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을 받는 것과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은 동의어 일까?
위의 질문에 대해 어떤이는 내게, "목사가 돼서 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느냐?" 라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에 관해서 이미 익숙한 정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신칭의 교리"가 그것이다. 그렇다고 이신칭의 교리 그 자체를 내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교리를 마치 은행이 자기 앞으로 발행한 "자기앞수표"처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보증해 준다"라고 맹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인 인간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으면 예수님의 완전하신 의로움이 전가되어 의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신칭의의 의의 효과가 죄인에서 의인됨이 곧 구원받은 것이며, 이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동의어로 믿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신앙고백하고 믿는 자는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가 없다. 죄로 인해서 타락할 수도 없다(히 6:4~6이 난해구절이 된 이유). 왜 인가? 성령께서는 이신칭의를 받은 자를 그가 어떤 죄를 짓고 산다고 해도, 불법을 행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보증해 주기 때문이다. 어떠한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교리가 아니던가? 바로 구원파의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교리를 신봉한다. 왜 인가?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빈이 개혁교회에 전해준 교리라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이신칭의를 단지 법정에서 사형판결로 확정받은 죄인을 무죄방면이라고 이해하는 전통적인 "법정적 칭의론이 성경전체에서 말씀하는 구원에 관한 가르침인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라! 그러한 교리대로 믿어도 천국 들어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러나 구약성경은 물론 신약성경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특히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 중, 마태복음 7장 21절은 정면으로 이를 반박한다. 즉 이신칭의가 구원받음을 의미하는데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갈 것이라" 고 하셨다.
그리고 22절과 23절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 곧 단지 신분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될 수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가 주님의 이름으로 어떤 사역을 해 왔으며, 권능을 많이 행했더라도 그가 불법을 행하고 살아왔다면 심판대 앞에 설 때, 주님은 그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며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누가복음 13장 25절은 굳게 닫힌 대문 앞에서 어떤 이들이 주여 열어 달라고 간청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에 집주인으로부터 그들에게 돌아오는 말은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집주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내세운다. 집주인으로 비유된 주님에게 주 앞에서 먹고 마셨다는 것과 주는 또한 자기들을 길거리에서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주님은 밖에 있는 자들을 향해서 행악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이 그토록 친밀한 신분관계를 이유로 들어가려고 했던 그 집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 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주셨다. (눅13:29)
이렇게 성경은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구원받음을 최종 확정해 주고 있지 않으며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동의어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인 된것 만으로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이신칭의 받은 우리에게 의의 열매(거룩함) 곧 의인이라면 의롭(거룩)게 살라고 요구 하신다. 위의 마태복음에서나 누가복음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불법과 행악은 의롭(거룩)게 사는 것과는 반대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6:46).
게다가 바울서신은 한 번 받은 구원이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이와 같은 원리는 거룩함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신자는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정결함을 받아 이미 거룩함을 받았지만(성도)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고 말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후7:1)
그런데도 이신칭의 교리를 법정적 칭의론으로 이해하려는 자들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즉 마태복음 7장 21절의 예수님을 향해 주여 주여 라고 부른이들은 이신칭의를 받지 않은 외인 곧 거짓선지자 그룹이라고 한다(칼빈).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직접적 대상은 제자들 곧 교회안에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당시 거짓 선지자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자도 그 문을 막고 예수님의 사역을 훼방해왔기 때문이다(마 23:13).
결정적으로 이신칭의의 효과를 법정적 칭의론으로 이해하고 있는 자들도 구약성경에 기록된 애굽에서의 출애굽 사건을 신자의 구원받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유다서는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유1:5) 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의 출애굽을 구원받은 사건으로 신약기자가 해석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구원받음은 시작일뿐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다서의 가르침은 구약성경에서 " 구원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어휘 6개를 성경의 문맥에서 어떤 뜻으로 번역하고 이해하고 있는지가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즉 구원받음은 시작일 뿐 완성이 아니라는 것이다(히, 파다와 가알이 이를 잘 나타냄)
따라서 내가 저술한 [거룩을 씨름하다] C. L C. 7월 30일 출간한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그러면 구원을 받는 것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과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룩함에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예수님의 종말에 관한 비유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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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갑습니다. 한국교회가 성경전체가 말씀하는 균형잡힌 구원관을 바르게 정립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구약 선지자 시대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이 사회의 타락은 교회의 타락이며 이는 한국교회가 행위가 결여된 밈음을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위를 단지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먼 다룰뿐 거룩함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조직신학적으로 글을 전개하지 않고 성경주해에 기반하여 글을 써 나갔습니다. 이 책은 쉽게 읽혀지도록 쉬운 문장으로 돼 있습니다.
[ 거룩을 씨름하다 ]
아멘아멘. 말씀에 기쁘게 동의합니다. ^^
항상복종하여 두렵고떨림으로구원을이루어가라
구원받은 자의 구원의 완성이, 영생(천국)입니다.
출애굽한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땅까지들어가야
히3:18~19 믿지 아니하므로 순종하지 아니하여
안식(영생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여 거룩을 씨름하라!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룩함에 흠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거룩함에 흠이 없다는 뜻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https://youtu.be/oVDtYmuFw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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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를 누르면 책을 미리 보기할 수 있습니다.
http://aladin.kr/p/pe5vx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천국에 꼭 들어가야.
온 세계 기독교인들의 필독서로 생각합니다.
[ 거룩을 씨름하다 ]
@회개와 순종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서 바른 구원관이 정립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위 책을 구입하셔서 읽게 되시면 독자후기 꼭 좀 남겨주세요. ^^
@거룩을 씨름하다 주님의 마음을 닮아 진정으로 영혼을 사랑하시는 목회자님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
영광 받으신줄 믿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