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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처: 한겨레신문 99.3.19 / 안선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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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채식 현황
지난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포이동의 채식전문식당 `SM 채식뷔페'. 밀고기, 콩고기,
채식햄, 채식피자…, 낯선 이름의 채식요리들 이 나란히 놓여있다.
관리책임자인 조정숙씨는 “지난 96년 6월 문을 열 당시만 해도 하루 손님은 20명을
넘기가 힘들었다”며 “점점 손님이 늘어나 최근에는 하루 80~100명 정도가 찾아온다”
고 말했다.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채식식당 `시골생활'도 마찬가지다.
지난 80년 채식식당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이 식당도 초기
에는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인 유정숙씨는 “90년대 들어서면서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돌잔치, 회갑잔치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서울에만 체인점이 4군데다. 채식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색다른 맛을 찾는 미식가나 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다 싶어 구색을 맞추러
들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거나 철저하게
채식만 하는 사람들이다.
`고기먹는 사회'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채식주의자'라는 이름의 이 아웃
사이더들은 사회 곳곳에서 조금씩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채식을 고집하는 사람
들이 가장 많이 드는 이유는 건강이다. 80년대 말 크게 유행한 이상구 박사의 `뉴스타
트 운동'은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계기였다. 대체의학으
로서 생채식, 채식을 보급하는 단체인 민족생활의학회 최민희 교육홍보국장은 “90년
대 초부터 회원이 급속도로 늘기 시작해 90년대 중반에 절정기를 맞았다”며 “구제금융
사태의 영향으로 회원 증가는 조금 주춤한 상태지만 채식에 대한 인식은 계속 넓어지
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의학이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하는 암, 당뇨병 따위 난치병들을
식생활을 통해 예방하고 고쳐보려는 시도가 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단순한 건강식의 의미를 뛰어넘어 채식을 좀더 윤리적/사상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국제명상단체 `관음법문'은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채식할 것을
요구한다. `중생의 생명을 뺏지 말라'는 계율 때문이다. 지난 92년 한국에 지부가 생긴
이 단체의 회원은 현재 전국적으로 700여명 정도다. `아난다마르가' `오쇼 라즈니쉬'
`라쟈요가센타' 등 많은 명상단체가 채식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생명 존중 사상이
바탕에 있는 데다 수행하는데 육식이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명상단체들은 70년대 말~80년대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최근 무엇보다 눈에 띄는 흐름은 `환경운동'으로서의 채식주의다.
생태주의 잡지 <녹색평론>은 채식주의에 관한 글을 꾸준히 실어오고 있다.
편집장 김종철 교수(영남대 영문학과)는 “대량으로 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대규모/공장
식 축산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큰 환경문제 중의 하나”라며 “생태주의는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태주의에 바탕한 유기농 운동, 공동체운동
을 펼치는 단체들도 이런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기농산물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은 회원들에게 환경교육을 실시하면서 육식과 환경오염의 관계를 설명하고
채식 위주의 식단을 권하고 있다. 이 단체 소비자대표 부회장 서영숙씨는 “회원들은 대부
분 채식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고 있다”며 “나를 비롯해 많은 회원들이 완전 채식까지는
못해도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살림은 전국적으로 2만
세대 정도가 회원이며 서울에서만 한달 평균 170명 정도씩 회원이 늘고 있다. 유기농운동
단체인 `정농회'의 정상묵 회장도 “회원 대부분이 곡류와 채식을 위주로 한 식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채식주의는 아직 초보단계다.
`국제채식주의 자연합'에 따르면 영국은 350만명(6.1%), 네덜란드는 70만명(4.4%), 독일
은 70만명(1.25%), 미국은 180만명(1%)이 채식주의자다. 양적인 차이만이 아니다.
외국의 채식주의가 동물문제, 환경문제 등과 결합한 정치사회적 운동 성격이 강하다면
우리나라는 아직 개인적 `보신'의 의미가 더 강하다. 김종철 교수는 “동물문제에 무관심한
사회분위기, 아직 초보적인 환경운동 수준, 전통적으로 채식이 위주였던 식습관 등이 복합
적으로 채식주의의 발달을 더디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영국의 채식주의자 콜린
스펜서는 그의 저서 <이단자들의 축제, 채식주의의 역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채식주의는 부침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2000년을 앞두고 우리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시대가 왔다. '”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그 싹이
트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