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퍼뜨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는 벼룩의 간을 빼먹는 법을 아느냐?"
"선생님, 어떻게 벼룩의 간을 빼먹습니까?
"벼룩을 놀라게 해서 간이 콩알만 해질 때 빼먹으면 된다."
예수님이 이런 유머러스한 말을 하셨다면 믿겠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수님은 웃지도 않고 미소도 없고 피곤한 고뇌로 가득 찬 모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철학자 엘톤츄르블러드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을 분석하여, 예리한 풍자와 위트를 던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웃으시고 농담도 하시는 새로운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한 번은 그가 마태복음 7장을 소리 내서 읽고 있는데, 예수님이 '눈 속의 들보'를 말씀하시는 대목에서 자신의 어린 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때 엘몬은 '아, 이 구절이 웃음을 자아내는 구절이구나!' 라고 깨달았고, 이를 계기로 그리스도의 유머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태복음 7장 6절을 보면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진주와 돼지를 연결해 생각해 보라. 말도 안 되는 이 연결은 우리에게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리스도의 유머는 계속된다. 예수님은 당시 교만하고 오만한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지도자들에 대해 생생하고 유머러스한 풍자와 위트로 급소를 찌르셨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를 삼키는 자,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죽은 뼈들로 가득 찬 회칠한 무덤들, 소경을 인도하려는 소경들,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부는 듯 과시하는 자들···.
예수님이 이런 말씀들을 하셨을 때,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속시원해하며 씩 웃었을 것이다. 또한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라는 말씀을 듣고, 당시 땅을 경작하던 사람들은 '그렇지, 그렇지' 하며 웃음이 절로 났을 것이다.
상상해보자. 예수님이 이 유머러스한 말씀에 교만한 종교 지도자들은 붉으락푸르락했을 것이고, 고통받던 사람들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 듯 시원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 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 리라 마 7:3,5
사람의 눈에 들보가 박혀 있는 우스운 모습을 떠올리며 청중들은 웃음도 나오고 양심도 뜨끔하며, 웃을까 울까 망설였을 것이다.
이같이 예수님은 말놀이와 아이러니와 풍자의 대가셨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야기, 짧은 격언, 대화, 논쟁 등에는 수많은 유머가 섞여 있다.
엘톤 츄르블러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유머를 성경에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를 편견, 그리고 십자가의 비극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젖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가 유머가 풍부하신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께 훨씬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농담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전혀 정당성이 없는 전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기만 하면, 그의 말씀을 단순한 산문 정도로 보고 그냥 지나쳤던 수많은 예수의 가르침들이 ··· 그리스도의 유머를 인정하는 것은 불필요할 정도로 지나친 근엄함으로부터 복음을 자유롭게 하는 과정이다."
예수님은 참 넉넉하고 웃음을 몰고 다니는 분이셨다. 그분은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을 사람을 가리켜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1)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울지만 천국에서는 마음껏 웃을 것이라고.
바울 사도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인사의 첫머리에서, 그들을 위해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한다고 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일 것이다.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 1:4
때로 우리는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기쁨으로 기도할 필요도 있다. 우리는 눈물의 기도를 많이 배웠지만, 기쁨의 기도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잔치와 축제요 기쁨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복음, 천국의 웃음과 기쁨
유머는 인공지능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인간의 독창적인 언어다. 많은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아재 개그처럼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단순한 콘텐츠는 생성해낼 수 있겠지만,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대화 상황에서 상대방의 어떤 말을 순발력 있게 포착하고 미묘하게 비틀어 웃음을 터뜨리는 감각은 요원한일" 이라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유머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2011년부터 코미디를 하는 로봇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미국 오리건대학교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웃는지 등을 분석한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로봇 존'(Jon the Robot)이라는 코미디 배우콘셉트의 로봇을 시연했다. 그리고 최근의 쳇GPT 또한 농담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공지능이 유머를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다는 것은 기술 개발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AI가 사람을 더욱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람마다 나라마다 유머는 아직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다.
깊은 시인 이성복 교수도 위대한 예술가는 '진지함', '측은 함' 그리고 '장난기'가 있어야 한다니. 니체도《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웃음이 따르지 않은 진리는 거짓이다"라고 했다.
유머는 하나님의 속성이고 우리에게 주신 비타민과 같은 선물이다. 우리에게 유머 감각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가 웃음을 좋아하시는 그분을 닮았기 때문이다.
고급 웃음이 점점 사라지고 저질스러운 유머가 가득해 가는 세상 속에서 건강한 유머는 호감을 누고, 신뢰를 높이고, 설득을 높여주고, 창조성을 향상시키고, 의사소통을 원할하게 하는 긍정의 에너지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헤리엇 비처 스토 부인의 동생기기고 한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 목사는 "유머 감각 없는 사람은 스프링 없는 마차와 같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구름은 바람으로 움직인다. 사람은 사랑과 유머로 움직인다.
'복음(福音)'이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다. 기독교 신앙은 기쁨의 신앙이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없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불의와 고난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믿기에 기뻐할 수 있다.
예수님은 기쁜 소식을 기쁜 말로 전하셨고, 그 기쁜 말씀을 들은 우리도 기쁜 사람이 되어 생명의 웃음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천국의 웃음을 전파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할렐루야!
출판사 : 규장
지은이 :한재욱
첫댓글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일 것이다.
아멘 주님께영광
기독교 신앙은 기쁨의 신앙이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없어서 기뻐하는 것이아니라 모든 고난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믿기에 기뻐할수 있습니다
우리도 기쁨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