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고 쓴 김장김치
강민자
변덕스런 날씨 탓에 사람들은 올해 김장은 언제 담그어야 할런지 여기 저기저서 걱정들이다. 그러나 난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든든한 시어머님이 뒤에 딱 버티고 계시기 때문이다. 언제 김장하니 김치 통 가지고 오너라. 하시면 바로 그날이 김장하는 날이 된다.
어머님의 김장하기는 한 여름 장마가 질 무렵 단양마늘이 출하되는 그 때부터 시작된다. 아니 훨씬 전부터다. 적당한 시기에 천일염을 받아 김장하기에 알맞은 소금을 만드는 일부터 하시니까 일 년 내내 하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늘이 접접이 나뉘어 바람 잘 통하는 사랑채 처마 밑에 보신단지가 되어 매달린다. 그런 다음엔 젓갈류와 새우젓을 사시러 기꺼이 광천 행을 하신다. 충청도 사람들은 옛날부터 젓갈냄새가 진한 것을 싫어한다며 젓갈 고르기에 신중을 기하신다. 아버님께서 평소에 즐겨 드시는 육젓을 사 오시는데 마치 좋은 육젓을 사기위해 다녀왔다는 듯 아버님께 유세를 떠신다. 젓갈을 바라보시며 흐뭇해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나의 시선은 절뚝거리시는 다리에 머문다. 김장을 할 때까지 서늘한 광의 한쪽에 보관하려고 젓국을 옮기시는데 좀 거들라 치면 내가 너보다 낫다 시며 그 무거운 걸 혼자 옮기신다.
칠십 평생이 훨씬 넘도록 오직 한길 농사일만 해 오신 두 분께 제일 쉬운 일이 농사일이요, 가장 어려운 일도 농사일 이셨을 것이다. 내가 결혼하여 오던 해 동네 앞 냇가는 내라기보다는 작은 강이라 할 만큼 크고 물이 넘쳤고 다슬기며 이름 모를 물고기들로 넘쳐났었다. 지금의 그 냇가는 물고기가 더 이상 살 수 없을 정도로 물의 양이 줄고 온갖 원인으로 메말라가고 있다. 그 내의 역사는 바로 우리 시부모님들의 인생이다. 비가 제때 내려주지 않아 내가 타들어 갈 때 두 분의 속도 함께 타들어 갔고 그만 그쳐주기를 바랄 때도 힘없는 두 분처럼 냇물은 대책 없이 터져버렸었다. 그래도 냇물이 그 자리에서 모습을 바꾸며 흐르고 있듯 두 분도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배추를 키우기 위한 수고는 늦여름 장마가 끝나갈 무렵 배추 모종을 하면서 시작된다. 늦장마에 여린 배추 모종이 쓸려 내려갈까 애태우시다 장마가 물러나면 파며 무며 갓들을 심으신다. 어느 누구네가 비료를 너무 주어 배추가 녹았고, 너무 늦게 파종해 못 먹겠다는 등의 소문도 아랑곳없이 우리 집 배추는 도도하게 자랐다. 산에 도토리가 떨어질 무렵 어머님은 무가 실하다며 한창 자라고 있는 어린 무를 한 소쿠리 뽑아 보내신다. 그날 저녁 밥상은 무생채에 조기 한 마리면 꿀맛이다.
그 옛날 대가족이 모여 살아 먹을 것이 부족할 때 김장은 그야말로 월동 식량이나 진배없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넘쳐나고, 전화 한 통이면 퀵하며 배달되는 김치가 있고 자라면서 서양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김치를 외면한다. 더군다나 김치냉장고란 놈은 몇 년이고 김치를 보관하란다. 그래도 가능하면 어머님이 담가주신 간장, 고추장, 된장으로 밥상을 지키려는 나의 현명함? 으로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 밥상을 그리 멀리 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드디어 겨울에 접어들어 날씨가 어느 해보다 서둘러 추위를 몰고 와 주부들의 손길이 바쁘다. 궁금해서 “어머님 김장 하셔야죠?” 하니 다 때가 있다면서 배추를 뽑아 창고에 쌓아놓으셨으니 나중에 연락하면 오기나 하라신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다 자라 잔손길이 가지 않고 지구 온난화로 추위의 위력이 별로이지만 20여 년 전 추위는 달랐던 것 같다. 층층시하 애딸린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김장하기는 고역 그 자체였다. 펌프 물을 끌어 올려 찬 물에 몇 백 포기나 되는 배추를 다듬어 절이고 씻고, 양념에 들어갈 온갖 재료들을 썰고 다지고 하다보면 겨울밤의 매서운 추위는 손과 발에 동상이란 영광의 상처를 주고 더 힘겨운 겨울을 예고하고 간다.
이젠 자식들도 다 분가하여 잘 살고 있고 많이 먹지도 않는 김치를 그만 담글 만도 한데 우리 어머님의 푸념어린 행복한? 팔자타령은 올해도 삼백포기의 배추로 결정이 났다. 둘째네, 큰사위 작은사위, 셋째네는 애들까지 어머님이 담가주시는 김치 한가지면 다른 반찬이 없이도 겨울을 난다는 소리에 의기충천하여 어머님의 김장하기는 막이 오른다. 옛날에 여러 가족이 모여서 하던 마늘 까기부터 온갖 양념 준비는 몇 날을 거쳐 오롯이 아버님과 어머님 몫이다. 객지서 고생하는 자식들은 김장을 가지러 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신다. 말이 삼백포기지 연로하신 두 분께는 매우 벅차신 일이다.
드디어 김치를 버무리는 날이다. 여기 저기 살고 있는 육남매는 한 아름 김치 통을 들고 한 포기라도 더 담아가려고 야단들이다. 아이들이 다 유학중이라 김치가 많이 필요 없다고 하자 어머님은 금세 서운한 표정을 지으시며 내가 담근 김치가 맛이 없어 그러냐고 하신다. 순간 우리 동네 옆집에 손자를 돌보며 힘겹게 살고 계신 가엾은 할머니 생각이 나 얼른 김치 좀 더 많이 달라고 하니 곧 흐뭇해하신다. 들어갈 때 사가지고 간 고기를 삶고 동태찌개를 끓여 수고하신 동네 어른들에게 대접하고, 따끈히 덥힌 쌍화탕으로 몸을 녹여 드리고 굴을 넣은 겉절이를 집집이 돌리면 우리 집 김장하기는 끝난다. 곧바로 바쁜 자식들은 갈 채비들을 한다. 그때부터 어머님의 손길은 더 바빠진다. 일 년 내내 농사지으신 잡곡들과 당근, 고구마, 쌀, 등등 올해는 야콘 이란 놈이 새로 등장했다. 옛날에 시어머니 무서워 몰래 몰래 친정에 보내던 시어머님 생각이 나 내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히 농사지으신 거 다른 자식들 싸 주시라고 서둘러 나왔다.
김치를 냉장고에 넣고 조물조물 싸주신 보따리들을 정리하며 만감이 교차한다. 다른 집 보다 실하게 농사를 지으시고는 나누어 주실 때는 언제나 큰며느리 먼저고, 가족이 제일 적음에도 양은 항상 제일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님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십
가까이 살아보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난 종가 집 맏며느리니 많이 베풀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풍족해도 부족한 사람은 주변에 늘 있기 마련인데 그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유난히 고소하고 양이 많은 참기름을 꺼내들며 떠나올 때 배웅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별난 식성 탓에 음식을 하며 맛보기를 유독 싫어하는 탓에 김치를 담그면서도 맛을 보지 않았었다. 서둘러 정리를 마치고 어머님표 청국장과 저녁을 먹던 우리 부부는 할 말을 잊었다. 순간 남편의 얼굴에 스치는 그림자의 의미는 나와 같았다.
오랜 지병인 당뇨 주사와 약은 어머님의 미각을 완전히 없애버린 것이다. 날로 수척해지시고 응급실행이 잦더니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지난해엔 치아를 모두 잃으시더니 올해엔 미각을 잃으신 것 같았다. 손수 농사지으신 좋은 재료들만 쓰셔서 카랑카랑 하게 시원한 맛이 주변 어느 김치보다 맛있어 늦게 까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김치였다.
김장하기가 멈추는 날이 우리 어머님의 의미 있는 삶도 끝이리라 싶어 그 힘에 겨워하시는 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시어머니라기 보단 한 여자로 어머님을 대하여 늘 기구한 운명을 동정하며 모든 갈등도 참아냈는데. 맵고 쓴 김치는 그동안 살아오신 어머님의 일생을 한데 모아 맏며느리인 내게 전해 주신 것이다. 절대 어머님처럼 살지 않아요. 내 자식들도 이런 몹쓸 관습 따윈 물려주지 않을 거예요. 집안 대소사가 너무 힘겨울 때마다 어머님께 퍼부어 가슴을 아리게 하면“ 네 팔자가 그런걸 어쩐다냐 살다보면 좋은날 있을거다.” 하시더니 모질게도 맵고 힘겨워 쓰디썼던 인생살이가 김치에 담겨 나에게 온 것이다. 마지막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듯.
병원에 입 퇴원을 되풀이 하실 때마다 속도 무척 끓이고 원망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나도 이젠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느껴졌을 때 조금씩 어머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님이 더 이상 나의 든든한 뒷 백이 아니며 이젠 지켜드려야 할 나약한 존재란 것도. 이제야 어머님이 진정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이해하고 잘 해드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싶어 김치 맛이 유난히 맵고 쓰게 느껴진다. 어머님 남은 여생 부디 평안하셔요.
첫댓글 " 김장하기가 멈추는 날이 우리 어머님의 의미 있는 삶도 끝이리라 싶어 그 힘에 겨워하시는 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시어머니라기 보단 한 여자로 어머님을 대하여 늘 기구한 운명을 동정하며 모든 갈등도 참아냈는데. 맵고 쓴 김치는 그동안 살아오신 어머님의 일생을 한데 모아 맏며느리인 내게 전해 주신 것이다. "
부족한 글 읽어주심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몸이 불편하셔도 오직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어머님.... 겨우 그 고마움을 알았을땐 어머님건강은 쇠잔해지셨으니
안타깝습니다. 감동의글 잘 보았습니다.
늘 마음만 갑니다.감시드리구요.글로나마 새해 인사드립니다.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뜻대로 이루시옵소서!
종가집서 담그는 김장 맛의 비결이 있다고 들었는데,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김장 담그는 연래행사로 온 가족의 따뜻한 마음이 응집 된 맛도 뺄 수가 없겠지요, 옛날에는 집집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는 분량을 하느라 진땀은 뺏지만 땅에 묻은 단지 안에서 꺼낸 김치 맛은 잊지를 못하죠,시어머니라기 보단 한 여자로 어머님을 대하여 늘 기구한 운명을 동정하며 모든 갈등도 참아냈는데. 모질게도 맵고 힘겨워 쓰디썼던 인생살이가 김치에 담겨 나에게 온 것이다. 어머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말 보단 행동이 앞서야는데 바쁜 시간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정겨운 고부감의 정이 느껴지는 글 잘 감상했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늘 좋은글 읽기만 해 죄송하구요 좀더 예쁜글 쓰기로 감사 대신하겠습니다.
절대 어머님처럼 살지 않아요, 젊을때 흔히 하는 얘기지요. 그렇지만 젊은 사람이 늙으면 또 그렇게 되지요. 잘 읽고 갑니다
미비한 글에 시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글다운 글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좋은글에 감사합니다.건필하세요.
네, 늘 감사합니다. 푸근한 큰언니 같은 인품이 느껴지는 선생님 많이 배우겠습니다.
맵고 쓴 김장 김치~ 이해가 갑니다. 91세이신 큰어머님~ 음식하는 곳에는~ 뽑혀 다니셨는데~ 이제는 물러나셔서~ 너희들이 한 것이 맛있다고 하시네요. 아직도~ 쑥개떡의 맛은 죽여주네요. 시어머님의 맛있는 김장김치로 살아오신 가인님이 부러워요. 좋은글 고마워요.
난 언제나 맛난 김치 만들어 주변에 돌려볼까나아득하기만......감사합니다.
가슴이 쨔안해지는 글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도 나고, 아직도 김장 담궈 주시는 친정 엄마가 있어 난 얼마나 행복한건지..... 선생님의 고운 마음도 엿볼수 있는 따스한 글 잘 감상했습니다.
부족한글 읽어주심에 감사드리옵고 많이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글 대하니 기쁩니다. 선생님가문의 김장 담그시는 풍경속에서 저의 시어머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네 선생님의 열정 꼭 배워야 할텐데 잘 안 되네요.좋은 말씀 많이 부탁드립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