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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수,당과의 전쟁이 신라를 위한 전쟁인가요?
용의군사 추천 0 조회 358 10.10.14 21:45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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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0.15 08:02

    첫댓글 이는 우리나라 전쟁사를 '국난극복'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다보니 그러한 시각이 나오는 것입니다. 전쟁 당시 고구려는 스스로를 위하여 싸운 것이지요.

    그러나 후일의 결과적 측면에서 보면 '수'나 '당'이라는 중원(다른 문화권)의 제국이 한반도를 점령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관점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 작성자 10.10.15 17:46

    아..그렇군요^^ 답변 감사 합니다

  • 10.10.19 01:02

    고-수당 전쟁은 동북아 대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0.10.19 14:14

    솔직히 행복 만끽 운운까지는 전혀 실상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문무대왕의 화합 정치가 계속 되었다면 그런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나 신문왕은 문무대왕이 공고히 한 왕권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천도 계획이 무산된 것 하나만 보아도 진골 귀족의 뿌리가 너무 깊었으며 왕권의 누수가 일정 부분 있었음을 잘 보여주지요. 아무리 반역자라는 이유가 있다하지만 문무대왕이 아찬 대토 등을 처단한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신문왕도 김흠돌의 봉기를 진압한 바는 있습니다만. 밖으로는 화합을 다지고 안으로는 진골 귀족들을 도태시키지 못해 대신라는 발해 건국 시점 쯤 되면 차츰 곪아들어가지요.

  • 10.10.23 23:47

    윗분, 뭔 문무대왕인가요, 대제라면 몰라도. 문무왕이 언제부터 대왕이었죠??

    고구려가 수-당과 전쟁까지 불사한 건, 적어도 자신들도 이 동아시아 일대에선 최강자 중 한 세력이며, 고작 신흥 국가인 수나라와 당나라 따위의 서토 오랑캐들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고구려가 대륙의 역사를 가지지 못했거나, 비교적 약소국가였던 이를 테면 백제나 신라, 조선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특징이 자존감과 독자성을 중시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고구려는 자신들 스스로 적어도 저 서토와는 대등한 혹은 그 이상의 존재라 여겼습니다, 天孫을 봐도 알죠. 몇몇분들은 간혹 그 부분에 대해서 수-당과 싸웠기에

  • 10.10.24 18:43

    문무왕비에 대왕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 10.10.28 02:12

    아, 하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왕 광개토, 세종 이외에 공식명칭까진 아니지만, 담고 있는 경우가 있긴 하내요. 실제 조선시대 영조 또한 당시로선 꽤 성군으로 표해졌던 임금이라 영조대왕이라고들 줄곧 표현하지요.

  • 10.10.23 23:59

    멸망을 초래했다며 강경파를 나무라는 이들이 있는데, 그럼 최소한 싸워보기도 전에 빌빌거리며, '인구가 많기에 안된다', '땅 크기만 비교해봐도 이길 수가 없는 적들이다'라며 항상 굴복이나 하는 게 제대로 된 건가요?
    신라와 조선이 결국 끝엔 왜 비참하게 끝나야 했는지를 아시나요?
    '그들은 결국 작은 것은 큰 것엔 안된다'란 극도의 사대주의적이고 나약한 지도층의 기본 정신 상태가 깔려있었습니다. 그랬기에 항상 싸우는 걸 두려워 했죠. 특히 중국 세력과는요. 물론 일본은 제외구요.
    그렇게 항상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만 연연하면 된다는 사고관이 정설적이게 정착되어 일부 강경 세력들이 이런 부분은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자

  • 10.10.24 00:07

    했어도 너무도 뿌리깊이 박힌 사대주의적이고, 피전적 성향은 바뀔지를 몰랐죠.
    일본엔 꽤나 강경했으면서 중국이라면 벌벌 떨었습니다. 물론 효종 때의 북벌론이나 밀리면 진짜 끝장이었던 신라와 당의 한반도를 둔 전쟁은 제외하고요.
    고구려가 수-당과 그토록 힘겨워지는 상황에까지 싸웠던 것은 건국 초 주몽이 활발히 정복전쟁을 하면서 시작부터가 강경하고, 진취적이었던 부분이 정서상 뿌리깊히 박혀있었고, 그들 또한 독자적으로 연호를 쓰며 대륙을 호령해보았기에 적어도 사대를 하긴 거부했죠. 천혜의 요새, 요동 방어선을 비롯 철자원과 강력한 기마대등 전력 또한 막강했지만, 기본 사고관과 태도면이 달랐던 것입니다.

  • 10.10.30 02:03

    제 개인적인 생각은 우리나라의 국사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너무 편일적인 교육이 지금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조명하는 우리 사학계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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