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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나운 서풍이여, 이 말라 버린 강산에 불어라! 불어서 저 염병 맞은 잎새들을 날리고, 이 씨알들을 날려 그 겨울 심장으로 보내라! 거기서 우리가 소리 없이 울며 봄이 올 때까지 시체처럼 기다리리라. 서풍아 너야 말로 씨알의 글월이로구나.
하늘 고요에 동이 트고 닭이 운다. 붓을 놓고 호미를 잡자! 새 날이로다."
씨알의 설움
함석헌
글을 팔아먹고
“얘, 온 장터에 두루 다녀두, 쌀 사자는 놈은 있어두, 글 사자는 놈은 없더라.”
이것은 내가 여나문 살 때 사점서 소학교를 졸업하려 할 때 들은 소리인데 오늘까지 못 잊는다. 그것은 나와 한 반에 다니던 동무의 아버지가 저도 중학교에 간다고 조르는 아들을 억누르노라고 한 소리였다. 그 아버지는 농사를 하는 사람이요, 구두쇠였다. 아버지의 그 말에 그만 눌려 말도 못하고 시무룩해버리는 동무를 보고 중학교엘 가기로 되어 있던 나는 무슨 죄나 지은 듯 미안해 무슨 말을 해 줘야 할 듯 하면서도 하지도 못했던 때의 그 슬픈 기분이 지금도 생각만 하면 끓는 솥뚜껑만 열면 훅하고 김이 쳐달아 오르듯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온다.
그는 그다음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했다. 학교엘 갔다 방학에 돌아오면 그 얼굴과 손이 점점 시커먼, 농사꾼이 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손을 좀 만져 보고 싶었지만 차마 못했고 천연히 서로 얘기는 하면서도 혹 뽑낸다 할듯해서 두렵던 생각, 될수록 공부나 내가 가 있는 도회지의 얘기는 피하려 했던 생각이 지금도 깉어 있다.
그 후에도 넉넉지는 못한 농가 살림을 한 그가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그것은 알 길 조차 없다. 그와 나와는 서로 길이 달라졌다. 그는 쌀 팔아 먹는 사람이 됐고 나는 글 팔아먹는 사람이 됐다. 그러나 나는 그 보다 행복하다 할까? 그가 설혹 농사도 뜻 같지 않아 어느 때 굶어 죽었다기로서, 혹 지금 공산당 밑에서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다 가정하기로서, 오늘날 이 글을 팔아먹고 있는 이 나보다 더 비참하다 할까?
그 구두쇠의 말에는 진리가 있다. 사실 쌀 사자는 사람은 있어도 글 사자는 사람은 없다. 그는 사람은 밥 먹어야 산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권위를 가지고 그 아들을 누른 것이다. 미워서가 아니라, 그래야 살겠으므로, 그리고 그대로 된 그는 설혹 농사를 하다가 죽었더라도 적어도 사는 날까지는 제 밥을, 당당한 밥을 당당히 먹다가 당당히 죽었을 것이다. 내 손으로 나와 내 가족의 먹을 것을 벌지 못하고 말을 팔고 글을 팔아먹는 나는 비러 먹은 것이요, 도둑질을 해먹은 것 아닐까? 이마에 땀을 흘려 근본 된 흙을 갈아 먹어야 살리라 한 말씀? 진리로 믿는다 하면서도 아직 내 밥을 내손으로 벌지 못하는 나는 말을 팔아서도 거짓말을 판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이 무엇인가? 내 혼을 팔고 속알을 팔아 얻은 빈 허울 아닌가? 나는 조상 때부터 물려온 밭을 버리는 날 또 생명의 조상에서 받은 혼을 내버렸다. 이거 슬프지 않은가?
빵이냐 말씀이냐
기독교 신자로라는 사람들은 툭하면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는 말을 한다. 나더러는 기독 신자가 아니요, 이단이라니 그거는 그래도 좋지만, 기독교도거나 불교도거나 그것이 내게는 문제 아니요, 또 남이 뭐라 부르거나 그것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지만 이 말씀만은 나도 될 수만 있다면 죽음으로라고 지키고 싶은 진리다. 이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또 이 말처럼 많은 사람을 죽이는 말은 없다. 이 말 때문에 허다한 사람이 육신으로 굶어 죽고 정신으로도 굶어 죽는다. 두말 할 것 없이 이 말의 요점은 하나님의 입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은 사람의 입은 아니요, 그 말씀은 성경책도 신부 목사의 설교도 아니다. 허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종교의 경전, 종교가의 설교로 안다. 그렇게 가르친 것은 신부들이요, 목사들이다. 그들은 이것을 참 사는 하나님의 말씀이지 빵으로는 못산다고 입에 침을 말려 가면서 책과 말을 순진한 농사꾼에게 주고는 그 손에서 빵을 빼앗아, 돌아서서는 제가 먹는다. 마치 자기는 못 쓸 것을 처분하는 쓰레기통이나 되는 듯이, 빵이 정말 먹고 사는 것이 못 된다면 저는 왜 먹었나? 밥 아니 먹고 산 종교가가 이날껏 한 사람이나 있었나? 성경만 보고 산 신자가 이날껏 하나이나 있었나?
기독교만 아니라 도무지 모든 종교, 종교만 아니라 통히 글(文)에 속한 것은 거의 다가 부도수표(不渡手票)이다. 그 글만 가지고 하나님이라는 생명, 은행에 가면 틀림없이 생명의 현금 준다는 내 것이 글의 뜻이지만, 그래서 피땀 흘려 번 빵을 주고 사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 가면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발행자가 예금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하고 글을 쓰려면 실지로 피 땀 흘리고 손 발 놀려 일하여 얻은 즉 스스로 얻은(自得)것의 예금이 있고서야 할 것인데, 은행이란 제도, 다시 말하면 종교니, 철학이니,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이 있는 것을 기화로 예금은 한푼도 없는 것들이 수표(手票) 곧 손자리를 내서 팔아먹는다. 말이 팔아먹는다(종교가, 학자, 예술가)지 사실은 도둑질이다. 정말 금을 캐내어 맡겨놓은 것은 석가요, 공자요, 예수요, 소크라테스요, 미켈란젤로요, 아이슈타인인데, 그 밖의 여나믄 놈들은 손자리만 내가지고 그 손들의 캐 낸 금 도둑해 먹고 호강하잔 놈들이다. 옅은 생각에 손은 같은 손이니 모르겠지 해서 하는 장난이지만 사람은 어리석어 몰라도 그 손 하나 하나 제 글(指文)대로 만든 하나님이 그것 모를까? 다 안다.
어드럼 살 도장을 찍는다니, 살이야말로 도장이다. 나무나 수정에 새긴 것이 말의 참을 증명하는 도장이라면 살, 몸은 얼, 혼의 참을 증명하는 도장이다. 내살, 내 몸이 닿지 않은 것, 내 피, 내 땀이 배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수표는 그 금 캐낸 손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지 아무 손이나 찍으면 되는 것 아니다. 사람의 손글(指文)이 각각 다르고 일생 변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그 뜻은 아무래도 일했나 아니 했나를 밝히잔 하나님의 뜻에서 된 일이다. 그러기에 도둑놈 잡는데 그 손글이 절대 필요하지 않은가? 흰 손 가지고 농사꾼의 피로 찍은 손글을 속여 먹고 하나님의 말씀 전하노라고 하던 놈들이 혼쌀이 나는 날이 올 것이다.
예수는 말을 입으로 한 것이 아니요, 몸으로 했다. 그래서 자기 말 믿으란 말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했다. 그가 피땀 흘려 한 말씀을 몇 주일 교회에 가고 몇 해 신학교에 건들건들 다니고는 제거나 되는 듯 팔아먹으려는 놈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제딴으로 조금 얻은 것 있어 그것을 증거하고 그 때문에 참이 뭔지 아는 민중이 조금 거기 귀 기울이는 것 보면 제 편에서 저건 가짜라고 큰 소리 치는 놈들,
단테도 옥엘 갇혔다.
밀턴도 눈이 어두웠다.
미켈란젤로도 고개가 기울어졌고,
베토벤도 귀가 먹었고,
톨스토이도 나이 여든 넘어 객사를 하고,
키에르케고르도 수심 슬픔 중에 젊어서 죽고,
니체는 미쳤다더라.
천당이 있는지 없는지 내 모르지만, 설혹 있다 해도, 저 맑은 하늘 위라 해도, 종교가 아무리 귀하고 학문 예술이 아무리 고상하다 해도, 말을 해서 어리석은 지아비 지어미의 눈물을 짜낸 일이 있고, 글을 써서 일 없는 동물들 구경시키는 동물원인 도회지란데서 한 때 종이 값을 올린 일까지 있다 하더라도, 배꼽이 떨어져서부터 황토 밑에 들어가는 날까지, 언제 한 번 그 흙을 한 번 만져본 일도 없고, 일생 칠십년 하루도 번짐없이 또박 또박 먹는 밥을 그 벼를 언제 어떻게 심으며 그 쌀에 물을 얼마큼이나 두는지 한 번 알아도 보지 않은 놈은, 그 천당에 절대 가지 못할 것이다. 기적 기적, 권능 권능 하지만 흙에서 밥을 만들어 내는 이거야 말로 권능 있는 기적 아닌가? 시라, 그림이라, 음악이라, 하지만 바위에서 꽃이 나오고 똥에서 과일이 나오는 이거야말로 정말 예술 아닌가? 지식 학문 하지만 아무리 발달했기로서 기초의 기초되는 밥과 옷 만들기를 잊어버린 지식이 무슨 지식일까? 그런 것 모르고는 하늘나라 못 간다. 설혹 그런 비누 방울 같은 것들을 용납하는 하나님이 있다 가정하더라도 그 하나님은 우리 씨알이 드러내 버릴 것이다. 인중승천(人衆勝天)이라더라. 사람이 잘 화합하면 하나님도 못 견딘다. 그 따위 비누방울 하나님은 문제도 아니 된다. 땅을 갈아 먹는 씨알의 하나님은 발을 흙속에 디딘 하나님이다. 왜 그러지 않던가, ─ “내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라”고?
글보다 바탕
종교가가 부도수표 쓴다고 욕을 하니, 신부, 목사, 스님은 또 나를 흰 자위로 볼지 모르고, 아주 진리 옹호하는 마음이 강하면 “저런 놈 어서 벼락을 칩시다!” 기도라도 했을는지도 모른다. 들으니 요새 각처에 동상을 세운다고 우상 숭배하게 된다고 그 동상들 넘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한 할머니가 있다더라. 있을법한 일이지. 아닌게 아니라 동상은 우상이지. 우상 숭배하는 마음 없으면, 즉 참만을 높이는 마음 있으면 그런건 아니 세운다. 동상도 부도수표이다. 동상은 후대 자손에게 알리기 위한 거라 할지 모르나, 그대는 항가리 길거리에 개똥처럼 구는 스탈린 동상의 모가지 못 보았나? 동상 아니 세워도 전해지는 것이 참 사람이지. 예수, 석가의 동상 누가 세우겠다는 소리나 하더냐? 잊지 않을 만한 것이 아니라 잊을만 하기 때문에 그 보다도 잊으라고 세우는 것이다. 형상 있는 건 초아진부터 잊어 버려도 좋다. 야, 이 사람들아 형상을 잊어버려야 그 사람이 가슴 속에 사는 줄을 모르나? 아버지마다 조상마다 왜 죽는 거냐? 잊으라고? 아니, 잊지 말라고 죽는 것이다. 있음은 잊음이다. 사라짐은 삶이다. 쓰지 않은 글이 글이다. 사람에게 잊어지지 않으려 이름에 애를 태는 놈들, 글을 쓰는 놈들 바위마다 다락마다 현판 써 붙이는 놈들 비누방울 같은 존재들이요, 부도수표로 속이는 협잡꾼들이다. 옛날 일 보니 길가에 비석 세운 놈들 거개는 도둑놈들이더라.
그러나 딴 소리는 그만 하고, 종교가들은 자기네 욕하는 줄 알겠지만, 가엾은 손 당신네는 오늘의 종교가가 아닙니다. 그대들은 오늘의 인생에 대해 종주(宗主)권을 잃었습니다. 오늘의 종교가는 사실은 신문사, 잡지사, 영화관에 앉아 있다. 이제 인심을 지배하는 것은 신문사설, 잡지 논설, 필름이다. 기성 종교가들은 벌써 부도 수표를 너무 많이 써 먹었기 때문에 여간 어리석은 바보가 아니고는 받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면 교회가 이성과 과학에는 원수나 진 듯 의식, 교리 한 골수로 우겨대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지금 어지간히 장사가 되는 것은 소위 문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 단순한 씨알들을 속여 먹잔 부도수표, 빈 손 자리, 흰 손 자리라는 말이다. 문사, 학자치고 흰 손 아닌 놈이 어디 있느냐? 창밖에는 두드리다 채 못 두드린 콩이 비를 맞아 썩고 있고 여름 내내 집도 없이 길러온 병아리가 닥쳐오는 추위에 발발 떨고 있는데 그 놈의 알은 쏙쏙 뽑아 먹으면서 아직 계사를 지을 예산도 못하며, 쓰고 앉은 집은 비만 오면 대야를 들여 놓아야 하면서 이 글을 써야만 하는 이 나는, 문사도 아니면서 글 팔아먹는 축에 드는 이 나는 뭐냐? 나야 말로 십오년전 일본 형사의 입을 통해 온 선고대로 인찌끼(협잡)종교지. 아, 내가 당초에 글을 왜 썼던가? 아니야, 당초 애당초에 글을 왜 배웠던가?
구두쇠의 말이 옳아. 글 사자는 놈 없다. 그는 농사꾼이니만큼 참이 눈에 보였다. 허나, 이 글에 속고, 글에 종이 되고, 글에 병이 들고, 글에 미친놈들의 눈에는 글이 가장 잘 팔리는 듯이 보였다. 그래 나도 글 길로 나가게 된 거지. 허지만 글은 그른거야. 글 길은 그른 길이다. 참 글이 왜 그른 것이리요마는 파는 글은 그른 글이다. 글은 본래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도 못하는 정신이다. 그러니 팔기를 어떻게 팔아? 신앙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처럼, 진, 선, 미를 보여 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자가 다 협잡꾼이다. 글은 무늬다. 바탕이 먼저 있어서 그 바탕의 뜻을 더 드러내기 위해 그 위에 이리 저리 금을 그은 것이다. 긋는 것이기 때문에 그 그어 놓은 것이 금, 혹은 그림이다. 그림이 글이 된다. 그러므로 글은 바탕이 있고서야 된다. 이른바 회사후소(繪事後素)다. 그래 자공이 예후호(禮後乎)이까 하고 알아차린 것이다. 예(禮)는 사람의 인격의 바탕에 무늬를 놓은 것이다. 무늬 놓지 않아도 비단이지만 비단의 비단 된 것이 무늬를 옳게 놓아서만 비로소 된다. 무늬 없는 비단이라 하지만 그것은 무늬가 지나치게 잘못 놓여 바탕을 해하는데 반대하여 하는 말이지 본래는 무늬 도무지 없는 비단이란 있을 수 없다. 실 결, 오리 세움, 씨 씀이 곧 무늬다. 문(文) 없는 질(質)은 없다. 예(禮)가 도무지 없는 인(仁)은 있을 수 없다. 허지만 아무래도 바탕이 주인이다. 그러므로 노자(老子)가
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忠信 之薄而亂之首也
길 잃은 뒤에 속알, 속알 놓진 뒤에 사랑, 사랑 잃은 뒤에 옳, 옳 얽힌 뒤에 낸감 그저 낸 감은 속 밑의 얇 얇이요 어질 어질의 머리로다.(유영모 선생님 옮김)
했다. 그럼 그렇다면 글은 「내」가 있고서야 되는 것이요, 내가 나만이, 할 수 있는 말씀이다. 저마다 제 글을 쓰고 읽어야 한다.
긁어 부스러미
글이 긁는다는 말과 뿌리가 같은지도 모른다. 긁으면 그 난자리가 글, 그림 아닐까? 그러나 말 뿌리야 같거나 말거나 글은 긁음이다. 가려운 데를 긁는 것이 시요, 그림이고, 음악이다. 가려운 데를 잘 긁으면 시원하다. 글을 읽어서 쾌함을 느낌은 마음의 가려움을 잘 긁어 주기 때문이다. 왜 가려운까? 피가 잘 돌지 못하고 버러지가 물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글을 요구하는 것은 생명의 기운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머리 같은 놈들한테 피를 빨림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좋은 글로써 긁어서 새 피를 돌리도록 해야 한다. 시와 그림과 음악 없는 종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종교 예술은 눌린 자의 것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긁는 것은 제가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참 시는 내 시 뿐이요, 참 기도는 내가 하는 기도뿐이다. 아무리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종을 시켜 긁어도 내가 스스로 긁는 것만은 못할 것이다. 기성 종교를 믿고 남의 작품 읽는 것은 종을 시켜 긁어 달라는 일이다. 그는 호사는 했을는지 몰라도 시원함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일생을 남더러 대신 긁어 달라다가, 대신 울고 대신 노하고 대신 욕해 달라다가, 그리하여 인생의 참 맛을 모르고 가는 병신이 얼마나 많은가?
격화소양(隔靴搔痒)이라, 신 위를 긁는 다는 말이 있다. 긁으려거든 옷을 활짝 벗어버리고 긁어야지, 옷 위를 극적여서 무엇하나? 제가 글을 지어도 참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단 말이다. 요새 글 쓰는 사람들 보면 어찌 그리 신은 것이 많은가? 양말 신고, 구두신고, 덧구두 신고, 그 위를 긁는 것 같은 글뿐이다. 그러면 시원하긴 고사하고 더 가려워. 예배당 절간은 아니 가려는 것이 웬 까닭인지 몰라? 신문 잡지 보다가 내팽개치는 것이 무슨 때문인지 몰라? 그것들이 다 삯으로 긁는 긁어 모이꾼이요, 그나마 신을 신고 극적이기 때문에 민중이 더구나 그 젊은 마음의 성급에 화가 나서 그러는 것이다. 이 씨알의 가려운데, 말 못할 속의 가려운 데를 시원히 긁어 노래가 나오게 할 예술가 평론가는 아니 오려나? 신을 좀 벗으려무나. 발이 소중해 그러지. 설 자리가 아까워 내 놓고는 못 긁지. 이 못생긴 협잡꾼들아, 이제 이 늙은 소 같이 참는 민중이 견디다 못해 화를 내는 날에는 너의 그까진 구두가 뭔 줄 아느냐? “신을 벗어라, 네 선 자리가 거룩하니라!” 네 선 자리, 소설을 쓰는, 작곡을 하는, 네 선자리가 어딘 줄 아느냐? 하느님의 발가락, 곧 민중이 앉았는 곳이야! 민중과 한가지 발 벗고 나서지 않은 학자, 문사, 다 절도요 강도다.
긁으라니 또 지나쳐 긁어도 못쓴다. 지나쳐 긁는 것은 제 발이 아니기 때문에 씨알의 맘을 못 가졌기 때문에 무턱대고 막 긁어서 그리 되는 것이다. 소위 대중소설 쓴다는 놈들 정말 씨알은 되지도 못하고, 어느 때나 기회만 있으면 특권계급의 앞재비 하려는 소가지를 두어두고 씨알의 가난한 주머니를 엿보려 하기 때문에 정말 문제가 어디 있는지 생각지도 않고 된 소리 못된 소리를 써내니 가려움은 멎은 점도 있으나 긁어 부스러미가 됐다. 도리어 아니 한 것 보다 화다. 지금 이 민중은 부스러미 천지다. 그 젊은이들은 다 놈들에게 긁혀 왼통 옴쟁이가 된 존재다. 문사의 죄가 얼마나 한지 알겠나?
붓이 날카롭다 하지만 날카로운 것만이 좋은 것 아니다. 긁어주는 것이니 물론 날카로워야 하지만 우선 먼저 가려운 데를 긁어 주잔 정성이 있어야지 직업적인 심리로 긁는 것만을 일삼으니, 긁을 데 아니 긁을 데 상처가 나고 아니 나고를 생각지 않고 한다. 그러니 부스러미가 될 것 아닌가? 우리가 이 처지를 당하고도 민중을 참으로 울리는 예술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잘 하면 우리 자신만 아니라 온 세계라도 울릴 만한 사건이야 있지 않나? 그런데 왜 못할까? 재주가 없어서는 아니지. 그것은 여러 가지로 증명이 된다. 붓을 날카롭게 가는 일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부족은 혼에 있다. 시는 상상력이 많아야 한다고 하더구나. 상상력이 무엇이냐? 도덕적으로 말하자면 동정심이지. 동정이 무어야. Sympathy지. 같이 아파하는 거지. 하나 됨, 우주정신의 바탈 대로인 씨알의 마음으로 하나 됨이 없이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겠느냐? 보는 것마다 듣는 것마다 사이다 병에 물 넣어 흔드는 소리 같은 것이지. 장난꾸러기가 숫대 까치로 웅덩이 물을 휘젓는 것 같은 거지. 어디 폭포 소리 같은 시냇물 소리 같은 회리바람의 오장 육부를 뒤흔드는 소리 같은 소리가 있더냐? 삼국 시대의 비극은 공연히 있었다더냐? 고려시대의 부끄럼은 그저 있었다더냐? 이조 오백년의 끔찍은 덧없이 있었다더냐? 야, 다른 건 다 그만두자. 6·25의 그 피와 불과 연기와 아우성의 큰 막은 도대체 무엇 하자고 누구 보라고 한 것이라더냐? 그것이 어디서 누구의 주연으로 된 것을 생각하면 알 것 아니냐? 그것 지내고 나서, 껌 씹고 댄스하고 보고 극장을 세우는 것만 일로 아는 것은 너무 하지 않느냐? 한 사람도, 참 한 사람의 울음꾼도 없느냐? 부모가 죽으면 종 년 놈 시켜 대신 울리던 양반의 새끼들이 되어 이번도 대신 울리려느냐? 붓이 무딘 것 아니야 혼이 묻혔지. 혼이 마비가 됐지. 왜? 이 정치한답시고 글 한답시고 민중에 붙어먹는 거머리들아, 너희가 너무 피를 빨려 빈혈이 됐고 너무 눌려 숨이 맥힌 거야! 제발 좀 두어라, 얼마동안 기다리고 가만두어 제 혼을 찾게 해라. 그럼 무슨 소리가 나와도 나올 것이다. 지금 이 소리들은 제 정신이 없이 하는, 제 소리 아닌 뜬소리다. 시시나한 글, 글 아닌 긁어냄, 부스러미 같은 문학을 치워라.
캄캄한 기품 위에 움직이는 얼
생각이 왜 그리도 좁으냐? 옅으냐? 작으냐? 쾨쾨 고리냐? 우리의 근본 탈은 작은 데 있다. 웃어도, 울어도, 저 혼의 깊은 밑바닥에서 해 본 일이 없고 맥힌 목구멍 콧구멍에서 했다. 싸움을 해도 하늘 땅이 뒤 흔들리게 한 번 못하고 손톱으로 꼬집는 첩년 같이 음해 모해로 쏟아 먹은 싸움뿐이다. 침략주의가 좋은 거야 아니지만, 오천년 역사에 국경선, 밖에 한번 나가 본 일이 없고, 만주족, 몽고족, 흉노 말갈족도 꾸고 나중엔 동해 바다 섬 속에서 호랑이 소리 한번 못 들어 보고 자라난 일본족 조차도 빈말로나마 꾸어 본 ‘천하 통일’의 꿈을 감히 한 번도 꾸어 본 일이 없으니, 이게 어떻게 된 민족일까? 그래 오늘날 지구를 둘로 나누는 싸움의 일선이 되면서도, 이까진 미국 어느 큰 회사의 중역 자리만도 못한 자리 하나 다투기에 나라의 힘을 송두리째 다 죄겨 결단을 내고 있는 건가? 야, 참 작구나, 근시로구나, 썩었구나! 희랍은 어린애 손바닥만 해도 서양 문명의 횃불을 들었고 유대는 갓난애기 발잔등만 해도 인류의 나갈 행길을 내지 않았나? 땅이 좁아 못했다는 소리는 못할 것이다. 로마도 티베르강 옆 조막 같은 일곱 언덕에서 싸우던 것들이 세운 것이 아니며 영국도 북해에서 도둑질해 먹던 해적 떼가 일으킨 것 아닌가? 사람이 적어서 못했다는 소리도 못할 것이다. 일을 틀지게 못한 것은 정신이 작고 옅기 때문이요, 정신이 옅은 것은 숨을 깊이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숨이 어디서 오나? 하늘에서 온다. 하늘 기운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이 작다. 장자가 뭐랬나?
“참 사람은 발꿈치로 숨을 쉰다.”
했다. 사람이 음흉하면 “그놈 밑구멍으로 숨 쉬는 놈”이라 하지만 이것은 밑구멍 아니고 발꿈치다. 밑구멍으로 쉬면 똥 냄새 밖에 될 것 없다. 정치가란 대개 밑구멍으로 숨 쉬는 놈들이다. 그러므로 그 하는 일이 썩은 냄새가 난다. 발꿈치는 대지(大地) 어머니의 가슴에가 닿는다. 숨을 발꿈치까지 쉬면 자연 어머니의 가슴의 맥박에 통할 것이요, 대지의 어머니의 맥박에 통하면, 자연 하늘 아버지의 숨에 통할 것이다. 어머니 맥박에 통하면 자연 하늘 아버지의 숨에 통할 것이다. 어머니 배꼽은 아버지 배꼽에 마주 닿아 있다. 사실 하늘 길은 인심(人心)에서 지심(地心)으로 천심(天心)에 뚫려 있다. 하늘을 보려면 먼저 땅을 봐야 하고 땅을 보려면 먼저 가슴을 들여다봐야 한다. 사람이 참되면 그 사람 땅만 보고 다니는 ‘사람’ 이라 하지 않던가? 땅을 보는 사람이 하늘을 본다. 천문(天文) 연구는 지문(地文) 연구로 시작됐다. 그런데 서울 장안 두루 다녀 봐야 땅보고 다니는 놈은 별로 없고 저나 꼭 같이 더러운 사람 얼굴만 건너다보고 두리번거리더구나! 그러다가 자꾸 마주 까고 너머지두나! 사람을 잡으려는 종교가들은 가엾은 계집의 얼굴만 건너다보았고, 하늘 말씀 받는 예수는 땅에다 글을 썼지. 땅의 글은 아니 나오려나?
정말 큰 글 보려나.
맨 첨에 하나님이 하늘 땅을 지으시니라. 땅이 두루뭉수리요, 빈탕이며 캄캄함이 깊음 위에 있다. 하나님의 얼이 물위에 움직이더라.
맨첨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 니라.
아옴.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홀로 높으니라.
그것이 너니라. (Tat tvam asi)
글은 하늘 얼의 움직임이다. 우주 만유는 하나님의 글월이다. 절대의 영이 캄캄한 빈탕의 물낯 위에 숨을 불면 물결이 일어난 것이 만물이다. 이른바 무명겁해(無名劫海)에 바람 없이 결이 인 것이다. 글 쓰려면 하늘 숨 마셔야 한다. 늘 하는 소리지만 위대한 예술 없는 것은 위대한 종교 없기 때문이다. 불교가 아니 들어왔단 말 아니요. 기독교가 아니 들어왔단 말 아니다. 다 왔지, 다 위대한 종교지. 허지만 남의 고래 같은 기와집은 우리 초가삼간 보다 작은 집이다. 내 종교가 큰 종교지 내거 되지 못한 종교, 따라서 한 사람도 건지지 못하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허울이, 무슨 위대한 종교일 수 있을까? 제 종교만이 큰 종교다. 제 종교를 가진 한 사람만 있어도 온 세상이 다 구원된 것이다. 한 사람이 물에서 나오면 모든 사람이 다 살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건진다는 큰 말을 하는 종교는 한 사람도 못 건질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종교도 아니기 때문이다.
큰 것은 하나님이요, 큰 것은 나다. 하나님과 직접 연락된 내가 ‘한’ 곧 큰 것이요, 그 직선을 중축으로 삼으면 온 우주를 돌릴 수 있다. 그러니 나에까지 뚫리지 못한 종교, 나와 하나님을 맞대주지 못하는 종교, 참 종교 아니다. 나의 종교가 종교다. 교도(敎徒)있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참 종교는 한 사람의 신자를 가질 뿐이다. 교도 많을수록 가짜 종교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해라. 그럼 내가 세계를 구원하리라. 아무도 이 결혼의 중간에 서지 마라. 하나님은 음란을 미워하신다. 중보(中保) 소리 많이 하는 종교 협잡 종교다. 그리스도가 중보란 말은 중보 없단 말이다. 예수의 단 하나의 목적이야말로 중보 없앰이었다. 십자가에 죽어 부활하여 하늘에 간 예수는 곧 ‘무’(無)다. 만물을 부정한 데가 하늘이다. 빛은 빈탕으로만 달린다. X광선은 있는 것도 없이 보는 빛이다. 중보란 종교심을 이용해 먹는 민중 착취 기관이다. 중간에서 받아 돌리는 소리는 모두 거짓말이다. 나라를 좀먹는 갖은 협잡과 죄가 비서에서 나온다. 애당초에 속일 마음 없는데 왜 사람을 직접 못 만나고 비서를 둘까? 진리엔 비서 없다. 비서에서는 문학 못 나온다. 이름도 비서(秘書), 글 감추는 놈이다. 글을 감춤은 사람 감춤이다. 우리나라에 위대한 문학 없는 것은 민중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직접 만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교도 유교도 기독교도 그것 아직 하지 못했다. 거기가 씨알의 설움 있는 곳이다.
이름없는 씨알
원래 글은 씨알의 것이다. 씨알에서 나오고 씨알로 돌아간다. 문명(文明), 문화(文化), 문물(文物)이라니, 사람의 지은 모든 것은 결국 한마디 글월인데, 그 글월을 그리는 바탕은 뭐냐 하면 씨알 곧 민(民)이다. 문학만 아니라 정치 경제 교육 예술 종교 모든 것이 결국 민이라는 비단 위에 놓은 무늬다. 그 제도 문물을 세움으로 인하여 민이 한층 더 빛난다. 그리고 그 무늬 놓은 비단을 입는 것은 누구냐 하면 그 역시 민이다. 글은 씨알의 하는 소리요, 씨알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씨알의 제 소리다. 씨알의 기도다. 기도는 하나님 들으라고 하지만 또 제가 들으라고 하는 제 소리다. 제가 듣지 못하면 하나님도 못 듣는다. 하나님의 귀가 내 귀 안에 와 있다. 내 귀 아니고는 하나님은 못 듣는다. 자면서 잠꼬대로 한 것은 기도도 아니요, 하나님이 듣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기도해라” 하지 않았나? 그럼 씨알의 기도도 그렇다. 깨어서 해야지, 민중이 제 소리를 제 소린 줄 알고 제 귀에 대고 해야 한다. 모든 탄원 모든 선언 모든 항의 모든 찬송은 다 민중이 제게 대하여, 저를 통해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민중이 뭐냐? 씨알이 뭐냐? 곧 나다. 나대로 있는 사람이다. 모든 옷을 벗은 사람, 곧 알 사람이다. 알은 실(實), 참, real이다. 임금도, 대통령도, 장관도, 학자도, 목사도, 신부도, 군인도, 관리도, 문사도, 장사꾼도, 죄수도, 다 알은 아니다. 실재(實在)는 아니다. 그런 것 우주간에 없다. 그것은 다 허망한 욕심의 만신당(萬神堂)속에 있는 우상들이다. 이것들은 그 입은 옷으로 인하여서 있는 것들이다. 정말 있는 것은 알은, 한 알 뿐이다. 그것이 혹은 얼이다. 그 한 이 이 끝에서는 나로 알려져 있고 저 끝에선 하나님, 하늘, 브라만으로 알려져 있다. 민이란 곧 그러한 모든 우연적, 일시적인 제한, 꿈임을 벗고 바탈 대로 있는 인격이다. 옷으로 말미암아, 즉 밖에서 오는 것을 덧붙임으로 말미암아, 있던 모든 우상들은 없어지고야 마는 날이 와도, 이 알 사람, 알 생명은 없어지는 날이 없다. 사람, 곧 난 대로 있는 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전체다. 그것이 민이다. 그러므로 모든 정신적 물질적 활동의 목표는 마찌니, 간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씨알(民衆)이란’ 것이 그 표어가 돼야 옳은 일이다. 그 밖의 모든 표어는 다 속임이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해방의 구주로 알아 그에게 드리는 찬송을 작곡했다가 그의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그 제목을 뜯어 고쳤다고 하지. 이것은 모든 우상과 그것을 찬양하는 모든 물질주의적 계급주의적인 예술의 운명을 표시하는 본보기다.
역사의 행길에는 ‘民에로’ 라는 살표가 꽂혀 있다. 모든 나라 모든 문화는 씨알로 향하고 있다. 시보다도 소설, 장편보다도 단편, 그림보다 사진, 연극보다도 시네마의 경향은 오로지 민(民) 때문에 되는 일이다. 물은 바다로 가는 것이라면 역사는 씨알로 간다. 바다가 모든 물의 근본이요, 끝이듯이 씨알도 모든 인간적인 존재의 알파요, 오메가다. 일찍이 골짜기 새내 같은 씨족 시대가 있었고, 소(淵) 같은 봉건시대, 폭포 같은 민족시대, 땜 같은 제국주의 시대가 있은 일이 있지만, 그것이 역사의 구경 있을 곳은 아니었다. 이제는 허허 끝없는, 영원의 음악을 아뢰는 씨알의 바다에 들기 시작했다. 아직도 빛 멀어가는 왕관이 몇 개 남아 있지 않는 것 아니나, 그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 거품이다. 이 보수주의의 이 나라 조차도 민국을 선언하지 않았나? 될 수만 있다면 임금질이라도 했으면 꿈을 꾸는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러나 씨알로 감은 결국 하나님으로 감이다. 바다가 하늘물의 내려온 것이 듯이, 그리하여 바다의 길은 올라가는 데 있듯이 씨알은 하늘 말씀의 내려온 것이요, 씨알의 운동은 곧 하늘로 올라가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언제나 바다의 품에 깃들여 있듯이 하늘의 뜻은 언제나 씨알의 가슴에 내려와 있다. 그 하늘과 바다의 혼인하는 데서 자연적으로는 초목을 기르는 비, 바람도 나오며 천지를 흔드는 우레, 번개, 태풍, 폭풍이 나오고, 역사적으로는 평화 시대가 나오며 혁명 시대가 나온다. 씨알을 받들미 하늘나라 섬김이요, 씨알을 노래함이 하나님을 찬양함이다. 그런데 세속의 일을 맡았다는 정치에서는 도리어 민의 세기인 것이 청천백일 같아 가는데 정신계를 맡았다는 종교에서는 거꾸로 시대에 거슬리는 것 같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계급주의, 지배주의의 성직제(聖職制)를 고집하며 그것이 자랑이나 되는 듯이 알고 있다. 그러나 가을이 되도록 올챙이 꼬리가 못 떨어진 것은 부끄럼이요, 고통이지 자랑할 만한 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 귀족주의적 사고방식의 심볼이던 월궁항아(月宮姮娥)가 영원의 비밀로 숨겨둘 수 있을 듯 하던 그 뒷잔등을 민중 앞에 내놓고야 마는 이 과학시대에 시퍼렇게 젊은 것들이, 두 다리 사이에는 틀림없이 냄새나는 곳이 있는 인간을 하나님의 대표라고 절을 하고, 돌 나무를 보고 부처라 절을 하고, 정치상의 한 기관밖에 아니 되는 것을 아버지라하니, 대체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 그 형상을 보는 것 아니라 그 나타내는 뜻을 보고 한다고, 무엇을 알기나 하는 듯 입을 깔지 모르지만, 그렇게 뜻을 위하거든 절도 뜻으로 하려므나, 하필 그 대강이를 숙일 것은 무어냐? 그것이 그렇게 쓰라는 대강이냐? 그것이 네 대강이냐? 그것이 우리 것 아니냐? 네 주인이 누구냐? 우리 민(民) 아니냐? 그렇지 않으면 정신으로 섬길 하나님 아니냐? 왕(王)이란 건 뭐며, 황(皇)이란 건 뭐냐? 천지간에 교황이 있다면 너다. 너 자신이다. 부처가 있다면 너다. 너 자신이다. 네가 누구를 보고 절을 하느냐? 네가 절을 하려거든 속으로 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마는 그 대강이를 우리 민(民)의 보는 앞에서는 그렇게 쓰지 마라. 우리 맘이 슬프다!
그러나 슬픈 것은 그것만 아니다. 우리게 대중이란 이름을 씌우니 그런 모욕이 어디 있나? 우리가 저 썩어진 특권계급 같이 ‘대(大)’ 라 우상의 교도인줄 아나? 큰 것은 사실은 속이 작은 놈들이 좋아 한다. ‘한’은 본래 우리 것인데 큼을 새삼스리 주장할 것이 무엇이냐? 본시 우리 것인 것을 너희가 한때 도둑질 해다 쓴 것인데 이제 가만히 돌렸으면 그만이지, 그런 빤히 들여다뵈는 발라마침은 되려 우리 비위에 거슬린다. 도대체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대’(大)는 무엇 하자는 건가? 한(韓)이 본래 크다는 뜻인데 대(大)를 또 붙이니 우습고 대(大)가 대한제국 때에 쓰던 19세기 유물이지, 민국에 어찌 그것이 맞느냐? 대한이라면 어쩐지 뿔관 쓰고 국제도시에 나가는 것 같다. 외국말로 할 땐 ‘코리아’로 되기가 다행이다. 나 보기엔 무식 같다. 대(大)가 영광이던 시대는 옛날이다. 대영제국, 파득대제(波得大帝), 명치대제(明治大帝),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 이금(而今)에 안재재(安在哉)요? 조그만 정말, 조그만 스위스 더 크더구나! 하는 일이 어쩌면 이리도 열 가지가 한가지로 떨어졌느냐?
보기 싫은 것이, 여관 중에도 가장 너절한 것은 대중여관이라 하고, 식당에도 제일 더러운 것은 대중식당이라 하니 어찌 민중의 대접이 그거냐? 값이 싸고, 물건이 내린 것은 간단한 민중이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더러울 것까지는 뭐냐? 또 더럽게 하는 것은 네 맘 대로지만 대중은 왜 파느냐? 나라의 주인이 우리인데 대접이 어째 그럴까?
그러나 그것은 또 참겠다. 대중잡지 대중 소설이란데 이르러는 참 참을 수 없다. 천하에 입에 못담을 더러운 것을 써놓고는 대중소설이라 하니 민중은 그렇게 더러운 거냐? 내논 말로 그 소설 쓰는 놈들 우리가 상관이나 있느냐? 언제 우리가 악수나 해 본 일 있느냐? 그 쓰는 놈도, 그 내용의 모델이 되는 것도 그것은 다 귀족주의의 썩다 남은 찌꺼기지, 아침에 별을 이고 나가 저녁에 또 별을 이고 돌아오며, 뼈가 빠지도록 일하여도 입에 풀질도 어려운 정말 민중 정말 씨알은 그런 것, 생각할 틈도, 볼 틈도 없다. 이 억울한 누명을 변명해 주는 작가가 하나나 있느냐? 너희가 민중을 알고 민중의 친구가 되고 민중이 되려면 그 ‘대중적’이란 말 집어치워라! 우리는 이름조차 잃었다. 잃어진 우리 이름을 찾아내라! 이것이 또 설움 아닌가?
잘못 든 길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지식이 있고 점잖은 이들은, 네가 누구를 가르치려 드느냐 할 것이다. 혹은 나이와는 맞지 않게 쎈치 아니냐 비웃을 지도 모르고, 그러지 않으면 미쳤다 할 것이다. 그러나 다 아니다. 철없는 시절에 교사노릇 해보잔 생각 한 일도 있었으나 그것 집어 내치운지 이미 오랬고, 또 십계명을 모조리 다 범한 내가 가르치긴 누구를 가르칠까? 쎈치람 쎈치인지도 모르지만, 나 더러 쎈치라기 전에 세상을 좀 내다 봐! 그러면 내 신경이 지내쳤다기 보다는 말하는 그 편이 도리어 마비된 것임을 알 것이다. 미쳤다는 거야 옳다면 옳은 말이지만, 내가 공연히 미쳤다더냐?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길은 무슨 길? 글 팔아먹는 길에 들어간 것이란 말이다. 본래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요, 팔아 먹잘 생각은 참 없노라했는데 훌륭하게 글 팔아먹고 먹는 놈 되지 않았나? 스물여덟에 이미 학교 오산에 선생이랍시고 취직을 할 때, 그 첫날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지만 미숀 학교도 아닌데서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구절을 읽었다. 이제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 그리고는 십년을 한 달도 빠짐없이 월급봉투를 또박 또박 헤어서 받아먹었다. 그만두고 나서는 농사로 돌아가자던 것인데 어찌해 일 뜻 같지 않았고, 38선을 넘은즉 참 알 몸이었다. 월급을 받으면 가족에겐 먹고 살아가리 만큼 준담에 다 책을 사노라 했는데 그것도 다 내버리고 왔지. 평소에 조그맣기는 하지만 그 세제에 들어앉으면 죽은 글로 아니 알고 살아있는 스승 친구의 둘러앉은 가운데 있노라 했는데 나라는 언제 찾을지 생각을 하게 되면 남강을 연상하는 남산만을 번히 보게 되는 일제시대에 그것이 단 하나의 위로요, 오아시스였는데 그것을 버리고 나왔다. 정말 살아있는 뜻이 그들과의 사귐에만 있는 살아 있는 친구 스승으로 알았다면 정말 그렇게 사랑했다면, 두고 왔을까? 혹은 그 껍질은 못가지고 와도 산 속알의 스승은 여기, 공산당이 따라올까 두근두근은 하나마, 여기 이 가슴 속에 있다 해서일까?
하여간 마흔 다섯까지를 책을 상대로 하고 글을 가지고 살았다는 사람이 책은 한권도 없이 알몸이 됐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밥을 벌 생각은 하나 하지 못하고 이날까지를 말만 하고 남의 신세로 살아간다. 하늘이 내세웠다는 사명감이나 있으면 얻어먹어도 제 맘으론 하느님이 먹여 주신다 할 것이나 이것은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빌어먹는 살림이다. 신부 목사처럼, 별것 없는 사람들의 쑹쑹이로 된 투표요, 안수인 줄 알면서도 하느님의 특별하신 뜻으로 내 그 거룩한 직임을 받았지 하리만큼 정신이 수양이 됐으면 편한 맘으로나 받아먹겠는데 그렇지는 못하니 이것은 스스로 부끄럼이 있는 살림이다.
글이라고 첨으로 쓴 것은 ‘성서조선’ 때인데 그때 우리는 돈 생각은 없었다. 여섯이 제 돈을 모아서 출판 비용을 내며 한 것이지 글을 쓰면 돈이 된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있으려니 생각을 못했다. 서생 기분으로 영웅심 명예심은 숨어 있었는지 모르지. 김교신 형이 혼자 경영을 하게 된 때도 매달 월급에서 잘라 넣어가며 하는 잡지였고 나도 매달 글을 써도 원고료라는 것이 세상에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해방 후 송도용, 노평구 하는 친구들이 이날껏 잡지를 내어도 역시 그런 식이요, 나도 글을 실은 일이 있어도 역시 ‘성서조선’ 때와 마찬가지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 역사’를 낼 때도, ‘수평선 너머’를 낼 때도, ‘말씀’을 낼 때도 돈 생각은 별로 아니 했다. 부산 피난을 갔을 때 간혹 길거리에「사상계」의 광고가 나붙는 것을 보면 “이런 때에도 역시 저런 것도 하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했을 뿐이요, 한다면 역시 김교신의 「성서조선」이나 송도용의「성서인생」이나 노평구의 「성서연구」하는 식이려니만 생각했다. 「」
1955년 여름에 사상계사(思想界社)에서 인생 노오트를 써 달라고 원고 부탁이 왔다. 게을러서 일기도 아니 쓰는 나는 보내 줄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있어 버렸다. 그랬더니 겨울이 돼서 다시 조르므로 하는 수 없이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써서 56년 1월 호엔가 낸 것이 내가 첨으로 일반 사회를 상대로 하고 낸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글이다.
그날까지 정말 나는 누구를 시비하잔 심정으로 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이 많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보고 놀랬고, 그 보다 놀랜 것은 원고료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렇게들 하는 것들인가?」하는 것이 내가 봉투를 받아 들면서 하는 첫 생각이었다. 주는 사람의 얼굴에다 두드려 내던져 땅에 떨어치지 못한 내가 자격 부족이지. 허지만 받아는 들고도 적지 아니 슬펐다. 「내가 그것을 쓸 때에 이것을 바라고 썼던가?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일까?」
그것이 내가 글을 팔아 본 처음이다. 이젠 아주 상습범(常習犯)이 돼버렸다. 이날까지 된소리 못된 소리를 달마다 써도 한 번도 맘에 달가워서 쓴 일은 없다. 돈을 옆집에 넣고 와서 글 써 내라는 장사꾼 밉고, 글이라고 쓸 때는 있는 맘껏 다해 쓰노라 하여도 써놓고 보면 이거 내 소리냐? 하고 찢어 버리고 싶지 않은 글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역시 이날껏 글 쓰고, 찢지 않고, 돈 받는 것이 나의 나밖에 못되는 설움이 있는 곳이다. 감옥에서 나와서는 또 도둑질을 하는 상습범, 회개하는 기도를 하고는 또 민중의 피 빨아 먹는 살림을 다시 하고 다시 하는 성당 예배당 절이라는 감옥에 있는 상습범, 신문 잡지를 보고는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또 나라의 것을 도둑질 해 먹는 정부 관청이라는 엄지 감옥에 있는 상습범, 그것들도 나 같아서 그러겠지. 너나 나가 가엾은 존재들이로구나!
솔직히 말해 보자. 돈을 위해 했나? 민중을 위하고 참을 위해 했나? 정말 참을 위해 글을 쓰고 말을 할진댄 왜 돈을 주는 데서만 하고 아니 주는 데서는 아니하나? 참 살림이 되려면 삼각(三角)으로 돼야 한다. 주기는 갑(甲)에게 주고, 받기는 병(丙)에게서 받아야 한다. 갑(甲)에게 주고 갑(甲)에게서 받는 것은 장사지, 도덕은 아니다. 정말 사회의 먼저 깨달은 이로 알거든, 나라 걱정, 진리 걱정하는 이로 알거든, 너희 잡지에 글을 써 주거나 말거나 너희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거나 말거나, 사람에 대한 대접으로 진리의 샘을 기르는 맘으로 그의 양식을 대주려므나. 반드시 네게 준 것이 있는 담에야 하는 것은 너무 현금주의 아니냐? 정말 할 말이 있거든 오라거나 말거나 보수를 주거나 말거나 정말 말을 받아야 할 씨알에게 주려므나. 반드시 월급을 작정하고 원고료를 받은 담에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장삿 셈 아니냐? 아참 내가 아니들 길을 들었다. 씨알은 돈에서 먼 사람들이다. 자동차를 탈수록 점심 값이 높아갈수록 씨알의 그림자는 떠나가는 님의 모습같이 아득해만 간다. 이 글장사 말장사들아, 내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묵어가는 씨알농장
자격에도 없는 글을 쓰노랍시고 들어앉아 오뉴월 복들이에 암탉 알 안 듯 하는 새에 우리 농장만 다 묵었다. 이름도 좋은 참 밝음 길(忠淸道) 하늘 고요(天安邑) 새우름골(鳳鳴洞)의 씨알 농장 아닌가? 씨알 키우고 씨알 되는 것이 내 일이거늘 무슨 일이라고 글 팔기를 시작했느냐? 옛사람을 배워 귀거래(歸去來)를 불러야 옳은 일이다.
이 농장은 본래 땅 주인이던 정만수(鄭萬洙)님이 삼십년 이발쟁이로 푼푼이 모아 얻은 돈으로 장차 어두운 농촌을 비치는 등불을 켜보자는 뜻으로 남이 돌아도 아니 보는 묵은 데를 사서 해방직후 과일 나무를 심은 것으로 시작했고 그 후 김병태님이 그것을 맡아 그 목적으로 강당까지 짓게 시작했던 것을 경영이 어려워져 그만 두게 될 형편에 빠진 때에 내가 맡게 되었다. 정성은 물론 모자라고 사업의 재주가 도무지 없는 나로서 스스로 그 적당치 않은 줄을 뻔히 알면서도 이 어려운 일을 맡은 것은, 하나는 정님의 막아낼 수 없이 하는 간청이요, 하나는 오산 시대 이래로 그리는 나의 농촌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나는 이날까지 “아니 아니” 하면서, 내놓고 해먹는 놈들 보다 더 밉게 더 악지로 글을 팔고 말을 팔아, 목사 아닌 목사, 신부 아닌 신부, 중 아닌 중노릇을 해먹기는 하면서도 그래도 믿음과 교육과 농사를 하나로 껴붙이어 돈 아니고 사는 세상을 만들어 봤으면 하는 꿈은 언제나 놓지 못하고 가지고 온다. 일제시대엔 그걸로 일본과 싸우려해 봤고 오늘은 또 그걸로 오늘의 대적과 싸우련다. 오산을 그만 둔 것도 그 때문, 송산을 간 것도 그 때문, 인생 대학 이후 용천서 농사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38선을 알몸으로 넘어오니 친구들이 대학에 운운 하는 말을 하는 이도 있었으나, 제일에 공부 실력 없어 못 하겠고 지금의 교육 정신과 제도가 왼통 못쓸 거로 보여 거기 들어가 섞일 맘 없고 그래 사양 했다. 사양보다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지. 그래 자연 도피성(逃避性) 소리가 나오고, 간디의 아슈람 소리가 나왔다. 그래 6·25 바로 전에 제주도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듣고 거기를 한번 갈까 하는 의논들이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 있었다. 그러는 때에 전쟁이 터졌다. 도망을 갈 구실이 아무 거도 없었지만 살겠다는 욕심이 그래도 이것을 구실로 말은 “피난을 가자는 거 아니라 이왕 가려던 거니 그럼 제주도로 가기로 한다”고 하면서 나섰다. 내가 제주도를 새 나라의 심벌이라고 십년 전 역사 쓸 때에 말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높이가 6·25전쟁 나는 해에 1,950(미터)인 것을 발견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가지도 못했고 3년 동안을 대구 김해에서 미군 부대의 찌꺼기를 얻어, 그나마도 내 손으로도 못하고 남의 등에 붙어먹다가 왔다. 그렇게 되어 1957년 3월 지금은 군대에 복무를 거절하고 일년 징역을 마치고 강원도 평창 육백마지기 해발 千二百미터의 산 맨 등에 올라가 묵은 데를 일구고 있는 홍명순군과 단 둘이 여기를 오게 되었다. 그때 그는 중앙 신학 마지막 학년이던 것을 그만두고 왔었다. 올 때에 나는 혼자 간디가 육십명 남녀 동지와 톨스토이 농장에서 일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인쇄기를 손수 돌려 「인디언 오피피니언」을 발행하여 남아연방과 싸워 가던 것을 생각하면서 왔다.
그후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이것을 돕는 이들이 있고 와서 일을 하는 젊은이들도, 들고 나고가 있기는 하나, 보통 6·7명은 되어 오늘 까지 오는데 타고난 나의 뜰미지와 ‘글쎄’ 로 삼년이 되는 오늘에도 아직 제 살림도 온전히 하지 못하고 있다.
관청과 사회에는 무슨 원수가 진 것은 아니지만 술 담배 교제로 되는 오늘에 나 술 담배 아니 먹으니 갈 맛 없지, 평생에 무슨 청탁은 하기 싫지, 되기도 전에 광고 붙이 하는 세상 풍속 따르고 싶지 않지, 더구나 도대체로 정부의 정치 방침도, 사회의 풍조도 다 틀렸다고만 뵈지, 그러므로 자연 거래가 없다. 근본 뜻인 즉 모든 생명 운동은 아래서부터 올라가는 것이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 아니니 될수록 민(民)으로 민주(民主)의 정신을 길러 보자는 것이다. 그래 씨알 농장이다.
허나 지방 농민과는 친구가 됐어야 할 것인데 그것을 못하는 것은 내 죄다.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글공부한 것이 죄가 되어 이러는 듯하다. 그런데 또 달마다 글까지 팔아먹으니 일이 옳게 될 리가 없다. 우리 살림이라야 별 것 없다. 4시면 일어나 찬 물로 잠때 씻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나 부르고 한 시간 명상이나 하고 보리밥에 배를 불린 담엔 어둡도록 땅 파는 일이요, 짐승에 모이 주는 일이요, 열시에는 내일 해가 틀림없이 머리 위에 뜰 것을 믿고 누더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그러는 동안에 친구가 있다면 봄에는 새벽 4시부터 반주(伴奏)를 해 주는 푸른 공중의 종달새요, 가을엔 밤이 늦도록 혼자 노래를 하는 벽 틈의 귀뚜라미다.
물론 이렇게만 하잔 생각은 아니지. 허지만 아직 글 사고 글 팔잔 생각을 채 못 면했기 때문에 정말 땅의 글을 읽고 써 내지 못한다. 그래도 하늘 고요(天安)는 하늘 고요다. 발에 흙이 묻었을 때 마음은 까만 하늘(玄天)의 한 맑음(太淸)에 젖어 있다. 새 울음(鳳鳴)은 새 울음이다. 공자님 흐린 세상 보고 새(鳳)가 울길 기다리셨다지. 새가 나타나 울면 거룩한 이가 오신다 해서. 우리도 부족은 해도 사람 기다린다. 봉은 없어도 닭은 있다. 계서봉황식(鷄棲鳳凰食)이라, 닭이 봉황이와 한데서 먹는다 하지 않았나? 문천상(文天祥)이도 닭과 한데서 먹으니 봉황이 됐지. 봉황이 따로 있는거 아니야. 닭을 잡아먹을 맘 없이 보면 거룩한 이 오실 것을 가르쳐 주는 하늘 소리지. 보기에 따라, 듣기에 따라 닭이 곧 봉황이다. 베드로도 닭의 울음에 깨어 새 사람이 되지 않았나? 지금은 우리 자격이 부족하여 닭의 밑구멍만 쳐다보고 있지만 이제 새벽 세시부터 우는 닭의 울음(新鳴)에 맞추어 잘 울기만 하면 오실 이가 오실 것이다. 새 울음(新鳴)이 새 울음(鳳鳴)이다. 새 날의 울음 울면 그것이 정말 글이다. 「그」이를 그리워 우는 것이 글 아니겠나? 자나 깨나, 풀을 비면서도, 흙을 까면서도, 글. 그를 그리워, 글, 글 만나게 해 달라고 하면 그거 글일 것이다. 참 글. 변변치는 않아도 이것이 우리 손으로 만든 복숭아니 부끄럼 모르고 내놀까?
쉰 아홉에 복숭아 맛을 첨 알고
듣는 귀 솔깃 믿고 눈에 언듯 탐스러워
입에 침 코에 향기 손닿는 줄 모른 저녁
살그만 따온 한 알을 주고 받고 먹었네
먹고 나 보는 눈에 네꼴 내꼴 흉측망칙
달고 신건 한 때 맛 뿐 바람 소리 맘 떨린다
얻은 건 슬긴 아니고 꼭 찌르는 가시지
이마에 땀을 흘려 네 바탈을 갈아라
일러준 말씀 심어 가꿔내는 뿌리 밑에
한낮에 받는 한 이 천도 복성 아니냐
설움
이것이 씨알의 설움이냐? 씨알의 처지가 아니냐? 씨알이란 곧 설움이냐? 설움이 곧 씨알이냐?
대하여경요양동(大厦如傾要梁棟), 만우회수구산중(萬牛回首丘山重), 나라 일 이렇듯 기울어져 가는 집 같건만 버틸 놈이 없구나, 천 만 마리 황소를 들대어 끌어도 움직도 아니하리만큼 큰 나루가 있어야 하건만, 씨알아, 너는 아니로구나.
최외지간교원고(崔嵬枝幹郊原高), 요조단청호유공(窈窕丹靑戶牖空), 세상인심이 이렇게 땅을 쓰는 때에 거기 홀로 우뚝 서는 인격이 있어야겠는데 없구나. 텅 빈 사당칸 같이 엄숙하고 거룩한 마음이 있어야 건만, 씨알아, 너는 아니지.
너는, 명명고고다열풍(冥冥孤高多烈風)이라, 사나운 바람에 우는 잎새 같이 압박적인 정치와 싸워 울 줄도 모르지.
너는, 향엽종경숙난봉(香葉終經宿鸞鳳)으로 향기를 멀리 날리는 꽃 같이 세계적인 친구 동지를 부르는 예술을 지을 줄도 모르지.
이 나라의 민중(民衆)아, 너는 씨알이지. 여물어 떨어져 땅에 들어가 썩는 씨알이지.
모든 뿌리, 모든 줄기, 모든 가지, 모든 잎, 모든 꽃이 네게서 나갔건만 하나도 너를 받드는 놈은 없지.
모든 꽃, 모든 잎, 모든 가지, 모든 줄기, 모든 뿌리가 너 하나를 위해 있건만, 너 될대로 되는 날 곧 떨어져 땅 속으로 들어가 숨지.
너는 참 설구나.
허지만 너는 씨알이다. 너는 앞선 영원의 총 결산이요, 디에 올, 영원의 맨 꼭지다. 설움은 네 허리를 묶는 띠요, 네 머리에 쓰이는 관이다.
너는 작지만 씨알이다. 지나간 오천년 역사가 네 속에 있다. 오천년 만이냐. 오만 년 굴속에 살던 시대부터의 모든 생각, 모든 행동, 눈물, 콧물, 한숨, 웃음이 다 통조림이 되어 네 안에 있다. 아니야, 오만 년 만이겠나, 파충류(爬蟲類)시대, 아메바시대, 양치류(羊齒類)시대 폭풍우 시대, 조산(造山)시대, 백열(白熱)시대, 허공에 소용돌이치던 가스 성운(星雲) 시대까지도, 그보다도 절대의 얼이 캄캄한 깊음을 암탉처럼 품고 앉았던 시대의 모든 운동이 다 다 네 속에 있다. 그럴 때 너는 늘 설었다.
너는 작지만 씨알이다. 이제 이 앞으로 무슨 시대와 나라와 민족들과 문화가 나올지 누가 아느냐? 아브라함은 제 생식세포(生殖細胞) 속에서 이스라엘 열두지파와 모세와 다윗과 예수와 유대교와 기독교와 로마제국, 독일제국, 프랑스 혁명, 러시아혁명, 일차세계대전, 이차세계대전, 원자탄, 우주 로켓트를 보고 있었다. 미래도 또 설은 역사일 것이다.
그러나 설움은 설움이다. 설다 당하면 민중의 자궁 속에 새 시대의 아들이 설어진다. 고통은 영원의 얼의 수정(受精)작용(作用)이다. 너는 설움 당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네 속에 알이 든다. 여문다. 민중이 영원의 얼로 수정(受精)이 돼야 미래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
이해가 다 간다. 이 잊지 못할 1959년, 영원의 처녀의 가슴패기에 인간의 고통과 무지와 분노와 시기와 싸움과 애씀의 심벌인 마치와 로켓트가 꽂힌 해, 그러나 그러면서도 인간의 역사가 우주 시대로 들어간 해, 이 해도 다 간다. 설이 온다. 가는 역사가 설어서 설인가? 오는 역사는 일어 설 것이 되어 설인가? 설은 설이다.
겨울이 온다. 「겨울 만일 온다면」으로 시작한 이 울음도 겨울이 왔으니 인젠 끓일 때가 왔다.
서풍이 분다. 서풍아 불어라! 사나운 서풍아, 이번 대서양이 아니고 태평양의 수평이 깨져 네 오는 길을 연다. 셸리야 살아나라! 살아나서 새로운 서풍 노래를 불러라!
오, 사나운 서풍이여, 이 말라 버린 강산에 불어라! 불어서 저 염병 맞은 잎새들을 날리고, 이 씨알들을 날려 그 겨울 심장으로 보내라! 거기서 우리가 소리 없이 울며 봄이 올 때까지 시체처럼 기다리리라. 서풍아 너야 말로 씨알의 글월이로구나.
하늘 고요에 동이 트고 닭이 운다. 붓을 놓고 호미를 잡자! 새 날이로다.
사상계 1959년 12월 77호
저작집30; 6-77
전집20; 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