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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놀랐고 영광” 아들과 저녁 먹다가 노벨상 수상소식 들어
|[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소감
|“어릴때부터 한국문학과 자라… ‘작별하지 않는다’ 가장 좋아해
|‘채식주의자’ 쓸때는 3년 고군분투… 아들과 함께 조용히 축하할 것”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창비 제공 ⓒ김병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던 10일(한국 시간) 오후 소설가 한강(54)은 자택이 있는 서울 종로구 자하문동에서 여느 때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들과 함께했던 저녁 식사를 막 끝내던 참이었다. 스웨덴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오후 8시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있던 마츠 말름 노벨위원회 상임 사무국장이었다. 한국 최초이자 18번째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그렇게 처음 접했다.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발표였다.
소설가 한강의 책 살펴보는 시민들 1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시민들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국인 소설가 한강의 책을 살펴보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뉴스1
한강은 이날 수상자 발표 후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너무 놀랐고 영광이다. 지지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나는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다. 나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 뉴스가 한국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떻게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할 것이냐란 질문에 그는 “내가 술은 안 마신다”면서 “전화 통화 후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할 것”이라며 웃었다.
가장 영감을 준 작가에 대한 질문에는 “어릴 때부터 봤던 많은 작가들이 영감이 됐고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그중 한 명인데 그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어릴 때 좋아했고 인간에 대한 내 질문을 그 작품과 연관시킬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모든 작가들은 가장 최근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맨부커상을 안긴 ‘채식주의자’에 대해선 “3년 동안 쓰면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책에 등장하는 적절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 매우 고군분투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강은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에 꾸준히 천착해왔다. 지난해 11월 세계한글작가대회 특별강연에서 그는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쓴 과정을 설명하며 “역사 속의 인간을 들여다본다는 행위는 폭력의 반대편에 서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의 일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중학교 3학년인 동호가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후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한강은 “소설을 쓰기 위해 한 달 정도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증언집을 읽었다”며 “900여 명의 증언을 읽으면서 당시의 상황적인 파편들을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1980년 서울로 온 한강은 자신의 고향에서 5·18이 일어난 것을 보고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인촌상 수상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친 한승원 소설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사방에 널린 책들 속에서 자랐다는 것. 그는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니 현실의 세계가 절대적이지 않았고, 그렇게 두 세계에서 살 수 있었던 점이 유년기의 나를 도와줬다”고 말했다.
소설을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습작기를 거쳐 출판사에 취직한 뒤 3∼4시간씩만 자면서 글을 썼다. 그는 뜨거움이나 열정보다 끈기로 소설을 써왔다고 했다.
그는 집필 땐 칩거한 채 작품에만 오롯이 몰두하는 작가다. 한강은 “지금까지 쓰고 싶은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왔다. 그 결과는 통제 밖의 영역”이라며 “오직 쓰는 과정에 있는 사람만이 작가이며, 다행히 지금 쓰고 있으니 나는 아직 작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따금 그는 소설 밖 세계를 꿈꾸기도 한다고 했다.
“전에 만들고 불렀던 노래들을 담담하게 다시 녹음해보고 싶습니다. 그사이 새로 만든 노래들도 넣고요. 음반 제목은 오래전 보았던 연극의 대사인 ‘안아주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짧잖아요’로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백일몽일 뿐이지만 언젠가 그런 여유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도 시성’ 타고르-‘설국’ 日 야스나리 등 이어 亞 5번째 영광
|[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 수상
|‘단골 후보’ 하루키보다 먼저 받아
소설가 한강(54)은 아시아에서는 역대 5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아시아에선 여성 작가로선 최초 수상이다. 앞선 수상자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작가들인 만큼 한강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한강이 먼저 수상한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10일 스웨덴 한림원에 따르면 아시아 출신으로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영국 식민지 통치 시기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913년)다. 시집 ‘기탄잘리(신께 바치는 노래)’가 깊으면서도 섬세한 글이라는 평을 받았다. 타고르는 1929년 일본 방문 시 한국을 소재로 한 짧은 시 ‘동방의 등촉’을 동아일보에 전하기도 했다.
일본의 최초 수상자는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로 대표작 ‘설국’을 썼다. 이어 1994년 일본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평가받는 오에 겐자부로가 두 번째로 수상했다. 2000년 중국 출신의 극작가 가오싱젠이 수상했지만 그는 1987년 프랑스로 망명해 프랑스 국적 수상자로 기록됐다. 이어 중국 출신의 모옌이 2012년 수상하면서 국적 기준으로 아시아 출신 수상자는 여태까지 4명에 불과했다.
이번 수상으로 한강이 일본의 대표 작가인 하루키보다 먼저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점도 큰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서구권에서는 ‘노르웨이의 숲’ 등을 펴낸 하루키가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아시아 대표 작가로 거론돼 왔다.
역대 수상자 중 여성으로는 한강이 아시아 최초이자 18번째 수상을 하게 됐다. 그간 남성 위주의 수상자 선정에 대한 비판이 가중되자 스웨덴 한림원은 2012년 이후 매년 남녀를 번갈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해 왔다. 올해 중국 출신의 여성 작가 찬쉐(71)가 가장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된 점도 이 때문이다.
한강의 작품은 여성 주인공의 아픔, 트라우마 등을 다뤄 주목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날 수상 발표에서 “그녀의 작품은 폭력, 슬픔 그리고 가부장제 등 다양한 장르를 탐구함으로써 경계를 넘나든다”고 평가했다.
✺ 채식주의자|한강
2007년에 출간된 한강의 연작소설로, 작가에게 맨부커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허무와 결핍을 소재로 한 탐미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부장의 폭력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사회적 제약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한계까지 넘어 식물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과 사회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
✵<채식주의자>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왜 죽으면 안 돼?
겉보기엔 평범하다못해 무미건조하지만, 고집이 세고 다른 이를 해치지 않으려는 성격인 '영혜' 는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남자의 아내이다. 하지만 어느 날 영혜는 피가 뚝뚝 흐르는 생육을 먹는 끔찍한 꿈을 꾸게 되고, 고기를 아주 멀리하게 된다. 집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다 치우고, 남편에게는 "몸에서 고기 냄새가 난다" 며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영혜는 어릴 적 자신을 문 개가 아버지[4]의 오토바이에 묶여 끌려다니다가 거품을 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영혜는 그 개로 만든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먹었었다.
영혜의 꿈은 점점 '고기를 먹는 것' 에서 떠나, 누군가가 누군가를 때려서 살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고기를 거부하는 영혜는 사회적인 압박을 받으며 점점 눈에 띄는 행동을 싫어하는 남편의 심기를 건드리고, 보다못한 남편이 그녀의 가족들을 불러 그녀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하다가 그녀가 자해를 하게 만들고 만다. 이 사건으로 가족은 풍비박산이 나고 영혜는 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병원에서는 어머니[5]가 달여준 한약[6]이나 고기마저 발악적으로 거부하고, 벤치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 앉아있다가 새를 잡아다 그 피를 핥아먹는 등 남편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결국 남편은 영혜를 버리고 만다.
✵<몽고반점>
주인공은 미디어 아트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예술가이다.[8] 집에서는 늘 힘 없는 모습이지만 자신의 카메라로 영상을 찍을 때만큼은 타인은 물론 본인도 이해 못하는 열정을 발휘한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동생(영혜)을 씻기다가 그녀에게서 몽고반점을 봤다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는 흥분에 빠진다.
거부할 수 없는 열망에 빠진 그는, 도덕적인 금기를 깨고 영혜를 불러 그녀의 누드에 꽃을 그려 촬영하고 싶다는 부탁을 한다. 영혜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게 이를 수락한다. 그도 그럴게 영혜는 내심 식물적인 삶을 갈망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영혜의 몸에 꽃을 수놓고, 어린 시절이 지나면 사라질 게 당연한 몽고반점을 강조한 바디 페인팅을 그리며, 성욕을 초월한 예술적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동업자인 남성 'J' 를 불러 모델 일을 부탁하고, 그의 몸에도 꽃을 그려 영혜와 함께 찍도록 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영혜와 하나가 되는 모습을 촬영하겠다' 는 그의 지나친 요구에 질색한 J는, 수치심에 받쳐 촬영 중 스튜디오를 떠난다. 가뜩이나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했다' 는 생각을 하던 주인공은, 결국 동업자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에도 꽃을 그린 뒤 영혜와 몸을 겹치게 된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하루를 보낸 주인공은 어느새 잠에 들었고, 깨어보니 처제의 언니인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이미 다 본 상황이었다. 남편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아내는 남편에게 혐오감을 갖는다.
그 이후에 영혜의 언니는 정신병자가 있다는 신고를 했다고 말하며, 남편을 경멸하는 말들을 퍼붓는다. 그 와중에 영혜는 창밖을 향해 사타구니를 활짝 벌린다.
✵<나무 불꽃>
영혜의 언니는 남편과 결별한 상황이다.
영혜가 비 내리는 숲의 한 가운데서 며칠이고 가만히 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언니는 영혜를 찾아간다. 영혜는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언니는 다른 환자들의 몰골을 보며 영혜를 보기 위해 지나간다. 영혜 역시 비쩍 마른 몰골로 물구나무 서기를 한 채 언니의 부름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정말 죽는다고 영혜를 말리며 호소하는 언니를 두고, 그녀는 발악에 가까운 반발을 한다. 영혜는 이제 고기를 거부함은 물론이고, 채식마저 거부하며 햇빛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며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을 나무로서 여기면서 그 어떤 음식물의 섭취도 거부한다.
✺ 소년이 온다 Human Acts|한강
끝나지 않는 오월, 피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한 간절한 노래
이 소설은 군상극의 구성을 띠고 있다. 소설의 1장 <어린 새>는 동호의 이야기, 2장 <검은 숨>은 유령이 된 정대, 3장 <일곱 개의 뺨>은 불온 서적을 찍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경찰에 잡힌 뒤 끝끝내 살아남아 치욕을 느끼며 살아가는 은숙, 4장 <쇠와 피>는 시민군 김진수의 죽음에 대해 증언해줄 것을 부탁받은 1990년의 '나', 5장 <밤의 눈동자>는 광주에서의 증언을 요청받은 2000년대의 선주, 6장 <꽃 핀 쪽으로>는 아들을 잃은 동호 어머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막 장 <꽃 핀 쪽으로> 다음에 나오는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한강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그려낸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열다섯 어린 소년은 '어린 새' 한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고, ‘시취를 뿜어내는 것으로 또다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의 행진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죽게 되고, 중학교를 마치기 전에 공장에 들어와 자신의 꿈을 미루고 동생을 뒷바라지하던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그 봄에 행방불명되면서 남매는 비극을 맞는다.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이 한순간에 무너뜨린 순박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무고하게 죽은 어린 생
명들에 대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정대의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로 대변된다.
5·18 당시, 인구 40만의 광주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은 80만발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국가의 부조리에 맞서도록 어린 그들까지 시위현장으로 이끌었던 강렬한 힘은 다만 ‘깨끗하고도 무서운 양심’ 하나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느끼며 수십만 시민들이 모여 만든 위대한 ‘양심의 혈관’을 함께 이루었던 것이다. 소설은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이 겪은 5·18 전후의 삶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들을 드러내 보인다. 살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치욕스러운 고통이 되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모습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수피아여고 3학년 시절에 5·18을 겪은 ‘김은숙’은 '전두환 타도'를 외치는 데모로 점철된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담당 원고의 검열 문제로 서대문경찰서에 끌려가 ‘일곱대의 뺨’을 맞기도 한다.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고귀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조활동을 하다 쫓겨난 ‘임선주’는 이후 양장점에서 일을 하다가 상무관에 합류하게 되고, 경찰에 연행된 후 하혈이 멈추지 않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상무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대학생 ‘김진수’ 역시 연행된 이후 ‘모나미 볼펜’ 고문, 성기 고문 등을 받으며 끔찍한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 후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결국 자살하고 만다. 소설은 이러한 국가의 무자비함을 핍진하게 그려내면서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과거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열다섯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힘겹게 펼쳐 보이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 시대를 증언하는 숙명과도 같은 소명을 다한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오히려 치욕이 되는 사람들이 혼자서 힘겹게 견뎌내야 하는 매일을 되새기며, 그들의 아물지 않는 기억들을 함께 나눈다. 한강 작가는 “무덥고 습했던 여름 끝에 가로수 아래를 걷다가, 잘 마른 깨끗한 홑청 같은 바람이 얼굴과 팔에 감기는 감각에 놀라며 동호를 생각”한다. 따뜻했던 봄날의 오월을 지나 ‘그 여름을 건너가지 못한 동호, 이런 아침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동호’를 떠올리며 작가는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되새기고,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이들에게 어떠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를 간절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리하여 이제는 더이상 억울한 영혼들이 없기를, 상처 입은 영혼들이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나아가 평온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5·18 희생자들의 ‘눈 덮인 무덤들’ 사이에서 못다 핀 소년 동호를 추모하기 위해 작가 한강이 마음을 다해 밝힌 작은 촛불들이 안타까운 세상에 온기를 더해줄 것이다.
노벨 위원회는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해, 이 책은 잔혹한 현실화로 사건을 마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증언 문학 장르에 접근한다."라고 이 책에 대해 소개했다.
안나-카린 팜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 위원은 "한강의 작품 중 어떤 것을 가장 먼저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소년이 온다》를 꼽았다. 그는 "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감동적이면서도 끔찍한 이야기"라며 "트라우마가 어떻게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지를 다룬, 역사적 사실을 아주 특별하게 다룬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소년이 온다》는 인간 행위의 양면성을 해명하기 위해 5・18항쟁의 기억을 집합적 개인들의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내포 저자의 질문을 따라 독자들은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구체화하는 5・18항쟁의 기억에 대해 지각하도록 초대받는다. 이 이해는 독자로부터 깊은 애도의 감정을 끌어내면서 독자를 공유기억의 공동체에 참여하게 이끌고, 공동체를 두터운 윤리적 관계로 결합한다. 이때 존엄과 신뢰라는 인간다움의 조건은 등장인물에게는 행위의 기제이고, 저자나 독자에게는 비극을 기억해야 할 의무로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기제이다. 5월 문학[3]의 하나로서 《소년이 온다》는 중대한 공유기억을 전달하는 강력한 시학적 장치로서 기억 공유를 실행하기 위한 객체적 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소설이 등장인물을 통해 미학적으로 폭력에 직면한 인간에 대한 강렬한 비전을 수반하는 실천적 선택을 부각시킴으로써 5.18 민주화운동의 집단적 기억을 현재화하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독자에게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기억과 기억의 윤리를 호명하기 위해 나아간다.
*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등을 써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 예술계에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14년 세종도서 사업에서는 마지막 3차 심사에서 “도서의 사상적 편향성에 대해 검토”했고, 그 결과 탈락했다.
[출처: 동아일보 2024년 10년 11일/ 글: 이영일 yil20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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