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0:25~38)
오늘 묵상 에세이에서
박양규 목사님의 이런 언급이 남는다.
"역사는 말한다. 밀라노 칙령 이전에
기독교가 받았던 핍박보다 이후 기독교가
이교도를 박해했던 것이 훨씬 더 가혹하고
혹독했다고...... 중세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사회였지만 결코 성경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전심으로 가르치고, 베풀며, 노력한
본 받을 만한 기독교 지도자였다.
그가 전심을 다했기에
앞으로 예상되는 미혹과 도전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또한 동역자들과 장막을 만들며
선교의 경비를 스스로 조달하는
험난한 길을 택한 자비량 선교사로서
투명하고 청렴한 좁은 길을 택했다.
말씀과 삶에 있어서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람에게 덕이 되려고 하였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를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만
핍박의 시기가 지나
번영의 시기가 찾아오면
오히려 그 어떤 종교나 세력보다 더 사악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종교로서의 기독교이고 이를 선도하는 지도자들이다.
물론 철저한 논리와 은닉의 기술을 통해
성도를 맹목적으로 믿고 추종하게 만들기에
당시에는 식별하기조차 어렵다.
기독교 지도자가 아닌
하나님께 순종하여 영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나의 자아와 욕망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려 분투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죽기보다 힘든 일이다.
나의 자아와 욕망은 그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투쟁 안에서
선량하고 적절하게 사용되는 기능, 또는 에너지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