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새벽 3시에 잠이 깨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윤석열 후보가 여전히 1위였고 개표율은 98%를 육박했다.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당선'으로 바뀐 뉴스를 보자마자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이제 교육 정책은 어떻게 되는 건가. 수십 년째 운영돼오며 고교 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과학고가 우리나라에 있는 것도 모르시고 새로 만들자고 하는 분이니, 특목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다시 원점이 되는 것일까. 일반고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가장 공들인 고교학점제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시100%를 공약으로 내건 안철수가 인수위원장에 유력하다던데, 대입제도야말로 개선될 희망은 영으로 수렴한다.
5년 전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출발했던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은 유난히 훌륭했다. 이대로만 된다면 입시경쟁에서 늘 제자리걸음이던 우리나라 교육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 같았다. 그러나 대입개편안을 공론화로 넘겨버리고, 대표 공약이던 고교학점제 전면시행마저 연기하는 걸 보며 이 정부 국정운영의 기준은 여론인 것인가, 기대가 실망으로, 체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국민들 눈치도 안보고 고교를 다양화한답시고 입시사관학교가 될 게 뻔한 자사고를 만들고,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던 이전 정부들보다는 낫다고 평가해야 할까. 입시경쟁을 해결할 공약들은 제대로 지켜진 게 없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도 조국사태에 떠밀려 시행령을 만든 것처럼 보였다. 2022년 7월부터 교육정책 수립과 실행에 전권을 갖고 독립적으로 운영할 거라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는 대체 어떤 비전과 계획을 갖고 있는 걸까. 과문한 탓인지, 내 귀에는 들리는 바가 없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작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 대선 운동 기간에도,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적이 없다. 사교육걱정의 미션과 같은 방향의 교육정책을 제시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뻔히 보이는데도, 주요 4후보를 균형감있게 평가하려고 애썼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대선공약 평가단 앞에 붙은 '명명백백 100인 평가단'이라는 수식어는 몇 번 쓰지도 않고 폐기할 정도였다. 입시경쟁과 사교육고통을 해결해 학생 유익이 되는 정책을 실행할 의지만 있다면 누구와도 손잡고 간다는 '비정파성'이 우리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18대, 19대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유의미한 교육정책 실행이 없지 않았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딸아이의 초중고등학교 시절과 정확히 일치하는 10년이라 평범한 학부모로 지내면서도 변화가 체감됐다. 사교육비를 절감하고자 방과후학교를 대폭 지원하고, 비정상적으로 과잉상태였던 외고입시가 개선됐다. 초등 4학년이면 입시 레이스에 뛰어 들어 밤10시까지 학원에 있던 초등학생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자사고가 생겨 다시 원점이 되는 듯 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선행교육규제법이 제정되어 적어도 학교 시험에서는 제 학년을 벗어난 교육과정의 시험 문제를 출제하던 관행이 많이 개선되었다. 중학교 수학 내신 시험 평균이 50점도 안되어 공부를 하는 아이마저 좌절하게 만드는 시절은 피할 수 있었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었고, 입학사정관제도 개선되고 수시전형은 한결 단순하게 정리됐다.
눈에 띄는 교육공약도 별로 없었던 윤석열 정부가 갑자기 교육을 뒤흔들 거라고 비관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학벌주의와 경쟁교육을 5년 단임제로 당선된 대통령 한 사람이 나쁜 방향이든 좋은 방향이든 크게 바꿀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어찌 보면 환상에 가깝다. 국가교육위원회가 7월에 정식으로 출범한다니 남은 희망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다만, 부모로서, 교육운동 활동가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참다운 배움을 돌려주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더 깊이 헤아려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