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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찬송
가을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입구에서 입추, 처서, 백로를 만난다. 처서가 모기의 입이 비뚤어지는 때라면, 백로는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시절이다. 4계의 순행(巡行)은 어김이 없어 ‘땅으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하였다. 아직 대기는 한여름처럼 뜨겁지만, 어느새 오동잎으로 대표되는 가을 분위기를 거부할 수 없다. 이어서 밤이 더 길어지는 추분을 거쳐 한로, 상강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는 교회력, 곧 하나님의 달력이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부활절과 성탄절 양대 명절만 특별하게 강조되었다면, 요즘 교회는 절기의 성격을 점점 살려 나가는 추세다. 그만큼 신앙생활의 생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준비 절기로서 사순절과 대림절은 부활과 성탄에 이르는 과정에 강조점을 둔다. 쪽복음 크기의 사순절과 대림절 묵상집 발간이 여기저기 등장하는 이유다. 성탄절기를 ‘대림-성탄-주현’ 시기로 분리하여 지키는 일은 세계교회가 깊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살펴보면 이미 세계교회가 모두 행하던 일인데, 말씀 중심의 한국 개신교회만 절기 문화를 지키는 일에 미숙하였다. 정교회, 가톨릭, 성공회 등 전례를 중시하는 교회들은 교회 절기와 함께 주일마다 촘촘히 축일을 정하여 의미를 부여해 왔다. 황하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24절기 문화 속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시간을 공감하듯이, 서양사람들은 동서남북 어디든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억하는 명절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20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던 저녁의 일이다. 개신교회만의 특별한 명절을 맞아 그날 500주년 기념음악회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교회에서 열렸다. 여러 프로그램 중 독일 드레스덴에서 온 성악가들의 열심은 감동적이었다. 종교개혁의 의미를 살리려는 듯 한국어 시를 낭독하였고, 노래 가사를 일일이 번역하여 불렀다. 마치 모국어로 성경을 출판하고, 민족의 언어로 예배드리려는 진정한 개혁신앙을 웅변하려는 몸짓과 같았다.
그날 세계 만국공통어 찬송 하나를 배웠다. ‘500주년 기념 찬송’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할렐루야(알렐루야)와 아멘을 반복한다. 3번 할렐루야를 부르고 아멘으로 호흡을 고른 후 다시 반복한다. 이를 되돌아가며 두 차례 불렀다. 세계인 누구나 공감하고 공유할만한 깊이 있는 찬송이었다. 지극히 단순하면서 영감이 풍부한 찬송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 놀라웠다. 누구나 두 번만 부르면 쉽게 따라 불렀고, 가사를 완벽하게 암송할 수 있었다.
그날 악보가 담긴 엽서를 넉넉히 가져왔다. 종교개혁 500주년 찬송을 단지 1회용으로 소비하는 것은 지나친 낭비였다. 그래서 교회에 보급하여 주일 예배 때마다 불렀다. 주일예배 시작을 알리는 종을 치면 누구나 한 호흡으로 할렐루야 찬송을 부른다. 어린아이들이 함께 하는 가족예배나 처음 교회에 나온 이들도 쉽게 따라 하였다. 예배 입례송으로 이만한 찬송이 없었다. 종교개혁의 전통을 살리면서 세계교회와 함께 동행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렇게 할렐루야 찬송을 즐기던 중, 이듬해 봄에 정교회 ‘부활송’을 알게 되었다. 2018년 그리스 성지순례에 앞서서 미리 동방정교회를 배우기 위해 부활절 월요일 성찬예배에 참례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사제 가까이에서 찬송을 이끄는 여성을 따라 반복해 불렀던 짧은 부활찬양송은 마치 귀 벌레처럼 맴돌았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네 죽음으로 죽음을 멸하시고 무덤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베푸셨나이다.” 부활절기 입례송이 된 배경이다.
색동교회는 7절기마다 어울리는 입례송을 부른다. 사순절은 ‘십자가로’(떼제공동체), 성령강림절에는 ‘성령이여’(미국)를 불렀으며, 창조절의 ‘땅에서는 진실이’(시 85:11-13)는 아예 새로 만들었다. 다가올 대림절에는 팔레스타인 ‘평화의 하나님’(야랍바 쌀라미)을 부를 것이다. 성탄절 곡은 아직 찾고 있으며, 주현절이 오면 1990년 서울에서 열린 JPIC 세계대회 주제 찬송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부를 기대를 한다. 절기를 앞두고 입례송을 찾는 설레임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듯 들뜬다.
지금 사용하는 21세기 찬송가는 2006년 9월에 첫선을 보였다. 한국인 작사와 작곡자가 창작한 찬송이 무려 128곡이나 된다. 지난 시대의 찬송가들이 담아내지 못한 약점을 극복한 점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한국적 찬송이 반드시 미덕은 아니다. 구색을 맞추려는 시도는 미숙한 찬송곡들을 양산하기도 했다. 본래 찬송가는 지루한 노래집이 아닐 것이다. 영감있는 찬송이라면 시대와 민족,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는 법이니만큼, 한낱 유행가처럼 세월 따라 노래 따라 흥얼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