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 유래
[정의]
종이 말판 위에서 누가 가장 먼저 높은 관직에 올라 퇴관(退官)하는가를 겨루는 놀이. 종경도(宗卿圖)·종정도(從政圖)·승관도(勝官圖) 등으로도 불린다. 주사위 또는 5각형의 나무막대인 윤목(輪木)을 굴려 나온 수대로 말을 이동하여, 최종점인 봉조하(奉朝賀)에 도착해 먼저 퇴(退)한 사람이 승리한다. 원래는 계절에 상관없이 즐겼던 놀이였으나, 일반적으로 정월에 많이 하였다. 일부에서는 승경도의 승부를 통해 일년의 운세를 점치기도 하였다.
[유래]
승경도놀이는 관직체계를 내용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승경도의 형성은 일차적으로 관직체계의 완성을 바탕으로 하며, 누구나 할 수 있는 놀이가 되기 위해서는 관로(官路)가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는 사회적 조건을 필수로 한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의하면 하륜(河崙)이 승경도(종정도)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승가(僧家)에 성불도(成佛圖)가 있으니 지옥(地獄)으로부터 대각(大覺)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 제천제계(諸天諸界)가 무려 수십여 처요, 윤목 육면(六面)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섯 자를 써서 던짐을 따라 옮기며 혹은 올라가고 혹 내려와서 승부를 정한다. 정승(政丞) 하륜이 종정도를 만들어 구품(九品)으로부터 일품(一品)에 이르기까지 관작(官爵)의 차례가 있어 윤목 육면에 덕(德)·재(才)·근(勤)·감(堪)·연(軟)·빈(貧)의 여섯 자를 써서 덕(德)과 재(才)면 올라가고 연(軟)과 빈(貧)이면 그만두되 마치 벼슬길과 같았다.
이상을 살펴보면 하륜은 불교에서 행했던 성불도(成佛圖)를 기초로 조선의 관직체계를 반영하여 승경도를 만들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이유원(李裕元)은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승경도가 중국 당대(唐代)에 제작된 『투자선격(骰子選格)』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상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조선 초기 관료제의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기존의 말판놀이를 응용해 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승경도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홍문관(弘文館) 관리들이 이 놀이로 밤을 지샜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문건(李文楗)은 『묵재일기(黙齋日記)』에서 동리(洞里)의 소년배(少年輩)들과 몇 차례 하면서, 마지막까지 말판에 남아 있는 사람의 눈가에 먹을 그리고 놀았다고 하였다. 이순신(李舜臣)의 『난중일기(亂中日記)』, 오희문(吳希文)의 『쇄미록(瑣尾錄)』 등에도 승경도를 제작했다거나 놀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하지만 승경도가 모든 이들의 호응을 받은 것은 아니다. 권필(權鞸)은 승경도가 운을 시험하는 것에 불과함에도 승부에 따라 현명함과 우둔함을 가르듯이 한다고 하여 동료들이 승경도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덕무(李德懋)는 『사소절(士小節)』에서 “(아이들의) 정신을 소모하고 뜻을 어지럽히며 공부를 해치고 품행을 망치며 경쟁을 조장하고 사기(邪氣)를 기르는” 놀이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는 당시 승경도가 상당히 유행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1930년 조선총독부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225개 지역 가운데 132개 지역에서 승경도를 놀았으며, 그 가운데 70개 지역에서 정월에 집중적으로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제도의 폐지와 관직체계의 재편으로 놀이 내용의 현실감이 떨어짐에 따라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놀이방법
승경도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말판’과 ‘윤목’이 필요하다. 말판은 대개 가로 80센티미터, 세로 120센티미터 내외로 바둑판형으로 격자를 만들고 그 안에 관직과 다음 이동할 칸의 위치를 써넣는다. 칸의 수는 대략 적게는 80여 칸이며 많은 경우, 300여 칸을 넣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외곽에는 지방관 및 하급무관직을 넣고 안쪽에는 중앙관을 배열한다. 더러는 남는 칸에 놀이 규칙을 써넣기도 한다. 윤목은 막대형과 주사위형이 있다. 막대형은 약 10~15센티미터 길이의 막대를 오각기둥 형태로 깎고 각각의 모서리에 1개에서 5개까지 홈을 판다. 그리고 주사위형의 경우는 나무를 정육면체로 깎고 각 면에 주로 품행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글자를 새겨 숫자 대신 사용했다. 『명곡집(明谷集)』에 의하면 주사위의 둘레 4면에 덕(德)·문(文)·무(武)·훈(勳)자를 새기고 위 아래로 탐(貪)·연(軟)자를 새겨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글자는 일정하지 않아 덕(德)·재(才)·근(勤)·감(堪)·연(軟)·빈(貧) 또는 덕(德)·재(才)·공(功)·양(良)·유(柔)·장(藏) 등의 글자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윤목이나 주사위가 없을 경우에는 윷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놀이 방법은 말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윤목을 굴려 각자 출발 지점을 정한다. 그리고 출발점인 초도(初度)에서 먼저 말을 굴려 출발점을 정한다. 출발점의 종류로는 크게 문과(文科)·무과(武科)·은일(隱逸)·남행(南行) 등이 있다. 각자의 출발점이 정해지면 윤목을 굴려 나온 수에 따라 이동한다. 말을 옮겨가는 도중에 중요한 관직에 오르면 그 관직이 지니고 있는 권능을 발휘한다. 예를 들면 왕을 가까이 모시는 홍문관(弘文館)의 관리가 되면 자기보다 앞서 높은 관직에 오른 이들을 파면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때 파면을 지적당한 고관에게 윤목을 굴릴 기회가 주어지며, 일정한 수가 나오면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자신을 파면했던 관리를 거꾸로 파면시킬 수도 있다. 놀이를 즐기다 보면 순탄하게 봉조하까지 올라가 퇴관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유배나 사약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유배의 경우에는 다음 나온 수에 따라 방면되거나 복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약을 받는 경우는 경기에서 탈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