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벌어진 수원 삼성과 베이징 궈안의 ACL G조 예선은 데얀의 골에 힘입어 베이징이 1:0으로 승리했다. 현재 팬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라고 쓰지만 불만이다.)이 터져 나오고 있는 듯하다. 골 장면 자체는 문제 삼을 건 없었다. 어려운 와중에 코너킥을 머리에 잘 맞춘 데얀의 득점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특급 공격수 데얀이 경기를 지배한 것도 아니었고, 경기를 주도적으로 운영하던 수원 선수들도 경기를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모름지기 심판은 ‘무위자연’의 원리에 따라 선수와 팬들이 심판이 있는지도 모르도록 해야 하거늘. 바로 스리랑카의 페레라 심판이 경기를 지배했다.
(△ 심판 판정에 연신 불만을 제기한 서정원 감독. 감독님... 저희도 이해합니다.)
수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비수 양상민이 베이징 선수와 경합하는 과정에서 경고를 뽑은 장면이 가장 억울했을 것이다. 어떤 의도로 심판이 그런 판정을 내렸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개인적 의견으론 양상민이 다소 늦게 볼 경합에 들어갔으므로 파울이 주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경고장을 뽑아야 하는 장면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경합 과정에서 팔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고 파울이 발생한 위치 역시 상대의 페널티 박스 근처로 위험 지역이 아니었다. 그래 좋다. 정말 넓은 마음으로 양상민의 경합 장면이 상대 선수의 부상을 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라서, 경고를 뽑았다고 이해를 한다고 치자.
양상민의 퇴장 판정 이전까지도 베이징의 은근한 반칙성 플레이들에 파울 선언을 하지 않는 장면이 여럿 있었다. 페널티 박스 내에서 헤딩 경합 시 뒤에서 미는 장면도 있었고, 사소한 몸싸움에도 쓰러지면서 경고를 유도하는 장면도 있었다. 반면 베이징의 거친 태클들에는 관대한 판정으로 반칙 선언조차 되지 않았다. 수원 입장에서는 여러 번 손해 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렇지만 바로 양상민의 퇴장 이후에 심판의 판정은 더욱 큰 문제를 야기했다.
억울한 퇴장과 곧 터진 데얀의 득점으로 수원 선수들은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동점을 노렸다. 정대세가 골키퍼의 손을 차는 장면이 나오면서 양팀 선수들은 더욱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원체 거친 플레이로 유명한 중국 슈퍼리그의 베이징도 호락호락 넘어갈 리가 없었다. 서로 비슷한 수준의 반칙을 두고도 노란 카드가 나오기도 하고 또 나오지 않기도 했다. 이미 흥분할 여건이 완전히 조성된 상황에서 심판이 일관된 판정을 내리지 못하자 선수들은 거친 반칙도 마다 않고 했다. 파울 상황에 대해 경고를 받을지 안 받을지는 순전히 심판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양상민의 경우처럼 운이 나쁘면 경고를 받을 수도 있고, 공이 완전히 빠진 후에 뒤늦게 발목을 밟아도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퇴장 판정 이후에 오락가락 엿가락 판정을 내리면서 경기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사실 심판에게 있어 오심은 불가피한 부분이다. 상황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고, 때로 정확히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최고의 심판도 기계가 아닌 이상 잘못된 판정을 내릴 수 있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심판 판정도 경기의 일부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있다. 심판은 언제나 공정하게 판정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스리랑카 심판은 판정에 객관성을 잃으면서 경기를 망쳤다.
(△ 열정적인 베이징 궈안의 팬. 하지만 그들의 응원이 판정에 영향을 미쳐서는 곤란하다. *출처:AFC공식홈페이지)
경기 운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주심은 ‘경고’를 통해 경기를 통제하려고 했다. 양상민의 퇴장 역시 다소 거칠어진 경기 분위기 탓에 성급히 꺼낸 느낌이었다. 심판은 판정에 있어서는 객관적이고 엄격해야 하고, 경기가 거칠어지는 문제는 적극적인 개입으로 진정시켜야 한다. 경기를 중단시키고 구두로 경고를 주거나, 언쟁을 벌이는 선수 사이에 개입하여 중재하는 것도 심판의 역할이다. 선수들이 다툴 수 있는 분위기와 상황은 내버려둔 채로 카드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심판은 경기 운영 미숙을 드러내면서 후반전 경기를 망쳐놓았다. 어수선한 판정 탓에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10명인 수원이 보여주었던 끈끈한 조직력과 공격 작업이 눈에 띄기 보다는, 베이징의 거친 파울과 심판의 휘슬 소리가 더 눈에 띄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주관하고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차원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처럼 권위 있는 대회의 심판으로 스리랑카 출신의 심판이 나선다는 것은 문제인 것 같다. 국적 자체가 심판의 실력 자체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겠지만, 축구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스리랑카 출신의 주심이 오늘처럼 치열한 경기의 주심을 맡을 기회가 자주 있을 것 같진 않다. 한국인 크리켓 심판이 국제 대회에서 심판을 본다고 생각해보라. 평소에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크리켓 경기, 특히 치열한 라이벌전이나 국제 경기의 심판을 볼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AFC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의 위상 제고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훌륭한 경기력에 집중되어야 할 팬들의 관심이 심판에 쏠리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대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AFC차원에서 더 신중하게 검증된 심판들을 배정해야할 것이다.
(△ 경기 후 수원 선수들. 패배는 했지만 경기력은 매우 훌륭했다. 다음 경기 준비를 잘 하길 바란다. *출처:한국축구프로연맹)
경기 후 인터뷰에서 수원의 서정원 감독은 심판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을 뿐, 이를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는데 매우 좋은 반응이었다. 심판에 대한 공개적인 불만 표출은 징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고, 이미 진 경기를 잊고 새로운 경기에 집중하는 데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판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고 해도 승패가 뒤바뀌지는 않을테니 감독과 선수들 입장에선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최고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팬들 혹은 언론에서는 분명히 불만을 표출할 수 있고, 또 앞으로의 경기를 위해 표출해야 하는 경기였다. 물론 대회를 주관하는 AFC 역시 심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번 경기와 같은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면 안 될 것이다. 심판이 훌륭한 경기를 망쳐놓은 전형적인 예였다.
* 뱀다리 – 홈 어드밴티지에 관하여
이번 경기의 판정에 홈 어드밴티지라고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더욱 큰 문제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심판의 판정 자체는 무엇보다도 객관적이어야 한다. 심판이 홈 팀에 유리한 판정을 내리거나 팬들의 분위기에 밀려 공정성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축구에 있어 홈 어드밴티지란 익숙한 경기장, 홈 팬들의 응원, 이동이 없다는 것 등에 있어야 한다. 마음 급한 원정팀에 공을 천천히 건네주거나 홈 팀이 공격 흐름을 살리도록 신속히 공을 건네주는 볼보이가 홈 어드밴티지일 순 있어도, 절대적으로 공정해야 할 심판은 절대 홈 어드밴티지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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