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의 봄
허영옥
내가 처음 사회교육원에 발을 디딘 것은 작년 봄 이맘때의 일이다.
교정 이곳 저곳엔 새내기를 환영하는 프랭 카드가 붙어 있고 마른 가지에 작
은 잎들은 파릇파릇 수줍은 듯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카페트를 깐 듯이
잘 정리된 잔디 위엔 젊음의 낭만을 만끽하는 학생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떠
들어대고, 대학로엔 고3 수험생에서 해방된 햇병아리들이 수북했다.
임업시험장이 자리하고 있던 학교라서 인지 유난히 나무가 많고, 꽃의 종류
도 다양하다. 캠퍼스가 아름답고 어머니 품처럼 포근해 삶이 힘들 때 가끔
이곳에 찾아와 마음을 가라 안치던 곳이었다. 아름드리 푸라타나스 나무는 나
에게 탄성을 지르게 했고, 깊은 봄 라이락 향기는 지나가는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또 한 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원추리의
싹들은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젊음이 북적대는 이곳은 해이해졌던 삶에 희망을 갖
게 하는 것 같았고, 막혔던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것 같아 좋았었다.
어느날 친구와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프
로그램을 찾다가 이곳 한지 공예반을 오게 되었다. 이따금 찾던 곳이지만 왠
지 쑥스럽고 어설펐던 곳. 그러나 지금은 당당히 올 수 있게 되어 아이들 말
로 하늘만큼 행복하다. 여기에 와서 몇 주가 지났을 무렵, 교육원에서 강의하
고 있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평생을 배워도 못 배울 만큼 수업이 다양
했다. 정보에 항상 어둡던 터라서 인지 허기진 사람에게 허기를 채우는 기쁨
이 있었다.
건강을 핑게삼아 3년 동안 열심히 깜순이가 될 만큼 테니스도 배워 보았
다. 운동으로 배웠지만, 살아가면서 스트레스가 쌓여도,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운동장으로 갔다. 운동을 끝내면 몸은 상쾌했지만, 내 인생의 밀린 숙
제거리 같은 그 무엇이 있어 나의 빈 가슴을 채우지는 못했다.
사람은 슬플 때나, 기쁠 때면 누군가를 만나 가슴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속을 털어놓고 허전해 하거나 후회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진실을 이야기하며 삶을 위로 받을 만한 친구가 없다. 덕이 모자라서
이거나 내 급한 성격 탓일 것이다.
수필을 배우게 되면서, 나의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긴 느낌이다.
이젠 삶이 허전하지 않고 넉넉해질 것만 같다. 그러나 걱정이 태산이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마음을 몇 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메말라 있고 표현력도 없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공부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위문편지를
쓰라고 우리반 학생 모두에게 엽서 한 장씩을 나누어 주셨다. 생판 모르는 국
군 아저씨께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겠지만, 그 시절 초등학생이 선생님 말씀을 거역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
는 일이었다. 고민 끝에 두 줄을 쓰고 엽서를 제출했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었을 때 친구의 오빠이기도 한 6학년 회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아
마도 담임 선생님께서 회장인 그에게 편지를 검토하라고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쓸 말이 없었니?"
"아니면 장난으로 그렇게 쓴 것이니?"
하며 물었다. 나는 진심으로 쓸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
를 보고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지우개로 지우고 몇 줄을 더 써서 엽
서의 공간을 채우고는 싱긋 웃고 돌아섰던 그때 그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국군장병이 되었다. 나는 편지지 석 장이 넘치도록 빼
곡이 쓰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수필은 아직도 세월의 나이를 먹지 않고 있
다. 요즈음 컴퓨터를 못하면 컴맹이라고 한다. 컴퓨터도 잘할 줄 모르지만
글맹 이기도한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 가슴속에 가슴앓이로 쌓인 불
덩어리를 글로써 조금씩이나마 퍼내고 싶었다. 하지만 글재주가 없어 내 감정
을 조리 있게 표현할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표현할 수 없는 말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
해할 것만 같다. 그뿐이랴, 눈을 뜨면 사람들과의 시달림에 연속으로 살아온
탓인지 나에게서 여성스런 언어를 찾아 볼 수가 없을 만큼 거칠어지고 있다.
수필을 배우며 거친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어느새 언어까지도 순
화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글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다듬
어지고, 아름다운 언어를 생활에서도 활용하게 되는 것 같아 나에게 수필을
배우는 것은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 아니겠는가.
수필을 쓰는 일이 멀고 험한 마라톤경주가 될지라도 나는 쉬지 않고 열심히
뛰어야겠다. 화려한 출발은 아니라도 출발선은 벌써 떠나 내 자신과의 싸움
을 시작한 것이다. 뛰다보면 거리에서 나의 출발을 환영하며 위로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뒤늦게 주제 파악도 못한다고 비웃음도 있을 테지만 거북이 걸음
이 될지라도 뛰어야겠다.
그런데 나온 모든 회원들이 나와 비슷하게 출발한 초보자들 인줄 알았더니
만 대부분 글 가슴앓이를 앓다온 100미터 아니, 1000미터의 달리기 선수들
이 아니던가. 나보다 저 만큼 앞서 뛰고 있는 선수에 숨막혀 행여라도 스스로
포기하지나 않을까 두려움이 생긴다.
삭막해진 내 가슴에 파란 새싹이 돋아나려면 커다란 아픔과 인내가 필요 할
것이다. 그 길엔 내가 뜀박질하다 포기하고 싶을 때, 뛰다 지쳐 목이 마를
때, 한 모금의 생수가 되어주실 분도 있으니, 나는 42.195키로를 완주해 볼
작정이다.
들녘엔 개나리가 만발하고, 벚꽃은 수줍은 처녀 볼처럼 발갛다.
여유를 부리듯 앉아 있는 보라색 제비꽃이 오늘은 더욱 교만해 보인다.
2000년의 내 마음의 봄은 아직도 춥고 떨리기만 하다.
달이 가고 해가 가면 내 마음에도 여유로운 보릿빛 제비꽃이 피는 봄이 오
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000/8집
첫댓글 2000년의 내 마음의 봄은 아직도 춥고 떨리기만 하다.
달이 가고 해가 가면 내 마음에도 여유로운 보릿빛 제비꽃이 피는 봄이 오
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보다 저 만큼 앞서 뛰고 있는 선수에 숨막혀 행여라도 스스로 포기하지나 않을까 두려움이 생긴다.
삭막해진 내 가슴에 파란 새싹이 돋아나려면 커다란 아픔과 인내가 필요 할 것이다. 그 길엔 내가 뜀박질하다 포기하고 싶을 때, 뛰다 지쳐 목이 마를 때, 한 모금의 생수가 되어주실 분도 있으니, 나는 42.195키로를 완주해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