 하지만, 이분들과 말씀 나눠본 바에 의하면 부산환경운동연합은 건강한 듯해서 다행이었다.
물론 ‘지역적 정서’가 있어서 큰 목소리 내기가 어렵고, 독자적인 활동보다는 지역의 단체와 연대 속에서 나름의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한계가 있다고는 했지만, 인구 300만 지역의 시민단체로서 나름의 건강한 고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안 그래도 2주간 부산에서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느라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는데, 생기 넘치는 여성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단체의 건강성을 확인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둥글이가 부산에 살았으면 주저 않고 회원에 가입해서 사무실 놀로 오는 것을 생업보다 더 열심히 하게 만들었을 그 여성분들의 환송을 받으며 사무실을 떠난다.
다음날 아침 캠페인을 위해 서구 사하역에 당도해 저녁 야영지를 찾아 나선다. 위성지도를 통해서 ‘공터’가 있을만한 곳으로 낙점한 곳을 향해 걷는다. 그런데, 위성지도의 단점은 ‘위치’만 구분이 될 뿐 ‘고도’표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골목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언덕을 오르느라 땀이 수돗물 쏟아지든 흘러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노고에 대한 보람도 없이 위성지도를 통해서 쉴 곳이 있을만하다고 예상했던 곳에는 대형 공사판이 벌려져 있었다. 이에 난감해 하던 터 대형교회 뒤편에 주차장 자리가 있어서 텐트를 쳐 올린다.
다만 아쉬운 점은 주차장 소유주(교회)에게 걸려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주차되어 있던 포크레인 뒤편에 텐트를 끼워 맞추다 보니 좀 비좁았고, ‘부디 포크레인 운전기사가 후진하는 일이 없도록 하옵소서.’라며 신께 기도를 읊조려야 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좁은 공간에서 포크레인 후미 쇳덩이가 텐트를 밀어 붙이고 있었는데, 평소의 공간 감각대로 움직이다가 이곳에 머리를 세 번을 부딪쳐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반대쪽으로는 폭이 넓은 강? 이 흐르고 있어서 발도 씻고, 양칫물도 버리고, 작은 일도 볼 수 있었는데...
다행 중 불행으로 몸부듬 하다가 (야영 활동으로)오염된 강?에 신발이 빠졌다. ㅠㅡ
6월 25일 영 개운치 못하게 하루를 보냈다. 이날 묵었던 주차장은 언덕 위에 있는 곳이라 밤새 불어오는 바람에 텐트가 휘청거렸다. 이 때문에 머리 한쪽은 계속 깨여서 밤새 한숨도 못 이룬 듯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새벽에 비까지 떨어져 내렸다.
서구 - 사하초등학교(6월 24일 오전) 그런데 이날 역시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 교문 앞에 서니 비가 멈추는 것이다. 원래 새벽에는 비가 좀 내리다가도 아침나절에는 비가 안 내리는 기상의 특성이 있는 줄은 모르겠는데, 올 3월부터 캠페인 다니면서 이런 경험은 족히 10번은 한 듯하다. 하여간 날씨가 도와주는 관계로 부담 없이 학교 앞에 선다.
학교 앞에 서 있다가 괜히 선생님들과 번거로운 일이 생길 것도 걱정이 되고, 뒷문 쪽으로도 아이들이 많이 오갈 듯 한 지형이라 이날은 학교 뒷문으로 가서 섰다.
[아침 캠페인 중에는 비 안온다고 하늘을 칭찬 좀 했더니 그새 비가 떨어져 내린다. 간간히 비가 떨어지는 와중에 등교하는 아이들.]
[전단지를 받아가면서 유심히 살피는 아이들]
“얘들아. 지구가 죽어가고 있어 지구를 구하자!”하며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으니, 진지한 눈빛을 가진 아이 하나가 “지구 죽어가는 것 알아요.”라고 답변한다. “그래 그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해보자!” “네~”
어떤 아이는 “얘들아 지구가 죽어가고 있어~”라며 전단지를 건넸더니, “화성은 살아있어요.”라고 응수한다. 짜식 다큐 좀 봤구만~
이날 캠페인에서는 특이한 일이 생겨났다. 선생님 한분이 학교 안쪽에서 쪼르르 내려오시더니, ‘학부형이 신고했다.’고 하시는 것이다. 뒷문에서 캠페인을 하고 있으니 불안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둥글이 행색을 살피고 나뿐 짖을 하는 것 같지는 않기에 그냥 들어가셨다.
대도시에는 왜 이렇게 많은 예민함과 불안함이 이리 쉴 새 없이 발생하는 것인지... 몸에 조끼를 두르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에도 그리 불안해서 신고를 할 정도의 예민함이라... 왜 도심 인간의 삶은 이리 초조와 불안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인지...
서구 - 토성초등학교캠페인(6월 24일 오후) 부산광역시의 마지막 활동은 서구 - 토성초등학교에서 이루어졌다.
그간 2주간 부산광역시 내 17개 자치단체(1개 군 16개)를 오갔는데, 그 마지막 활동은 상당히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오후에 50mm 이상의 장맛비가 쏟아진다고 예보가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활동에 죽 쓸 일이 내심 걱정이었다.
그리고 실로 대기가 불안정하고 하늘은 구름이 가득 껴 있었다. 학교 건물위로 가득한 장마구름은 둥글이를 불안에 떨게 했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비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전단지를 받아가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피고...
부산에서의 캠페인을 마무리 하는 마지막 대여섯 장을 손에 쥔 감회는 시원섭섭함이다.
그렇게 별일 없이 이곳의 ‘캠페인’을 끝냈다. 아침저녁으로 여기저기를 오가며 캠페인 해대던 수고가 드디어 끝난 것이다. 물론 더욱 힘겨울 서울에서의 활동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몇 년 후의 수고이고, 대한민국 제 2의 대도시 부산에서의 캠페인을 마친 기분은 후련함이었다.
하지만 캠페인을 끝냈다고 부산의 일정이 끝낸 것은 아니었다. 이제 이곳 부산에서의 경험을 다시 되새겨 보면서 ‘둥글이의 경험’과 ‘둥글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의미’를 보다 깊숙이 살피며, 그 와중에 ‘둥글이라는 존재’를 재정립해야 하는 일지 작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에는 캠페인을 끝내고 뭣도 모르고 인근의 사하도서관까지 20여 분간 고갯길을 올랐다가 탈진할 지경에 이르렀었다. 오후 캠페인 활동을 끝내고 나서는 다시 그곳까지 오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여 토성역에서 전원을 꼽아서 노트북을 쓸 만한 곳을 기웃거리다가 ‘쉼터’를 하나 발견한다.
그 바로 반대편 약국에서 약을 조제 받는 고객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빈 공간이었다. 이 공간을 보니 갑자기 도심 속에 오아시스를 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조그마한 빈 공간이라도 생길라치면 어떻게든 생산의 공간을 채워 넣으려고 하는 이 대도시의 중심부에 자치단체에서 만든 것도 아닌, 민간 사업자가 만들어 놓은 ‘쉼터’라니... 사람들의 유동이 많아서 구둣방으로 내줘도 월세가 상당히 들어올 만한 공간을 그냥 저렇게 비워두고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하다니...
너무나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안에 들어가서 일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약국 직원 아가씨가 오더니 ‘나가달라.’고 한다. 기대를 했던 둥글이가 죄인이다. ㅠㅡ
배를 버리지 않는 선장 둥글이 이날 저녁 야영은 전날까지의 2주간에 걸친 시멘트 콘크리트 바닥의 답답함으로부터 탈피해서 그야 말로 오랜만에 싱그럽고 푹신푹신한 초록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다만 이곳 텐트를 친 곳(사하구 - 하단역 서쪽) 하구언 교차로 안쪽은 차량이 뺑돌아 가면서 웅성거리는 곳이다 보니 귀가 좀 간지럽기는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쏟아지는 장맛비였다. 저녁부터 간간히 내리던 비가 점차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이에 침수를 우려해서 텐트 주변에 물골까지 팠지만, 이것이 헛수고였음은 자다가 엉덩이가 척척해서 일어난 직후 알게 되었다.
텐트 안에 물이 흥건했다. 바닥에 괴인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텐트를 열어 보니 그야 말로 바다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둥글이 텐트는 그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배였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웬만한 선장들은 배를 버렸을 것이지만, 둥글이는 꿋꿋이 지켰다. 왜냐하면 둥글이에게는 갈아탈 여분의 배나 구호보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ㅠㅜ 둥글이 같이 가난한 선장은 자기가 탄 배와 함께 운명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새벽 한시에 텐트를 침수시키는 웅덩이 빗물을 퍼서 저 멀리로 부어보지만, 20분 넘게 그리 배수 작업을 해도 아무런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에라니 모르겠다.’라고 자포자기 하고 들어와서 그냥 누우려 했더니 이번에는 배수 작업 중에 들어온 모기 때문에 시달린다. 하지만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 젖은 장비들 속에서 젖은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젖은 침낭을 덮고 있으려니 어느새 잠이 새록새록 들었고, 부산에 온 후 가장 숙면을 취했다.
아침 까지 비가 쏟아져 내렸는데, 8시가 좀 넘으니 잠깐 비가 멈춘다. 후딱 짐을 챙겨 나와 인근의 산책로에 펼쳐 놓고 말린다.
바람도 불어와 장비에 가득한 물기를 하늘로 날려버리기에 밤새 빗물에 쩔었던 장비들이 차츰 건조하게 말라가는 찰나... 비가 약간씩 떨어져 내린다. ‘조금 오다 말겠지.’라고 오판을 하고 그렇게 놔뒀다가 장비가 다시 비에 흠뻑 젖은 직후에야 장비를 인근 굴다리 쪽으로 끌어 옮겼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빚어진 이날 6월 25일 둥글이는 이렇게 둥글이는 자신의 배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 한바탕 길바닥에서 전쟁을 치렀다.
이날은 하루 종일 지하철 역에 쪼그리고 앉아서 일지 작업을 했다. 그런데 오후가 넘어도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여덟시 좀 넘어 배고파서 쌩쌀불린 것을 씹어 먹으며 작업을 계속했다./ 쌀밥그릇 앞쪽의 베지밀과 떡은 지나는 아저씨 한분이 고생한다며 건네주신 것.
이날 아홉시 경이 되어서 어쩔수 없이 비를 맞으며 야영지로 봐뒀던 굴다리로 향했다. 폭풍 피해 갈만한 곳으로 이만한 곳이 없다.
이날 밤은 '노인과바다'를 연상시키는 드라마가 있었다. 강풍으로 휘청거리는 텐트가 넘어가지 않도록 밤새 부여잡고 사투를 했어야 함의 노고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는데... 이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다. 쿠궁~
부산의 활동을 마치며...
부산에서의 2주 동안 이곳 시민들의 ‘내 것’을 지키려는 예민성과 이방인을 대하면서 보이는 ‘불안’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만큼의 힘겨움이 따랐다. ‘도심’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인간의 심성을 메마르게 만들어내는지 어떻게 그의 자아를 위축시키게 만들어내는지의 이유를 조금 더 보게 되었고, 그 반면 도심성에 저항해서 자기를 지켜내려고 하는 몇몇의 사려 깊은 모습도 접할 수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산이 거침없이 파헤쳐져 그 중턱에 콘크리트가 부어지고 도로가 닦여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게 세워지는 것이 부산의 흔한 풍경이다. 그 풍경만큼이나 부산은 개발 내지는 발전에 목말라 있는 이들의 욕심이 이를 막아서는 모든 것을 짓밟고 성장하는 욕망의 성전이다. 그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이들은 신이 되어서 만인의 경배를 받고 전혀 그럴 능력이 없는 둥글이 같은 이들은 철저히 배척받고 무시당하는 가진 자들이 대우받는 성전.
이곳 부산에서 둥글이는 장마를 만나고, 무수한 고갯길과 사투해야 했으며, 차량을 비롯한 도시가 만들어내는 소음에 숙면을 방해 받아야 했음에 노고가 상당했다. 하지만, 누군가 부산을 유랑한 소회를 한 마디로 해보라고 한다면, “부산은 둥글이를 수고시킨 만큼 둥글이를 성장시킨 ‘다양한 자극’이 있었던 곳.”이라고 말하리라.
이렇게 대한민국 제 2의 거대도시 부산에서의 활동을 맺는다.
--- 2011년 6월 25일 - 부산광역시에서... |
첫댓글 둥굴이세상... 전국순례하시는 둥글이님의 여행기,,, 부산편이네요. 아시는분 아실텐데... 스크랩. 도시에서는 이런가?? 순례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싶고요.
스크롤의 압박을 딛고 전부 읽었습니다. 다른건 둘째치고 몸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혹시라도 생각날 때 1-2만원이라도 총알(?) 후원하시면 서로 좋을 것 같아요. 홈피에 계좌 번호 있지요.^^
잽싸게~ 딱! 순발력짱^^
정기후원까지는 힘들더라도 총알후원 부담없이 괜챤겠네요.
물론 지금 뭐하시나~ 관심있게 봐주는것도 큰 지지지원이겠지요.
,,, 후원할때 늘 고민되는게 고작 이정도 후원가지고 뭔 도움이나 되랴 하는 주저함이더군요. 좋은일에 후원하면서도 쑥스럼이 있거든요. 자유로운 기부문화 후원문화, 도네이션(donation)!! 자연스럽게 정착되길 바래봅니다.
생각난김에 지금 한방
동글이님 힘내시라고...
둥글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