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건국되고 3년이 지난 1395년(태조 4) 9월 29일. 한양의 북악산 아래 넓은 터에는 390여 칸 규모의 새 궁궐이 들어섰다. 이 궁궐이 바로 200년 가까이 조선 왕조에서 법궁(法宮)의 지위를 유지한 경복궁이다. 새 궁궐의 영건을 축하하며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술이 한껏 거나해진 태조는 참모 정도전에게 궁궐과 각 전각의 이름을 짓도록 명하였다. 과연 정도전은 무엇에 근거해서 궁궐의 이름을 지었을까? 왕조 국가의 상징적 공간인 궁궐의 이름에는 조선시대의 사상과 이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 이름의 의미를 찾아 경복궁으로 가보자.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었던 정도전은 누구보다 경복궁의 창건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도읍지의 선정, 궁궐의 배치 등 모든 면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정도전은 그중에서도 특히 ‘궁궐의 명칭’을 잘 지어야 함을 강조했는데, 이는 그의 문집인 『삼봉집』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정도전은 『시경(詩經)』「대아(大雅)」편의 ‘이미 술로 취하고 이미 덕으로 배부르니, 군자께서는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릴 것입니다.(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景福宮)’으로 정했다. 여기에는 개창된 나라가 대대손손 큰 복을 누려 번영하기를 바라는 조선 왕조의 소망을 잘 반영하고 있다.
‘경복궁’이라는 이름과 함께 정도전은 정전(正殿)인 근정전ㆍ편전(便殿)인 사정전ㆍ침전(寢殿)인 강녕전 등의 이름도 잇달아 지었다.
◆ 부지런 할 바를 알아 부지런히 정치하라, ‘근정전(勤政殿)’
인왕산과 북악산을 병풍삼아 우뚝 솟아있는 전각. 경복궁에서 제일 웅장한 이 건물은 왕의 즉위식ㆍ법령 반포ㆍ외국 사신 접견 등과 같은 국가의 중대한 의식을 거행한 근정전(勤政殿)이다. ‘근정(勤政)’이란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나라를 통솔하는 자에게는 부지런함이 요구되었다. 이는 『서경(書經)』에 ‘편안히 노는 자로 하여금 나라를 가지지 못하게 하라.’ 하고, 문왕(文王)이 ‘아침부터 날이 기울어질 때까지 밥 먹을 시간을 갖지 못하며, 만백성을 다 즐겁게 하였다.’ 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정도전 역시 편안히 쉬기를 오래 하면 교만하고 안일한 마음이 쉽게 생기기 때문에, 임금은 무릇 부지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도전이 모든 일에 부지런해야 함을 말한 것이 아니라, ‘부지런할 바’를 알아서 부지런히 정치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도전은 왕이 부지런히 해야 할 것으로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 생각하고 정치하라, ‘사정전(思政殿)’
근정전이 국가의 공식 행사를 치르는 정전(正殿)의 기능을 했다면, 그 뒤편에 있는 사정전(思政殿)은 왕이 신하와 경연(經筵)을 하고 정무를 보는 집무실과 같은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사정(思政)’이란 생각하고 정치하라는 뜻이다. 『서경(書經)』에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고 했으니, 생각이란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쓰임이 지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도전은 백성들 중에는 슬기롭고 어리석고 어질고 불초한 사람이 섞여 있고, 모든 일에는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됨이 섞여 있어서, 임금이 된 자가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펴야지만 인재를 등용하고 일을 마땅히 처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정도전은 이 건물에서 왕이 매일 아침에 정사를 보고 조칙(詔勅)을 내려 지휘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기를 바라며 사정전이라 이름 하기를 청하였다.
◆ 평안하고 건강 하라, ‘강녕전(康寧殿)’
편전(便殿)인 사정전의 뒤쪽으로는, 왕이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등 일상생활을 하던 사적인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왕의 침전(寢殿)인 이곳은 ‘강녕전(康寧殿)’으로, 평안하고 건강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경(書經)』「홍범구주(洪範九疇)」에는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다섯 가지 복[五福]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세 번째가 바로 ‘강녕’이다. 壽(수: 장수)ㆍ富(부: 부귀)ㆍ康寧(강녕: 평안)ㆍ攸好德(유호덕: 덕을 좋아함)ㆍ考終命(고종명: 천명(天命)을 다함)의 다섯 가지 덕은 그 중간인 ‘강녕’을 들어서 다 차지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정도전은 한가하고 편안하게 혼자 거처할 때에도 마음을 바르게 해야 왕의 자리가 세워지며 오복(五福)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 위(衛)나라 무공(武公)을 예로 들었는데, 무공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행동하여 90세가 넘도록 오복을 누린 인물이었다. 한가하고 아무도 없는 왕의 사적인 공간에서도 스스로 경계하며 마음을 바로 할 것을 바라는 마음이 배어있는 곳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궁궐 전각 하나 하나의 이름은 그냥 쉽게 지어진 것이 아니다. 성리학을 이념으로 했던 조선시대에는 유교 경전을 기본으로 하여, 조선의 꿈과 이상을 고스란히 건물의 이름에 심어 두었던 것이다. 각 궁궐과 전각의 이름을 되새겨 보며 고궁을 산책해 보면 어떨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궁궐이 새로운 의미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 글.사진 = 신병주 / 현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