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도회 헌신예배(20190120)
침묵으로 헌신하십시오
고전 12:1~11
1월 셋째 주일은 교단에서 제정한 ‘여신도회주일’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이번 주 교회력 서신서와 관련한 말씀입니다. 주일예배에 복음서의 가나 혼인 잔치 이야기를 주제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도 드렸습니다만, 여성의 공감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섬세한 여성의 눈과 따스한 모성애는 예수님의 눈이며 마음이기도 합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한남교회 여신도회원 여러분께서는 섬세한 눈으로 교회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살림과 죽음
‘살림’이란 ‘죽음’의 반대되는 말입니다. 남성들은 ‘살림’을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여성 자신도 살림을 하찮은 일로 생각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이 ‘살림’입니다. 교회도 생명의 기운이 풍성한 교회가 되려면 여성이 살아나야 합니다. 한 가정의 평화가 현명한 어머니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교회의 평안도 현명한 여신도들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영광을 받는다’는 말은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교회를 세워주셨고, 그 교회가 생명살림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려고 다양한 직분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오늘 읽은 7절 말씀에 ‘성령을 나타내심은’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뜻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혜의 말씀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의 말씀으로, 믿음으로, 병 고치는 은사로, 능력 행함으로, 예언하는 능력으로, 영을 분별하는 능력으로, 방언함으로,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로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이유는 7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의 뜻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은사를 선물로 받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시겠다는 뜻이요, 다른 하나는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유익하게 하려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면, 결국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그의 백성이 기뻐하는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교회에 속한 이들에게 이렇게 다양한 은사를 선물로 주신 이유는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던 우리에게 ‘생명 살림’의 길을 선물로 주신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사를 한 사람이 모두 받을 수도 없고, 주시고자 하는 은사 중에서 교회에 필요하지 않은 은사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나와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개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속상해 마지 마십시오. 다른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합니다. 살림의 주체이신 여신도 여러분, 다양성의 일치를 이루시어 여러분은 물론이고 가정과 교회와 이 나라를 살리는 살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작고 강한 교회
지난 4주간 수요 성경공부 시간에 ‘작고 강한 교회’라는 주제로 4회에 걸쳐 말씀을 나눴습니다. 교회의 성공과 실패는 교회의 크기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작아도 건강한 교회가 있고, 커도 건강한 교회가 있습니다. 위대한 교회는 크기와 상관없이 기도하고, 계획하고, 협력하고, 힘써 일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한남교회가 작아도 강한 교회, 작아도 위대한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출석인원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구원받은 사람이 있을 때면 함께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작은 교회는 외부에서 사람을 고용할 수 있는 여력이 없으므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과 자원만으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교회가 되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며, 서로에 대해 친절해야 합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틀린 것이 아니라면 품어주십시오. 이것이 헌신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 목회자, 교인이라는 세 참여자가 존재합니다. 이 셋의 협력이 없이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 한남교회가 작지만 건강한 교회를 이루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나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차고 넘치는 은혜를 채워주십니다. 그냥 필요한 만큼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 6장 38절의 말씀대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남교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충분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고,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가면 충분히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사랑하고 섬기고 친절하게 상대방을 대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 신령한 것을 알라
다시 본문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1절 말씀에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바울)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우리가 은사를 받기 전, 우리가 직분을 받기 전에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의 상황은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다니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온 삶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직분이 얼마나 신령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다니는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은사와 직분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우상이 끄는 그대로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참 불쌍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은사와 직분을 우상을 섬기는 데 사용하면서도 스스로 구원의 확신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찌 그렇게 하나님의 생각까지도 잘 아는지 하나님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습니다. 이는 신령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게 헌신입니다.
■ 엔도 슈사쿠의 <침묵>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 상황을 소재로 쓴 것입니다. 포르투갈 예수회에 ‘페레이라’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던 ‘로드리고’신부는 순교할 각오로 일본으로 갔고 우여곡절 끝에 일본인에게 체포되어 배교한 ‘페레이라’신부를 만나 그 역시도 배교하게 됩니다. 배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소설의 흐름을 따르면, ‘포르투갈 예수회에는 분명히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의 설득으로 로드리고 신부도 배교했다’고 보고될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인 일본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하기를 마다치 않습니다. 기독교를 전한 신부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한다.
밟는 너희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도 충분하다.“
페레이라 신부를 제외한 나머지 신부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지만, 페레이라 신부는 자신이 배교함으로 일본인들을 살리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로드리고 신부도 마찬가집니다. 그가 끝내 배교하지 않고 순교의 길을 간다면, 순교자의 반열에 서는 영광을 누리겠지만,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였던 일본인들도 죽어야 합니다. 그는 배교함으로 포르투갈 예수회에서도 일본인들에게도 비아냥 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살아가는 것이 더 수치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는 배교의 길을 택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 ‘배교한 것이 순교한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으며, 배교한 두 신부가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헌신이란, 사실 이렇습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헌신할 때에는 침묵하십시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시고,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신령한 것을 아는 이들은 압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 속상한 것인지,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한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침묵으로 헌신하는 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뜻을 펼쳐가십니다. 그리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로해 주시고 갚아주십니다. 생명 살림,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신도회원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한남교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은사를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잘 활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뤄가시는데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