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018.10.26.) 세월을 재촉하며 하염없이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가 그친 후 쌀쌀한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면서 몸을 움추리게 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10월27일(음9월19일), 경천순민의 대의를 935년에 몸소 실천하여 승하하신지 1000여년이 경과했지만 만민이 우러러 존숭하며 전국 도처에서 묘전과 사우를 조성하고 제향을 봉행하고 있는 신라 56대 마지막 임금 경순대왕의 영위를 봉안한 묘전중의 한곳인 숭인전(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호명리) 제향에 참석 하기 위해 새벽 7시에 일산 집을 나설 때에 계절은 가을의 정취가 한참일 무렵인데도 때 이른 초겨울 추위를 방불케 하는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어서 혹시나 하고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내피를 뺀 반코트를 입고 집을 나섰다.
일산동구청 앞에서 경순대왕 능 초대참봉을 지낸 경주김씨 서울종친회장인 김재현 종친과 합류하고 고양IC로 진입하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서 달리다가 경기도 광주 산곡IC에서 광주-원주고속도로로 길을 바꾸어 평창으로 달려갔다.
10시 조금 넘어 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통과하고 10여분 달려 호명리에 있는 숭인전에 도착했는데, 강원도 평창은 원래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산자수명한 고을이지만 숭인전은 산으로 조금 올라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이 확 틔어서 주위에 이어져 있는 높고 낮은 산들이 마침 늦가을 단풍에 울긋불긋 채색되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위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크고 작은 몇 덩이 휜 구름이 서서히 뒤채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자연의 온갖 풍광을 가득 담고 있는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이 착각을 할 정도로 좋은 장소에 터를 잡았구나 하는 감탄을 하며 차에서 내리는데 차창을 열자마자 살을 에일 것 같은 찬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올라오며 휘몰아쳐 감싸돌아 잠시 몸을 오싹하게 한다.
한반도 전역은 어제 내린 비가 그친 후부터 대륙성 고기압을 타고 기습한 한파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데다가 숭인전은 민족의 영산중의 하나인 오대산 연봉 산자락에 건립된 묘전이기 때문에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높고 깊은 오대산 연봉과 골짜기를 넘고 타고 불어오다가 골바람이 되어 숭인전이 있는 산록을 오르며 세차게 스쳐가기 때문에 더욱 한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마침 나는 오늘 날씨 상황이 심상치 않을 것이 예견돼 집에서 출발할 때 준비해 간 반코트를 서둘러 입었기 때문에 추위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으나 준비 없이 참석한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꼼작 없이 일찍 찾아 온 늦가을 추위에 떨을 수밖에 없었으며 일부 외지에서 참석한 분들은 현지의 참석자들에게 이곳은 이미 겨울이 된 것이 아니냐고 물어 보기까지 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평창지역은 비교적 지대가 높은 산간지역이라 겨울이 평지에 있는 대도시보다 조금 일찍 찾아오는 편이긴 하지만 오늘 추위는 예외적, 일시적으로 일찍 찾아온 한파 때문에
이렇게 쌀쌀하다고 했다.
대제 봉행시간인 11시가 가까워지자 참제객들이 원근에서 속속 도착하였는데 그중에는 서울에서 간 김재현 경순왕릉 초대참봉, 김근학 사단법인범공선사숭선연구회장, 경주에서 참석한 숭혜전 김상조 참봉과 김상수 숭혜전 전 참봉이 동행해 참석했으며, 그 이외 참석자들은 평창향교 나정부 전교를 비롯한 많은 유림들께서 참석했으며, 경주김씨 김학성 평창종친회회장, 제례위원장 김병기, 진부종친회 김명기 회장 등 많은 분이 참석하여 제향 봉행을 시작했다.
유도회 대관령 면회장 박병승 집례로부터 <<<신라기원 2075년 경순대왕 숭인전 대제 헌관급 제집사 분방기>>>를 창방함으로서 대제 봉행이 개시되었는데 초헌관은 평창향교전교인 나정부, 아헌관은 진부면장 이만수, 종헌관은 숭혜전 참봉 김상조, 대축은 유도회평창지부회장 심상룡 등이 분방하여 약50분에 걸쳐 진행됐다.
<<<헌집분방기>>>
대제 봉행 내내 하늘은 맑고 햇빛은 따사로웠으나 오대산 연봉과 골짜기를 타고 몰아쳐오는 골바람은 여전히 계속되어 견디기가 만만하지 않았지만 참예객들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공손하고 경건하게 격식에 따라 대제를 봉행하였다.
대제 봉행 내내, 그리고 중식을 하는 동안에 참제자들은 경순대왕의 가없는 경천순민의 대의를 실천한 세기적인 결단을 실천한 크나큰 덕화에 대해 기리고 흠모했다.
***경순대왕(987-978),(재위927-935)***
신라의 56대 마지막 왕이고 신라김씨 38대왕이다.
신라김씨 도시조인 대보공(추존 세조대왕)김알지의 28대 손이고 마지막 화랑인 이찬 김효종(추존 신흥대왕)의 아들이다.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왕의 강압에 자진한 후 견훤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강토와 백성이 월성(경주)만 남아 있어 국가를 도저히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가없는 경천순민의 대의에 따라 신라천년사직을 신흥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넘겨주었다.
때문에 신라 1000년의 찬란한 문화와 유적이 보존되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고 우리 배달민족이 세계의 훌륭한 문화 민족으로의 위상과 자긍심을 세계만방에 떨치게 되었으며, 자손들이 남북한 통 털어 1000만에 가까운 명문거족으로 번성하여 역사와 문화발전에 혁혁하게 공헌해 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왕의 경천순민의 크나큰 덕을 기리고 숭모하는 묘전과 사우가 조선조 말까지 전국 도처에 걸쳐 수십 군데가 있었을 정도였으며, 지금도 역대제왕 중 제일 많은 묘전과 사우 7곳이 남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숭인전에는 경주 숭혜전에서 모사해온 어진이 1본 봉안해 있는데 이 어진은 신라가 종언을 고할 때인 935년에 경순대왕과 정비 죽방왕후 박씨의 계자 황 왕자가 망국한을 품고 사작불수하고 가야산 법수사에서 영사입산하여 범공스님이 되고 해인사를 왕래 주석할 때 해인사에 봉안한 어진을 기본으로 해 모봉한 어진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의 어진으로 학계에 보고되어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숭혜전과 최고(最古)의 영정(어진), 경순왕 영정
숭혜전에 신라 56대 마지막 경순왕의 영정이 5본 보관되어 있는데 이 영정이 국내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어진이라는 사실이 두 차례에 걸친 학술 세미나에서 밝혀졌다.
이 경순왕 영정에 대해 2008년 11월7일 경주문화원부설 향토문화연구소의 제3회 학술대회에서 <경주 숭혜전과 경순왕 어진의 문화사적 고찰>의 학술보고서와 2010년 6월12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한국미술사연구소의 제20회 한국미술사연구소 학술세미나의 <최고의 어진, 신라 경순왕 어진의 회화사적의의(2010년 12월 학술지 강좌 미술사에는 신라경순왕영정의 제작과 그 의의[정병모]로 발표)학술 자료에 의해 학계에 보고되어 공개된 것이다.
정병모 교수의 학술 세마나에 보고된 <경순왕영정의 제작과 그 의의>기록을 집약하면 [신라의 국운이 다하여 935년 고려에 평화적으로 나라를 이양할 때 경순왕의 태자 일(마의태자)은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계자(막내아들) 황왕자가 범공선사가 되어 가야산 해인사로 입산할 때 부왕의 어진을 각각 모봉하여 봉안하였으나. 태자가 가져간 영정은 행방이 미상이고, 범공선사가 935년에 해인사에 봉안한 영정은 영천 은해사로 이안 되어 있다가 1749년에 이모되고 이것은 1778년 숭혜전(당시 동천묘)으로 이봉한 것으로 1792년(정조12년)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다시 이명기가 그린 <경순왕 영정>. 이진춘이 그린 <경순왕영정>으로 제작되어 숭혜전에 봉안되어 황왕자본(해인사본)이 경주 숭혜전에 소장된 어진의 주류가 된 것이다.]
<<<경순왕 영정이 두 차례의 학술세미나를 통해 최고의 영정으로 밝혀지기까지는 김병호(경주인) 숭혜전 참봉이 2008년2월14일 신라김씨연합대종원 총회(겸 제14대 김영삼 대통령 산수연)에 참석하여 숭혜전 소장 영정의 존재를 알리고, 참고자료의 협조를 호소해와 황왕자가 해인사에 봉안한 경순대왕의 영정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던 사단법인 범공선사숭선연구회 회장(당시 나주김씨중앙종친회장)이 3월20일 숭혜전 춘제에 참제할 때 경주김씨문헌록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등 자료를 제공하여 본격적인 학술연구를 하는 계기에 일조를 한바 있음>>>
경순왕 영정은 당초 제작시기가 935년으로 현존하는 어진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조선시대 모본을 이모한 화가의 명성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이모 시기도 영정 중 가장 오래되어 문화사적으로나 회화사적인 가치가 출중한 영정이다.
이 영정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410호(2009,4,30)로 지정되어 있으나 무심한 세월에 훼손 상태가 심각하여 유물보존 처리를 위해 경주국립박물관에 관리를 위탁하고 있다가 2013년 6월24일 기증해 보관 중인데 기증 당시에는 보존처리 후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신청 한다고 하였는데, 기증 후 5년이 다 됐는데도 아직 아무런 조치가 없어 궁금하기 만하다.
현존하는 어진 중 가장 오래된 어진으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이기 때문에 국가 문화재 지정 등 합당한 조치가 조속히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경순대왕이 억조창생을 전쟁의 참화와 도탄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자신의 안위와 체면을 돌보지 않고 경천순민의 대의에 따라 신라 천년사직을 고려에 평화적으로 통째로 손국한 세기적 결단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거의 없는 특종 사건으로 후세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손국에 대한 평가는 일부 나약하고 무능한 군주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대다수는 백성을 가없이 사랑한 자애롭고 사려 깊은 군왕으로 길이 기려져 백성들이 전국도처 수십 곳에 걸쳐 대왕을 존숭하는 묘전과 사우를 건립하고 향화를 봉행해온바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지긴 했어도 아직도 경주의 숭혜전, 평창의 숭인전 등 6개의 묘전이 남아 있어 매년 향화를 받들고 있다. 숭인전의 제향은 경주김씨 평창종친회 주관하에 봉행해왔었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도시화 산업화의 큰 물결의 영향으로 집성촌이 파괴되고 조상에 대한 위선숭조정신의 퇴색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의 저조로 참예자 수도 많이 줄어들고 있어서 평창의 유도회(향교)와 긴밀히 협의하여 유림에서 봉행하게 되었는데, 경순대왕이 신라김씨 만의 대왕이 아니고 만백성의 대왕이니 만큼 방향을 바람직하게 전환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숭인전에서 대제와 관련된 모든 절차와 순서가 끝난 후 떠나려 할 때 김명기 진부경주김씨 종친회장이 차담을 나누면 좋겠다고 은근하게 제의해 와서 숭인전에서 진부로 내려오는 길에서 오대산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카폐 라온에서 차를 마시며 거의1시간 동안 신라김씨와 숭인전과 관련된 역사와 유래에 대해 격의 없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오후 2시경 귀가 길에 오르면서 내년도 숭인전 대제에는 더 많은 종친들과 함께 올 수 있도록 해보자고 다짐하고 떠났다.
2018년 11월 14일
사단법인 범공선사 숭선연구회 회장 김근학
첫댓글 수고 하셔내요 우리 경순 대왕을 경순 황제로 변경 운동을 해야 합니다...역사를 보면 왜곡들이 많다고 합니다 역사를 보면 우리 왕들은 황제라고 불려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