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에 뿌린 씨앗1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임마누엘
김완
평생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네
휴대전화 신용카드 현금카드도 없는 사람
‘주암호 사랑 걷기대회’에 가려다가
평생 동지이며 후배인 최영추의 말
“형님, 민중총궐기대회에 가십시다”에
“그러마” 하고 함께 서울로 향한 사람
“앞에 나서지 마쇼잉”
“알았네. 잘 다녀올 것이네”
아내는 최영추, 큰딸 백도리지와 남편
사촌동생 전화번호 주머니에 넣어주었네
작은 가방에는 녹차 한 병
비 예보 있어 챙겨준 우산이 들어 있었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
“쌀값 21만원을 보장하라” 외치며
그는 죽어버린 농업정책을 상징하는
상여 옆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서울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물 대포에 맞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네
아스팔트 위에는 물 대포를 맞은
농민들이 떨군 벼가 떨어져 있었네
가톨릭농민회 25주년 버클과
‘가자 11월 14일 서울로!
밥쌀용 수입 저지!’가 새겨진 조끼로
그를 알아본 농민 운동 후배들
백남기 농민을 구급차에 싣고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네
2016년 11월 5일 장례식을 치를 때까지
전남 보성 부춘마을에서 아내 박경숙과
상경 이틀 전 서둘러 파종한 백중밀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간
밀 씨앗도 씨를 뿌린 이도 견뎌야 했네
대학생 농활 때 맺은 인연으로
서울대 의대 의사들 몇 다녀가고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을 키우고 있는
젊은 농민들 혜화동 농성장 지켰네
이름도 남기지 않는 수많은 시민과
묵묵히 자신의 몫을 수행한 활동가들이
여섯 번의 부검 영장을 막았네
촛불 시위, 촛불 정부의 씨앗이 되었네
보성에서 우리 밀 농사를 지으며
이웃과 함께 다만 자리를 지킨 사람
1973년 유신철폐 시위 주도하다
명동성당에 피신한 것을 계기로
‘임마누엘’이란 영세명을 얻은 사람
장례식도 명동성당에서 치른 사람
1980년 중앙대 ‘유신잔당 장례식’
장례 행렬의 총괄 지휘자인 사람
5.18 유공자 신청 권유해도 살아남은 자
부끄럽다며 끝까지 거부한 사람
개 이름도 오이삼2, 팔일팔3로 지은 사람
50년 만에 중앙대에서 졸업장을 받은 사람
후배들 모두 '바위 같은 사람'이라는 사람
자식들 이름 백도라지, 백두산, 백민주화로
지어 한결같이 통일을 염원하던 사람
평생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추구한 사람
구묘역이라 부르는 망월동 제3묘역
백남기 농민과 이웃한 이들이 누워있네
5.18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민주화⸳통일
평화⸳노동운동을 하다 쓰러진 열사들
박관현 열사, 이한열 열사, 정광훈 전 의장
오종렬 의장, 김남주 시인 함께 누워있네
겨울 빗속에 망월동 묘역에 빼곡한 빗돌들
너무 많은 사람들 죽었네 가슴 미어지네
언제나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올 것인가
뿌려진 씨앗은 뜨거운 여름을 품고 있다네
1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 백남기 농민 투쟁기록. 정은정 글 윤성희 사진에서 참고 변용함
2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
3 김대중 대통령 서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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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완
아스팔트 위에 뿌린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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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 18:4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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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남기 농민의 삶이 한없이 나를 부끄럽게 하네
고 정광훈 의장이 노랫말을 썼다는 <아스팔트 농사>를 말하는가? "---/여의도에 아스팔트 해방 농사 지어보세./너 살리고 나 살리는 아스팔트 농사/이 농사가 최고로세./농민해방 앞당기는 단결투쟁 농사/이 농사가 최고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