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를 바꾸다
- 정형일
독거실 12호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몇 개월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일년 삼 개월을 더 살고 있다
아니 살아 있다
먹은 것은 없어도 똥은 싸야 하므로
한 박스의 관장약을 항문으로 넣고
똥 한 번 싸는데 하루의 반을 소요한다
제도 속에 감금되었다는 이유로
호스피스 치료 대상이 되지 않는 그에게
통증을 견디는 방법은 소량의 트리돌과
10분여 마다 자세를 바꾸는 것뿐
반듯하게 누웠다가 벽에 다리를 기댔다가 가슴을 쥐고 엎드렸다가 모로 누웠다가 쥐며느리처럼 구부러졌다가 일어나 앉았다가 수그러지다가
숨이 멈출 때까지 자세를 바꾸는 것뿐이다
어쩌면 삶이란
투병으로 생의 마지막을 연장하는 말기암 환자의 모습입니다. 그 생의 한 국면인, 그의 "통증을 견디는 방법은 소량의 트리돌과/ 10분여 마다 자세를 바꾸는 것뿐/ 반듯하게 누웠다가 벽에 다리를 기댔다가 가슴을 쥐고 엎드렸다가 모로 누웠다가 쥐며느리처럼 구부러졌다가 일어나 앉았다가 수그러지다가"하는 모습을 봅니다. 거기로부터 시인은 "숨이 멈출 때까지 자세를 바꾸는 것뿐이다/ 어쩌면 삶이란"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프랙탈적인(自己相似的인)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는 말기암환자입니다. 하지만 멀쩡한 우리들도 위의 환자와는 정도의 차이로 다들 뭔가를 앓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뭔가 고통을 받고 해결해 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 사이에 희노애락이 있을 것입니다만 어쨌든 그것 역시 자세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삶은 "숨이 멈출 때까지 자세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를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으로 분(扮)하여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을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마치 우주인이나 종이 다른 생물이 되어). 그렇다면 그들은 외부에서 우리의 동작만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단정하겠지요. '음, 산다는 것은 저렇게 자세를 바꾸며 움직이는 것이구나'. 그이들도 말할 것입니다. "숨이 멈출 때까지 자세를 바꾸는 것뿐이다/ 어쩌면 삶이란"(이렇게 보는 것을 구조주의자들은 '바깥에서 보기'라고 부릅니다). 물론 자세를 바꾸는 그 안에 그 종만이 가지는 무수히 많은 심리감정으로의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고통을 견디는 방법'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평화를 찾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라 부른들 삶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렇다면 '자세를 바꾸는 것'을 그 꽃의 일생으로 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행/불행'의 코드에 집착하지 말고, 다만 자세를 바꾼다고!
-글/ 오철수 시인
첫댓글 굉장히 좋은 시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양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습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오늘은 대구를 내려가는 날인데, 그쪽 분들 얼굴 좀 뵙니지요^^
빈터 지갑 먼저 폴폴 나도록 터시고 오세요 ㅋㅋ 다음엔 시간이 된다면 저도 대구에서 한 번 뵙도록 할께요 ^^
ㅋㅋ 우짜꼬..난 지갑을 안들고 다니는데^^...
저도 자세 함 바꿔 바야겠습니다. 고통이 줄어드는지......
새로움을 느끼려는 쪽으로 먼저 마음이 가지 않으면, 그래서 고통 쪽으로만 집착되어 있으면 아무리 자세를 바꿔도 꽝이야. 고통을 이기려고 자세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느끼려고 자세를 바꾸는 거지^^
저도 자세를 바꿔야 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ㅎㅎ 이렇게 고통을 감내하는 분도 계신데...삶이 얼마나 숭고한 지..이렇게 오늘 살아 있다는 활동할 수 있다는 자체 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요..지난 번 댓글 달았던게 생각이 나네요..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도 하나의 인격체로 혜택도 주어 졌으면 좋겠어요..마지막 가는 길 고통이 덜 하게..오늘도 자세를 바꾸고 계실 그 분에게 힘내시라 말씀 드리고 싶어요..감사합니다 ^*^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아 피해를 보는 경우가 대단히 많지요. 특히 의료계 쪽이 매우 심할 거예요...인권...말기 암환자에 대한 호스피스 치료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많지요. 호스피스 닥터가 피고인이 되는 경우가 매우 많아요. 호스피스 치료에 대해 찬반 이유가 각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더라구요^^
이 시를 읽다보면 어린왕자가 생각납니다.^^ 구암님 늘 새로움으로...^^
어린왕자???? 음...이해 될까 말까 알똥말똥^^
시를 참 무던하게도 쓰는구나 생각합니다. 이 공부방에서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의 시, 전형의 진수를 보여주길 바람 ^^
바쁜 철은 지났는가? 그나저나 FTA타결로 힘들겠는데...그렇다고 시 팽개치지 말게나. 하는데까지 해 보자고. 파이팅^^
수현이 오랫만이다 ^^
시가 아니었다면 어찌 이런 만남들이 있었을까? 처음 만났을 때도 낯설지 않은 그런 분위기가 참 좋았어. 많고 많은 길 중의 하나인 이 길이 오래도록 함께했으면 해. ^^
쌤~ 감사합니다. 청주(교)를 거쳐 공주(교)를 거쳐 공주치료감호소에 다녀왔습니다. 이제서야 봅니다. 아직도 갈길은 당당 멀었고 움직임에 대해 눈이 더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새롭게 자세를 바꿔봐야겠습니다. 말씀처럼 긍정쪽으로요^^ 수현님, 빈터님, 이리님, 늘샘님, 탱크님도 참 무던하게 쓰시는 분들이죠. 더 좋은 작품들 기대하겠습니다.
청주까지 와서 전화도 없이 다녀가셨다고라?
^^업무상요. 죄송합니다.
네가 기가 성해서 뭔가를 덧붙이고 더 극화하려고 해. 마음공부하듯이 자기 생각은 한두줄 붙인다고 생각하고 옮겨내기를 해봐. 특히 네 특별한 시적 소재는 아주 무관심하게 밖에서 보도록 해야할 거야....어떻든 맘에 들어^^ 쪽.ㅋ
처음 보았을 때부터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었어요. 자세를 바꾸다^^
^*****^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난 장근샘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네.
역시 형일의 공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래 살아있다는 것은 (그것이 고통을 감내하는 방법일지라도) 이렇게 계속 움직이는 것인지도...
엄청나게 공감지수가 높은 시였습니다. 그런데 조기 위쪽에 있는 철수샘의 <댓글처럼 고통을 이기려고 자세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느끼려고 자세를 바꾸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나아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 시가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생의 우울한 면을 정확하게 찝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구암님 덕분에 진정성어린 접하기 어려운 시를 맛봅니다. 다음에 또 어떤... 기대가 되고 기다려지는군요.
오래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폐까지 전위되었을때 몰핀도 듣지않고 앉았다 누웠다 모로누었다를 끝없이 반복하시던 모습이..고통을 이기기위한것이 아닌 창조자의 자세를 바꾸는것 명심하겠습니다
일어나기 싫을 때 음악을 틀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정신이 맑아지지요. 이 시가 정신을 맑게 합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움직이지 못한 채 한 자세로만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특히 벌을 설 때... 구암님 시도 봄물이 올랐나 봅니다.^^
사는 일이, 자세를 바꾸는 일이라......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의 자세로 생을 맞이하는거군요. 늘 익숙한 자리, 익숙한 곳에서 틀에 박힌 것들을 틀어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인가요. 그 작은 변화가 생을 긴장하게 하는 것인가요!
구암님...시집한권 묶어 내셔요...나오면 꼭 사 볼께요..
삶이란 어쩌면, 자세를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에서냐 새 길을 위해서이냐의 차이일 뿐! 대단한 시적 경험에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하는 시!! 좋은 시라는 표현 보다 더 좋은 표현 없을까?..ㅎㅎ
여러 번 정독한 시인데요 '반듯하게 누웠다가 벽에 다리를 기댔다가 가슴을 쥐고 엎드렸다가 모로 누웠다가 쥐며느리처럼 구부려졌다가 일어나 앉았다가 수그러지다가' 독거실의 12호는 하루를 천년처럼 고통을 맛보며 더 풍요롭게 살 수도 있을 거에요.
많이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시입니다. 숨이 멈출 때까지 자세를 바꾸는 우리네 삶처럼요. 지금은 시를 향하여~
그렇지요. 쪼매만 아파도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던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시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생을 받기위해 자세를 끝임없이 바꾸어야하는 게 인생이라고요...공감이 가네요.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