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看經)>
간경(看經)은 부처님의 경전을 소리 내지 않고 읽는 것,
관경(觀經)이라고도 한다.
간경(看經)은 원래 경을 본다는 의미이다.
눈으로 스치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깊이 꿰뚫어 본다는 말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서 읽는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자신을 뒤돌아보며
부처님처럼 자기를 다스려 나가기 때문에 간경은 수행으로 자리 잡았다.
간경수행은 부처님의 말씀을 몸과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고 느껴
우리들의 삶을 부처님의 삶으로 전환시켜 내 마음의 본성을 밝히고
깨닫게 되는 중요한 전통적인 수행법이다.
다시 말해서 간경수행은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을 독송함으로써
그 경전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의 살과 피, 호흡과 걸음걸이,
마음과 말과 행동이 부처님처럼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마음이 맑아져 업장이 소멸되고 병고의 고통에서도 해방이 된다.
경전을 읽음으로써 그 뜻이 마음속에 드러나, 그 마음을 밝히게 된다.
이것을 경전을 펴서 마음을 본다고 해서 피경조심(披經照心)이라 한다.
그 결과 부처님 말씀과 내 마음이 상통해 서로 어우러져
마음이 밝아지면 경계도 함께 밝아진다.
이렇게 부처님 말씀이 마음속으로 드러나고 그것을 실천할 때만이
그 경전의 가르침이 생생하게 살아나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법요집(法要集)>에
“간경자(看經者) 혜안통투(慧眼通透)”라는 말이 나온다.
간경을 하게 되면 지혜의 눈이 밝아진다는 말이다.
그 지혜로 무명을 타파하게 되는 것이다.
업장을 녹여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경전의 말씀이 지혜로 승화돼 몸과 마음에 그대로 녹아들게 되면,
그 경전의 말씀을 언제라도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으며
그 가르침대로 행하게 된다.
경전(經典)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을 경안(經眼)이라 한다.
경전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는 안목을 말한다.
경전을 볼 때 경안이 있어야 혜안(慧眼)이 생긴다.
같은 경을 봐도 포괄적으로 더 넓게 깊게 보는 사람이 있다.
숨겨진 의미까지 파악하는 사람, 행간까지 다 읽어내는 사람,
이런 사람에 대해 ‘경안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경안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경전을 근거로 말을 한다.
이런 분의 법문을 들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경전을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혜안(慧眼)이 경안(經眼)이고, 경안이 도안(道眼)이다.
도(道)의 눈이 경이고, 경은 중생의 본성이다.
경을 보는 것은 자기를 보는 것이고, 경은 자기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사람이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나를 보려고 경을 보는 것이다.
성불도생(成佛度生)하고 보리심을 잃지 않는 것이 출가인데,
중생심은 탐(貪)ㆍ진(瞋)ㆍ치(癡)이고,
보리심은 비(悲)ㆍ지(智)ㆍ원(願)이요,
중생심은 탐욕이고 보리심은 서원이라.
출가자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서원을 지니고 임해야 한다.
수행해서 중생 제도하는 것이 출가승단의 근본 일이기에 앞으로는
특히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을 인도하는 방향으로 빨리 바뀌어야 하고,
그러려면 수행이 뭔지 알아야 하니, 경을 봐야 한다.
경에는 구절구절마다 본래의 자기 고향이 있다.
경을 바로 봐서 부처님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가르침에
눈뜰 때를 ‘경안을 얻었다’라고 하는 것이다.
경을 바르게 보면 그 자리에서 성불하는 것이고,
한 구절만 바로 봐도 곧 부처님 세계예요. 논리ㆍ수량ㆍ개념…
이런 데에 헤매다보면 벗어나기 힘들다.
간경(看經)은 딱 보는 것이다.
그럼 거기서 경안을 얻고
어떤 의심도 없이 훤히 드러나 이해가 가는 것이다.
경안을 얻는 게 바로 성불이다.
그래서 간경수행을 하는 것이다.』 - 종범 스님
‘경을 읽다’라는 말엔 경을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읽는 것을
풍경(諷經)이라 하고,
승당 불전 등에서 경을 읽는 것을 송독(誦讀)하다고 하며,
예불을 위해 소리 내어 경전을 읽는 것을 독경(讀經)이라 한다.
또 독경에는 경전을 연구하기 위해 읽는 것도 다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경전 말씀과 의미를 되새기면서 쓴다고 해서
사경(寫經)하는 것도 간경 범주에 들어가고,
결국 불경을 공부하는 모든 것을 간경이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경전을 읽는 방법에는 독경, 간경, 전경이 있는데,
• 독경 (讀經) ― 소리를 내어 크게 읽는 것.
• 간경 (看經) ― 그 뜻을 음미하면서 읽는 것.
• 전경 (轉經) ― 자신의 마음으로 경전을 굴리면서 읽는 것.
수행을 위한 간경을 특히 전경(轉經)이라고 해서 법을 굴린다고 하는데,
경전을 읽고 그 뜻을 마음으로 깨달으면 경을 굴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지식을 쫓아 헐떡이는 마음을 쉬고
사구게 하나라도 마음 가운데 깊이 새기고
몸소 실천해 깊은 뜻을 스스로 체득해야 참다운 간경수행이라 할 것이다.
모든 불교수행의 목적이 깨달음에 있듯이 간경수행의 목적도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 성불하는데 있다.
그러나 진리란 말로써 전해질 수 없거니와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거늘
어떻게 언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경전은 일반적인 글이 아니다.
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것이니
부처님은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자리를
다시 중생의 근기에 맞게 언설로 표현한 분이다.
그러므로 모든 깨달은 분 중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 속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내는 것이
간경수행의 원리이다.
독송하면 좋다고 하니 온갖 경전을 하루 종일 외우면서도
작은 경계에 따른 마음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툭하면 화내고, 분별하고, 아상에 빠지는 예가 허다하다.
이런 자세로 아무리 간경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방향이 거꾸로 틀어져 있기 때문에 하행선을 타고 서울을 가려는 꼴이 된다.
진정으로 경전을 수지 독송하고 익히는 까닭은 경전 속의
선지(禪旨-선이 지향해야 할 방향)를 발견하고 실천해
그 경전의 큰 뜻을 깨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경전을 수지 독송하기에 앞서,
경전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경전에 대한 바른 이해는 중생의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 잡아주고
불자가 도달해야 될 목표가 어디 있는지를 확실하게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경전의 내용을 잘 파악해서 이해하는 것은 정견(正見)에 해당된다.
정견이 없다면 정정(正定-바른 마음 집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정정이 없다면 정지(正智-바른지혜)가 열리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경전을 수지 독송하라고 하신 까닭은
간경을 통해 중생심을 깨뜨릴 수 있다고 보셨기 때문이다.
경전에 대한 바른 이해로 인한 정견(正見)은
집중적인 수지 독송을 통해 정정(正定)을 수반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경전에 대한 바른 이해는 정견이 되고,
수지 독송은 정정이 돼 마음의 지혜인 정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경은 어떤 자세로 행해야 하는가.
첫째는 :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되 불경을
부처님이나 임금님을 대한 것처럼 존중히 하여 신업을 맑힐 것이요,
둘째는 : 경전을 읽는 도중 입으로 잡된 말이나 우스갯소리를 끊어
구업을 맑게 할 것이며,
셋째는 : 경전을 새기는 그 뜻이 어지럽지 않고 난잡하지 않아
만 가지 인연이 아울러 쉬어 뜻의 업을 맑게 할 것이다.
속마음이 이미 고요하고 바깥 경계를 함께 버려야
바야흐로 경전의 깊은 뜻과 하나가 돼 진리를 규명하게 되니,
비유하면 물이 맑으면 빛이 어리고 구름이 흩어지면
달이 밝게 빛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될 때 경전의 바다와 같은 뜻이 가슴에 용솟음 치고
산과 같은 지혜가 귀와 눈에 역력할 것이다.
경전을 보는 것은 진실로 작은 인연이 아니다.
경전이 있는 곳에 부처님이 계신 곳이며,
호법 신중들이 있는 곳이라고 <금강경>에서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경전을 공부 할 때는 반드시 부처님을 직접 뵙고
가르침을 듣는 마음가짐으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경전마다 대개 설법의 대상자가 나온다.
<금강경>에는 수보리가, <원각경>에는 문수보살 및 열 두 제자가,
<반야경>에는 사리불 등이 교화 대상의 대표로 나오는데,
이것을 대고중(對告衆)이라 한다.
경전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수많은 대고중의 이름이 나올 때
경전을 보는 사람은 그 이름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나, 문수보살, 사리불, 아난다 등에게
설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경전을 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또 지금 읽고 있는 이 설법이 과거 2500년 전에
인도에서 하신 설법이라고 여기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부처님께서 나의 입을 빌려 나의 귀에
설하고 계신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이렇게 몸과 눈과 입과 귀와 뜻과 법문이 일체가 돼
경전을 읽을 때에 비로소 지혜가 열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불자들이 경전을 읽는데
그 방법과 목적을 잘못 이해해 주술화 되고 신비화된
가피력 중심의 독송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런 마음 다짐 없이 혼자 속사포처럼 읽어 내려가는
독송이 과연 법을 깨닫고 해탈을 성취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스님이나 법사, 그리고 신도가 함께 돌아볼 일이다.
경전 읽을 때 한 글자 한 글자의 뜻을 음미하고,
이해하면서 또박 또박 읽어 내려가야 한다.
경전은 삼보 가운데 법보에 해당하는 귀중하고 성스러운 의지처이다.
경전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면 독송을 제아무리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경전 한 자 한 자의 뜻을 깊이 음미하고 이해하되
자신의 마음이 관조 되도록 읽어야 하겠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