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은 밥 먹고 옷 입는 그 사이에 있습니다. / 송담 큰스님
송담 스님. 산수화
오늘 입재해서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를 하게 됩니다마는
석 달은 석 달이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모여서 석 달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는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24시간이 된 것이고,
한 시간 한 시간은 1초 1초가 모여서 그것이 모여서
하루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석 달이라고 하는 세월도
1초 1초가 모여서 석 달이 된 것이지,
무슨 백년 속에서 석 달이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닙니다.
비단 석 달뿐이겠습니까.
무량겁을 오늘날까지 우리가 윤회 해 왔고
앞으로 무량겁을 윤회해 나갈 것입니다마는
그 무량겁 윤회를
이 석 달 동안에 철저히 수행함으로써
무량겁 생사윤회를 한 칼로 비어 끊어야 되겄습니다.
그 방법은 1초 1초를 어떻게 잘 지내 가느냐,
거기에 가서 열쇠가 있습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
어떻게 그놈을 돌이켜서 본참화두를 드느냐?
유시(有時)에는 성이 나고, 유시에는 기쁘고,
유시에는 외롭고, 유시에는 슬프고,
온갖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 속에서,
마치 저 바다에 파도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듯이
우리의 마음에 파도도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합니다.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을
가라앉히려고 하시지 마십시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조금도 멀리 돌릴 것이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되돌려서 화두를 들도록
이렇게 나아가신다면은
어떠한 마음에 파도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서 참선을 못한다'고
걱정을 하신 분을 봤습니다마는
절대로 그런 걸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에 파도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참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증거입니다.
늙었다고 여자라고 병들었다고 걱정하시지 말고,
늙었거나 여자거나 병들었거나 말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프면 누워서 하고,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하고,
걸어가거나 서서 하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배가 아파서 '아이고, 아이고!' 하다가도 「이뭣고?」
이렇게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때그때 차곡차곡 되돌려 쌓을 때,
벽돌 한 장 한 장을 올바로 쌓아 올릴 때
십 층 백 층의 높은 건물이 이루어진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벽돌을 삐딱 빼딱해서 이리 쌓았다 저리 쌓았다 하다 보면은
얼마 안 가서 그 집은 와그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높은 고층 건물을 짓고자 할 진대는
벽돌 하나하나를 바르게 쌓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결정 코 대도를 성취 헐 라면은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때그때 지체 없이 되돌려서
본참화두를 든다고 하면은
우리의 해탈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밥 먹고 옷 입는 그 사이에 있고,
똥 누는 그 사이에 있고,
손주를 무릎에다 앉혀놓고 궁둥이를 투둑투둑 한 그 속에
바로 우리가 눈뜰 좋은 기회는 있는 것입니다.
제일 공부가 잘되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남편이나 자식이나 며느리나 친구나 이웃이
나에게 억울한 말을 하고 나에게 은혜를 받고서
나를 배신하고 웬수로서 나를 갚고자 할 때,
울화통이 터지고 속이 출렁여서 피가 거꾸로 넘어올 정도로
그런 대 충격을 받았을 그때야말로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장 힘 있고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려울 때에 한 번씩 자기로 돌아오는 연습을 해서
그것이 된다고 하면은 그밖에 소소한 일은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차라리 누워서 떡을 먹게 되면 눈에 티라도 들지마는,
이 참선은
어디서 언제 어떠한 일을 하면서라도
바로 거두절미하고 「이뭣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한 생각 한 생각을 쌓아 올릴 때
우리에게는 축착합착(築着磕着),
일조(一朝)에 확철대오 할 날이 기어코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아비라 카페
첫댓글
축착합착(築着磕着)
맷돌 위․아래짝이 서로 꽉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때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