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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새벽예배 | 강신규 목사] 분주함 누가복음 10장 38-42절 | 2024. 3. 27
https://www.youtube.com/live/q9ZUR8mrh-Y?si=7qUITypXp4Jjh1g1
누가복음 23:13 – 23:25 죄 없으신 예수님을 향한 죄인들의 외침
세 번의 무죄 선포 23:13~22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17 (없음)
18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 하니
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무리의 뜻에 굴복하는 빌라도 23:23~25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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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발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기에 매질 후 풀어 주겠다고 세 번이나 말합니다. 그러나 무리는 민란과 살인으로 투옥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소리 지릅니다. 결국 빌라도는 그들의 뜻대로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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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무죄 선포 23:13~22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 아들입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 관리들, 백성을 불러 모으고 예수님의 무죄를 세 번 선포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백성을 미혹시키는 자라며 고발했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그런 죄를 찾지 못했다고 선포합니다(14절). 또한 헤롯도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했다며 예수님이 죽을죄를 행한 일이 없다고 선포합니다(15절). 백성이 소리 지르며 감옥에 갇힌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하자, 그는 예수님에게서 악한 일이나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찾지 못했다고 다시 선포합니다(22절). 빌라도의 선포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증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신 것은 인류의 모든 죄를 단번에, 영원히 용서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를 계속 선포함에도 무리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무리의 완악함과 예수님의 침묵이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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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의 뜻에 굴복하는 빌라도 23:23~25
빌라도는 진리를 알지만 진리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압박으로 인해 그는 예수님을 지켜 내지 못합니다. 결국 무리의 요구대로 바라바를 풀어 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줍니다. 빌라도는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고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지도자입니다. 또한 소신 있게 행동하지 않고 우유부단하며 기회주의적인 지도자입니다. 진리를 버리고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결과를 낳습니다. 예수님께 순종하기보다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에 넘기는 비겁한 무리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용기 있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무리의 압박에 어떻게 행동했나요?
다수의 요구에 굴하지 않고 내가 지켜 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한절묵상:누가복음 23장 18절
예수님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바라바'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무리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님 아들을 버리고, 다른 아버지의 아들을 구했습니다. 이는 사람의 죄된 본성과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자기중심성에 빠지면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보다 다른 사람이 더 크게 보입니다. 불신자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찾지만, 신자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예수님을 찾습니다.
진리의 길로 가면서 흐트러지지 않으려면 하나님 말씀에만 삶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토니 던지
오늘의 기도
주님! 군중의 요구에 옳은 판단을 뒤집은 빌라도처럼, 다수 앞에서 머뭇머뭇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어떤 환경과 사람 앞에서도 옳다고 여기는 바를 지켜 낼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죄인 바라바가 풀려나는 것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도 끝까지 진리를 고수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145 오 거룩하신 주님)
* 본문의 정리: 빌라도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죄를 찾지 못하여 석방시키려고 하였지만,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우기면서 요구하였고, 예수님은 결국 그들의 뜻대로 십자가에 달리게 되셨다.
* 본문의 명제: 너희는 세상의 억지 논리와 거짓 진리에 좌지우지 되지 말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선택하고, 결단해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억지 논리와 거짓 진리에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가셨던 예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중요한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 항상 우리가 먼저 생각하고 고려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거짓 복음과 거짓 진리에 놀아나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흔들림 없이 진리를 따라 가고, 진리를 위해 헌신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결단과 선택의 순간에 항상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고, 그분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면서, 묵묵히 순종의 길로 나아가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전체 세속 법정이 유대인들의 종교 법정보다 공정했습니다. 빌라도가 주재하는 로마 법정은 예수님을 살리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부패한 종교, 욕망으로 가득 찬 교회는 세상의 상식보다 왜곡될 수 있습니다. 섣불리 자신하지 말고 끊임없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물으며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13-16,20,22-25절 빌라도는 처음에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썼습니다. 예수님을 고소한 모든 내용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그래도 소란을 일으켰으니 매질만 하고 석방하기로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군중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자 결국 소신을 꺾고 그들의 요구대로 십자가형을 선고했습니다. 빌라도가 군중의 목소리에 굴복한 것은 예수님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피지배 민족의 일개 떠돌이 교사가 쓴 누명을 벗기려고 군중의 폭동까지 무릅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힘없는 사람을 깔보고 그의 인격을 무시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사고방식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것이 차별 없이 모든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18,19,21,23절 군중은 막무가내로 예수님을 죽이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바라바는 무력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투옥된 민족주의 혁명가였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바라바가 실패한 일을 예수님이 이루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수의 신분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하자, 무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했고 차라리 바라바가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그들이 원한 건 정의와 사랑이 아니라 힘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칼을 든 그리스도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칼끝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5절 바라바가 사면되고 예수님이 그 대신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많은 ‘아버지의 아들’(바라바)을 살게 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바로 예수님 덕에 살게 된 또 한 명의 바라바입니다. 칼과 힘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가 예수님의 자비와 희생으로 구원받은 바라바입니다.
기도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몬 빌라도와 군중의 태도를 버리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은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죽일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매질한 후에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죄가 없는 줄은 알았지만, 그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매질하겠다는 정치적 제안을 한 것입니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눅23:15~16)
그러나 그들이 이 제안을 거절하자, 빌라도는 명절마다 정치범을 사면해 주었던 관례를 따라, 살인범 바라바와 예수님 중에 누구를 석방하기를 원하느냐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바라바는 그들에게도 해를 많이 끼쳤던 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화가 많이 났어도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제안도 거절하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결국 민란이 날까 두려웠던 빌라도는 그들의 소리에 굴복하여 그들의 뜻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언도했습니다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눅23:23~25)
이것이 세상이 예수님을 대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교회를 이런 방식으로 대우합니다 자기의 마음대로, 자기의 악한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자기들 뜻대로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11:26)
마치 자기들 뜻대로 요셉을 죽이려고 팔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요셉을 높이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게 하신 것처럼, 그들은 자기들 뜻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십자가에 넘겼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높이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주간에 아무리 억울한 일 아무리 괴로운 일이 많아도 오직 우리를 그들의 뜻대로 되게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셔서, 구원하시고 살리시고 은혜와 영광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만 굳세게 의지하기 원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
(눅 23:13~25절)
예수님 대신 풀려난 바라바가 바로 ‘나’입니다..-
빌라도는 세 번에 걸쳐 예수님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때린 후에 석방하겠다는 판결을 내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민란과 살인죄로 옥에 갇힌 바라바를 풀어주는 대신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이에 빌라도는 군중들의 뜻대로 하라고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13~16절).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 ‘죄가 없다’라고 무죄를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에 대해 사형에 처할 만한 어떤 일도 없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형 대신에 때려서 놓아 주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무죄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당연 풀려나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어떤 변호도, 분명 불의하게 재판이 진행되고 있음을 아셨음에도 막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이러한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나와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순간순간 나의 안위에만 급급한 나머지 정작 주님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치 못한 내 자신을 회개합니다. 주를 위해 그 어떤 고난도, 그 어떤 희생도 감당하지 않으려고 그럴싸한 핑계거리로 순간순간을 벗어나려 했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예’와 ‘아니요’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합니다(18~21절).
군중들은 빌라도의 판결에 불복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라바는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자였으며, 살인도 서슴지 않고 행했던 악한 혁명가였습니다. 사람들은 특히 유대인들은 사랑과 인내와 순종을 가르쳤던 예수님보다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며, 폭력을 마음대로 일삼는 바라바를 선택했습니다.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고 소리만 지르는 리더십이 아니라 공의를 행하고, 자비를 베풀며, 작은 사랑을 행하며 실천하는 리더십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 순간이 ‘예’와 ‘아니요’라는 두 가지의 대답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삶입니다. 사회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쉽지 않은 삶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답게 그러한 문제 앞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명백하게 잘못된 재판으로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예’라고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라바와 운명을 바꾸신 것처럼 나의 운명도 바꾸어 주셨습니다(22~25절).
빌라도는 세 번째로 예수님을 때린 후에 놓아주려는 판결을 내리려고 했지만 군중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빌라도는 이에 굴복해 그들의 뜻대로 하라고 옥에 갇힌 자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23절).. 그들의 이김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사탄이 이긴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 이김은 영원한 이김이 아닙니다. 지금 겪는 나의 고통과 이 한숨 역시 영원한 고통과 한숨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바라바와 같이 사형이 집행될 날만 기다리며 소망 없이 살아왔던 존재였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나를 긍휼히 여기신 주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소망 없는 나의 운명을 소망 있는 삶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내 안에 교만한 마음이 싹트고, 죄의 유혹이 거세질 때마다 바라바의 자리가 나의 자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선명하게 내 삶에 나타날 수 있도록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의 소리에 내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묵상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믿음의 삶이 될 수 있기를(눅 23:13~25절)... 빛이 있으라...
예수님을 배신한 대중들(13-25절)/13
헤롯이 예수님을 다시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습니다. 빌라도는 고소한 죄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매질하여 놓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으라고 선동하며 나타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동원한 사람들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대하여 예수님을 변호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쫓아다녔던 사람들 가운데 오히려 예수님을 못 박는 일에 같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그 말씀에 감동을 받긴 했지만 신앙으로 승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참된 신앙을 갖지 못하면 사람들의 여론과 힘에 밀려 쉽게 신앙을 배신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 참된 신앙을 가졌다면 불의한 현장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리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묵상하기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오늘 본문은 총독 빌라도가 심문을 한 결과 그리스도의 죄를 찾지 못하여 놓아주려고 하자 유대인들이 거세게 항의하여 결국 그들의 뜻대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는 내용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해 때려 놓아주겠다고 세 번이나 말하지만, 무리는 예수님을 죽이고 대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소리 지릅니다. 결국, 빌라도는 무리의 요구대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는 판결을 내립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빌라도의 무죄 선언, 빌라도의 타협안, 무리의 강력한 요구, 십자가형의 언도 등입니다.
빌라도는 정치인입니다. 피지배국의 청년 한 명을 위해 그렇게까지 봐주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그는 할 만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무자비하게 타도해서는 안 되고, 동정은 못 할망정 저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신앙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요. 다만, 그는 유대 나라의 총독일 뿐입니다. 불행이라면 바로 그 점일 것입니다. 그는 그 나라를 다스릴 책임과 권한이 있는 사람입니다. 유대는 잦은 반란으로 말미암아 로마 당국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나라입니다.
그로서는 사고 없이 무난하게 자신의 임기를 마치고 빨리 좋은 보직을 찾아 떠나는 것이 최선입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넘겨주고 맙니다. 성경에서는 그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인류 역사상 모든 신자들이 일주에 한 번씩 그의 이름을 들먹여야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이름은 성경의 안 표지인 사도신경에 영원히 장식되고 있습니다.
하노라고 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결과가 그것을 변호해주지 못합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도 실수했다면 실수한 것입니다. 죄를 피하려고 굳게 결심했어도 죄를 지으면 범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썼어도 살지 못했다면 그 뜻대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상참작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소관 사항이 아닙니다. 그분의 관할 사항입니다. 하노라고 했다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자신의 믿는바 믿음대로 했다는 말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 사정 따라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런저런 상황에 맞추어 사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애쓰고 노력했다는 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성경이 지시하는 대로, 위인들의 믿음대로, 그 기준대로 살 것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핑계나 변명 없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의 꿈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을 고발하는 사람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으므로
매질 후 풀어 주겠다 합니다. 무리는 민란과 살인으로 투옥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소리 지릅니다. 결국 빌라도는 그들의 뜻대로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때려서 놓겠노라(23:13~17)
통치자는 올바른 기준으로 정확하게 판결해,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원치 않는 재판을 다시 떠맡게 된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 앞에서 자신과 헤롯이 그들의 고발 내용과
관련된 어떠한 죄도 예수님에게서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한다면
예수님을 그대로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태형을 내립니다(16절).
예수님의 목숨도 살리고, 예수님을 사형시키고자 고발한 무리의 마음도 달래 줄 절충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진실을 알고 있다면 그에 합당한 태도와 행동을 분명하게 보여야 합니다.
- 왜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님을 때려서 놓겠다고 했을까요?
인간적인 생각으로 타협하려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수님을 넘겨주다(23:18~25)
두렵다고 목소리가 큰 쪽을 따르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될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하자, 군중은 큰 소리로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을 풀어 주고, 대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계속 외칩니다.
십자가형은 당시 반역이나 끔찍한 죄를 저지른 자에게 내리는 가장 잔혹한 형벌입니다.
빌라도는 군중의 끈질긴 요구에 백기를 들고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합니다.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불의한 군중의 소리에 동조해, 메시아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사람의 요구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어둠 속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다가 풀려난 죄인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고,
나 같은 죄인을 살려 주신 예수님 앞에 한없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 말씀의 현장으로 들어가 군중과 빌라도, 바라바와 예수님이 되어 보세요. 무엇을 깨닫게 되나요?
다수의 소리에 흔들려 불의를 택한 경우는 없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을 의식하기보다 사람의 눈치를 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당장 받게 될 불이익과 비난, 조롱을 피해 넓은 길로 가지 않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가치를 알고,
사람들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 뜻에 합당한 바른 선택을 하게 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온갖 정죄와 채찍질, 모욕과 수치를
우리를 대신하여 감당하신 주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구원은 주님께로 부터 오며 그분만이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심을 깊이 깨닫고
전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열방가운데
그 복된 사명을 감당하고 계신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전쟁과 핍박으로 고통 받고 있는
열방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보호하심과
회복의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러가지 육신의 질병으로 신음하는
주님의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뜻을 열방가운데 담대히 선포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도록 성령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올려드리며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