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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흥미돋는글
출처: https://www.fmkorea.com/9747141362
만화 : gpt-image-2
소문의 최신 모델로 테스트겸 만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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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요한 복음서 11:49-50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는 아폴론을 기리는 타르겔리아Thargelia라고 하는 축제가 있었다. 매해 5월 열리는 이 축제의 첫째 날에는 선택된 두 사람을 뽑아 폴리스 밖으로 쫓아냈고, 둘째 날에는 아폴론에게 첫 수확한 여러 곡식과 과일을 담은 냄비인 타르겔로스Thargelos를 봉헌하고 과일과 빵, 양모 따위로 장식한 올리브 가지 에이레시오네Eiresione를 집집마다 운반하는 의식이 있었다. 첫째 날은 부정한 것을 몰아내고, 둘째 날은 좋은 것을 들여오는 양분된 구조의 축제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첫째 날의 두 사람을 뽑아 폴리스에서 쫓아내는 부분이다. 고대 저자들에 따르면 한 사람은 남성들을 대표하고 목에 검은 무화과를, 한 사람은 여성들을 대표하여 목에 하얀 무화과를 걸고 (아마도)돌팔매질을 당하며 도시 밖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이 추방당했을까?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아테네의 "천한 출신이며 쓸모없는 자"나 "천박하고 본래부터 학대받은 자" 들이 선택되었다.
이 타르겔리아 축제는 아테네 외에도 이오니아 지역에서도 행해졌다. 이오니아의 폴리스 콜로폰에서도 "가장 추악하게 생긴 자" 를 뽑아 무화과와 케이크, 치즈를 주고 무화과 가지나 해총나무 가지로 성기를 때려 추방하는 관행이 있었다. 12세기의 비잔틴 학자 체체스는 이 추방자들을 불태우고 재를 바다에서 뿌렸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학자들은 이런 인신공양설에 부정적이며 돌팔매질로 도시 밖으로 쫓겨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고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에서는 이런 비슷한 추방 의식이 있었다. 압데라에서는 돈으로 매수된 노예가 풍성한 식사를 제공받은 후 쫓겨났고 마실리아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일년간 폴리스의 후원으로 후하게 대접받은 뒤 쫓겨났다. 대체로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 ― 노예거나 가난한 사람, 추악하고 신체적으로 혐오스럽거나 기형이 있는 사람 및 범죄자 등 ― 이 한동안 잘 대우받은 후 추방되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들을 파르마코스Pharmakos라고 불렸다.
이와 비슷한 의식은 고대 그리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있는 것은 구약 레위기에 기록된 속죄일의 의식일 것이다.
아론은 그 숫염소 두 마리를 놓고 제비를 뽑는데, 제비 하나는 주님을 위한 것이고 다른 제비는 아자젤을 위한 것이다. [...] 아자젤을 위한 제비가 뽑힌 숫염소는 산 채로 주님 앞에 세워 두었다가, 그 위에서 속죄 예식을 거행하고 광야로 아자젤에게 보낸다.
레위기 16:8,10
여기서 속죄 예식이란 다음과 같다.
아론은 살려 둔 그 숫염소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죄, 곧 그들의 허물과 잘못을 고백하여 그것들을 그 염소 머리에 씌우고서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손에 맡겨 광야로 내보낸다. 그러면 그 염소는 그들의 모든 죄를 불모지로 날라 간다. 이렇게 그 숫염소를 광야로 내보낸다.
레위기 16:21-22
<제비 하나는 주님을 위한 것이고 다른 제비는 아자젤을 위한 것이다. Ward & Hughes. (1855). Detail of East Window, Lincoln Cathedral, Lincoln, England.>
희생양Scapegoat 이라는 단어는 인용한 레위기의 히브리어 아자젤עזאזל이라는 단어로부터 만들어졌다. 아자젤 성경 전체를 통틀어 레위기 16장에서 단 한번 언급된 단어고,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나 아마도 광야를 돌아다니는 악령의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 히브리어 아자젤을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 성경은 '몰아내는 염소Tragos apopompaios' 로, 라틴어 번역본인 불가타 성경은 '보내진 염소Caper emissarius'로 오역했고, 이를 최초의 영어 성경을 쓴 윌리엄 틴들이 (e)scape goat으로 번역하면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희생양'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희생양 의식은 히타이트에도 존재한다. 히타이트 점토판 하나는 재앙을 몰아내는 세부적인 의식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저녁이 되면, 군대 지휘관들이 누구든 간에, 각자 숫양을 준비한다. 그것이 흰 숫양이든 검은 숫양이든 상관없다. 그러고 나서 나는 흰 양모, 붉은 양모, 녹색 양모로 줄을 꼬아 묶고, 장교가 그것을 꼰다. 그리고 나는 목걸이, 반지, 칼세도니(보석)을 가져와 숫양의 목과 뿔에 걸어놓는다. [...] 그러고 나서 왕의 장막 앞에는 잘 차려입은 여인을 앉히고 [...] 장교들이 숫양에 손을 얹고 말한다. ‘이 재앙을 일으킨 신이여, 보라! 이 숫양들이 여기 서 있으며 간, 심장, 허리에 살이 아주 많다. 인간의 살이 그에게 미움을 받게 하소서, 이 숫양들로 그가 진정하게 하소서.’ [...] 그러고 나서 숫양들과 여인은 빵과 맥주를 들고 군대를 지나며 그들을 평원으로 몰아낸다. 그들은 우리 영토에 들르지 않고 적의 국경으로 달려간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은 말한다. ‘보라! 이 진영 안의 인간, 소, 양, 말, 노새, 당나귀에게 있던 모든 질병을 이 숫양들과 이 여인이 진영에서 제거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발견한 나라는 이 재앙을 떠맡게 될 것이다.
Jan Bremmer, The Scapegoat Between Northern Syria, Gittites, Isaraelites, Greeks and Early Christians
이들은 모두 공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집단에 닥친 재앙이나 악을 몰아내기 위해 특정한 인간 혹은 동물이 선택되어 집단에서 추방당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도 이런 추방 의식을 카타르시스Katharsis, 즉 '정화'라고 표현했고 추방된 파르마코이를 '찌꺼기'라는 뜻의 페리프세마Peripsema 혹은 '쓰레기'라는 뜻의 카타르마Katharma로도 불렀다. 악을 몰아내고 도시를 정화한다는 목적이 명백히 드러나는 단어다.
이 기묘한 의식의 뒷면에 숨겨진 함의를 설명하는 수많은 학자들의 해석이 존재한다. 만하르트Mannhardt는 파르마코스를 식물 영혼으로 해석하고 풍작을 위해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채찍질하고 쫓아내며 심지어 죽여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와 비슷하게 프레이저Frazer는 파르마코스는 본래 비옥함을 통제하는 마법적 힘을 지닌 왕, 혹은 더 구체적으로는 식물 영혼을 의인화한 왕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왕은 그의 힘이 약화되지 않도록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들은 현재 크게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이 의식이 나타내는 가장 명백한 구조인 선택된 소수의 파멸, 그리고 나머지 집단의 안전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문헌학자 발터 부르케르트Walter Burkert는 이를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체득한 생물학적 본성으로 환원하여 해석한다.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의 뒷편에 놓인 것은 공포, 즉 원시 인간이 포식자에게 둘러쌓여있을때와 동일한 공포이다. 자연상태에서 이러한 공포는 집단 구성원 중 일부가 포식자의 희생물이 되면서 자연히(?) 종료된다. 희생양 의식은 이러한 공포가 해결되는 심리 구조의 인공적 재현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요나 이야기나 한국에서도 익숙한 풍랑을 만난 배에서 부정한 자를 선택에 배에서 던지는 설화들도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감정적 패턴의 궁극적인 기원을, 의식적이지 않고 비의례화된 실제 상황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는 포식자들에게 둘러싸인 집단의 상황일 것이다. 늑대에게 쫓기는 사람들, 또는 표범 앞에 선 원숭이 무리가 그 예다. 극도의 위험은 흥분과 불안으로 맞이된다. 보통 구원의 방법은 단 한 가지일 것이다. 집단의 한 구성원이 굶주린 육식 동물의 희생물이 되어야만 나머지는 일시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 외부인, 허약한 자, 혹은 어린 동물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Burkert, Structure and History in Greek Mythology and Ritual
<인간의 유전자에는 야수들에게 쫓기던 시절의 공포가 각인되어 있다. 블러드본 하다 보면 아주 잘 알게된다. 야남에서는 성직자야 말로 가장 무서운 야수가 된다는 오래된 소문이 있다.>
그러나 아마도 현재 가장 유명한 해석은 르네 지라르Rene Girard의 해석일 것이다. 지라르에게 있어 희생양 메커니즘은 강력한 법적 권위가 없는 원시 사회에서 상호간의 폭력이 에스컬레이션되어 결국 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막는 사회안정 메커니즘이다. 첫 폭력으로 촉발된 살기등등한 복수의 연쇄가 진행되며 끓어 넘쳐 자칫하면 작은 사회를 전복시키기 직전으로 치닿는 폭력을 엉뚱한 방향으로 배출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이러한 메커니즘에 따라붙는 종교적 설명('정화'나 '신에게 바치는 제물' 등)은 엉뚱한 사람이나 동물을 희생해 사회를 안정시키는 진정한 메커니즘을 교묘히 숨기는 또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폭력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면, 그 폭력은 축적되어 경계를 넘쳐 주변을 잠식하게 된다. 희생의 역할은 이러한 무차별적 대체의 물결을 막고, 폭력을 "적절한" 경로로 전환하는 것이다.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Violence and the Sacred
거칠게 요약하면 희생양 의식은 부르케르트에 있어서 공포의 제거를 통해 집단이 심리적으로 안전함을 느끼는 방법이고, 지라르에 있어서는 폭력의 해소를 통해 집단이 실제적으로 안전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의 대상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자발성을 강조하였다. 당연히 이런 일을 자발적으로 맡을 사람은 없기 때문에, 대개는 금전이나 음식 제공을 통해 자발성을 가장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신화에서는 자발성을 가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희생양을 테마로 한 신화에서 희생양은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선택된다. 또한 이같은 신화에서의 자발적 희생양은 대부분 신체적으로 완벽한 청년, 아름답고 고귀한 출신의 처녀, 그리고 왕이다. 아테네를 정화하기 위해 인간의 피가 필요할때 자원했던 잘생긴 청년 크라티누스, 폴리스를 위해 희생한 에렉테우스의 세 딸, 레오스의 딸 테오페, 낙소스를 구한 폴리크리테, 아테네를 구한 아테네 왕 코드로스 등이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이는 우리가 보아온 역사적 사례 ―노예거나 가난한 사람, 추악하고 신체적으로 혐오스럽거나 기형이 있는 사람 및 범죄자 등 ― 와는 정 반대이다. 신화에서는 고귀하고 가치있는 인물들이 희생되는 반면 현실에서는 가장 형편없고 쓸모 없는 인물들이 추방된다.
이는 희생양 이념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가치 있는 인물의 자발적 희생은 희생양 메커니즘의 이상이다. 사실 하찮은 지위의 사람들의 배제를 통해 사회가 구원받는다는 실감이 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장 고귀한 것의 희생이야말로 가장 가치있는 것이므로. 그러나 현실에서 가치있는 사람을 그렇게 쉽게 희생시킬 수는 없다. 추하고 가치없는 인물들의 (반 강제적)추방, 그것이 희생양의 현실이다.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지는 이피게네이아. 에우리피데스의 유명한 비극에서 이피게네이아는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아킬레우스를 거절하고 결국 희생을 받아들인다. '아킬레우스의 분노The Anger of Achilles', 1819, by Jacques-Louis David>
그러나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어떻게든 매워져야 했다. 따라서 파르마코스는 항상 매우 중요한 인물로 대우받았다. 마실리아에서는 그가 1년 동안 국가의 보호를 받았고, 이는 보통 매우 중요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대우였다. 이후 그는 성스러운 옷을 입고 도시에서 추방되었다. 압데라에서는 그가 훌륭한 만찬을 대접받은 후 추방되었다. 아테네에서도 희생양은 국가의 보호를 받았고 충분한 식사가 제공되었으며, 종국에는 훌륭한 옷을 입은 채로 도시에서 쫓겨났다. 같은 이유에서 이스라엘의 희생양 의식에 사용되는 염소도 번식의 의미에서 별 가치가 없는 '숫염소'를 성별하여 사용하였고, 히타이트 역시 가치없는 숫염소를 값진 장식물로 치장하고 잘 차려입은 여인들을 통해 나라 밖으로 추방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의 희생양인 파르마코스Pharmakos의어원이 약이자 독 모두를 뜻하는 파르마콘Pharmakon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배제됨으로써 집단을 구원하는 선하고 가치있는 '약'이다. 그러나 동시에 강제로라도 배제되지 않으면 폴리스에 재앙을 몰고오는 악한 '독'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일견 기괴해 보이는 고대 그리스의 희생양 의식의 이면에는 사회적 안정이라는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의식에서 사용된 희생양은 신화 속에서는 고귀한 자들의 자발적 희생으로 이상화되었으나, 현실에서는 사회 하층민들이 냉혹한 배제되는 형태로 나타났다.
희생양 의식은 단순히 과거의 신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유물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고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이는 불안과 폭력을 '적절한' 대상으로 전가함으로써 집단을 안정시키는 인간 사회의 오랜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과연 집단 유지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고대 그리스로부터 대략 2500년이 지난 지금, 단순히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는 쫓아내지 않는다는 사소한 진보 외에 우리가 이룬 것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가 신화를 통해 희생양의 가치를 이상화했던 것처럼, 21세기의 우리는 희생의 구조를 감추기 위해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참고도서
• Bremmer, J. N. (2008). The scapegoat between northern Syria, Hittites, Israelites, Greeks and early Christians. In J. N. Bremmer (Ed.), Greek religion and culture, the Bible, and the ancient Near East (Chapter 10). Brill.
• Bremmer, J. N. (2000). Scapegoat rituals in ancient Greece. In R. Buxton (Ed.), Oxford readings in Greek religion (Chapter 12). Oxford University Press.
• Burkert, W. (1982). Structure and History in Greek Mythology and Ritual (Vol. 47).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Burkert, W., Girard, R., Smith, J. Z., & Hamerton-Kelly, R. G. (Ed.). (1988). Violent origins: Walter Burkert, René Girard, and Jonathan Z. Smith on Ritual Killing and Cultural Formation (1st ed.). Stanford University Press.
• Burkert, W. (1991). Greek religion: Archaic and classical. Wiley-Blackwell.
• Girard, R. (1979). Violence and the sacred.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 Hughes, D. D. (2013). Human sacrifice in ancient Greece (1st ed.). Routledge.
• Parker, R. (1996). Miasma: Pollution and Purification in Early Greek religion. Clarendon Press.
첫댓글 내용도 흥미돋이지만 저 글 내용을 ai로 돌려서 교육 만화처럼 만든것도 흥미롭다!
희생양이 저기서 왔구나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