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관하여
효봉스님
영가(永嘉)스님은 ‘마음은 감각기관이고 법은 경계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은 것이니, 마음의 때를 모두 지워버리면 비로소 광명이 나타나고, 마음과 법을 모두 잊어버리면 그 성품이 곧 진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망상을 쉬고 마음을 닦는 방편으로 가장 좋은 설명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저 나그네가 부질없이 후학들로 하여금 깨진 기왓장 속에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산승은 그 말씀보다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즉 조계(曹溪)의 거울에는 본래 티끌이 없는데 깨끗한 그 성품에 무슨 흔적이 있겠으며, 처음부터 덮이지 않았는데 무엇이 다시 나타나겠습니까.
이 광명은 허망한 것도 아니고, 진실한 것도 아닙니다. 눈 밝은 사람 앞에 어두움이 석 자일 뿐입니다. 도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백 가지 지혜가 하나의 무심만 못한 것이니, 그 마음에 집착이 없으면 뒷생각이 저절로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심의 법을 얻으려거든 그 마음이 항하의 모래처럼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범천과 제석천 등 여러 하늘이 밟고 가거나 오더라도 그 모래는 기뻐하지 않고, 소 말 개 돼지 독사 개미 땅강아지들이 밟고 가거나 오더라도 그 모래는 성내지 않으며, 금 은 등 보물과 향 꽃 등을 거기에 뿌리더라도 그 모래는 탐내지 않고, 썩고 더러운 물건들을 던지더라도 그 모래는 싫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팎의 마음과 몸을 버리고 지금까지 지은 복덕도 버리며 삼세(三世)의 일을 모두 버려야 비로소 불도를 이룰 수 있어 우리들 마음 쓰는 것도 그러해야 합니다. 만일 단박에 무심(無心)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겁을 두고 수행하더라도 끝내 도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모두 버리는 것입니다. 안팎의 마음과 몸을 버리고 지금까지 지은 복덕도 모두 버리며 모든 경계에 마음이 집착함이 없는 것을 모두 버림이라 합니다.
[금강경]에 말한 바와 같이, ‘과거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고 한 것은 과거를 버리는 것이고, ‘현재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고 한 것은 현재를 버리는 것이고, ‘미래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고 한 것은 미래를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세(三世)의 일을 모두 버려야 비로소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무심과 버림의 궁극적 목적은 부처 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에는 삼신(三身)이 있으니 이른바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입니다. 법신불은 자성의 허통(虛通)한 법을 말하고, 보신불은 일체의 청정한 법을 말하며, 화신불은 육도만행(六度萬行)의 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법신불은 설법하되 언어, 문자, 음성, 형상 등을 빌지 않고, 다만 자성의 허통한 법만을 말할 뿐이니 ‘가히 말할 법 없는 것이 바로 설법인 것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보신불과 화신불은 설법하되 언어, 문자 등을 빌어 오직 세간, 출세간의 법만을 말하므로 ‘그것은 참 부처가 아니며, 또 설법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위에서 삼신불을 말하였지만 이는 모두 하나의 정명(精明)에서 나온 이치로, 하나의 정명이 나뉘어져 육화합(六和合)이 됩니다.
하나의 정명이란 마음이요, 육화합이란 6근을 말합니다. 6근은 모두 진(塵)과 합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눈은 빛깔과 합하고,
귀는 소리와 합하며,
코는 냄새와 합하고,
혀는 맛과 합하며,
몸은 감촉과 합하고,
뜻은 법과 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6근과 6진이 화합해 6식(識)을 내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18계(界)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18계가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알면 그 여섯 가지 화합을 거두어 하나의 정명이 될 것입니다. 이 하나의 정명이란 곧 마음입니다.
옛날 부처님께서 가섭을 불러 자리를 나누어 주고 마음을 전하시니 그것이 곧 말을 떠난 설법입니다. 만일 그 분부하신 도리를 깨우쳐 알면 아승지겁(阿僧祗劫)을 지내지 않더라도 곧 부처의 자리에 오를 것입니다.
이 삼계(三界)의 불타는 집에 누가 그 큰 법왕(法王)인고?
그는 석가도 아니요 미륵도 아니다.
오직 대중의 눈동자에 맡기노라.
효봉선사(曉峰禪師) 1888~1960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평양 복심법원에서 십년간 판사직을 지내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엿판을 메고 팔도강산을 방랑하기 3년 1925년 금강산 신계사 석두스님 문하에서 출가하여 불굴의 의지로서 절구통수좌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장좌불와 용맹정진 수행하여 결사적인 정진끝에 문득 얻은 바 있어 오도송을 읊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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